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살살 좀 하라니까
진행자가 정리 중인 무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니,
연예인패널에서 손을 번쩍 들고 있는 최우중과 눈이 마주쳤다.
‘최우중 씨가 손을 들다니?’
대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 타이밍에 손을 든 것일까.
하지만 별로 중요치 않다.
이 프로그램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해온 짬밥이 있었기에,
연예인패널에 있는 다른 연예인들 전부를 합친 것보다 그가 훨씬 시청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리라.
“아~ 연예인패널에 계신 최우중 씨가 손을 드셨네요. 말씀하시죠.”
최우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케이한방병원 신비침이란 거 정말 신기하네요. 괜히 국내 최고라 불리는 곳이 아닌가 봅니다. 한의원 몇군데 다녀봤는데, 저런 침은 처음 보네요.”
“최우중 씨도 처음 보셨나 보군요? 저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라,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무리한 부탁이 아니라면 여기 연예인패널에 계신 배우 송달수 선배님의 진료를 한 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송달수 씨를요?”
“네. 달수 선배님이 디스크로 치료받으러 다니시는 중이시는 중이거든요.”
“아? 정말입니까?”
진행자가 박원효 원장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박 원장님. 어떻게 가능하시겠습니까?”
박원효가 살짝 고민에 빠졌다.
리스크 때문이었다.
신비침. 그동안의 노하우가 집약된 이 침술의 효능은 이미 학문적으로도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좀 전에 있던 환자의 증상처럼 극명하게 효과가 나오는 사례가 있는 반면에,
겉으로 보기에 다소 밋밋한 효과가 나오는 사례도 있는 것이 당연했으니.
‘치료 효과가 극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미지에는 마이너스겠지.’
그렇다고 상태가 그리 위중해 보이는 응급환자도 아니었으니,
굳이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의 선택이었다.
그냥 거부하기에는 그 또한 안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낼 터.
박원효의 눈이 허준과 김윤아를 스윽 훑었다.
그러고는,
“죄송합니다. 신비침의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우리 병원에서 시술 전에 진행하는 검사와 진단들이 필요해서 말이죠. 아무래도, 환자의 안전이 중요하니까요.”
“아~ 그러시군요. 이거 아쉽네요.”
“하지만, 걱정할 것 없습니다. 기본적인 진료라면 굳이 제가 아니라, 옆에 있는 우리 한의사 선생님들도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박원효가 허준과 김윤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내가 준비해온 것은 다 끝났으니까 자네들이 진료를 보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괜찮겠지?”
이 급작스러운 제안에,
김윤아가 살짝 긴장했다.
송달수.
비록 최우중과 같이 정상급 배우는 아니나, 조연으로는 꽤 여기저기에서 연기를 인정받아 얼굴을 알리고 있는 중견급 배우다.
그런 사람의 진료를 사전에 조율도 없이 갑작스럽게 시작해야 한다니,
부담감이 온몸을 감싸는 것은 당연.
때문에,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는데,
옆에서 허준이 답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진료해보도록 하죠.”
“오, 역시 허준 원장이야. 좋아. 자네만 믿겠네.”
그렇게 급작스럽게 진행된 진료.
진료가 시작되기 이전에 허준의 부탁에 세팅이 진행 중인 와중에 연예인패널에 앉아 있던 송달수가 최우중에게 속삭였다.
“우중아. 정말, 믿어도 되는 거 맞지? 나 내일도 촬영 있는데. 괜히 침 몸살이라도 걸리면 책임져야 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형.”
최우중이 웃으며 답했고,
송달수가 못미더운 눈으로 대기실에서 나눈 이야기를 떠올렸다.
오랜만에 만나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묻다가, 디스크는 요즘 어떻냐면서 갑자기 기회가 되면 무대 위로 올라가서 침 한번 맞아보라는 최우중의 제안.
그냥 하는 우스갯소리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이렇게 맞게 될 줄이야.
이거 이러다가 괜히 더 아파지면 며칠은 고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최우중이 그런 송달수를 안심시켰다.
“형. 지난번에 우리 같이 작품 한 거 기억나시죠?”
“당연히 기억나지. 그 나 혼자 살다 말하는 거지? 좀비 나오는데 열라게 뛰어다니면서 찍었던 거.”
“네. 바로 그거요.”
