< 113화. 못 믿겠답니다 >
113화. 못 믿겠답니다
“이모~ 여기 막걸리 하나 추가요~”
시끌벅적한 동네 술집.
시장과 동네 단골들이 주로 찾는 김명자 할머니네가 만석이 되었다.
장마도 끝났겠다, 거기에 더해서 재개발이라는 엄청난 떡밥이 돌며 동네에서 형, 동생 누나 하던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이리라.
“거봐. 내 말이 맞다니까. 그때 말했지? 내가. 옆에 먼저 해보고 딱 사업성 나오니까 바로 번개처럼 바바박~ 진행되잖아.”
“하여간 설레발은, 그래서 이번 재개발 조합장은 누군데?”
“그 있잖아. 이전에 조합장 했던 양반.”
“아~ 그 양반? 그 양반이 생긴 건 조금 그래도, 일 하나는 빠르게 하지.”
“어쨌든 기분 좋네. 일단 마시자고~ 우리 여편네도 기분이 좋은지. 오늘은 맘껏 마셔도 된데.”
이렇듯 화기애애한 축제 분위기.
그리고 또 다른 자리에서는,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한대요?”
“재개발은 재건축이랑 달라서 그래도 인테리어비용이랑 뭐 매출 봐서 보상해준다는데, 말이 그렇지. 제대로 받기는 힘들 거야.”
“아이고, 큰일이네. 권리금이라도 건질 수 있으려나.”
“그러니 정신 똑띠차리고 내일부터 바겐세일로 매출이라도 빵빵하게 올려야 한다고.”
이렇듯 분위기가 갈린 사람들.
“이모~ 이거 하나 꺼내 갈게요!”
그때,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 가는 모습을 보며 김명자가 중얼거렸다.
“아주 바빠 죽겠네. 그냥, 대충 먹고들 가지. 뭘 그리 좋은 일이라고. 쯧.”
그 모습에,
주방에서 전을 부치던 최명숙이 물었다.
“성님. 그래도 재개발되면 이 동네 사람들 주머니에 여유 좀 생기지 않겠으요?”
“그럼 뭘 해. 저렇게 모여 살던 사람들 다 뿔뿔이 흩어질 텐데. 새로운 데 가서 살다가 또 적응해야 하고 이것저것 귀찮기나 하지. 게다가 우리처럼 장사하는 사람들은 머리만 아프지.”
“그런가?”
“그렇지. 우리도 여기 빼야 하는디.”
“성님은 그럼 어디로 가실 거유?”
“모르겠어. 찾아봐야지.”
“그보다 아쉽겠수. 성님이 그렇게 좋아하는 허준네도 사라질 텐데.”
김명자가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쉽기는? 쑥쑥 잘 커가는 것만 봐도 좋구먼.”
“누가 보면 성님 자식인 줄 알겄수.”
“자식 맞지. 배가 아니고 여기, 가슴으로 낳은 자식.”
이런 분위기 속에서 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HS 정형외과.
김형서 원장이 창가에서 손에 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멍한 얼굴로 밖을 바라봤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이 재개발구역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그 말인즉슨,
시장 골목을 기준으로 좌우 양쪽의 구역이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시장 골목과 그 옆의 동네 자체가 완공되기 전까지 매출이 줄어든다는 뜻이었다.
물론, 최근에 김찬용의 홍보로 찾아오는 환자들로 인해서 매출이 많이 오른 상태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앞으로 떨어지는 매출은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세상 일이 그렇듯, 완공 이후에는 떡상이 예상된 자리가 확실했으니,
보나 마나 건물주와의 일전을 치르거나 지금과 다른 조건을 제시하겠지.
본래 계획대로였다면, 먼저 시작한 재개발구역이 완공되어 입주할 때쯤에는 높은 권리금이 형성될 터였을 텐데.
‘그때라면 선택지는 많았다.’
권리금을 받고 양도해도 되고, 또는 매출이 괜찮게 나온다면 이 황금 같은 자리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마음이 싱숭생숭할 수밖에.
그때, 똑똑- 거리는 노크 소리와 함께 후배 유재원이 들어왔다.
“선배.”
“어, 왔어?”
“또 그러고 계세요?”
속 편한 녀석이다.
아니, 속이 편할 수밖에. 원장은 나였으니까.
“에이~ 선배. 인상 피세요. 그렇다고 꼭 안 좋은 소식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김형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카 찬용이가 국내에서 잘 뛰다가 해외로 이적할 거라는 빅 뉴스.
아직 공식적으로는 발표하지 않았지만, 한창 계약과 관련하여 이야기가 오가는 중이라고 한다.
