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누군가는 신경이 쓰이는 법이거든
“이게 무슨 일이람? 얘가 바빠서 집에 못 내려온다더니, TV에?”
“내가 말했잖아 엄마. 오빠 돈 잘 번다니까?”
그 덕분에 추석 연휴의 시작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동네 사람들이 모인 치킨집에서는 신나는 술판이 벌어졌다.
“오늘은 내가 낼게!”
기분이 좋은 허준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물론, 평소라면 이런 일을 절대 반대할 부인이 있었지만, 자식 잘되는 모습을 싫어할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직접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이 친구가 아주 아들 하나는 기똥차게 키웠다니까?”
“그러게 동네에서 치킨으로는 1등이 아니어도, 자식 농사로는 1등 맞네! 맞아.”
비단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람은 호기심의 동물이 아니던가.
작년에 나왔던 사람이 1년 뒤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에 대한, 이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은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시청률은 망했어도 온라인에서는 한때 여러 모습으로 편집되어 짤로 돌아다닐 정도였었으니,
그 모습이 궁금한 것은 당연한 것일 터.
때문에, 사람들은 두 눈을 비빌 수밖에 없었다.
바로 노숙자에서 이제는 어엿한 사장이 되어 사람들을 이끄는 김태현의 모습 때문이었다.
완전히 달라진 그의 인터뷰 장면.
“몰라보시네요?”
“네? 그게 무슨... 몰라보다니요?”
“잘 보시면, 어디선가 다들 봤던 얼굴일걸요?”
“어, 설마?”
그 뒤로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으로 카메라가 향한다.
그러면서 1년 전의 영상에서 찾아낸 그들의 모습이 하나하나씩 매칭이 되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가 누구나 무시하고 피할 것같은 모습의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은 행복한 얼굴로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때문에, 그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어떻게 1년 만에 이렇게 바뀌셨어요? 김태현 씨가 아니었으면 못 알아봤어요.”
“다, 우리 김태현 사장 덕분이지. 그 친구 아니었으면 아마, 난 지금도 여전히 길거리에서 살고 있었을걸?”
“예전 촬영 때에도 이렇게 종종 일은 하셨었잖아요.”
“그랬었지. 그때는 그냥 돈 떨어지면 하루 이틀 나가서 돈 벌어오고 또 술값 떨어지면 나가서 벌어오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그때와 뭐가 달라졌기에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 거예요?”
질문을 받은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사장이 그러더라고. 딱 자기랑 3개월만 같이 일하자고. 그래서 뭐 친분도 있고 일당도 잘 쳐주고 하니까 함께 다니기 시작한 거지. 그런데, 이게 웬걸? 같이 일하는데, 내가 예전에 알던 노숙자 김 씨가 아닌 거야. 그 바뀐 모습을 보고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덕분에 지금은 보다시피 이렇게 살고 있지.”
이어서 다른 직원들 몇의 인터뷰도 나왔고, 그들 모두가 비슷비슷한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김태현의 인터뷰.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하셨어요?”
“제 인생을 바꿔주신 분들이 계셨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주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달라진 그의 모습이 나가고 자막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래서 촬영팀은 1년 전에 함께 고생했던 선생님들을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1년 전에 함께 했던 선생님들의 인터뷰가 시작되었고, 모두가 여전히 활발하게 환자의 진료를 보며 주말에는 틈틈이 봉사활동을 나선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어서 나타난 자막.
[1년 전 가장 인상 깊었던 허준 선생님을 찾은 촬영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1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한의원은 규모가 커지고 환자를 위해 입원실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본 촬영팀은 입원실로 올라가 양해를 구하고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화면이 전환되어 입원실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들의 인터뷰 또한 편집은 되어있지만, 모두가 칭찬 일색이다.
물론 인터뷰의 화룡점정은 김정남 할아버지였다.
밝고 힘이 넘치는 그 모습을, 누가 입원 중인 암 환자라고 볼 수 있겠는가.
[정말 많은 환자가 그를 좋아하고 있었다.]
자막이 나타나고,
이어서.
“선생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시네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오랜만입니다. 저야 매일매일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확실히 그럴 것 같네요. 그런데,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봉사활동을 다니신다고 하시던데.”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작년 이후에 느끼는 바가 많아서 뜻이 맞는 선생님들을 모아 봉사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요? 혹시, 어떤 단체인지 간단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혜민서라는 이름의 단체로···.”
간단하게 허준의 인터뷰가 나갔고,
혜민서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혜민서로 도움을 받았다든가, 혜민서에서 활동하는 선생님들의 인터뷰.
