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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21화 (122/230)

< 121화. 전부 >

121화. 전부

국장실.

국장 김종현의 앞에 최은진이 마주 섰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먼저 찾아오다니, 이제야 우리 최 PD가 마음의 결정이 섰나 보네?”

“국장님. 제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요.”

“그래? 어서 말해봐. 안 그래도 너랑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많거든. 예능? 드라마? 말만 해.”

최은진이 웃으며,

“국장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작년에 만든 다큐 시청률은 조금 안 나왔어도 온라인에서는 꽤 영향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래서 말인데요. ‘서울역의 사람들 그 1년 뒤.’는 어떨까요?”

“뭐...?”

김종현이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여간 저 고집불통 같으니라고.

뭐,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 않겠는가.

자신만의 신념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김 국장은 그런 사람들을 좋아했다.

대부분 본인의 신념에 어긋나지 않는 한에 있어서 일은 기가 막히게 하니까 말이다.

그보다 서울역의 사람들 1년 뒤라니.

여태까지 가져온 것 중에서는 가장 괜찮은 소재네.

언뜻 보기에 작년에 찍었던 다큐멘터리를 사골처럼 우려먹는 것과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시청자들은 궁금해하기 마련이었으니,

자신이 보낸 후원금은 어떻게 쓰였는지, 그때 나왔던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바뀌어 사는지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작년에 이슈는 조금 되었을지언정, 돈이 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과거 팀장이었던 김종현이라면 그대로 밀어붙이자고 할법한 이야기였지만,

국장 김종현으로서는 썩 반가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어때요?”

“야. 너는 그게 먹힐 거 같니?”

“국장님. 언제부터 다큐멘터리가 시청률에 그렇게 목매었어요? 국장님께서 저한테 항상 강조하셨잖아요.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라고.”

“그건 그때고,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지. 크흠.”

최은진이 김종현을 노려봤다.

그러자,

“알았어. 알았어. 그럼, 이렇게 하자.”

김종현이 대안을 제시했다.

그녀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순순히 말을 들을 녀석은 아니지.’

그럴 바에야 차라리 당근을 먼저 던져주는 것이 현명할 터.

“그럼, 네 말대로 이번 건은 진행하도록 해. 아이템도 뭐 무난하니까. 대신에.”

“대신에?”

“이번 거 끝내고 나면, 내 말대로 드라마 한 번 해보는 거다? 알았지?”

최은진이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방송국 돌아가는 상황을 훤히 꿰고 있었기에, 국장이 한 말이 그가 제시할 수 있는 마지노선임을 알고 있는 그녀였다.

“대답?”

“알겠어요.”

그렇게 국장실에서 돌아온 최은진.

팀원들에게 외쳤다.

“당장, 작년에 받았던 연락처들 연락 싹 돌려서 체크해.”

“네!”

“참, 허준 선생님 쪽은 내가 알아서 체크할게.”

*   *   *

그 시각.

한창 진료 중인 허준한의원.

허준의 눈앞에는 끊임없이 메시지가 나타나며 포인트가 올라가고 있었다.

지난 번 혜민서 홈페이지에 공개한 사마귀와 무좀의 치료법과 연고제조법 때문이리라.

‘그러고 보니, 그 문제도 정해야겠군.’

지금의 혜민서의 업무는 주로 태용한의원의 박용준 원장이 담당하고 있었는데,

한방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하게 되면 이 두 개를 같이 하기에는 무리였다.

후원금 관리라던가, 회원들과 협력단체의 관리 그리고 행사기획까지.

게다가 어디 그뿐인가.

영상제작에 사이트 관리도 전부 도맡아 하고 있었지.

물론, 사이트 개설이나 관리는 지인에게 맡겼다고 들었지만, 어찌 됐건 이 업무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아무래도 돈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으니,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 좋겠네.

그렇게 생각과 함께 돌아온 진료실에는

차트가 올라와 있었다.

‘초진환자군.’

42세. 남성. 이름은 박철웅

증상은 무릎 통증이라.

가벼운 염좌 같으니 후딱 치료해 보실까.

그렇게 곧바로 메시지를 보낸 허준.

곧이어 진료실 문이 열리며 쩔뚝거리는 환자가 들어왔는데,

그런 그의 옆으로 퀘스트가 나타나 있었다.

