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170화 (170/230)

170화. 이게 더 좋아 보여서요

한방병원의 입원실 진료는 하루 2번의 회진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병원마다 세부적인 사항까지 전부 같을 수는 없겠지만, 보통은 그러했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입원실을 돌며 담당 주치의가 진료를 보는 식이다.

그리고 이때마다 수련의들이 옆에서 따라다니면서 참관을 하기도 한다.

흔히, 메디컬드라마에 보면 의사과장과 그 옆으로 하얀 가운을 펄럭이며 주르륵 길게 늘어서 가는 모습이 바로 그 장면이다.

오늘이 바로 입원실의 첫 회진시간.

허준이 입원시킨 환자들의 회진을 돌며 각각 진료를 이어나가다가 드디어 김인철의 차례가 되었다.

“여기저기 통증이 있으시다고 하셨죠?”

“네. 맞습니다.”

허준이 김인철의 대답에 사람 좋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통증을 잡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추나 치료와 침. 그리고 몸의 활력을 올려주는 탕약이 처방되어야 할 것 같네요.”

하루 이틀이던가, 이미 한방병원에 입원했을 때 치료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김인철이었다.

‘추나와 침. 그리고 탕약으로는 조금 약한 것 같은데?’

괜히 이런 한방병원에 나이롱 환자들이 드러눕는 게 아니다.

높은 가격의 치료가 병행되어서 금액이 높게 나올수록 상대방 측에서 빠르게 연락이 오기 마련이었으니,

“선생님. 제일 좋은 처방으로 해주세요. 정말로 아파 죽겠거든요.”

“알겠습니다. 그럼, 약침까지 포함하도록 하죠.”

허준의 대답에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김인철.

진료실에서 가뜩이나 까다롭게 굴더니, 결국 입원한 마당에는 어쩔 수 없나 보네.

그런 김인철의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산산조각나 버렸다.

시작은 좋았다.

기분 좋게 시작된 추나는,

여태까지 입원했었던 한방병원 중에서도 가장 시원한 느낌이 들었고.

이어서 이어진 약침의 효과 또한 즉각적으로 느껴질 만큼 좋았다.

뭉친 근육이 풀어진 느낌.

그리고 마지막 침 치료.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허으윽-”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신음이 흘러나오고,

얼굴에 피가 쏠리는 느낌이다.

‘이게 무슨...’

발바닥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아주 후끈후끈한 느낌과,

또 어떤 곳은 너무 아파 마비라도 된 것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중에서 제일 큰 문제는 바로 발에 침을 놓고 있는 한의사 양반이다.

“선생님. 조금만 살살...”

이렇게 말할 때마다,

“김인철 씨. 한의학에서는 이 발에 사람의 몸이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까지 아파하시는 걸 보니, 이 곳이 굉장히 안좋은 것 같군요.”

설명하면서 느긋하게 다시 침을 놓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침을 놓고 놔두는 것이 아니라, 빙글빙글 돌리거나, 흔들기도 하고 또 어떤 곳은 뺏다 넣었다 여러 번 찌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자연스럽게 숨이 멎을 만큼 통증이 올라오고,

눈물이 찔끔 나오기도 한다.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들이 이 광경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도 허준에게서 진료를 받았는데, 진료가 끝난 뒤에 확연히 컨디션이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아이구 저 친구. 진짜로 많이 아픈가 본데?”

“그러게. 쌩쌩한 줄 알았더니. 골병이 들었나 봐.”

그때,

뒤에 서 있던 한 수련의가 최인호 원장을 보고 놀라 인사했다.

“병원장님...?”

최인호의 등장.

수련의들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허준도 최인호와 그 뒤에 있는 김예진을 확인하고는,

가볍게 인사하며 침을 꺼내 들었다.

자신에게 쏠린 과도한 시선에,

최인호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일들 봐. 잠시, 지나가는 길에 둘러보려고 온 것뿐이니까.”

