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이것 때문에 찾아왔다고
1:1 미팅을 앞둔 최허준의 입술이 메말라갔다.
아니,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는 모두가 그러할 것이다.
“면담은 우리 들어올 때 끝난 거 아니었어?”
“그러게 말이야. 아까 들어갔던 선생한테 물어봤더니, 임상경험이나 치료계획 같은 것들을 물어봤다던데. 이거 그럼, 대놓고 테스트하겠다는 이야기잖아.”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공부라도 좀 하고 올걸.”
“제가 들어보니까 되게 기본적인 것들 위주로 물어본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래도 하필, 혜민서의 허준 선생님이라니.”
그 말에 기다리던 사람들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상대가 허준이었으니까 말이다.
최근에 한의사들 사이에서 가장 뜨고 있는 슈퍼스타.
십몇 년 전 지금의 케이한방병원 원장인 김준일 다음으로 이렇듯 파격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한의사가 또 있을까.
“어? 그러고 보니, 여기에도 허준 선생이 있잖아?”
갑자기 한곳으로 집중되는 시선들.
“맞네. 여기 허준 선생도 허준한의원 운영했었다면서?”
“아, 네.”
“하필, 어떻게 이름도 똑같은데 한의원 이름까지 똑같을까?”
지금 이 긴장된 순간을 넘기기 위해 우스갯소리로 한 이야기겠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최허준에게는 따끔하게 다가왔다.
실제로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한창 매출이 올라갔었을 때,
자신의 실력인 줄 알았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환자들의 착각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니,
사필귀정이라고 했던가.
결국, 모든 일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다는 말처럼,
최허준의 한의원 매출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아가, 어느 날부터는 오히려 안 좋은 후기들이 많아지기도 했지.
그래서 돌파구를 찾으러 강의를 듣기 위해 여기저기 돌다가 우연히 알게 된 이허준 선생님.
그 강의를 들으며 감탄했고,
배운 강의의 내용으로 몇몇 환자들을 웃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뿐.
결국에는 한의원을 접어야 할 상황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어쩌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데,
‘하필, 여기에서 허준 원장님을 만날 줄이야.’
“최허준 선생님? 계신가요?”
“아, 네. 접니다.”
“들어오시랍니다.”
최허준이 잔뜩 긴장한 채,
방으로 들어섰다.
반가움과 왠지 모를 민망함.
여기에 더해서 고의는 아니었으나 약간의 미안한 마음도 함께였다.
그 감정들을 담아 최허준이 인사하며 손을 내밀었다.
괜스레 손이 떨린다.
그렇게 손을 맞잡은 두 사람.
‘이건...’
이런 사람이 있을 줄이야.
허준의 두 눈이 커졌다.
흐르는 경맥에서 넘쳐나는 기운.
흔히 기운 센 사람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눈앞에 있는 최허준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치료에 큰 도움이 될 터.’
특히,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추나에서 만큼은 이것을 타고난 재능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법.
이는 기운도 마찬가지였으니,
이렇듯 넘쳐나는 기운을 가진 사람은 기운이 모자란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흘러넘치는 기운이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갈 테니까 말이다.
“저... 원장님?”
“아, 죄송합니다. 이름이 저와 같아서 조금 놀랐네요.”
갑자기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 허준이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일단, 앉으시죠.”
그렇게 이어진 질문.
“혹시, 추나 배워보신 적이 있습니까?”
“몇 번 강의는 들었는데, 막상 추나 받으러 온 환자가 한 분도 안 계셔서 다 까먹은 것 같아요.”
“그렇군요.”
허준이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과거의 자신이 잠깐 투영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이어서 물은 간단한 질문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을 들은 허준.
‘기본기는 나름 탄탄한 편이네.’
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모자란 것은 이제부터 배워가면 될 테니까.
“수고하셨습니다. 최허준 선생님. 나가시면서 윤형빈 선생님 좀 불러주시겠어요?”
그렇게 약 1시간 뒤.
대충 인원을 추려낸 허준이 최인호에게 명단을 넘겼다.
“벌써 끝내다니. 수고 많았어.”
“아닙니다. 그보다, 거기 표시한 선생님들을 허준한의원으로 파견 보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바로 굴리려고? 좋은 생각이야. 바로 조치하도록 하지.”
