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고타법
정형외과는 본래 근육과 뼈 등.
몸을 움직이는 운동 기관의 기능 장애를 치료하는 과다.
선천적인 기형과 질환부터 사고 또는 습관으로 인해 생겨난 변형까지.
이에 대한 교정 및 기능의 회복을 목적으로 진료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정형외과’라고 말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아마 도수치료일 것이다.
최근에 워낙 인기가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잊고 있는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형외과에는 ‘외과’라는 단어가 붙어있다는 것이다.
흉부외과, 성형외과, 정형외과.
종목은 다르지만, 전부 외과라는 단어가 붙어있는 분야.
즉, 치료를 위해서는 수술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김형서 원장은 정형외과 전문의.
그것도 꽤 풍부한 경험을 가진 경력자다.
물론, 보통 한방병원에서는 웬만해서는 정형외과 전문의를 고용하지 않는다.
몸값도 높을뿐더러, 수술치료를 하는 한방병원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굳이 그런 리스크를 질 필요가 없는데다가,
누가 한방병원에 수술을 받으러 가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현대의학의 산물인 약과 장비들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 굳이 값비싼 정형외과 전문의를 사용할 이유가 없는 까닥이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한방병원에서는 각종 검사장비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영상의학과 의사나,
관절이나 근육을 치료하는 데에 있어서 외과보다 훨씬 효율적이라 할 수 있는 마취통증학과 전문의를 고용한다.
물론, 이렇게 전문의가 있는 것만으로도 꽤 규모가 큰 한방병원에 해당하는 이야기겠지만.
그런데 혜민한방병원의 병원장 최인호는 왜 정형외과 전문의인 김형서 원장을 데리고 간 것일까.
이는 허준이 김형서 원장을 데리고 가자면서 말한 내용 때문이었다.
“뭐? 김형서 원장이라면, 시장 골목 대로변에 있는 정형외과 원장?”
“네. 맞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한방병원에 정형외과 원장을 들이자고?”
허준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인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뱉으며 말했다.
“자네가 아직 경험이 없어서 그런가 본데,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썩 내키지 않는 이야기로군. 자네의 부탁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그럼, 이유라도 알아듣게 설명을 해보게.”
“김정우 선생님께 들었습니다. 이 한방병원. 그저 돈을 보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죠.”
“나도 그렇게 들었네.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그렇다고 해서 적자로 유지하겠다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에게는 김형서 원장이 필요합니다. 제가 김형서 원장과 협진으로 좋은 결과를 낸 김찬용 선수의 사례를 보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최인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어떻게 보면 우리는 후발주자인 셈이죠. 그런데, 덩치가 너무 큽니다. 다른 한방병원들은 각자의 주력 분야가 있죠.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어디가 아프면 그 병원들이 먼저 떠오를 겁니다.”
“알고 있네. 그래서 자네를 전면으로 내세우려고 하는 이유도 있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겠죠. 그때, 우리는 다른 한방병원이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을 해야 합니다.”
“설마...?”
허준이 확신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최인호가 그때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예전에는 그저 환자만 볼 줄 아는 바보인 줄 알았건만.’
이제는 나아가야 할 길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환자를 위해서는 모든 지 하려는 열정에 더해서 이제는 어엿하게 다른 사람들의 상황도 헤아릴 수 있게 된 모습.
도저히 싫어하려야 싫어할 수가 없는 친구다.
그때, 문이 열리며 도착한 김형서 원장.
“부르셨습니까? 병원장님.”
“그래, 김 원장. 우리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데로 준비는 다 되었나?”
김형서가 자신 있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준비해 온 일.
“물론입니다.”
“좋아, 수술치료 시작하도록 하지. 잘 부탁하네.”
* * *
케이한방병원 병원장실.
김준일이 출근한 박원효를 불러 경과를 보고받았다.
“그래. 토요일 의료봉사 현장의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던데?”
“네. 아주 좋았습니다. 우리 식구들도 끝나고 나니 다들 보람찬 얼굴이더군요.”
“잘했네, 잘했어. 그보다, 확실하게 눌러주고 온 것이겠지?”
그 물음에,
박원효가 잠시 머뭇거렸다.
‘누르기는 개뿔.’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날 일을 철저하게 함구하자는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는 듯이 아직 어떠한 소문도 돌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긴, 괜히 그날 일을 입에 올렸다가 눈 밖에라도 나면 그대로 아웃될 수도 있는데,
당연한 일이겠지.
“네. 전부 병원장님께서 신경을 써주신 덕분입니다.”
김준일의 표정이 한결 너그러워진다.
기분이 꽤 좋다는 표시다.
“혜민 쪽 친구들 수준은 어떻던가? 진료하는 모습을 직접 봤으면 자네가 더 잘 알 것 아닌가.”
이어진 물음에,
박원효의 머릿속에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진료를 보는 한의사 한 명 한 명이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모습.
하지만, 그것들을 그대로 말하는 것은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행위와 같을 터.
“이허준 원장 말고는 다른 선생들은 고만고만했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리고 어제 촬영은 어떻게 됐어? 이허준 또 그 친구가 나왔나?”
“아니요. 완전히 새로운 얼굴이 등장했습니다. 김태식 원장이라고, 서글서글한 게 이야기가 좀 통하는 친구였습니다.”
그제야 흡족한 미소를 짓는 김준일.
이제야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편, 한의사 카페에서도 이번 일이 화제가 되고 있었다.
