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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68화 (168/230)

168화. 나이롱이다

혜민한방병원 인근 공원.

점심시간에 식사를 끝내고 모인 애연가들이 병원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 현수막 보셨어요? 국내 최대라던데?”

“에이~ 규모만 크면 뭐해요? 케이한방병원이 최고죠.”

“그런가?”

“저기 그 TV에 나오는 선생님들도 계신다던데요?”

“그보다 나는 저렇게 크게 하려면 얼마가 있어야 하는 걸까가 더 궁금하네요.”

이런 반응은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어지고 있었다.

- 지나가다가 본 곳인데, 한방병원이 들어온다더라고요. 개원식 한다고 현수막도 붙어있어요.

- 잘됐네요. 자동차 사고 나면 이리로 가면 되겠어요. 집이랑도 가깝고.

- 저도 궁금해서 한번 가보려고요.

이런 상황 속에서 허준한의원 식구들은 각자 나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는 휴식을, 또 누군가는 밀린 업무를, 또는 연말이었기에 가족들을 보러 간다거나 연인을 만나는 등.

허준의 집.

띵동-

“네~ 나가요!”

허준이 추리닝 차림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자,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원장님~”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박용준과 밥이었다.

“어서 오세요. 박 원장님, 밥 선생님. 일단, 들어오시죠.”

“제가 원장님 집에까지 오게 될 줄이야. 정말, 영광입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가 하면, 둘의 복장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한 손에는 준비해온 목장갑과 다른 손에 들려 있는 플라스틱 상자 몇 개.

바로, 허준의 이사를 돕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이곳에서 혜민한방병원은 거리가 꽤 있기에, 출퇴근 거리가 늘어난 데다가.

전세금까지 올려달라고 하니,

굳이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까닭이었다.

“그냥 이삿짐 불러도 괜찮은데...”

“에이~ 뭐하러 그러세요? 여기 밥 선생님도 진료를 안 보니까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한걸요? 저도 뭐 겸사겸사 온 거니까 부담가지지 마세요. 우리가 하루 이틀 같이 지낸 사이도 아니고.”

박 원장님. 최근 여자친구와 자주 싸운다는 이야기가 들리던데.

“박 원장님이 그러니까 더 부담스러운데요?”

“그러니까 후딱 끝내고, 맛있는 짜장면이나 사주세요. 이사할 땐 중국집이 국룰인거는 아시죠?”

박용준의 말에 허준이 피식 웃었다.

“물론이죠. 그 정도야 드시고 싶은 거 다 드셔도 됩니다.”

“콜~ 그럼, 바로 시작할까요? 어차피 짐도 별로 없어 보이는데.”

라는 박용준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입구에서 몇 걸음을 들어가니,

“저... 원장님?”

“네?”

여기저기에 쌓여있는 수많은 책.

그리고 인체모형을 비롯한 장난감같이 생긴 이상한 물건들까지.

박용준뿐만 아니라,

뒤따라 들어온 밥도 그것을 확인하고는 놀라 두리번거렸다.

저게 다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두 권도 아니고, 저렇게 많은 책이 굴러다니다니.

게다가 한의학책뿐만이 아니라, 해부학부터 현대의학 나아가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책까지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제가 이삿짐을 부르겠다고...”

허준의 말은 이미 두 사람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이 놀라운 광경이 충격적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이게 다 뭐에요?”

“아, 저건 한의학이랑 의학 서적들이고, 저건 인체 해부도랑 해부모형이요.”

“그럼, 이건요? 아무리 봐도 쓰레기 같아 보이는데?”

“아, 그건...”

김태현이 가리킨 곳에는 비닐과 풍선 같은 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주 고마운 녀석들이지.’

얼핏 보기에 쓰레기처럼 보일지 모르나,

허준은 저것들을 이용해서 침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인간의 몸에 있는 각각의 막들.

그 막들의 감각을 손끝으로 잡아내기 위한 훈련의 결과물이었다.

그런데도 저게 아직 굴러다니고 있는 이유는.

내가 좀 게을렀네...

“뭐랄까, 침놓는 훈련할 때 사용했던 건데. 필요하면 가져가세요.”

“이걸 어떻게 사용하는 건데요? 그냥 비닐봉지나 얇은 풍선같은데.”

