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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29화 (130/230)

< 129화. 웰컴 >

129화. 웰컴

몇 달 전.

“아~ 아~”

아침에 일어난 엘레나가 평소처럼 가볍게 목을 풀어봤지만, 느낌이 이상했다.

타인이 듣기에는 별반 차이가 없을지언정 본인이 느끼기에는 묘한 진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물론,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그저 입을 벌리고 잤다든가 하는 가벼운 헤프닝일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직업이 성악가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하필 오디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조심해야겠어.’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처음 느꼈던 묘한 진동이 익숙해지기라도 한 듯,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저 그날 잠시 감기 기운이 왔다 간 거로 생각했다.

그렇게 얼마 뒤, 오디션장.

엘레나가 긴장을 풀고 오디션장에 들어가 관계자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엘레나입니다.”

“반가워요. 엘레나 씨. 그럼, 바로 시작해 볼까요?”

이윽고 준비한 노래를 시작했고,

평소처럼 노래하는 그녀.

심사를 맡은 네 명의 사람들이 흡족하다는 듯이 눈빛을 마주하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런데, 고음으로 조금 더 올라가니.

시원하고 청아하게 뿜어져 나오던 목소리가 탁한 기운이 섞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심사의원들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성악가는 몸이 곧 악기.

지금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음의 부정확함과 탁함은 고장이 났다는 것을 절실하게 표현하는 중이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엘레나 씨.”

“네?”

“혹시, 최근에 연습할 때라던가, 몸에 이상이 느껴져서 병원에 간 적이 없으신가요?”

“병원이요? 네. 최근에 감기 기운이 조금 있는 것 같긴 했지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결과는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엘레나가 오디션장의 문을 열고 나가자,

심사위원들이 중얼거렸다.

“아깝네. 오랜만에 보석 같은 목소리를 만났는데, 하필 금이 가 있다니.”

“그러게요. 치료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글쎄요. 그녀의 치료까지 저희의 업무는 아니니까요.”

“하긴, 그렇긴 하죠.”

그렇게 얼마 뒤, 불합격 통보를 받은 엘레나.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친구가 찾아왔다.

“헤이~ 엘레나.”

엘레나의 친구 에이미.

어릴 적부터 둘이 합창을 꿈꿔온 친구로 고음역은 엘레나가 낮은 음역은 에이미가 맡아 같이 노래를 부르던 단짝 친구.

그녀의 희귀성 때문인지, 그녀는 이미 자신보다 앞서 어엿하게 성악가로서 활동하는 중이다.

“벌써 기죽은 거야? 그러지 말고 오랜만에 같이 그거나 할까?”

“됐어. 지금 그럴 기분 아니거든.”

“시작한다~”

막무가내로 노래를 시작하는 에이미.

그리고 곧이어 자신의 고음 분야에 못 말리겠다며 한숨을 내쉬고는 노래를 시작한 엘레나.

그러자,

“엘레나...?”

에이미가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물었다.

“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목소리 어떻게 된 거냐고.”

“목소리가 어때서?”

“장난해 지금?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당장 같이 병원에 가보자.”

굳이 어려운 설명도 필요 없었다.

의사가 엘레나의 목을 보자마자 진단을 내렸으니까 말이다.

“성대결절입니다.”

“성대결절이라면...”

가수, 성악가, 강사 등.

노래를 많이 하거나 말을 많이 하는 직업군들에게 생기는 일종의 직업병.

“네. 별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존적 치료로 휴식과 음성치료를 받으면 회복률이 무려 80%나 되니까요.”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의사가 권유하는 치료를 받았음에도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

즉, 80%의 확률에 들어서지 못하는 불우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수술을 할 수는 없었으니,

목소리를 악기처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성대결절 수술은 그야말로 최후의 보루.

높은 확률로 본래의 목소리로 돌아오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에이미는 우연히 음악회에서 학창시절 친구 최서윤을 만나게 되었는데.

“서윤?”

“에이미? 여기 웬일이야?”

“나도 공연 준비하러 왔지. 그런데, 네가 여기서 연주한다고 그러더라고.”

“옛날 그대로네? 잘 지냈어?”

“그럼, 나야 항상 잘 지내지.”

“그런데, 네 단짝은 어디 가고?”

최서윤이 옛날 기억을 떠올리며 물었다.

학교생활을 하는 내내 둘이 붙어 다니는 친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엘레나?”