<고래의 삶>

* 진행도 : 0%

* 보상 : 포인트 2000

‘어째, 갈수록 퀘스트가 이상해져 가는 것 같은데?’

잠시, 그런 생각과 함께 맞이한 환자.

허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쩔뚝거리는 환자를 부축해 의자까지 함께했다.

물론, 부축하면서 그의 얼굴색과 눈 피부 등등을 살피는 것은 기본.

다크서클이라 불리는 눈 밑의 그림자가 흥건하고 피부는 조금 벌건 느낌이었다.

“무릎이 아프셔서 오셨다고요?”

“네. 물어보니까 여기가 침을 그렇게 잘 놓는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잘 오셨어요. 한번 볼까요?”

허준이 박철웅의 무릎에 손을 올렸다.

뜨끈한 열감이 손끝을 타고 올라온다.

‘급성염좌 같네.’

하지만, 단순히 급성염좌로 퀘스트가 나타난 적은 없었는데.

그랬으면 이미 염좌로 거쳐 간 수많은 환자들 사이에서 진즉에 나타났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럼, 난치병 종류인가.

잘 모르겠으면 밝혀내면 될 터.

일단은 문진부터 시작했다.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엊그제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이렇게 부었더라고요.”

“혹시, 어디 부딪히거나 넘어지신 적은 없으시죠?”

“네. 아마 그럴 거예요.”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번엔 진맥.

“이쪽으로 손을 올려주시겠어요?”

그와 동시에 시작된 진맥.

눈을 감고, 맥을 느끼기 시작하자,

‘간... 간의 기운이 많이 약하다. 그리고 이 느낌은 신장?’

간은 피로를 호소하는 중이었고,

오히려 신장 쪽이 허한 느낌이었다.

이어서 손끝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감각.

온몸 구석구석을 돌다가 무릎에서 느껴지는 묘한 감각이 몸 여기저기서 미세하게 느껴져 온다.

‘이건... 무릎뿐만이 아니야.’

무릎이 아프다고 했지만, 실상은 몸 전체의 관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느낌.

허준의 머릿속에 동의보감에 적힌 병이 떠올랐다.

‘백호역절풍.’

호랑이에게 물리는 통증과 같다는 뜻의 병으로, 지금의 통풍을 뜻했다.

과거에는 왕의 질병이라고 불릴 만큼 서민에게는 드문 병이었는데, 시대가 시대인 터라 누구든 쉽게 잦은 음주와 육류섭취가 가능해지면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질환이다.

‘그러고 보니 연령대도 딱 맞아떨어지는군.’

보통 40대에서 50대 사이에 가장 발생빈도가 높으며, 여성보다 남성이 10배가량 환자가 많다고 한다.

물론, 최근에는 더 젊은 사람들도 걸리긴 하지만.

허준한의원에 찾아오는 환자들의 나이대가 아예 젊은 층이 아니면 고령층이 대부분이었기에, 첫 통풍환자가 찾아온 것이었다.

‘통풍의 요인은 요산의 축적 때문이지.’

본래 인간의 몸은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평소에도 요산이 포화 정도의 수준으로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이런 상태에서 더욱 요산이 축적되어 과요산상태가 되어서 그것을 방치될 경우 관절 부분에 쌓여서 결정화를 이루게 된다.

이 결정은 생김새가 바늘처럼 뾰족해서, 바로 이것이 통증과 염증을 유발하는 것.

‘사묘탕이 통풍치료에 좋다고 했지.’

탕약은 사묘탕으로,

침으로 환부 주변을 직접 자극하여 순환에 도움을 주고, 신장의 허증을 일단 치료하면 되겠군.

“박철웅 씨.”

“네?”

“제가 보니까, 이게 평범한 염좌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럼요?”

환자의 되물음에 허준의 설명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통풍 초기증상 같습니다.”

박철웅도 통풍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만큼 생각보다 흔한 질환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에이~ 선생님. 제가 무슨 통풍이에요? 이 나이 먹고 자랑은 아니지만, 이래 봬도 아직은 웬만큼 술을 마셔서는 취하지도 않는걸요.”

그럴듯한 이야기다.

실제로 환자의 체질이 술과 잘 맞는 체질이었으니까.

바꿔말하면, 지금 이렇게 통풍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잘 맞는 체질임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를 넘었다는 이야기일 터.