물론, 중간에는 허준의 후배인 김진수의 모습도 잠깐 반짝였다.
“응원과 관심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이어서 고영웅 선생님의 인터뷰.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자막이 흘러나왔다.
[확인 결과, 혜민서라는 이름 아래에 모인 선생님들의 전국적인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1년 전 그와 함께했던 촬영팀도 자부심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이렇게 끝.
그 덕분에 인터넷에서는 난리가 나고 있었다.
- 와~ 저 사람 이름값 하네. 처음에는 혜민서 만들었다고 해서 그냥 컨셉인줄 알았는데 이정도면 인정한다.
- 이런 분들이 있어서 세상은 아직 따듯합니다.
- 김태현이라는 젊은 사장님이 설마 작년에 그 구안와사 걸렸던 그 사람 맞아요? 이거 주작 아닌가요. 얼굴이 너무 다른데?
- 그게 아니라 사람이 바뀌면 원래 얼굴도 달라져 보이는 거 아닐까요?
- 방송 보고 적습니다만, 저기 허준 선생님이 계시는 한의원 진료 잘 보기로 엄청 유명한 곳입니다. 예약도 없어서 기다려야 하는 게 조금 그렇지만, 받고 나면 확실히 달라요. 저기 있는 선생님들 전부 잘 보십니다.
···
등등으로 이어지는 댓글들.
그리고 이런 열풍의 핵심은 또 다른 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바로, 한의사 카페.
잔잔한 호수에 파동은 아주 작은 돌 하나에서부터 시작되듯이, 누군가의 글이 시작이었다.
- 저거 보나 마나 홍보용임. 딱 봐도 이렇게 TV 진출해서 명예도 얻고, 나중에는 홈쇼핑에 진출해서 약 팔려고 그러는 거겠지.
그러자,
한 번이라도 혜민서의 이야기를 들어본 한의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선생님 솔직히 부러워서 그런 거죠? 아니면 연세가 조금 있으신가 보네요. 요즘 젊은 한의사들 사이에서 유명한데.
▶ 같은 한의사끼리 이해는 못하더라도 비방은 하지 말죠.
▶ 저도 혜민서 회원인데, 선생님들도 궁금하면 한번 참여해보세요. 정말로 후회 안 하십니다.
▶ 근데, 진짜 주말에 진료 끝나고 봉사 다니는 분들 대단한 거 아닌가요? 사실 본인 휴식이나 돈 벌수 있는 시간 포기하면서 봉사하러 다니는 거잖아요.
···
댓글에 이어서 혜민서가 어떤 단체인지 소개하거나 했던 사진 등을 올리는 글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추석 연휴가 끝난 한국 한의사 협회 사무실.
협회장 박준혁의 귀에도 이야기가 흘러 들어갔다.
“이게 대체 뭔데 이렇게 난리야?”
“혜민서라고... 그 조금 젊은 친구들 몇이 모여서 만든 단체 같은데, 이게 뭐 치료 사례도 공유해 주고 같이 봉사도 하고 해서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인기인가 봅니다.”
“그래?”
“네. 그래도 크게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규모도 얼마 안 되고, TV에 나와서 잠깐 인기몰이는 하겠지만. 아시잖아요? 금방 사그라들 거라는 거.”
“흥, 그렇긴 하지. 거기 대표는 누군데? 혹시, 내가 아는 친구야?”
“아니요. 대표가... 김예진이라고.”
“김예진?”
“네. 한의사는 아닙니다. 아마, 핵심 멤버인가 봅니다.”
“잘 모르면 우리 협회나 가입해서 활동할 것이지 쯧쯧.”
박준혁이 맘에 안 든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다가,
“그래도 조만간 한 번 연락이나 넣어봐. 이참에 우리도 한 숟가락 얹으면 좋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연휴 끝나고 넣어 보도록 하죠.”
* * *
이번 다큐멘터리는 추석 당일이 아닌 연휴 첫날에 방영되었다.
그래서 인지 한의원의 환자가 예전처럼 마구잡이로 늘어나지는 않은 상황.
그 덕분에 허준과 밥 선생 둘은 평소보다 느긋하게 진료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추석 이벤트인 탕약 주문이 연휴로 인해서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며 나타난 현상일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한결 여유롭게 한의원에서 진료를 보고 있는 허준.
그런 허준의 눈앞에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나서 메시지가 나타났다.
