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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63화 (163/230)

163화. 부끄러운 자세

데스크에 있던 윤다희가 갑자기 손뼉을 치며 외쳤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이제야 생각났네.

야구경기!

본래 야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남편인 김민준이 워낙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했기에 얼떨결에 보게 되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봤던 얼굴이었다.

다만, 눈썰미가 뛰어난 윤다희가 단번에 알아보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으니,

김성렬 환자가 야구선수 중에서도 유난히 얼굴을 보기 힘든 포지션이었기 때문이리라.

그것은 바로 포수.

야구선수 중에서도 생각보다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포지션.

보통 사람들이 야구를 생각하면 당연히 투수와 타자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로 포수가 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

공격턴이 아닌 수비턴에서 포수의 위치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야구장에서 점수를 낼 수 있는 시작과 끝을 함께하고 있는 장소가 바로 포수의 자리였으니까 말이다.

투수와 짝꿍을 이뤄 사인을 주고받는 것은 물론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직접 몸으로 점수를 내기 위해 달려오는 선수를 막아서기도 해야 한다.

어디 그뿐이랴.

공을 치려는 타자의 습관이나 자세를 공략해 정보를 알려줘야 하며, 다른 팀원들의 위치도 조정한다.

물론, 팀 스포츠인 만큼 어느 포지션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있겠냐만,

수비에 있어서 포수는 지휘관이자,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포수에게도 직업병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치질이었다.

포수의 안전을 위해서 착용하는 안전장구들.

그리고 투수가 던지는 공을 받기 위해 온종일 쭈그려 앉아 있는 자세.

언제나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만큼 상체의 무게가 항문을 압박하는데,

이로 인해 항문주위 정맥의 혈액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정맥이 늘어나고 피가 고여 생기는 것이었다.

물론, 김성렬도 이미 치료를 몇번은 받았다.

그런데도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재발했다는 뜻일 터.’

보상으로 얻을 수 있는 포인트가 무려 5000점.

이는 곧 난이도를 의미했으니,

허준이 앉는 대신에 서 있는 김성렬에게 물었다.

“혹시, 수술을 받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 네. 어떻게 보면 이게 직업병이라...”

치질이 직업병이라니.

허준이 김성렬을 다시 한번 훑었다.

건장하고 단단한 체구.

거기에 직업병으로 치질.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는 그였지만,

의학적으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치질은 포수의 직업병이었지.’

포수라면 치질이 직업병인 것도 이해가 되지.

온종일 쭈그려 앉아서 있어야 할 테니까 말이야.

허준이 김성렬을 한 번 더 훑었다.

건장하고 단단한 체격이지만, 거기에 지방도 꽤 붙어있는 모습이다.

‘몸이 무겁다.’

이것도 분명 악영향을 미쳤을 거다.

이어서 허준이 답했다.

“그러셨군요. 야구선수 맞으시죠? 포수.”

“역시,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네. 맞습니다.”

김성렬이 고개를 끄덕이며,

“최근에 상태가 상당히 심해져서 저 대신에 후배가 경기를 뛰고 있습니다. 구단에서는 당연히 수술을 권하는 상황이고요. 곧있으면 내년 계약시즌이 돌아옵니다. 그전에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어서요.”

“수술 없이 치료하고 싶으셔서 찾아오신 거겠죠?”

“네. 수술이야 하면 그만이겠지만, 어차피 또다시 발생할 테니까요. 그러다가 TV에서 선생님의 모습을 봤습니다. 유튜브도 찾아봤고요. 그래서 이곳까지 찾아오게 된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검사받았을 때 기수는 몇 기였습니까?”

치질도 암과 비슷하게 기수가 나누어져 있다.

1기부터 4기까지.

여기서 보통 4기는 대부분 외과적인 수술이 필요한 경우였다.

“그게... 3기로 진행 중인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환부를 보기 전에 진맥부터 보도록 하죠. 두 손을 이리로 올려주시겠어요?”

김성렬이 두 손을 올렸고,

허준이 맥을 잡았다.

‘운동선수라 전체적으로 건강한 편이다.’

다만, 역시나 장부들의 상태가 조화롭지 못하다.