게다가 웬만한 양으로 취하질 않는다고 말하는 것으로 짐작건대, 음주시 과도한 양을 마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것 또한 통풍의 원인으로 작용했겠지.’

“일단은 통풍이라고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치료는 침 치료와 사묘탕이라는 탕약으로 처방하려고 합니다.”

“괜찮습니다. 선생님. 그냥 간단하게 침만 놔주십시오. 저 아직 팔팔합니다.”

가끔 진료 시에 이렇게 답답한 환자들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대부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었으니,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알아두세요. 통풍은 이렇게 첫 증상이 나오고 나서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앞으로의 습관에 따라서 치료가 될지, 악화가 될지 결정이 되니까요. 그러니...”

허준이 통풍에 도움이 되는 물을 많이 먹으라던가, 먹으면 별로 좋지 않은 음식들에 관해 간단하게 설명을 끝냈다.

그렇게 치료실.

허준이 침을 꺼내 들고,

망설임 없이 환부에 찔러 넣었다.

이어서 신장 경락 혈자리인 손목 부근의 경거혈과 발목 안쪽의 조금 윗부분에 있는 부류혈에 침을 찔러 보하고,

그보다 아래에 있는 태계혈과 엄지발가락 발등 옆쪽의 태백혈을 사했다.

‘이정도면 무릎은 금방 효과가 있을 거야.’

물론, 이것은 그저 임시방편일 뿐이다.

결국은 다시 찾아오게 될 터.

진짜 치료는 그때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20여 분 뒤, 치료를 마친 박철웅.

계산을 마치며 한의원을 나서는데, 무릎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많이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 진짜 침 잘 놓네.”

놀랍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근데 통풍이라니? 참, 나 어이가 없어서. 그런 약파는 소리에 내가 당할 줄 알았나 보지?”

라며 기분 좋게 시장 골목을 벗어났다.

*   *   *

사람은 바뀌기 어렵다고들 한다.

맞는 이야기다.

끊임없는 자기합리화와 스스로에게만 주어지는 관대함은 망가진 자신의 모습도 비교적 멀쩡해 보일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어려울 뿐이지,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치,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버젓하게 인생을 완전히 바꾼 청년. 김태현.

서울역에서 노숙자로 살아가다가 구안와사에 걸려서 허준에게 큰 도움을 받은 뒤,

심경의 변화와 함께 사람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해서 이제는.

[뉴라이프 디자인. 김태현.]

이라는 명함을 들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그렇다고 그렇게 거창한 업체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과 같이 심경의 변화나 굳은 의지로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는 노숙자 몇을 이끌어 함께 만든 그런 소규모 인테리어 업체였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가짐 때문일까.

또는 완전히 바뀐 삶을 살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김태현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서였을까.

함께하는 사람들 모두가 열정적으로 일을 했고,

덕분에 여기저기에서 호평을 얻으면서 차근차근 성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김태현에게 어느 날 연락이 왔다.

“아이고~ 어르신. 무슨 일이십니까?”

“자네. 요즘 바쁜가?”

“아니요. 바쁘더라도 어르신께서 부르시면 바로 달려가야죠.”

“그래? 그럼, 내가 주소 하나를 보낼 테니, 2시까지 와주게.”

“알겠습니다. 이따가 뵙겠습니다.”

지금의 이 작은 업체를 만들 수 있게 해주신 어르신.

대충 찍힌 주소를 보니, 이번에도 빌딩이었다.

‘느낌이 좋은걸?’

빌딩에 있는 사무실의 실내 인테리어만 하더라도 규모가 규모인 만큼 꽤 짭짤한 매출이 올라올 터.

휘파람을 불며 부푼 기대감과 함께 도착한 곳은 텅 빈 빌딩 앞 작은 사무실.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선 김태현이 힘차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김정우가 그 모습에 웃으며 화답했다.

“오랜만이야. 안 본 동안 얼굴이 아주 좋아 보이는구만?”

“아닙니다. 다 어르신 덕분이죠.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늘 그렇지.”

“그런데, 어쩐 일로 저를?”

“별건 아니고, 자네의 꼼꼼한 일 처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자네한테 일을 맡기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김태현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 나의 구세주.

“앞에 보이는 빌딩 말씀이시죠?”

김정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김태현이 작은 노트를 꺼내면서 물었다.

“몇 층입니까?”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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