송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허준한의원 앞에서 촬영에 합류하지는 않았으나, 영화 중반부에 조연으로 등장하면서 다른 장소에서 함께 촬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작품은 왜?”
“그때, 우리 스태프들이랑 감독님들 이야기 기억 안 나요?”
“어...? 설마?”
“맞아요. 그때, 그 소문의 주인공.”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눈을 번뜩인 송달수.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촬영과 촬영을 마치고 간단하게 반주를 할 때면 매일같이 들려오던 이야기를.
“그 한의사 선생님이 저 젊은 선생님이라고?”
“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마침, 세팅이 끝났는지.
진행자의 멘트가 이어졌다.
“자~ 송달수 씨. 이리로 나오시죠.”
그렇게 시작된 진료.
허준이 걸어 나오는 송달수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몸이 틀어졌네.’
왼쪽과 오른쪽이 각각 앞뒤와 위아래로 살짝 틀어진 모습.
추나로 균형부터 맞춰야겠군.
허준의 앞에 온 송달수.
허준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솔직히 조금 놀랐다.
‘뭐지? 듣기에는 이제 겨우 두 번 나왔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많은 카메라와 시선이 쏠린 장소에서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거리가 조금 있던 자리에서 볼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사람.
허준이 송달수에게 말했다.
“송달수 씨. 혹시, 예전에 디스크로 수술하셨던 적이 있으신지요?”
“네. 3년 전쯤에 한 번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꾸준히 관리하고 있었는데 요즘 들어서 통증이 더 강해진 느낌이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손을 이렇게 올려주시겠어요.”
“손이요?”
“네. 진맥을 잡아 보려고 합니다.”
허준의 말에 두 손을 공손하게 올린 송달수.
그런 송달수가 자신을 바라보는 허준의 눈과 마주쳤다.
‘무슨 눈빛이...’
그때,
맥을 잡고 있던 허준이 두 손을 내렸다.
그러고는,
“우선, 추나 치료부터 시작하도록 하죠. 이리로 올라가서 편안하게 누워주세요.”
송달수가 간이베드 위로 올라갔고,
허준의 추나가 시작되었다.
그것을 자리에 앉아 바라보던 박원효.
‘뭐야? 추나도 생각보다 잘하잖아?’
아니. 그냥 잘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긴 세월 동안 추나를 배우고 해왔던 그였기에, 허준이 치료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알 수 있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리라.
저 정도면 우리 한방병원 웬만한 원장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겠어.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박원효가 집중해서 그 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허준이 추나를 끝냈다.
‘이정도면 완벽하진 않지만, 충분히 균형은 맞춘 것 같네.’
물론, 이렇게 한 번의 치료로 몇 년, 아니 어쩌면 몇십 년 동안의 습관으로 틀어졌던 몸이 돌아올 리는 없다.
다만, 다음 침 치료를 위한 잠깐의 균형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어떠셨어요? 불편하거나 하지는 않으시죠?”
허준의 물음에,
송달수가 몸 안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던 소리를 떠올리며 감격스럽다는 듯이 답했다.
“와... 선생님. 몸이 진짜 가벼워진 느낌이에요.”
“송달수 씨의 몸이 약간 이쪽으로 틀어져 있거든요. 잠깐이지만, 제가 그걸 제대로 맞춰 놨습니다. 하지만, 허리 쪽은 아직 통증이 있으시죠?”
“아, 네. 아까보다는 괜찮아진 것 같긴 한데...”
“그래서 이제부터 그걸 치료해볼 생각입니다. 편하게 엎드려 주시겠어요?”
안내에 따라 송달수가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얼굴이 아래로 향할 수 있게 뚫린 구멍에 맞춰 편안하게 자세를 잡았다.
허준이 그 모습을 확인하고 준비해 온 침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그걸 보자마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사람들.
특히, 박원효의 눈이 가장 휘둥그레졌다.
일반적인 침이 아니라, 훨씬 긴 장침이었으니까 말이다.
“미, 미친.. 대체 뭔 짓을 하려는 거야?”
놀라기는 김윤아도 마찬가지.
“저게 무슨...”
촬영장 안에서 유일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며 편안한 얼굴인 사람은 최우중 뿐.
진행자도 놀라 허준을 불렀다.