이는 병원의 매출에는 큰 영향이 없을지 몰라도 단순히 혈육으로서의 기분 좋음이었다.
“제가 딱 보니까, 김찬용 선수는 외국에 가서도 잘 뛸 거에요. 느낌이 좋아요. 느낌이. 제가 해외 축구 하루 이틀 봤겠어요?”
“그래?”
“네. 그래서 다음에 혹시라도 오게 되면 미리 사인받아 놓으려고요.”
그래. 혹시 또 아는가.
세계적인 축구 스타가 될지도.
그러길 잠시,
관심은 다시 재개발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골목에 계신 한의사 선생님들도 속 아프겠네.’
허준한의원 뿐 아니라, 태용한의원도 재개발구역에 포함되어 있던데.
보상비는 두둑이 챙기시려나.
잠깐 혜민서 선생들이 생각난 김형서.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며 허준이 치료한 환자들을 떠올렸다.
‘내가 지금 남 걱정할 때는 아니지.’
당장 내 코가 석 자인데.
김형서가 복잡한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남은 커피를 마저 입에 털어 넣었다.
* * *
전반적으로 동네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허준한의원 식구들은 어느 때보다 차분했다.
“원장님께서 그러시는데-”
김예진이 데스크의 선생들에게 허준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고.
“밥 선생님 그리고 고요한 선생님.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허준이 한의사 선생들에게 이야기를 전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간단히 이야기를 전하고 난 뒤에는,
“내원하는 단골 환자들 사이에서도 재개발에 관해서는 느끼는 것이 다를 수 있어 민감한 부분이니, 여러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우리는 환자들의 진료에 집중하자고요.”
“네. 원장님.”
덕분에 허준한의원은 이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중간중간에 여름휴가 계획에 따라 돌아가면서 휴가를 떠난 것도 큰 영향을 미치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종종 대기실에서는 재개발로 인해서,
“윤 쌤. 잠깐만~”
“왜요?”
“궁금한 게 있어서 그렇지. 재개발되는 거 알지?”
“네.”
“여기 원장님은 그래서 어떻게 한대? 옆 동네로 간데? 아니면?”
“저희야 잘 모르죠. 원장님이 아직 아무 말씀 없으셨어요.”
“그래?”
환자들이 물어왔지만, 시원하게 대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가끔은 원장실에서 허준이나 다른 선생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환자도 있었지만, 결국에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였다.
“아직 생각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그보다, 요즘 찬 거 많이 드시나 봐요? 속이 아주 냉한걸요?”
“그래요?”
“네. 뜸 한번 시원하게 뜨고 가시죠.”
그렇게 치료실에서 왕뜸에 불을 올리고 나온 허준.
만족스럽다는 듯한 얼굴로 한의원이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부드럽고 힘이 넘치는 모습.
이것이 허준이 생각하던 이상적인 한의원의 모습이 아니던가.
‘좋네.’
괜히 이런저런 소문에 휩쓸리는 것보다, 이렇게 환자에 집중하자는 것이 정답이었다.
실제로 아직 한방병원에 관하여 김정우 선생님에게 정확하게 정해진 바를 들은 것이 없기도 했고.
원장실로 돌아간 허준이 모니터에 올라온 차트를 확인했다.
김숙자 씨. 아기보살님이 오셨구나.
허준이 데스크에 메시지를 보내고,
문이 열리며 김숙자 씨가 들어왔다.
그녀의 옆으로 떠오른 진행도.
99%. 아마 본인도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깨닫기에, 차고 넘쳤으리라.
“어서 오세요. 잘 지내셨죠?”
“전부 선생님 덕분이죠.”
“보살님은요? 요즘도 여전히 군것질 좋아하시나요?”
“그렇긴 한데, 서로 합의해서 조금씩 줄이기로 했어요.”
“잘됐네요. 다른데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시죠?”
“네. 아주 좋아요. 예전처럼 힘들지도 않고. 몸무게도 정상 체중으로 내려가고 있고요.”
“잘하고 계시네요. 그럼 오늘 치료를 시작해보죠.”
허준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김숙자가 허준을 불렀다.
“선생님.”
“네?”
“그런데, 선생님은 어디로 가실 건가요?”
“아직 생각을...”
허준이 평소처럼 대답하려 하는데,
김숙자가 그 말을 끊었다.
“아~ 그렇구나? 높고 큰 곳으로 가시는가 보네요.”
“어? 그걸 어떻게...”
정확한 장소나 위치는 아니었으나,
단순한 그 한 마디에 정곡을 찔린 것 같은 느낌.