그러면서 최인호가 자연스럽게 병실에 입원 중인 환자에게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병원장 최인호라고 합니다. 어디, 입원 중에 불편하신 것은 없으신지요?”

“아, 네. 아주 편합니다.”

“다행이네요. 혹시라도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곧바로 우리 선생님들께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때,

김인철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 저기 병원장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그에게 순식간에 쏠린 시선.

최인호가 바로 답했다.

“네. 이야기하시죠.”

“여기는 좀 그렇고 따로 면담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허준 원장. 치료가 끝나는데, 얼마나 걸리겠나?”

허준이 곧바로 답했다.

“곧 끝날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환자분 치료 끝나고 면담할 수 있게 안내 좀 해주게.”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가 뵙도록 하죠.”

*   *   *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하는 속담처럼,

한방병원에서 벌어진 이 일에 관한 이야기는 순식간에 여기저기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조금 전에 벌어졌던 일을 떠올린 수련의들이 한숨을 푹 내쉰다.

“이상하네. 원장님이 왜 하필 족침으로 치료하신 거지?”

“그러게요. 가뜩이나 아픈 부위인데. 교통사고 환자한테...”

“그나저나 이거 어떻게 될까요? 그 환자 성격 보니 그냥 넘어갈 것 같지는 않던데.”

“글쎄요. 저는 그냥 우리한테 불똥만 안 튀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이 일은 수련의뿐만이 아니라,

입원실을 담당하는 간호사들과 직원들 사이에서도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덕분에,

다른 층에서 진료를 보고 있던 김태식 원장.

“원장님. 그 이야기 들으셨어요?”

“응? 무슨 이야기?”

“다름이 아니라...”

한 한의사가 새로 업데이트된 이 따끈따끈한 소식을 곧바로 김태식 원장에게 전했다.

허준한의원 때부터 같이 있었던 한의사로, 눈치가 꽤 빠른 사람이었다.

“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네. 그렇다니까요? 이거, 아무래도 허준 원장님이 실수하신 것 같은데...”

그 말에 김태식이 피식 미소지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허준 이 친구. 여전하네?’

이는 박용준 또한 마찬가지였다.

박용준도 그 이야기를 듣더니,

“역시, 허준 원장님이시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 선생님들은 아마 허준 원장님 성격을 잘 모르시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아주 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아니에요. 들리는 말로는 자보환자를 처음 진료하셔서 실수가 있으신 거라고...”

“글쎄요? 제 기억에는 허준 원장님이 진료를 보면서 실수한 적은 없었던 것 같거든요.”

이렇듯이 한방병원 여기저기에서 시끌시끌해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김인철이 웃으며 원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걸어가는 발바닥은 아직도 후끈후끈 거린다.

물론, 침을 맞은 뒤에 효과가 있는 것인지, 몸의 컨디션은 조금 더 좋아진 것 같은 기분 또한 함께다.

어쩌면 그냥 지금의 상황이 즐거운 것일지도.

‘나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지.’

운도 좋았다.

그 타이밍에 병원장이 찾아올 줄이야.

직접 그 상황을 함께 봤으니,

이야기가 쉽게 통할 터.

그렇게 병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 김인철을 최인호가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병원장님.”

“아, 김인철 씨. 이리로 앉으시죠.”

안내에 따라 의자에 앉은 김인철.

최인호가 물었다.

“그래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고요?”

“네. 제가 잘 이해가 안 돼서요.”

“말씀하시죠.”

김인철이 최인호에게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자동차 사고를 당했으며, 이곳에 와서 진료실에서 벌어졌던 일.

너무 힘들어서 입원 치료를 하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 나중에서야 알겠다고 해준 일.

그리고 좀 전에 직접 보았듯, 다른 환자와 다르게 자신만 발바닥에 침을 놓은 것에 대한 문제 제기 등.