“그럼, 전 입원실 들렸다가 촬영이 있어서.”
“그래. 수고하게. 내 선생들은 곧바로 보내주도록 하지.”
허준이 방을 나섰고,
최인호가 흥미로운 얼굴로 명단을 쭈욱 훑었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최허준의 이름.
‘어? 이 친구 기억나는군. 이름이 워낙 비슷했었지.’
허준 원장이 이 친구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이름 옆에 표시를 여러 개 해둔 것을 보아하니.
두 명의 허준이라.
나름 재밌을 것 같네.
* * *
유튜브에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상이 올라온다.
왜 올리는지도 모를 것 같은 영상부터 뉴스를 비롯해 여러 분야의 최신 소식들까지.
당연히 이는 건강 관련 또는 의학에 관한 내용도 해당하였으니,
최근에 열풍인 한의사 허준의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에서 우후죽순처럼 올라와 있었다.
일명 사이버 렉카라 불리는 사람들이 방송국에서 올린 영상의 조회수를 보고는 돈이 될 것 같으니까 허준의 영상을 여기저기에다 퍼 날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
이제는 유튜버들이 허준에 대해서 나름대로 조사를 한 뒤에 이야기들을 짜 맞춰서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조회수는 곧 돈이었으니,
누구보다 빠르고 자극적으로 말이다.
덕분에,
‘[충격] 건강의 제왕 허준 원장의 정체’라는 느낌의 제목이라던가,
‘최근 유행하는 허준 원장에 대해 알아보자’ 같은 영상들이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사람들의 첫 반응은 바로 이것이었다.
“뭐야? 이 사람 깔 게 없네?”
“이런 사람이 진짜 있다고?”
바로, 깔 게 없다는 것.
처음에는 이렇게 의문으로 다가갔으나,
곧이어 이 영상들이 유튜브를 주로 보는 젊은 사람들에게 허준의 이름을 알리는데 한몫 톡톡히 하는 중이었다.
“야. 너, 그 영상 봄?”
“어. 그 허준 선생이란 사람 이름 아재틱한테 진짜 착하더라.”
“생긴 것도 괜찮음. 그 정도면 훈남 아닌가.”
이렇게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당연히 허준의 영상에 등장하는 혜민서 또한 반사효과를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좋아. 준비됐지?”
“응. 오케이.”
혜민서 대표 김예진.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최은진과 그의 후배.
잠깐 생각했던 일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왠지, 지금이 가장 적기 같았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바로,
혜민서의 유튜브 채널.
‘영상촬영이야 어차피 행사 중에 촬영하고 편집해서 올리면 되니까.’
조금 귀찮기는 하겠지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후원이나 조회수로 돈을 얻기 위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이 혜민서란 단체가 더 커지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지금 당장에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일이 가져다주는 것이 분명히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올라간 혜민서의 채널은 생각보다 빠르게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가장 신이 난 사람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한의사협회 협회장 박준혁이었다.
“협회장님. 혜민서와 허준 원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생각보다 높습니다.”
“그래? 잘 됐군. 우리 한의사협회에서 지원해주는 모습도 잘 찍혀나가고 있는 거지?”
“물론입니다.”
“좋아, 혜민서 김 대표에게 연락해서 필요한 게 더 없는지 물어보고 최대한 지원해준다고 해.”
“알겠습니다.”
이렇듯,
허준과 혜민서의 이름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여기저기로 퍼져나갔고.
허준한의원은 여전히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덕분에 가장 정신이 없는 사람은 바로 한방병원에서 허준의 부탁으로 파견을 나온 한의사들이었다.
첫 파견 날 오전 진료가 끝난 점심.
각 진료실에서 보조를 끝내고 모두가 둘러앉아 식사하는 중이었다.
“이게 무슨...”
“여기가 한의원이라니..”
“저 작은 한방병원에서 근무했었는데, 거기보다 여기가 몇 배는 빡센 것 같아요.”
한의원 규모는 그리 작지 않았으나, 문제는 그 규모를 넘어설 만큼 찾아오는 환자들.
이런 일은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선생님. 그쪽 진료실에 계신 고요한 선생님은 어떠세요?”
