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화. 약간 이상하지 않아요 >
133화. 약간 이상하지 않아요
2층에서 촬영이 이뤄지고 있는 동안에 1층에 모인 혜민서 식구들.
허준이 태용한의원 김 원장을 보며 말했다.
“김 원장님?”
“응? 왜 그래?”
“가운은 왜 입고 오셨어요?”
김태식 원장과 박용준 원장.
두 명만이 새하얀 가운을 입고 서 있었으니, 그 모습에 다른 선생님들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박용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아, 원장님. 제가 말했잖아요. 그냥 평소처럼 오자니까. 아무리 봐도 단톡방에 평소 모습으로 참여해 달라고 쓰여있고만.”
“아니... 나는 우리 평소 한의사들 모습을 말하는 줄 알았지. 그래도 TV에 나간다는데 단정한 모습이 좋을 것 같아서...”
김태식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됐고, 빨리 벗으세요.”
그 모습에 다시 한번 킥킥거리며 웃는 식구들.
허준도 같이 웃다가 헛기침으로 마무리했다.
언뜻 보기에 충분히 기분 나쁠 만한 상황이지만, 이미 한 식구처럼 지내는 돈독한 사이였으니, 오히려 두 원장이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오늘 촬영이 있지만, 어차피 편집으로 이상한 장면은 다 잘려나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평소 모습대로 하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원장님.”
허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렇게 촬영을 잡기 전부터 허준이 이미 충분히 설명했기 때문이리라.
“이번에 추석 특선으로 방영되는 다큐멘터리에 우리 혜민서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괜찮은 생각인 것 같네요. 확실히 미디어에 노출이 되고 안 되고는 차이가 있을 테니까요.”
실무를 담당했던 박용준의 대답에 이어서 김태식도 동의했다.
“좋은 생각이야. 그럼 더 많은 후원금이나 지원자들이 함께할 테고, 내년에 개원하게 되면 우리의 평판도 아주 좋아지겠지.”
아무래도 원장이다 보니, 매출이 벌써 신경이 쓰이나 보다.
옆에 있던 고요한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했고, 가장 격하게 동의한 것은 당연히 밥 선생이었다.
그의 꿈이 본국으로 돌아가서 이런 단체를 만드는 것이었으니,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
이런 의문과 혜민서에 대한 열정이 반씩 섞여 있었기 때문이리라.
마지막으로 유도진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들어서 혜민서 멤버 게시판에 사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이는,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혜민서를 통해서 치료법을 익힌 한의사들이 실제로 처방한 뒤의 기록이었다.
그 기록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유도진이 원하는 한의학의 이론적 확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많은 사례가 모이고 검증이 되면, 그것이 곧 완성된 학문으로의 길.’
그때,
“원장님. 그런데, 정말 김정남 할아버지 인터뷰 괜찮으시겠어요?”
김예진이 걱정하듯이 물었다.
누가 봐도 논쟁거리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한의학과 암.
동의보감에서도 물론 암을 치료했다는 기록도 있었지만, 요즘 시대에는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임을 누구나 알고 있지 않던가.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최 PD님과 이야기가 끝났거든요.”
허준이 아무 걱정 없다는 듯이 웃으며 답했다.
실제로 완치가 된 것도 아니고, 그저 처음에 왔을 때와 비교해서 상태가 호전되었을 뿐이었으니,
TV에는 ‘한의학적 치료가 도움이 되고 있다.’ 정도로 이미 입을 맞춰둔 상태였다.
그때,
한의원 문이 열리며 들어온 최은진의 촬영팀.
“어서 오세요. 최 PD님.”
“많이 기다리셨어요?”
“우리도 이제 막 시작하려고 했어요.”
허준의 말을 들은 최은진이 혜민서 식구들에게 인사했다.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최은진이라고 합니다. 오늘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드립니다.”
“멋있게 나오게 해주세요~ 이왕이면 좀 잘생기게도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최은진이 허준과 눈이 마주쳤고,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바로 시작할까요?”
그렇게 시작된 혜민서의 활동.