“간단해요. 눈을 감고서 침으로 찌르는 거죠. 처음에는 터트리지 않고, 또는 구멍 내지 않고, 오로지 침 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으로 느끼는 겁니다.”

“하하. 저, 저는 괜찮을 것 같아요.”

박용준이 손사레를 치며 거절했는데,

옆에있던 밥의 눈이 빛났다.

“정말요? 그럼,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   *   *

며칠 뒤.

혜민한방병원 원장실.

"좋은 아침~”

최인호가 허준을 반갑게 맞이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래. 이사는 잘 끝났고?”

“네. 박용준 원장과 밥 선생 덕분에 편하게 끝났네요.”

“잘됐네. 보기 좋아. 그보다 자네를 부른 이유는 알고 있겠지?”

“네.”

허준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의원 진료에 방송, 대학교 강의까지 여러 일이 있다 보니 막상 한방병원을 제대로 둘러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럼, 가보실까? 그래도 자네 진료실이 어디 있는지 정도는 미리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최인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섰고,

허준이 그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곳은 4층.

문을 열고 내리니,

‘익숙한 느낌이 든다.’

정갈하고 깔끔한 느낌.

거기에 더해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한약재 냄새와 함께 나무를 사용한 인테리어로 자연스러운 조화로움이 더해진다.

불빛 또한 너무 밝지 않고 따듯한 느낌을 주는 정도.

“어때? 김태현 대표가 자네 한의원에서 받은 느낌으로 작업을 진행해줬어.”

“어쩐지. 왠지 익숙하다고 했더니. 정말, 마음에 드는데요?”

“자, 자네 진료실은 이쪽이야.”

진료실로 들어서니, 카이로베드는 물론이요. 넉넉한 크기의 베드도 함께 준비되어 있었다.

본래 진료실에는 이렇게 중복으로 놔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허준을 위한 특별한 배려라 할 수 있었다.

‘이정도면 웬만한 치료는 다 할 수 있겠는걸?’

“어때? 마음에 드나?”

“네. 좋네요. 밖의 경치도 잘 보이고.”

그런 허준의 진료실 한쪽에는 허준이 직접 챙겨온 사진들과 화분이 놓여있었다.

허준한의원 진료실에 있었던 바로 그것들이었다.

“좋아. 그럼 마저 돌아다니면서 구경 좀 해볼까? 우선 치료실부터 가보자고.”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고,

최인호와 함께 치료실로 향했다.

“치료실도 좋은데요? 시설도 다들 새거고.”

“당연하지. 이게 다 얼마짜리인데. 게다가 자네가 요청한 대로 이렇게 준비를 해뒀다네.”

얼마 전 허준이 치료사례를 말하면서 요청한 것.

덕분에, 몇몇 진료실은 커튼뿐만이 아니라, 얇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확실히, 이정도만 되어도 환자들 입장에서는 훨씬 나을 것 같네요.”

“그렇지. 그럼, 이제 다른 층도 마저 둘러보도록 하지.”

식당부터, 로비 그리고 3층의 김형서 원장이 담당하는 각종 검사와 정형외과 진료실.

4층부터 이어진 한방진료실과 6층이 넘어서자 하나 두 개씩 나오기 시작하는 입원실까지.

그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역시나 로비와 데스크가 층마다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완전히 다르네.’

그렇게 둘러보고 있는 와중에,

“어? 원장님!”

“잘 지내셨죠?”

허준한의원에 입원해 있었던 환자를 만날 수 있었다.

“네. 오랜만이네요. TV에 원장님 나오는 거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죄송해요. 제가 이런저런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어휴 아닙니다. 덕분에 이렇게 너무 편하게 지내고 있는걸요.”

“발은 좀 괜찮으세요?”

“그럼요. 이제 며칠 뒷면 저도 곧 퇴원할 것 같다고 고요한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잘됐네요.”

그 이야기와 함께,

입원실에서 낯익은 환자들이 허준을 반겼다.

지난번 진료 이후로 처음 들렸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한차례 인사를 나누고,

다시 이어진 발걸음.

“역시, 환자들이 자네를 좋아해도 너무 좋아한다니까?”

“원장님한테도 분명히 감사해하고 있을 겁니다. 제가 오랜만에 와서 반가워서 그런 거겠죠.”

“농담일세. 자, 그럼 대충 다 둘러본 것 같군. 어떤가?”