특히 그중에서도 대장의 기운은 탁하고 짝꿍을 이루고 있는 폐가 허하다.

덕분에, 십이정경 중 하나인 수태음폐경의 흐름이 원활치 못했다.

여기에 더해서 저기는?

‘독맥인가.’

입천장에서 머리로,

그 머리 위에서 회음부까지 고속도로처럼 일자로 뻗어있는 경맥.

그중에서 아랫부분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미약했다.

이런 건 처음 보는군.

하긴, 치질 환자의 치료도 처음이니 당연하겠지.

그 경맥의 흐름을 보고 맥을 느끼면서 동시에 처방을 떠올린다.

외과적인 수술이 아닌, 내부적인 문제로 해결을 하려면 우선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해야 할 터.

치질은 배변을 위해 과도하게 항문에 힘을 주는 경우와 복압이 증가한 경우 등으로,

점막 하 조직을 압박하며 피가 고이게 만들어서,

이것이 변성되다가 나중에는 덩어리를 이루면서 생기는 질환.

즉, 완치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병행되어야 한다.

김성렬 환자의 경우에는 계속 압박을 받는 이유가 크겠지.

하지만, 그것은 직업적인 일이었으니, 야구선수를 그만두기 전에는 계속 이어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압박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이 필요하겠군.

여기에 더해서 또 한 가지는 바로 원활한 순환을 하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인간의 몸은 생각보다 강했으니,

‘그렇게 된다면 충분히 몸이 회복하여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자세가 민망할지 모르지만 독맥에 있는 장강혈과 머리에 있는 백회혈을 침으로,

대장과 단짝인 폐의 도움으로 대장을 이끌기 위한 수태음폐경의 혈 자리.

공최혈을 뜸으로 기운을 북돋아 줘야겠군.

당연히 마무리는 탕약이다.

계지복령환, 당귀수산, 통규활혈탕, 서각지황탕 등등.

모두가 어혈에 좋은 탕약이었다.

그때, 허준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어디선가 봤던 내용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그래. 을자탕이 좋겠어.’

본래 중국이나 한의학 서적에 전통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탕약은 아니나,

최근에 효과가 입증된 탕약이다.

특히, 치질 치료에 효과가 뛰어나다고 많은 연구결과가 올라오고 있었지.

이렇게 치료계획을 세운 허준.

“치료는 침과 뜸 그리고 탕약으로 해볼 생각입니다. 우선 침으로 이곳과 이곳을 자극할 겁니다.”

허준이 볼펜으로 가리킨 곳을 본 김성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기를요? 그러면 자세가...”

“모양새가 좀 그렇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여기가 치료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자리라서요.”

김성렬이 고민했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가뜩이나 자존심 강한 운동선수인데,

하필 너무나 민망한 자리였으니까 말이다.

그때,

허준이 김성렬의 손을 낚아채며 팔꿈치와 손목 사이 7/10 부근에 있는 공최혈을 잡았다.

그러고는 살짝 누르니,

김성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통증이 올라왔기 때문이리라.

“여기가 대체 왜?”

“아프시죠? 여기도 치질 치료에 중요한 혈 자리 중 하나인 공최혈이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우리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제대로 고치지 못한다면 선수 생활하시는 내내 반복될 겁니다.”

그 말에,

김성렬이 무언가 결심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받아보도록 하죠.”

“참, 치료실로 가기 전에 미리 말씀드리자면, 체중을 조금 줄이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아무래도 압력을 줄여주는 편이 훨씬 치료와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될 테니까요.”

체중을 줄이라는 말이야 어차피 병원에서도 듣던 이야기였기에,

김성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치료실로 가실까요?”

그렇게 치료실.

허준이 가장 구석진 자리로 김성렬을 안내했다.

그러고는 커튼을 꼼꼼하게 채우고는 말해다.

“자세가 조금 창피하시겠지만, 아까 말씀드린 대로.”

김성렬이 엉거주춤하게 자세를 잡았다.

표정 또한 허준이 영 못 미더운 눈치다.

‘이거 자세가 너무...’

그의 자세는 마치,

요가 자세 중에서 고양이 자세와 비슷한 모양새였으니까 말이다.