촬영 카메라 때문인지 처음에는 살짝 어색한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허준이 최근에 완치를 시킨 통풍의 사례를 비롯해 최근에 찾아온 환자들의 사례들을 이야기하면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질문들이 이어지고, 그 질문에 최대한 답변을 하며 사례가 모자라 여러 체질이나 증상에 대해서 아직 미흡할 때는 토론을 통하여 미리 대책을 마련한다.
그 모습을 보는 최은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정말 멋있는 장면이 나오겠는걸?
‘마치 의학 드라마에서 나오는 모습 같아.’
물론 규모 면으로는 확연한 차이가 났지만, 오히려 소수정예인 만큼 그 열정이 더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그녀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카메라로 찍고 있는 담당 김종훈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최 PD한테 말로는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장난이 아니잖아?’
분명히 허준 선생님이 주축인 것은 확실했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다른 선생님들의 수준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허준 선생님의 옆에 앉은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선생님의 경우에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한의학적인 용어가 나왔을 때는 당연히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그의 입에서는 한의학뿐만이 아니라 현대의학에서의 사례와 논문 그리고 최근 한의학계에서 발표된 논문까지 줄줄이 나열되고 있었기 때문.
이어서 추나와 직접적인 침을 놓는 위치와 방법에, 경험까지 허물없이 나누는 모습은 지켜보고 있던 촬영팀에게 뜨거운 무언가를 느끼게 할 정도였다.
그렇게 끝난 혜민서 모임.
그리고 촬영.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들.”
“수고하셨어요. 자네도 수고했고, 우리 밥 선생도 아주 자랑스러워. 벌써 동상과 화상도 치료해 보고. 우리보다 더 빠른데?”
“다 선생님들 덕분이죠.”
겸손하게 인사하는 밥의 어깨를 김 원장이 두드리며 말했다.
“자넨. 외국인 같지 않게 예의가 있어서 좋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십시오.”
“물론이지. 내가 자네 같은 친구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어서 촬영팀과도 인사를 나눴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들.”
“지겨우셨을 텐데, 촬영하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박용준이 먼저 답했고,
뒤를 이어서 김태식이 답했다.
“어디,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시원하게 같이 한잔하실는지?”
“좋죠.”
그때, 김예진이 다가오더니.
“최 PD님?”
“네..?”
“내일 촬영 안 하실 거예요?”
김 원장도 김예진 선생의 성격을 알기에는 충분한 시간.
그녀의 표정을 보고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내일 행사가 있었지? 하하. 이거 아쉽지만, 내일 끝나고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럼, 그럴까요?”
하하, 호호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
허준이 그 모습을 보며 다가와 말했다.
“PD님. 내일 촬영은 여기 계신 김 선생님과 상의하시면 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원장님.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별말씀을요. 늘 하던 일인데. 그럼 우리도 이만 퇴근하도록 할까요?”
* * *
시장 골목의 분위기가 한 번 더 바뀌어 가고 있었다.
반쪽은 휑하게 날아갔고 재개발로 인해서 중간에 듬성듬성 빈 점포들도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추석 전에 가야지, 추석 때 물건 팔 거 아니야.”
“옆 동네에 좋은 자리가 나서 덥석 계약하고 왔지.”
“이젠 장사 그만하고 집에서 손주나 보려고.”
등등 각자의 사연들.
덕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늘져 보였다.
아직 건물주와 보상문제나, 따로 자리를 못 구했다든가 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아주 시장이 휑하네, 휑해.”
“나는 추석 때, 폭탄 세일로 재고나 미리 정리해 두려고.”
“좋겠다. 좋겠어. 공장제라서.”
“형님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래도 우리가 여기 건물주인 최 사장님과 몇 년째인데, 어련히 챙겨주시겠지.”
“그러겠지?”
“그보다 그 이야기 알아요?”
“뭔 이야기?”
“우리 아기보살님 곧 가신다던디?”
그 이야기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만큼 이 시장 골목에서 상징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리라.
“그래? 아이고~ 가기 전에 한번 가봐야겠네.”
“그러고 보니 허준네에서도 추석 이벤트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가보셨수?”