최인호가 이야기를 다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러셨군요. 일단, 발에 놓는 족침의 경우에는 김인철 씨가 생각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도 많이 고통스러우셨다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조금 더 신경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김인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네. 꼭 좀 부탁드립니다. 그 원장님이 TV에 나와서 유명하신 거는 알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죠. 안 그래도 입원해 있는 동안에 매일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침을 맞는다는 것은 정말 끔찍-”

만족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와중에,

“그런데, 어디까지나 처방은 각 주치의의 개인적인 판단이라서 제가 허준 원장에게 처방을 바꾸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족침이 조금 아프기는 하지만, 효과가 뛰어난 치료법 중에 하나거든요. 게다가 허준 원장은 우리 한방병원에서 가장 침을 잘 놓는 한의사라고 봐도 되니, 믿으셔도 됩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드린 그대로 처방이 바뀔 일은 없을 거란 이야기입니다.”

김인철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그러고는.

“병원장님. 우리 그냥 조금 쉽게쉽게 갑시다. 저 이러면 여기저기에다가 제보도 하고 인터넷에 글도 올릴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럼, 아무래도 우리 다시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최인호가 책상에 있는 모니터를 돌리고는 말을 이었다.

“여기 영상 보이시죠? 오전에 입원하고 첫 점심시간의 식당입니다. 이상하게 김인철 씨가 안 보이네요? 다른 곳을 확인해보니, 밖으로 나가시더군요.”

이어서 다른 영상.

“여기는 옥상인데, 아주 담배를 맛있게 피우시는 장면도 있습니다. 커피도 함께요. 어디서 맛있는 식사라도 하시고 온 뒤 같군요.”

영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병원 곳곳을 누비면서 때로는 마음대로 외출까지 서슴없이 하는 김인철의 모습.

“이정도면 아무리 봐도 건강한 사람 같아 보이는데. 김인철 씨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허준 원장의 말대로 통원치료로도 충분해 보이는군요.”

“그, 그게...”

최인호가 사람 좋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저도 쉽게쉽게 가는 거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우리 서로 얼굴 붉힐 일은 없도록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약간 붉어진 얼굴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김인철.

그 의미를 알아듣고는 인사와 함께 그대로 병원장실을 벗어났다.

‘X발! 여기 오늘 오픈한 병원 맞아?’

처음 오픈한 병원이라고 만만하게 생각했던 김인철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최인호가 그런 김인철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진상이 왔다 간 곳에서 소문이 안 좋게 나면 진상들이 몰리기 마련.

나이롱이라고 별반 다를까.

한 명, 두 명 받아 주다 보면,

어느새 귀신같이 소문이 나는 법이었으니,

‘그런 곳으로 만들 수는 없지.’

*   *   *

첫 진료가 완전히 끝나고,

탕전실을 찾은 허준.

‘역시 익숙지가 않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이 탕전시설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엄청난 양의 약재들까지.

그때, 익숙한 얼굴이 탕전실을 방문했다.

유도진이었다.

“유도진 원장님?”

“여기 계셨군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아, 괜찮습니다. 별일 없을 거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유도진도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저도 원장님과 같은 이유로 왔습니다.”

바로 VIP들의 보약을 제조하기 위해서 온 것.

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오랜만에 같이 달여보도록 하죠.”

“저는 여기부터 여기 정도까지만 사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쪽은 제가.”

그렇게 탕약을 달이기 위해서 약재 창고로 향한 두 사람.

허준이 유도진이 챙기는 약재들을 보며 물었다.

“보약을 달이시나 보네요?”

“네. 주문이 조금 들어와서.”

“역시, 유도진 원장님이시네요. 잠시만요.”

허준이 유도진이 꺼내 든 녹용을 보고 약재창고의 녹용들을 살피더니,

그중에서 하나를 꺼내 건넸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허준 원장의 행동에,

유도진이 되물었다.

“이건 왜...?”

“왠지 이게 더 좋아 보여서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