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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36화 (137/230)

< 136화. 쉴 수 있어 >

136화. 쉴 수 있어

“뭐야? 왜 그렇게 놀라?”

“아, 아니야.”

최은진이 침착하게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왜 이곳까지 굳이 찾아왔겠는가.

혜민서의 대표를 맡은 김예진과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오히려 친한 사촌지간이었으니, 사실 이런 일은 전화 한 통화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분명히 느낌이 왔는데.’

사건, 사고, 시사 고발 같은 촬영을 주로 다니다 보니 발달한 특유의 감각 때문이었다.

일종의 육감.

그런데, 그 의문을 속 시원하게 풀어줄 대상이 사라져버렸을 줄이야.

김예진이 그런 최은진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말했다.

“언니는 모르겠지만, 이쪽 동네도 지금 재개발이 빠르게 추진 중이거든. 그래서 그랬을 거야. 그런 사람들이 원래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잖아.”

“그렇구나. 그럼, 혹시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있을까? 동네에 단골 이었다던가, 친분이 있는.”

“글쎄? 듣자 하니, 동네 사람들도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것 같던데. 그런데, 왜 그리 집착해? 언니답지 않게. 언니 원래 무속신앙 안좋아하잖아.”

“아, 아니. 그냥 나도 팔자 좀 보려고 했지. 알잖아? 나 이번에 다큐멘터리를 끝으로 예능 판으로 가라고 해서 고민 중인 거.”

“아닌데... 아무리 봐도 수상한데.”

계속해서 조여오는 눈빛에 최은진이 마지못해 백기를 들었다.

“알았어. 사실은, 용하다고 소문이 나서 인터뷰 한번 하려고 했어. 허준 선생님이랑 엮인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꽤 재밌을 거 같더라고.”

“음~ 그런 거였어? 난 또 뭐라고. 그때 술자리에서도 말했듯이 그건 그냥 소문에 불과했어. 나중에는 환자로 자주 오셨었거든.”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너 허준 선생님이랑 오래 일했잖아? 혹시, 뭐 특이한 점이나 그런 거는 없었어?”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야?”

김예진이 되물었다.

“아니, 별건 아니고. 그냥 아무래도 작년에 주인공급이었다 보니까 조금 더 잘 연출해 보자 이런 이야기지.”

“글쎄? 특별한 점은 없었는데.”

“그래? 그럼 알았어. 자료는 나중에 카톡으로 보내 줘. 이만 가봐야겠다.”

그렇게 허준한의원을 나선 최은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단 말이지.

‘마무리 짓고, 나중에 한 번 찾아봐야겠네.’

*   *   *

한편 허준한의원이 이렇게 바쁜 와중에 최인호 대표 또한 매일같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먼저, 가지고 있던 한의원의 지분을 각 지점의 원장들에게 전부 넘기는 일.

“정말, 이 가격에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이지. 자네들이 여태 고생한 것도 있잖아.”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리고 체인은 각 원장끼리 연락해서 앞으로 같이 계속할지 말지는 알아서들 결정하고. 이제부턴 자네들 것이니까 말이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원장들과 이야기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넘기는 중에서 돈이 조금 모자란 원장에게는,

“괜찮아. 내가 빌려준 거로 하고, 벌어서 틈틈이 주면 되지.”

“대표님...”

“체인점 수수료가 없으니 이전보다 매출의 15% 정도가 보전될 거야. 그럼, 꽤 쏠쏠하게 벌 수 있을 테지. 그러니 얼마 안 걸리지 않겠어? 자네가 이상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렇다고 너무 환자들 돈으로만 보지 말고.”

“물론이죠. 대표님이 알려주신 대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됐어.”

“혹시, 제가 또 뭐 해드릴 게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그래? 그럼, 자네 시간이 있으면 여기나 가입해봐.”

“이건...?”

“혜민서라고. 설명보다는 직접 가본느 게 좋을 걸?”

“대표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바로 등록하겠습니다.”

비록, 같이 일할 때는 매일 숫자와의 전쟁을 선포한 차가운 사업가라 할 수 있었지만, 별개로 그만큼 따르는 사람들을 챙겨주는 것 또한 그의 스타일.

때문에, 이런 최인호의 행보에 원장들이 존경심을 표했다.

그리고 공사현장의 업무.

최인호가 매일같이 방문하여 인테리어를 꼼꼼하게 살폈다.

‘역시, 김태현 사장이야.’

김태현이 최인호를 알아보고 다가와 인사했다.