“솔직히. 생각 이상이네요.”

“그건 당연한 거고.”

“그런가요?”

“물론이지. 들인 돈이 얼마인데. 그럼, 자네도 이만 가서 쉬게. 내일 개원식에서 보세나.”

*   *   *

혜민한방병원 개원식.

원장 최인호를 필두로 전 직원과 함께 여러 님들이 함께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요?”

“그러게. 내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 저분들이 다들 어디 병원장이라던가 어디 고위관직들 또는 여기에 투자하신 분들 등등일 거야.”

“어? 어디서 많이 보던 사람 같은데.”

“김강현 대표님 아니에요?”

“아~ 하긴, 우리와 업무협약이 되어있으니까 당연히 왔겠네요.”

김태식의 설명에 앉아 있던 식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렇게 규모가 큰 만큼. 사람이 많은 것도 당연하겠지.

“우리 혜민한방병원 개원식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병원은-”

이런 행사에서 늘 그렇듯이 원장인 최인호의 연설이 이어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매우 짧게.

파격적으로 의료진의 소개조차 없이 끝낸 간단한 연설이었다.

이어서 커팅식이 이어졌고, 박수소리가 들려온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빨리 끝나서.”

“그나저나 정말 내일부터 여기서 진료 보는 거 맞죠?”

“네. 전 4층이던데. 원장님들은 몇 층이세요?”

“어? 전 5층이요.”

“전 3층입니다.”

뒤쪽에서 불쑥 김형서가 나타나 대답했다.

“어? 김형서 원장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물론이죠. 여기 검사 장비들하고 이것저것 조율하느라 바빴네요.”

“준비는 다 끝내신 거죠?”

“그럼요. 최 원장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아마 생각보다 더 많은 일이 벌어지게 될 겁니다.”

김형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리고 그 뒤에 나타난 반가운 얼굴.

“오랜만입니다. 선생님.”

허준이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김형서 원장과 반가운 얼굴이 함께 서 있었다.

“김찬용 선수!?”

당직 때마다, 스포츠를 즐겨보던 도영철이 단번에 그를 알아보고는 놀라 외쳤다.

허준도 반가워 물었다.

“오랜만이네요. 여기까지 어쩐 일로 오셨어요?”

“아~ 삼촌이 하도 닦달해서 왔죠.”

“내가 언제?”

“뭐, 사실은 겸사겸사 연말이고 해서 집에도 들릴 겸 해서 왔다가 소식을 듣고 오게 되었어요.”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다리는 그 이후로 괜찮으시죠?”

“네. 모두 선생님 덕분입니다.”

“요새 김찬용 선수 아주 날아다닌다니까요? 저 팬인데, 사인 한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김찬용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자세히 보니, 이동훈을 비롯해 최우중도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물론, 그 옆에는 강수연과 지영희 실장까지.

쟁쟁한 배우들이 함께했으니,

여기저기에서 연신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지영희가 다가와 대표로 인사했다.

“선생님들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카메라가 많아서 대신 안부를 전해달라고 합니다.”

그 말에,

허준과 식구들이 가볍게 눈과 손을 사용해서 인사를 대신했다.

그렇게 지영희가 떠나가고,

“이허준 원장?”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허준이 고개를 돌렸다.

“반갑네. 나는 김준일이라고 하네.”

김준일이 손을 내밀었고,

허준이 가볍게 잡아 악수했다.

‘케이한방병원 원장. 김준일이잖아?’

이 사람이 이곳에 와있을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로군. 화면보다 실물이 훨씬 좋은데?”

“감사합니다.”

“축하하네.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개인적으로 자네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네. 언젠가 또 보도록 하지.”

그러면서 떠나가는 김준일.

일행들이 그가 완전히 떠나가자 중얼거렸다.

“와... 뭔가 포스가 남다른데?”

“확실히 그렇죠?”

“원장님한테 관심이 많은가 본데요?”

“그렇겠지. 우리 원장님이 최근에 인기 좋으니까.”

허준이 일행들에게 말했다.

“그럼, 개원식도 끝났는데 가서 쉬시죠. 내일부터 바로 진료 시작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다음 날.

새해를 맞이하면서 혜민한방병원의 진료가 시작되었다.

환자의 이름은 김인철.

자동차사고보험환자였다.

그런데 이 환자.

나이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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