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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50화 (150/230)

150화. 친구를 데리고 말이야

큰 대학병원 같은 곳에는 여러 부서가 존재하며 그에 따라 각각의 업무를 분담해 처리한다.

간호사를 관리하는 간호팀, 인사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인사팀, 병원의 대외홍보나 협력을 담당하는 홍보팀 등등.

하지만 아무리 큰 한방병원이라 할지라도, 대학병원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터.

때문에, 한방병원의 모든 업무를 전반적으로 담당하는 총무팀을 만들었고, 그 총무팀의 팀장 자리를 김예진에게 제안한 것이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녀가 가장 적임자라고 판단했을 뿐이니까.

‘일하는 데에 있어서 실수한 적이 없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재까지도 허준한의원의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허준이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많은 환자의 진료를 볼 수 있게 된 것에는 그녀의 공이라 봐도 무방하다.

동선의 최적화, 효율적인 업무 분담, 깔끔한 치료실 유지.

거기에 더해서 직원들의 관리까지.

한마디로 효율적인 시스템을 정착시켰다는 뜻.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한의원에 시스템이 웬 말이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업종을 막론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을 운영하는 위치에 있으면 누구나 동의할 법한 이야기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지 않겠는가.

정말 맛있게 요리를 하는 요리사가 식당을 차렸는데,

그 요리를 먹기 위해서는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한다면 기다리다 지쳐 다른 곳을 찾아 나서기 마련이요.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은 뻔한 일일 터.

‘그것을 해결한 것이 바로 김예진 선생이지.’

그리고 그것은 허준한의원을 찾아갈 때마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한의원 꽤 운영해본 최인호가 날카롭게 체크하고 있었으니까.

허준한의원에 들릴 때마다, 깔끔하게 정리된 치료실은 관리상태가 흠잡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최인호가 김예진에게 한 번 더 말했다.

“어때? 총무 자리를 맡아서 나를 좀 도와주게. 물론, 나뿐만 아니라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모든 사람을 백업해주는 역할을 맡아달라는 뜻이야. 그야말로 책임이 막중하다고 할 수 있지.”

김예진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온갖 잡일을 다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겠지.

뭐, 나쁘지는 않았다.

성격상, 느긋하게 일하는 것보다 타이트하게 일하는 게 적성에 맞았으니까.

하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자신이 혜민서란 단체의 대표라는 사실이다.

아직 혜민서와 관련한 밀린 업무도 끝마치지 못한 상태.

여기에 더해서 총무라는 일을 맡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그건 타이트한 게 아니라 그냥 갈아넣어야 한다는 뜻이다.

“죄송합니다.”

“왜? 혜민서 때문에 그런가?”

“네. 아시는 것처럼, 제가 데스크에 출퇴근하면서 혜민서 업무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바빠서요.”

최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예상했던 대답이었으니까.

그리고 거기에 대한 해답도 이미 내놓은 상태였다.

“아. 그건 걱정하지 말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혜민서 업무를 같이 할 인원을 구해주도록 할 테니까 말이야.”

“병원에서요? 왜요?”

갑작스러운 제안.

대체 어떻게 일이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혜민서 업무를 분담해줄 인원이 충원된다는 조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것.

“아직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내가 지금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자네가 우리 한방병원의 총무직과 혜민서의 대표를 겸하는 데에 있어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지 않게 하라는 특별 요청이 있었거든. 그러니, 어때? 충분히 할만할 것 같은데.”

최인호가 물었고,

김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한번 해보도록 하죠.”

“좋아.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네. 김 선생. 아니, 김 총무.”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원장님.”

그렇게 방에서 나온 김예진.

허준이 그런 김예진과 마주쳤다.

“어, 김 선생님. 면담은 잘 끝내셨어요?”

“네. 그런데...”

“그런데?”

“최인호 원장님께서 저에게 총무를 맡아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총무요?”

“김 선생. 그게 정말인가?”

총무라는 말에 놀랍다는 얼굴로 반응한 것은 바로 태용한의원의 박용준과 김태식이었다.

최인호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대박... 최 원장님이 부탁까지 했다고?”

“아니지. 잘 생각해봐. 그동안 우리 김 선생이 해왔던 일을 떠올리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일이지. 암.”