“원장님. 나오셨어요?”

“이쪽 정말 깔끔하게 만들었네?”

“그럼요~ 원장님. 우리가 하루 이틀 같이 일해요?”

매일 같이 붙어 다닌 데다가, 일이 끝나고 가끔 한 잔씩 하는 사이가 된 두 사람.

덕분에 처음과 다르게 대화도 한결 편해진 상태였다.

“하긴, 그건 그렇지. 그보다 이쪽은 이대로 사용해도 되는 거지?”

“네. 물론이죠. 가구는 아직 안 들어왔는데, 일단 간이의자라도 몇 개 가져다 놓겠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임시 사무실.

그곳에서 최인호의 면접이 시작되었다.

‘이정도 규모라면 최소 한의사 스무 명 정도는 더 뽑아야겠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더 많이 필요할 테고,

데스크 안내직원을 비롯해 여러 직원도 필요한 상황.

이제부터 미리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오픈 날짜에 제대로 맞추지 못할 터.

이곳은 대형 한방병원이다.

이전까지 운영했던 그 어떤 곳에 비해서 규모도 다르고 그에 따라 규정도 다르다.

한의사나 의사가 돌아가면서 당직근무를 해야 함은 물론이요, 병상에 따라서 간호조무사 선생님 외에도 간호사 선생님들의 인원도 필요했다.

덕분에 날마다 면접이 이어졌고,

그 면접에는 여러 직군의 사람들이 지원하고 있었다.

최인호가 오늘 일정이 잡힌 면접자들의 서류를 한 번 더 꼼꼼하게 살폈다.

그동안 한의원을 늘려나가면서 본 면접만 해도 수없이 많았으니, 이렇게 살피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면접 시작.

첫 지원자가 최인호와 1:1로 마주 앉았다.

‘첫인상이 영 별로야.’

“반갑습니다. 최인호라고 합니다.”

“아, 네. 최인호 원장님. 저는 강지철이라고 합니다.”

지원서를 보니 여기저기 한의원을 자주 옮겨 다녔다.

뭐 요즘 젊은 한의사들 사이에서는 이게 트렌드라고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년 정도는 채워야 경력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건 아마 면접자도 알겠지만, 그것조차 쓰지 않는다면 딱히 이력서에 쓸만한 것이 없었나 보네.’

하지만 이렇게 두 달, 석 달, 띄엄띄엄 다닌다는 말은 실력이 영 아니거나, 무언가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다.

“졸업 후에 한의원을 많이 옮겨 다니셨네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좋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여기서 근무를 하기 전에 미리 해야할 일이 있는데요.”

“어떤 일인가요?”

“별거 아닙니다. 우리 병원이 후원하는 봉사단체가 있어서요. 출근 하기 전까지 그곳에서 매주 의료봉사를 하게 될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지철이 대답을 망설였다.

갑자기 의료봉사라니.

“참, 날짜는 토요일이고요.”

게다가 토요일?

이런 황당한 조건이 있을 줄이야. 급여가 조금 높다고 해서 왔더니 되도 않는 조건을 내건다.

당장 내년에 오픈한다고 해도 4달이 넘게 남아 있는 상황.

그런데 매주 의료봉사로 주말을 날리라는 소리가 아닌가.

“죄송합니다... 그건 불가능할 것 같네요.”

그렇게 한 명, 두 명 여러 직군의 면접을 이어 나가고,

오늘의 마지막 면접자인 한의사와 마주앉았다.

이름이 이두철?

말끔하니 괜찮아 보이네.

첫인상을 확인한 최인호가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내며 물었다.

“경력이 좀 있으시네요? K대 한의학과 졸업하셨고, 병원으로 가신 거 보니 성적도 좋으셨나 보네요. 그러다가 개원하신 거죠?”

“네. 맞습니다.”

“그리고 올해 봄에 폐원하셨나 보네요. 저런...”

폐원했다는 이야기에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두철.

기분이 꽤 나쁠 만한 이야기지만, 표정의 변화 없이 묵묵히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습.

그것을 본 최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을 돌아볼 줄은 아는가 보네.

“지원한 동기가 뭡니까? 이 경력이면 다른 한의원도 무난하게 통과할 텐데.”

“그야 급여가 높아서요. 아시다시피, 폐원해서 빚이 조금...”

‘아무래도 돈이 급한가 보네.’

흔히 있는 일이다.

물론, 젊은 사람의 경우에는 더 많은 급여를 받기 위해서 지방에 있는 요양병원의 당직으로 들어가 몇 년씩 지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거야 개인의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일 아니겠는가.