“맞아. 걔 이름이 엘레나였지.”

“안 그래도 요즘 엘레나가 신경이 쓰여.”

“무슨 일 있어?”

에이미에게 사정을 들은 최서윤.

과거에 자신이 겪었던 일이 떠오르면서 공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 내가 한동안 한국에 들어가 있었던 거 기억나?”

“아~ 물론이지. 휴가 갔다 왔다면서?”

“사실은...”

이번엔 최서윤이 숨겨왔던 과거의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에는 숨기고 피하고 싶은 현실이었으나, 이제는 모든 것을 극복한 상황이었으니,

오히려 이 이야기를 듣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까닭이었다.

“잠깐, 그럼 한국에 네 손가락을 고치러 갔었던 거라고?”

“맞아. 피아노를 못 칠 정도로 손이 안 움직였었거든.”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진작 이야기하지...”

“뭐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니까.”

그러면서 메모장에 주소와 전화번호를 하나 적어 건넨 최서윤.

그것이 에이미에게서 엘레나에게 전해졌고.

마침내,

엘레나가 한국까지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여기인가?’

남아 있는 시장 사람들 몇이 엘레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니 시장도 사라져가는 마당에 웬 외국인 처자가 왔대?”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인터네셔날 몰라? 인터네셔날.”

“혹시, 한의원 찾아온 거 아니여?”

“그런가? 방향을 보니 그런 것 같기도?”

일리가 있다는 듯이 끄덕이는 상인 하나.

“그럼, 혹시 밥 선생 여자친구 아니야?”

라는 의문에 꼬리를 물며 이야기가 더해져갔고,

엘레나는 주소를 한 번 더 확인한 뒤 허준한의원으로 들어섰다.

들어가자마자 느껴진 것은 당연코 한약재 냄새.

외국에서는 맡아보기 힘든 냄새였기에 가장 먼저 몸이 반응한다.

이어서,

“어서 오세.. 웰컴?”

최유니 선생의 웰컴이라는 단어에 반응한 엘레나.

자연스럽게 영어로 무언가를 말했는데,

‘큰일이다. 진짜 외국 사람이야.’

비상, 비상. 영어 울렁증이 도진다.

빨리 다른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남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지만, 남 선생이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불가능하다는 뜻.

그때, 최유니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였다.

외국인이라면 우리 한의원에도 있잖아!

콩글리시로 엘레나에게 손짓을 섞으며,

“웨잇어 미닛. 플리즈.”

라고 답해주면서 동시에, 허준 원장님의 컴퓨터에 메시지를 보냈다.

- 밥 선생님의 도움이 급하게 필요합니다.

환자와 마주 앉아 있던 허준의 눈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밥 선생이 필요하다고?

“죄송합니다. 환자분 잠시만요. 밥 선생님. 데스크에 잠시 다녀오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원장님.”

“바로 진료 이어가도록 하죠.”

*   *   *

치료실 업무를 마치고 데스크로 나오던 윤 선생이 문을 열고 들어온 환자를 보며 발걸음을 멈췄다.

‘외국인..’

아니나 다를까.

한국말이 아닌 영어로 접수를 하는 모습.

윤 선생이 천천히 뒷걸음질 쳐서 다시 치료실로 들어갔고,

치료실 정리를 하던 김예진이 그 모습에 물었다.

“윤 쌤. 나가서 쉬세요. 몸도 무거우실 텐데. 제가 남아서 정리할게요.”

“아~ 지금 나가려고 했어요. 고마워요. 김 쌤.”

이 빼도 박도 못 하는 상황에서 등장한 구세주가 있었으니.

바로 밥 선생님이었다.

진료실에서 나온 밥이 데스크 상황을 한눈에 인지하고 찾아온 환자에게 영어로 물었다.

“안녕하세요 닥터 밥이라고 합니다. 진료를 받고 싶어서 찾아오신 건가요?”

“네. 맞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제가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데스크 선생님들.

그리고 이 흥미진진한 상황을 구경하고 있던 대기실의 환자들이 힐긋거리며 시작된 접수.

“닥터 허준을 찾아왔습니다.”

“어떤 증상 때문에 오셨나요?”

“성대결절 때문에요.”

“성대결절이라... 알겠습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불러 드리겠습니다. 엘레나 씨.”

그렇게 데스크로 향한 밥이 최유니 선생에게 말했다.