“보살님이 알려주셨거든요.”
대답과 함께 묘하게 웃는 김숙자.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잠시 당황했던 허준이 곧바로 정신을 차리며 말을 이었다.
“역시 괜히 시장 사람들이 용하다고 하는 게 아니시네요.”
“별말씀을요.”
“그럼, 치료실로 가실까요?”
그렇게 치료실에서 침과 뜸치료가 끝나고.
원장실로 돌아온 허준.
「퀘스트 ‘병과 병 그 미묘한 사이’를 완수하였습니다.」
「포인트를 5000 획득하였습니다.」
보유 포인트 : 5832
오랜만에 대량의 포인트를 보상으로 얻은 허준이었다.
그나저나 중간에는 정말 당황했네.
허준이 뺨을 가볍게 두들기고 진료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치료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데스크로 나온 김숙자.
김예진이 데스크에서 김숙자를 맞이했다.
“계산 도와드릴게요.”
“여기요~”
“잠시만요. 여기 계산 끝났습니다.”
김예진이 건네는 카드를 돌려받으며 김숙자가 말했다.
“선생님. 원장님한테 보살님이 이 말을 전해주래요.”
“보살님이요?”
김예진의 귀가 쫑긋거렸다.
최근에 그녀의 말대로 맞아떨어진 것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리라.
“궁금하면 잘 기억해 보라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거야 저도 모르죠. 아무튼, 그럼 이만.”
제대로 된 답변 없이 한의원을 나서는 김숙자를 김예진이 멍하니 쳐다봤다.
“김 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니에요.”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금요일.
중의사들과의 미팅이 있는 날이 되었다.
미팅을 위해서 여름휴가 중 하루를 사용하기로 했고,
덕분에 집에서 여유롭게 출발한 허준.
허준이 달리는 택시 안에서 생각에 잠겼다.
한동안 재개발에 관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진료는 이어졌고, 마찬가지로 혜민서의 주말 활동도 진행되었다.
물론, 아무래도 날씨가 날씨인 데다가, 휴가 시즌이 합쳐지다 보니 이전보다 한의사 선생님들의 참여율이 줄어들었지만.
대신에, 허준의 강의를 듣고 찾아온 한의대생들 덕분에 총 인원은 오히려 늘어나 있었다.
‘덕분에 아주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었지.’
게다가 최근에는 서울뿐만이 아니라, 지방에서도 함께 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박 원장의 말도 있었으니,
모든 게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네.
그렇게 도착한 목적지.
오랜만에 찾아온 대학교.
도준혁 교수를 비롯한 몇몇 교수님들이 허준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잘 왔습니다.”
“환영하네.”
총 허준까지 4명의 인원이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그렇게 그들이 향한 곳은 별관의 작은 회의실.
그곳에서 잠시 기다리니 5명의 사람이 참여했다.
그 중 한명은 통역가 였는데, 통역가가 인사를 전해준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정중한 인사와는 다르게 거만한 중의사들의 행동.
어찌 됐건 허준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그렇게 8명이 마주 앉았다.
그때, 들려온 중국말.
이어진 통역.
“그쪽에 계신 교수님은 누구시냐고 하십니다.”
“아, 저는 교수가 아니라 여기서 특강을 하는 강사라고 답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통역가가 전하고 그것을 들은 중의사들이 웃었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도준혁 교수가 속삭였다.
“저 사람들 원래 태도가 저러니, 기분 나빠 하지는 말게.”
“네. 괜찮습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끝내고 이어진 대화와 발표.
당연히 한의학과 중의학의 만남이었으니,
환자들의 치료 경험부터 사례들로 이어져 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역가의 헛기침이 늘어난다.
“흠, 그러니까 중국에서는 이런 환자에게는 이렇게 처방한답니다. 일침 요법이라고 침 하나로 낫게 할 수 있답니다.”
‘오...’
허준도 들어본 적이 있는 침술이었다.
통증 관리에 아주 효과가 좋다고 하는 침술이지.
자랑스럽다는 듯이 이어진 중의사의 프레젠테이션.
그의 발표가 끝나고 박수가 이어졌다.
이번엔 허준의 차례.
허준이 준비해온 자료들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무슨 일인지요?”
“믿을 수 없답니다. 실제 사례가 아니라 그렇게 이것저것 다 긁어오면 중국에는 훨씬 많은 사례가 있을 거랍니다.”
“이거 전부 다 제가 진료를 본 환자들입니다만.”
통역가가 다시 중의사들에게 말했고,
그들 중 한 중의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는 못 믿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