어찌 됐든 그 모습은 오히려 최인호가 보기에 바람직한 모습이었다.

‘어쭙잖게 이도 저도 아닌 사람보다, 차라리 확실하게 목적이 있는 사람이 그만큼 열정이 더 있을 수밖에.’

과거 자신이 그랬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 병원에서 근무하시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근무 전에 우리가 후원하는 단체에서 의료봉사를 해주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마, 주말이 없어지실 겁니다.”

“물론입니다. 그 정도야 감수해야죠.”

“알겠습니다. 결과는 나중에 따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여기 면접비 부터 받으시고. 참, 일자리 아직 못 구하셨으면, 이리로 한번 가보시죠.”

*   *   *

허준한의원이 매일같이 바쁜 만큼, 시장에 있는 태용한의원 또한 매일같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김 원장님. 옛말에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다리 찢어진다고... 왜 허준네랑 같은 이벤트를 하겠다고 하셔서...”

박용준이 울먹이며 김태식에게 말했다.

김태식이 그런 박용준을 바라보며,

“나도 몰랐지. 이렇게 힘들 줄은... 그래도 어쨌든 매출은 올라가고 있잖아.”

“그걸 지금 위로라고 하세요?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미안하다. 박 원장.”

이 사건의 발단은 허준이같이 하자고 말한 뒤부터 벌어진 일이었다.

어차피 내년부터 함께할 식구가 되었으니, 이번에 허준한의원에서 이벤트를 한다고 해서 같은 이벤트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

물론, 처음에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우한의원의 유도진 선생이나 허준 선생같이 용하다는 선생님들이 내린 보약을 찾는 것이 이 바닥의 순리 아니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허준에게서 온 제안.

“저희가 처방전과 약재를 드릴 테니, 같이 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원외탕전을 해달라는 이야기인가?”

원외탕전.

말 그대로 한의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탕약을 달인다는 뜻이다.

“맞습니다. 우리 쪽에서만 소화하기에는 양이 너무 많아서요.”

김태식이 잠시 허준한의원의 상황을 떠올리고는 흔쾌히 수락했다.

최근 들어서 매일같이 밤늦은 시간뿐만 아니라, 공장처럼 쉼 없이 탕약을 뽑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덕분에 혜민서 모임을 간략하게 할 정도였으니.’

같은 식구가 되었으니, 의리있게 이정도는 같이 해줄 만하다고 생각한 김태식의 판단.

그것이 이 사태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해. 허준 원장이 그렇게 부탁을 하는데. 거절할 수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어떻게, 당장 지금이라도 사람을 구해볼까? 자네 아는 후배들 좀 있다면서?”

“원장님. 제가 데리고 와도 나중에 책임지고 데려가실 수 있으세요?”

“그건...”

김태식이 얼버무렸다.

“그리고 여기 이미 재개발된다고 소문 다 났어요. 누가 와서 몇 달만 일하려고 하겠어요. 제대로 경력도 취급 안 해줄 텐데.”

“그렇겠지.”

그때, 주머니에서 울리는 김태식의 스마트폰.

김태식이 그대로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아니, 원장님?”

“어~ 김 원장. 별일 없지? 옆에 박 원장도 함께 있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예. 지금 같이 탕약을 달이는 중이라서요.”

“자네들이? 이 시간에 웬일로?”

“아... 그게.”

김태식의 설명을 들은 최인호가 호탕하게 웃었다.

“아주 바람직하네. 추석이벤트 덕분에 자네들도 허준한의원 따라가는구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마침, 잘 됐네. 안 그래도 부탁하려던 일이 있었는데, 도움이 되겠는 걸?”

“부탁이시라면?”

“별건 아니고, 선생 하나만 좀 부탁하려고.”

“선생이요?”

“어~ 앞으로 우리와 함께할 식구인데, 이 친구가 돈이 좀 급한가 봐. 어차피 자네들도 미리 호흡을 맞추면 더 좋지 않겠어? 그러니 그쪽으로 출근을 좀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아무래도 허준 그 친구네는 정우 선생님도 계시고 인원도 꽉 차 보이니-”

“당연하죠! 내일 당장 가능합니다!”

최인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태식이 소리를 질렀다.

“무, 무슨 일이에요!?”

그리고 그 소리에 놀라 되묻는 박용준.

김태식이 그런 박용준을 바라보며,

“박 원장. 우리 내일부터 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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