“최 선생님. 저분 이름은 엘레나라고 하네요. 이대로 접수해 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밥 선생님. 선생님이 안 계셨으면 정말 큰일날 뻔했어요.”

“별말씀을요.”

데스크 선생님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밥을 바라봤고,

그 시각 허준의 앞에는 통풍으로 찾아온 박철웅 환자가 앉아 있었다.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

허준이 그런 박철웅을 보며 미소지으며,

“요즘도 불편감이나 자극이 있으신가요?”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처방 그대로 따랐더니, 요새는 정말로 아무 느낌도 안 드네요. 오히려 그전보다 더 건강해진 것 같기도 하고요.”

당연할 것이다.

통풍을 관리하기 위해서 식단에 변화가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술을 제외하더라도, 기름진 육류에 치중되어 있던 식단이 지금은 균형 잡혀있는 상황이었으니,

「퀘스트 ‘고래의 삶’을 완수하였습니다.」

「포인트를 2000 획득하였습니다.」

치료의 목적은 달성한 셈.

마침, 메시지가 호응이라도 하듯 허준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제 다음부터는 한의원에 오지 않으셔도 될 것 같네요.”

“네. 그저 감사드립니다. 제가 처음에 선생님의 말씀을 못 믿고 행동한 거에 대해서는 사과드리고 싶네요.”

“괜찮습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종종 있는 일이거든요. 오히려 더 심한 분들도 가끔 계시고요. 그보다 앞으로도 꾸준히 지금처럼 관리해주세요.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수 있는 질환이니까요.”

“그럼요. 어우~ 정말로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웃으며 나서는 박철웅과 그 뒷모습을 확인한 허준이 메시지를 확인하는데,

밥이 들어왔다.

“밥 선생님. 무슨 일 있나요?”

“아, 별일은 아니고, 외국인 환자분이 오셔서요.”

“외국인이요?”

허준의 물음에 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데스크에서 선생님들과 대화가 안 돼서 접수를 못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요? 무슨 증상으로 왔는데요?”

“성대결절이요.”

한 번도 직접 치료해 본 적 없는 질환.

하지만, 걱정은 없다.

성대결절의 치료법도 이미 공부해뒀으니까 말이다.

‘미리 공부해두길 잘했어.’

최근에 아이돌의 진료롤 본 뒤로, 언젠가는 한번 쯤 가수도 찾아오지 않을까 해서 익혀둔 허준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도움이 될 줄이야.

그보다 밥 선생이 있어서 참 다행이야.

본래 밥 선생님의 진심이나 열정을 보고 한의원 식구로 받아들인 허준.

하지만 지금 보니 외국인 환자와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인재가 아니던가.

이거 한방병원으로 가게 되면, 더 빛을 발아겠군.

어쨌거나 일단은,

진료가 먼저겠지.

그렇게 늘 찾아오던 환자들의 진료가 빠르게 소화되어서 갔고.

마침내, 30분가량 지나고 나서야 들어온 엘레나.

진료실 문이 열리며 허준이 그녀의 옆에 있는 퀘스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천상의 목소리>

* 진행도 : 0%

* 보상 : 포인트 5000

보상으로 얻는 포인트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간단한 싸움은 아니겠네.

허준이 밥 선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밥 선생님. 제가 하는 말을 통역해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엘레나 씨. 이허준이라고 합니다.”

밥이 통역했고,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반갑다고 합니다.”

“그럼, 진료 시작해 볼까요.”

*   *   *

그 시각.

최은진네 팀이 다음 촬영을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차 안에서 이어진 이야기.

허준에 관한 이야기였다.

“김태현 씨가 세상에 그렇게 많이 바뀌었을 줄이야.”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뭐 솔직히 나 같아도 그런 경험 하고 나면 바뀌지 않을까요?”

“그런가?”

“그러고 보니 허준 원장님이 확실히 대단하긴 하시네요. 따지고 보면 이게 다 허준 원장님이 김태현 씨를 치료해주면서부터 시작된 일이잖아요.”

“뭐 그렇긴 한데, 누구나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하잖아. 착한 사람끼리 죽이 맞는 케이스겠지.”

“그런가?”

그때, 뒤에 앉아 있던 팀원 하나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오늘 촬영하시는 분은 누구세요?”

“아, 서울역에서 유명하신 분이야. 박진석 선생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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