“허준 원장님. 그게 대체 뭡니까?”
그러나 돌아온 것은 묵묵부답.
오히려 허준이 그 장침을 그대로 환부에다가 찌르고는 경추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서.
“저, 저거 위험한 거 아닌가요?”
“맞아요. 멈춰야 하는 거 아니에요?”
“송달수 씨! 괜찮으십니까!?”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말소리.
그리고 진행자의 부름.
하지만, 엎드려 있는 송달수에게는 그저 웅웅대는 소리만 들려온다.
간이 베드에 뚫린 구멍으로 얼굴이 빠져있으면서 양쪽의 귀가 그곳에서 눌려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당황스러운 상황에,
진행자가 프로그램 PD를 바라봤다.
PD가 다급하게 두 손으로 X자를 만들었고,
그제야 황급하게 허준을 말리기 위해서 움직이는데,
쑤욱-
하고 15cm는 될 것 같은 장침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피 한 방울 흐르지 않고서.
워낙 집중했던 터라,
허준이 이마에 맺힌 땀을 한번 쓱 닦고 알코올 솜으로 송달수의 허리를 문질렀다.
“허준 원장님!”
그제야 들리는 진행자의 목소리.
허준이 고개를 돌렸다.
“네?”
“대체, 무슨 일을 벌이신 겁니까?”
“그야, 침 치료를 했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는 허준이 송달수를 불렀고,
베드에 엎드려 있던 송달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달수 씨. 지금은, 어떠세요?”
송달수가 몸을 이렇게 저렇게 움직였다.
평소라면 분명히 통증이 있어야 했는데, 그 통증이 귀신같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어?.. 안 아프네? 이게 대체?”
그의 표정과 함께 이어진 한마디.
이어서 다시 한번 더 수군대기 시작하는 촬영장.
“저런 침으로 치료하는 건 처음 봤어.”
“나도. 저거 엄청 아픈 거 아니야?”
“아니야. 보니까 피도 안 흐르고 있잖아.”
“생각보다 위험한 게 아닌가 본데?”
“저 원장님 실력이 엄청난 거 아니야?”
···
연예인패널과 그 뒤의 관중들에게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최우중도 나직이 조아렸다.
“이건 생각도 못 했는데?”
진행자도 순식간에 뒤바뀐 촬영장의 분위기를 읽었고,
이는 PD 또한 마찬가지였다.
격하게 X자를 그리던 두 손이 이제는 큰 원을 그리고 있었으니까.
때문에,
“허준 원장님. 오늘 하신 이 치료는 대체 뭔가요?”
“아, 이건 일침 요법이라고. 원래는 중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법인데···.”
이어진 허준의 설명과 인터뷰.
박원효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 * *
촬영이 끝난 대기실.
송달수가 흥분해서 최우중과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나, 진짜 이런 건 처음 경험해 봐.”
“형. 저도 처음봤어요 그런 건.”
“정말, 아까 봤던 그 긴 침을 끝까지 내 허리에 밀어 넣었다고?”
그 물음에 대신 답한 것은 옆에 앉아 있던 개그우먼이었다.
“아까 정말 난리도 아니었어요. 사람들 다 놀라고 진행자는 말리려고 달수 씨 막 부르고.”
“그랬어? 베드에 얼굴 박고 있느라 잘 안들려서 몰랐지.”
“근데, 정말로 안 아프세요?”
“아주 멀쩡해. 아니, 멀쩡한 정도가 아니라 진짜 통증이 귀신같이 사라졌다니까?”
“그 원장 참 대단하네요. 최우중 씨가 잘 아신다면서요?”
“아~ 잘 아는 건 아니고. 예전에 치료받은 적이 있어서요.”
“어쨌든, 우리한테도 알려주세요.”
최우중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전해 받은 김강현과 그 앞에 앉아 있는 최인호.
“최 원장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원장님 말씀대로 우중이한테 허준 원장 좀 도우라 했더니, 촬영장에서 기대 이상으로 일이 크게 벌어진 모양입니다.”
“그래요? 허준. 그 친구 살살 좀 하라니까.”
최인호가 기분 좋다는 얼굴로 웃었다.
그러고는,
“그보다 이동훈 씨는 좀 어떻습니까?”
“동훈이요? 많이 좋아진 것 같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