허준도 지금, 이 상황이 꽤 난처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치료가 먼저지.’

이어서 침을 꺼내 들고 감각을 집중하여

꼬리뼈 끝과 항문을 연결하는 한가운데에 있는 장강혈에 찔러 넣었다.

이어서 독맥을 따라가 올라가는 백회혈.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침을 찔러 넣었고,

마지막은 바로 뜸.

팔꿈치와 손목 사이에서 조금 더 위쪽에 있는 공최혈.

그곳에 뜸을 올려 불을 붙였다.

그러자,

베드 위에 있는 김성렬의 자세가 고양이에서 이제는 신에게 절이라도 하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이거 참...’

“알람 울리면 오겠습니다.”

“저... 선생님이 직접 오시는 거죠?”

“물론이죠.”

그렇게 커튼을 꼼꼼하게 친 허준이 치료실을 나서며,

‘이거 아무래도 대책이 필요하겠는걸?’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게 해야겠다고 허준이 다짐하며 진료실로 향했다.

*   *   *

“허준한의원 곧 간다면서?”

“어떻게 알았어? 여기서 이사 가고 처음 온 거 아니여?”

“에이~ 그 정도는 다 알지.”

이제는 거리에 마지막으로 남은 간판 없는 식당.

그곳을 지키는 최명숙이 오랜만에 찾아온 시장 골목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명숙 성님은 언제 가려고?”

“나도 이제 가야지.”

“참, 성님도 독해. 그동안 명자 성님 아래에서 어떻게 그렇게 버텼댜?”

“그 성님이 입은 험해도 사람은 잘 챙겨 주거든.”

본래 이곳의 주인이었던 김명자 할머니.

그것을 주방에서 일하던 최명숙이 이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보다 그 성님은 어디로 가셨대?”

“나도 모르지. 그냥 그렇게 가버렸는데. 인연 있으면 또 만나겠지.”

“인연은 무슨, 저 하늘 위에서나 보겠지.”

“거 사람 참, 말을 어떻게 그렇게 숭하게 해?”

“그런데, 허준한의원은 어디로 간데? 허리 아프면 이제 허준 선생한테 침 못 맞는 거야?”

누군가의 물음에,최명숙이 답했다.

“그 소문은 못 들으셨나 봐?”

“무슨 소문?”

“허준한의원 식구들 전부 병원으로 간다던데?”

“병원?”

“응. 한방병원이라고 크게 해서 단체로 간다더라고.”

“아이고~ 잘됐네! 잘됐어. 허준네 사람들 다 착하고 열심히 살더니 복 받았네! 그래.”

이렇듯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서

허준한의원은 마지막 진료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마지막 진료는 23일.

그동안 한의원 식구들이 워낙 고생해준 터라, 허준이 내린 결정이었다.

며칠 동안의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같은 시각.

다른 장소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만, 그 멤버가 김정우와 박진석 그리고 최인호라는 점이 달랐지만 말이다.

“그래? 허준한의원이 23일까지 진료를 한다고?”

“네. 지금도 워낙 환자들이 몰려서 식구들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모양입니다.”

“바람직한 생각이야. 어차피 여기에 와서도 많이 굴러야 할 테니까 말이야.”

박진석이 히죽 웃었다.

그러자,

“이 친구 성격 더럽기는. 그보다 허준 원장이 요새 인기라면서?”

“맞습니다. 안 그래도 다른 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오고 있는데.”

“있는데?”

“허준 원장이 안 하겠답니다.”

“왜? 진료 봐야 한다고?”

“네. 시간이 모자란다고요.”

“역시, 그 친구다운 대답이군.”

김정우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제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구만.”

“그러게. 그런데, 자네 그거 봤나?”

박진석이 최인호에게 물었다.

“지하철에서 보다 보니, 우리 혜민한방병원 광고 옆에 바로 케이한방병원 광고가 떡하니 붙어있던데?”

“그 정도야 뭐, 생각보다 우리가 신경이 쓰이는가 봅니다.”

“자넨 모르겠지만, 김준일 그 친구도 한 성격 하는 친구라서 말이야.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최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그의 목표가 제2의 김준일이 되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겐 허준 원장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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