“어쨌든, 축하드려요. 김 선생님.”

“나도 축하하네. 김 선생.”

“감사합니다. 원장님들.”

그렇게 하나둘씩 차례차례 개인 면담을 하러 들어갔고,

면담실에서 나온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된 면담.

최인호가 나와 모인 사람들에게 말했다.

“모두 휴일에 오시느라 피곤하셨을 텐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원장님께서 우리를 이렇게까지 챙겨 주셔서 더욱 감사하죠.”

“그럼, 면담 때 이야기했듯이 당분간 고생 좀 해주십시오.”

그리고,

“참, 원장들은 잠시 나 좀 보고 가지?”

*   *   *

다음 날. 월요일 아침.

태용한의원에 출근한 두 원장이 눈에 불을 켜고 이두철 선생이 출근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딸랑-

명쾌한 종소리와 함께,

출근한 이두철 선생이 데스크에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김 선생님.”

“이 선생님. 원장님들이 기다리고 계시던데요?”

“저를요?”

“네.”

대체 무슨 일이지.

이른 아침부터.

그렇게 진료실로 향하니,

김태식과 박용준 두 원장이 이두철을 노려봤다.

“이 선생. 어떻게 우리에게 그럴 수 있어?”

“네? 제가 뭐가요?”

“어제 일 말이야. 그런 엄청난 일을 알고도 여태 모른 척했단 말이야?”

“그러게요. 조금 실망이네요.”

이두철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아니, 당연히 최 원장님과 친하시다고 하셔서 다 알고 계신 줄 알았죠.”

어제 데스크 팀의 면담이 먼저 끝나고,

남은 원장과 선생들이 모인 자리.

“최 원장님. 우리가 함께해온 세월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김태식이 최인호에게 물었다.

솔직히 조금은 섭섭했기 때문이리라.

“나도 어쩔 수 없었어. 허준 원장의 당부도 있었고, 이 병원의 이사님들도 같은 생각이셨거든.”

“허준 원장님도 그래요. 어떻게 이럴 수가.”

이렇게 섭섭함의 표적이 된 두 사람.

덕분에 이두철 선생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그저 조용히 지켜보는 밥은 그저 지금, 이 상황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이런 곳에서 근무할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말이다.

“진정들 하고, 자네들의 조건은 내가 알아서 잘 제시할 테니, 다음에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여태 속여왔던 것까지 받아낼 겁니다~”

김태식의 능청스러운 말에,

최인호가 웃으며 답했다.

“알았어. 그보다 내가 자네들을 이렇게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시기 때문이네.”

“시기라면...?”

“어차피 그쪽 동네 집들도 텅텅 비어가는 상황 아닌가? 그래서 자네들이 언제 이곳에 들어올까 해서 말이야. 규모가 클수록 손발은 미리미리 맞춰 보는 게 중요하니까.”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군다나 이정도 규모에서 손발이 맞아 척척 돌아가면서 일정한 궤도에 오르려면 시간이 꽤 걸릴 터.

하지만, 허준한의원에는 아직 입원실의 환자도 있는 상태였으니,

‘최대한 늦게 갈 수밖에 없겠군.’

김태식의 생각도 비슷했다.

허준한의원처럼 많은 환자가 찾아오지는 않았으나, 아직도 종종 환자들이 찾아오고 심지어 동네의 단골 환자도 아직 매일 찾아오기 때문이다.

‘왠지 신경이 쓰인단 말이지.’

허준이 먼저 답했다.

“아무래도 우리한의원에는 입원실도 있고, 찾아오는 환자들이 많아서, 최대한 늦게 갈 생각입니다. 이곳에 오자마자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을 때까지요.”

“그래? 음...좋아. 자네 생각은 알겠네. 그럼, 태용한의원은?”

“저희도 늦게...”

최인호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면서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꽤 곤란할 수도 있겠는데?”

“그렇다면 저희가...”

김태식 원장이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는데,

그때, 허준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그럼, 순환 근무는 어떨까요?”

“순환 근무?”

“어?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인데?”

“순환 근무라...”

최인호가 허준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쏙 들었다는 제스처였다.