“이번에는 무슨 이벤트인데?”
“그 뭐더라... 보약 할인? 뭐라고 설명했던 거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그래? 안 그래도 작년에 며느리가 거기서 보약 맞춰 줘서 겨울내내 엉치 한번 안 시리고 잘 보냈는데, 올해도 말해봐야겠구먼.”
이렇듯 허준한의원에서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이야기가 시장뿐만 아니라 찾아오는 환자들에게도 퍼져나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덕분에,
“체질적으로 녹용보다는 인삼이 잘 맞으십니다.”
“선생님. 그래도 녹용이 인삼보다 좋은 거 아닌가요? 아무래도 비싼 게 더...”
허준이 보약을 맞추러 온 환자에게 웃으며 답했다.
“아니에요. 비싼 게 아니라 몸에 잘 맞는 게 보약이죠. 아무리 비싸도 몸에 안 맞으면 그건 보약이 아니라 독약이니까요. 아마 녹용이 들어간 보약을 드시게 되면 배탈이 난다던가, 속이 더부룩 하다든가 하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요. 반면에 녹용 대신에 인삼이 들어가면 몸 안이 따듯해지면서 소화도 잘되고 힘이 날걸요?”
“그렇군요...”
녹용대보탕을 맞춰달라고 온 환자였다.
하지만 증상과 체질을 보아하니, 녹용대보탕보다는 인삼이 들어간 경옥고가 안성맞춤이다.
50대가 넘어선 나이.
그로 인한 폐경기와 더불어 상열감.
여기에 더해 입맛이 없고, 피로하면서 잘 체하는 체질.
‘경옥고가 좋겠어.’
허준이 진맥 때 느꼈던 감각을 떠올리며 처방전을 써 내려갔다.
이어서,
“오신 김에, 침과 뜸도 맞고 가시죠.”
이렇게 침과 뜸 그리고 탕약이나 보약까지 모두 처방을 받은 환자들은 확실히 뭔가 달라짐을 느끼고 기분 좋게 치료실을 벗어났는데.
데스크에서 계산할 때의 가격을 듣고 놀라 되묻기 마련이었다.
“네? 정말 그거밖에 안 된다고요?”
보약을 맞추러 온 사람들은 보통 보약을 먹어본 사람이 많은 법.
따라서 흔히 알고 있는 공진단이라던가 경옥고, 십전대보탕 등등의 가격은 대충 알고 있었는데, 유명세에 비해서 가격이 생각보다 많이 저렴한 것이 아닌가.
때문에, 허준 한의원의 이벤트는 빠르게 입소문을 타는 중이었다.
* * *
방송국 안 편집실.
최은진을 비롯해 촬영팀 전원이 작업하는 그녀의 옆에 서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은 바로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혜민서의 봉사활동 장면.
그 전날에 모였었던 선생님들이 전부 참가하여 경기도권에 있는 양로원에서 찍은 영상이었다.
“직접 하시려고요?”
“응. 그러려고.”
“이번에는 어떤 느낌으로 작업하시려고요?”
그 물음에 최은진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일단은 연출 없이 있는 그대로 가보려고. 왠지 느낌이 그래도 될 것 같아.”
“하긴... 굳이 힘줄 필요가 없긴 할 것 같네요.”
영상을 찍어온 카메라 담당 김종훈이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토요일에 두 눈으로 보고도 못 믿을 것 같은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이리라.
‘1년 전에도 침을 기계처럼 놓더니...’
이제는 한술 더 떠서 기계 정도가 아니었다.
그저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침을 놓는 데에 있어서 멈춤이 없었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 같은 오만함이 느껴질 정도.
그런데 그 침을 맞은 환자들이 전부 치료가 끝나고서는 환하게 웃는 것이 아닌가.
카메라 밥을 먹으면서 사람을 찍다 보면, 찍는 순간 그 사람의 표정을 읽을 수 있게 되는 법.
그들 모두가 거짓 없이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신입이 화면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어? 잠깐만요. 지금 허준 선생님 약간 이상하지 않아요? 뭐하고 계시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