「당신의 명성이 퍼지고 있습니다.」
* 진행도 : 38%
보상으로 능력을 올릴 수 있는 업적 퀘스트.
방송이 끝나고 하루가 지나자, 무려 30%가 넘게 오른 것이었다.
‘역시 TV에 나가는 게 최고긴 하네.’
그건 그거고,
진료는 봐야지.
치료실로 들어가 간단하게 침을 놓고, 뜸까지 처방한 허준이 다시 진료실로 돌아오는데,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업적 ‘뜸의 달인’을 달성하였습니다.」
「‘구술 Lv. 7’이 ‘구술 Lv. 8’이 되었습니다.」
[구술 Lv. 8]
- 보사의 효과가 대폭 증가한다.
- 온열의 효과가 꽤 증가한다.
여름을 맞이하고 왕뜸기를 만든 뒤부터 뜸을 많이 뜨다 보니, 새로운 업적을 달성한 것.
기준은 정확히 몰랐다.
침은 ‘만인 놓기’라고 해서 만 명에게 침을 놓아서 달성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으나, 이번엔 그런 내용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중요할까.
이렇게 포인트 사용 없이 능력이 오르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지.
‘진료 보길 잘했네.’
이번에 쉬었다면 능력을 얻지도 못했겠지.
허준이 웃으며 진료를 이어 나갔다.
* * *
한편, 추석 연휴에 만난 최은진과 김예진이 가족들과 떨어져 이야기를 나눴다.
“어땠어? 이정도면 잘 나왔지?”
“딱, 적절했어. 암 환자에 관한 내용을 완전히 삭제하고 화면만 내보낸 게 가장 좋았던 것 같아.”
“그렇지? 괜히 구설수에 올랐다가 허준 선생님께 피해라도 가면 내가 얼굴을 어떻게 보겠어.”
김예진이 피식 웃었다.
“그보다, 혜민서 내용이 꽤 들어갔던데 욕은 안 먹었어?”
“누구한테, 국장님? 그럴 리가. 작년보다 시청률이 올랐는데, 욕은 무슨. 오히려 칭찬을 받아야지. 게다가 애초에 그 내용 없었으면 촬영도 못 했을 테고.”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김예진의 스마트폰에서 끊임없이 진동이 울리는 중이었다.
“뭐야? 확인 안 해?”
“어. 나중에 하려고. 방송 나간 뒤부터 계속 이상태야.”
“한동안 바쁘겠네. 우리 예진이.”
그녀의 말대로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에서 온갖 연락이 쏟아져 왔다.
혜민서의 활동을 응원한다면서 후원금을 보내오고,
여기저기에서는 댓글들이 올라왔다.
무엇보다, 신규 가입을 위한 문의와 신청이 마구잡이로 쏟아지고 있는 상황.
‘이걸 다 언제 확인하지.’
오죽하면 김예진이 이런 걱정을 할 정도였으니.
그때, 최은진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근데, 삼촌이랑 외숙모도 아셔? 너 그 단체 대표인 거.”
“당연히 모르지. 아직 아무한테도 말 안 했거든.”
“그럼, 가족들 아무도 모르는 거야?”
“내가 미쳤다고 말하겠어? 어떻게 나올지 눈에 훤한데.”
그렇게 김예진에게 일이 쌓여가는 동안,
같은 시각 또 다른 곳에서는 세 남자가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정우와 박진석.
그 맞은편에 앉은 최인호까지.
그들 한가운데에는 추석에 어울리는 음식들이 놓여있었다.
홀로 추석을 보낼 김정우를 위해서 박진석이 준비한 것이었다.
“들지.”
“잘 먹겠습니다.”
“내가 홀로 있을 자네를 위해 준비해 온 거야. 그러니, 많이 들게.”
김정우가 그런 박진석을 노려봤다.
저 친구는 다 좋은데, 쓸데없이 사족을 자주 붙이는 고얀 취미가 있단 말이지.
“참, 엊그제 다큐멘터리 봤나?”
“물론이지. 아주 잘 나온 것 같더구먼.”
“아쉬워. 내 얼굴이 좀 더 나왔어야 했는데.”
박진석의 말에 김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던데, 자네는 어떻게 된 게...쯧.”
“이 친구야. 우리가 벼야? 사람이지.”
그 모습을 바라보던 최인호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딱 괜찮게 나온 것 같습니다. 주변 한의사들 사이에서 반응도 꽤 좋고요.”
그 대답에 박진석이 답했다.
“그래서 문제야. 원래 규모가 커질수록 누군가는 신경이 쓰이는 법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