“정말, 좋은 생각이군.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어차피 서로 친분도 있는 데다가 익숙하니, 돌아가면서 허준한의원으로 출근하는 거지. 그럼, 한방병원 쪽 업무를 양쪽 모두 익힐 수 있고, 그만큼 서로 호흡을 맞췄으니 한의원의 업무에도 소홀해지지 않겠지.”

“그렇네요. 허준 선생님과 같이 진료를 보다니, 저는 벌써 기대되는걸요?”

그렇게 결론이 난 어제.

그 때문에, 이두철 선생을 찾은 것이었다.

“하여간, 이 선생에게 좀 실망했어.”

“죄송합니다.”

“에이~ 장난이에요 장난. 그거 때문이 아니라, 어제 순환 근무하기로 했던 거 기억나시죠?”

“네. 물론입니다.”

“우리야 허준한의원 선생님들과 워낙 친하고 같이 활동했었으나, 자네는 아직 서먹서먹하기도 하고 좀 그러잖아? 그래서 불렀어. 오늘부터 다녀오라고.”

“오늘부터요?”

“그럼, 쇠뿔도 단김에 베라고 했잖아. 그리고 우리 태용한의원은 이번 달까지만 운영하기로 했거든. 그 전에 미리 익숙해지는 게 좋을 테니까 말이야.”

이번 달까지라는 말을 내뱉은 김태식과 그것을 들은 박용준의 눈이 살짝 아련해진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크게 와닿는 일은 언제나 첫 경험이 아니겠는가.

두 원장에게는 바로, 이 태용한의원이 자신들의 첫 한의원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면 되는 거죠?”

“그래. 이야기는 미리 해놨어.”

그래서 허준한의원으로 오게 된 이두철.

평소에는 주 1회에 어두울 때만 종종 왔으나, 아침에 이리로 오니 새로운 느낌이었다.

게다가,

‘뭐야, 여기 선생님들 벌써 진료도 보고 탕전실에서 탕약도 내리고 있다고?’

대체 어떻게 된 곳인지.

태용한의원에서는 커피를 마시며 슬슬 진료 준비를 하는 시간에, 이곳은 이미 한바탕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중이었다.

“어? 이두철 선생님. 맞으시죠?”

“안녕하세요.”

“윤다희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이두철이 데스크의 윤다희를 확인했다.

이분이 바로 종종 이야기로만 들어온 윤다희 선생님이시구나.

과연 듣던대로 친숙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처음 본 사람이 아닌 것처럼.

“반갑습니다.”

“원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저쪽 진료실로 가시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진료실로 향한 이두철.

진료실 안에는 이미 허준이 앉아 무언가를 살피고 있었다.

“어? 이두철 선생님 오셨어요?”

“안녕하십니까. 원장님.”

“잘 오셨어요. 일단 오늘은 옆에서 보조해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이어서 시작된 진료.

허준 원장이 진료를 보는 모습은 볼 때마다 새로웠다.

봉사활동에서도 몇 번 본적은 있었으나,

이렇게 한의원 진료실에서 제대로 보는 진료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리라.

‘패턴은 매번 같아.’

진료실에서 들어올 때부터 환자에게 눈을 떼지 않는다.

아마, 그때부터 이미 진료는 시작되고 있는 것이겠지.

그리고 자리에 앉으면 가볍게 문진으로 시작해서, 촉진과 진맥까지.

이 모든 과정은 굉장히 빠르다.

물론, 누구에게 이 말을 한다면 진료를 대충대충 보는 것 같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것일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면 시간상으로는 굉장히 짧음에도 불구하고, 체감상으로는 전혀 짧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완벽히 진단을 마치고 내리는 처방.

그 처방에는 미사여구나 과장이 전혀 없다.

표정에는 굉장히 친절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증상과 질환, 처방에 대한 설명을 할 때면 그저 담백한 느낌이다.

옆에서 그것을 듣고 있자니,

이것은 마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말장난과 같은 말을 하는것과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 말 중에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

‘이게 허준 원장님의 진료 모습...’

이두철이 그 모습을 두 눈에 새기는 중이었다.

진료는 이렇게 하는 거라는 느낌과 함께.

그렇게 점심시간.

허준에게 메시지가 하나 도착해 있었다.

- 오늘 저녁에 한의원으로 찾아가겠네. 지난번에 말했던, 자네에게 도움을 줄 친구를 데리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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