“환자분들에게 설명을 잘해주시더라고요. 게다가 차트에 기록을 너무 꼼꼼하게 하셔서 아마, 다른 사람이 진료를 봐도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박용준 선생님이라고 젊은 선생님인데, 솔직히 조금 놀랐어요. 저보다 나이도 조금 어리신 것 같은데 워낙 진료를 능숙하게 봐서요. 게다가 웬만한 질환은 다 보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쪽은요?”
“아, 저는...”
질문받은 남자가 유도진 선생을 떠올리며 답했다.
“유도진 선생님이시라고, 말이 별로 없으신데... 되게 날카롭다고 할까요? 근데, 웃긴 게 환자들이 그렇게 콕 짚어 말하면 꼼짝을 못하더라고요.”
“오... 역시 카리스마 있으셔.”
“그 선생님이 교육할 때도 되게 시니컬하신 분이잖아요? 원래 성격이 그런 분이신 것 같더라고요.”
“그런것 같아요. 근데 또, 실력은 무시무시하셔서 별로 친절하지 않은데 환자들이 계속 찾아오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이들 중에서 가장 궁금했던 선생은 바로
최허준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간 한의사였다.
“최허준 선생님은 어때요?”
“저는 아직 적응이 잘 안 돼서...”
허준한의원의 외국인 한의사.
그가 바로 최허준과 함께 진료실에서 진료를 보는 선생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럴만하죠~”
“저는 아침에 오자마자 깜짝 놀랐다니까요?”
“저도요. 그렇게 한국말을 잘하실 줄이야.”
“그게 아니라...”
최허준이 밥과 함께 진료를 본 오전을 떠올렸다.
얼핏 비슷한 나이임에도 능숙하게 진료를 보는 모습.
“생각 이상으로 진료를 너무 잘 보셔서요. 특히, 침을 굉장히 잘 놓으시는 것 같더라고요.”
“정말요?”
고개를 끄덕이니,
한 한의사가 중얼거렸다.
“대체, 여기에 계신 선생님들은 어떻게 된 분들이지?”
“그러게요.”
그때, 지나가던 밥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다들 식사 맛있게 드셨어요?”
“아, 네.”
“여기 도시락이 참 맛있네요.”
“다행이네요. 모두 정신없으시죠?”
밥의 물음에 한의사들이 대답 대신에 살짝 고개만 끄덕인다.
“괜찮아요. 다들 처음에는 그러거든요. 며칠 지나면 금방 익숙해지실 겁니다. 그럼, 오후 진료 준비해 볼까요?”
이렇게 시작된 오후 진료.
기다리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한의원 식구도 늘어나서 왠지 모르게 가득 찬 것 같은 공간감.
그 공간감을 더욱 가득 채우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된다.
“우와 무슨 사람이 이렇게 거대해?”
“튼튼해 보이는데, 여기는 웬일이랴?”
그의 체구가 누가 봐도 건장했기 때문이리라.
“어서 오세요. 처음이시죠?”
윤다희가 재빨리 초진임을 알고 물었다.
“아, 네.”
“그러면 여기에 이것 좀 적어주시겠어요?”
그렇게 적어서 낸 이름.
이름은 김성렬. 그리고 질환이.
“저... 정말로 이것 때문에 오신 거예요?”
“네. 맞습니다. 허준 원장님께 진료받고 싶어서 왔습니다.”
“여기 조금 오래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어차피 멀리서 왔거든요.”
“네. 바로 접수해 드릴게요. 전화로 연락드릴 테니, 옆에 있는 대기실에서 기다리시거나, 근처에 계시면 되세요.”
김성렬이 뒤돌아 나서자,
윤다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초진 환자인데 왜 낯이 익은 것 같지?’
한편,
진료실에서 진료를 보던 허준.
“네. 이건 이렇게 하셔서 이런 자세로 계시면 많이 좋아지실 겁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치료실에서 뵙죠.”
그렇게 또 한차례 진료를 끝내고,
이어서 진료를 이어나가다 보니,
‘응? 이것 때문에 찾아왔다고?’
허준이 잘못 봤는지,
올라온 차트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게 만난 김성렬 환자.
건장하고 단단한 체구의 남자가 수줍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 옆으로 나타난 퀘스트.
* 진행도 : 0%
* 보상 : 포인트 5000
“어서 오세요. 일단, 이쪽으로 오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