이렇게 큰 규모로 진행된 것이 굉장히 귀한 일이었기도 했고,
무엇보다, 평소 인기가 꽤 있는 혜민서에 케이한방병원의 원장들이 대거 합류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 혜민서에 케이한방병원 원장들도 가입했다는데, 이거 대박 아니야?
- 뭐야, 그럼 규모가 엄청나게 커지겠네?
- 이번 행사 때에도 장관이었지 이렇게 축제라도 하듯이 큰 행사는 처음 봤음.
- 내가 봤는데, 케이한방병원에서 비싼 약침도 지원했다던데?
- 정말? 그거 보험도 안 돼서 꽤 비싼 거 아닌가?
- 역시, 클라스..
···
덕분에 혜민서 사이트는 다운이 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고,
김예진의 일 또한 늘어나는 중이었다.
물론, 이 푸념을 들은 혜민서 멤버들의 반응은.
“잘됐네요~”
“김 팀장이 고생이 많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정작 불타오르는 곳은 따로 있었다.
바로, 같이 행사에 참여한 한방병원 수련의들 이야기였다.
“내가 그날 갔는데, 와.. 진짜 건너편에 딱 케이한방병원 원장들이 진료를 보는데 포스가 아주 장난 아니더라고.”
“그래서?”
“그런데, 더 재밌는 건 뭔지 알아? 우리 병원 선생님들이 더 장난이 아닌 거야. 이거 평소에는 몰랐는데, 거기에 가니까 아주 날아다니시더라고.”
“하긴, 평소에도 다들 진료를 꽤 빨리 보시는 것 같기는 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케이한방병원 원장들이 놀라서 구경 올 정도였다니까?”
이렇게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가 병원 안으로 고스란히 스며들고 있었다.
* * *
혜민한방병원이 개원한 지 10여 일.
인근의 회사원들이 담배를 피우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김 대리. 엊그제 저기 갔다 왔다면서?”
“아, 네.”
“어땠어? 나도 요새 목이 좀 뻐근한 것 같아서 한의원 가서 침 좀 맞아볼까 하는데. 맨날 앉아서 컴퓨터만 보니까 거북목이 낫질 않네.”
늘 그렇듯이 회사원들이 모이면 이야기의 10%는 지병에 관한 이야기지 않던가.
“강추입니다. 팀장님. 꼭 가십시오.”
마주서 있던 남자가 주저 없이 답했다.
그 모습에 되묻는 팀장이라 불린 남자.
“그래? 나는 케이한방병원으로 가볼까 했는데. 저기도 괜찮은가 보지?”
그 물음에는 옆에서 같이 담배를 피우던 남자가 대신 답했다.
“야, 우리 김 대리 별명이 좀비야 좀비. 그날 잠깐 나갔다가 오더니 정시에 퇴근했다니까?”
“맞아요. 담걸려서 죽을 뻔 했는데, 침 한방에 금세 조아지더라고요.”
“이야기 들어보니까, 생각보다 잘하나 보더라고. 우리 직원들도 종종 가는 것 같던데?”
“그래요?”
“예. 꼭 한번 가보십시오.”
이런 일은 비단 인근의 회사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온라인에서부터 이곳에 한 번이라도 다녀간 환자들까지 전부 다 칭찬 일색.
이렇게 입소문이 퍼져나가고 있는 와중에,
먼 곳에서도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프로 야구 김성렬 선수였다.
“선배. 요즘 컨디션 너무 좋은 거 아니에요?”
“그래 보여?”
김성렬이 기분 좋게 되물었다.
“당연하죠. 요즘에 선배 그날이 없어진 것 같다니까요?”
여기서 말하는 그날이란,
치질을 앓으면서 유난히 컨디션이 안 좋아 성격이 더러워질 때를 말했다.
후배들 사이에서는 이날 김성렬에게 걸리면 영혼까지 박살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
그런데, 무려 한 달이나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고 있었으니,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임마, 형이 원래 그런 사람 아니라니까?”
“암요, 알죠.”
“그보다, 이번엔 좀 쎄게 한번 던져봐. 몸에 힘 좀 들어가게.”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이지.”
자신 있다는 듯이 말하는 김성렬과
고개를 끄덕이는 투수.
팡- 팡- 소리가 연습장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코치와 옆에 있는 선수.
“재구야, 성렬이 쟤 요새 뭐 하고 다니디?”
“글쎄요. 집에서 잘 안 나오던데요?”
“그래? 근데 폼이 왜 이리 좋아?”
“그것까지는 잘...”
“요새 뭐 특별하게 달라진 거 없어?”
“그러고 보니, 요즘에 화를 별로 안 내는 것 같아요.”
“알았다. 이따가 훈련끝나면 성렬이 좀 나한테 오라고 해.”
“네. 코치님.”
그렇게 훈련을 끝낸 김성렬이 코치의 호출에 발걸음을 옮겼다.
텅 빈 야구장.
그곳에 앉아 있는 코치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아~ 형. 무슨 일 있어? 분위기를 다 잡고.”
함께 해온 지 꽤 오래된 인연.
지금 옆에 앉아 있는 박문식 코치가 현역이었던 시절부터 이어져 온 인연이었다.
“성렬아. 너 혹시... 약 같은 거 하냐?”
“약이라니?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야?”
“아니, 요즘에 네 컨디션이 말도 안 되게 좋아진 것 같아서. 이런 일은 약 말고는 설명이 안 돼서 말이야.”
“무슨 약이야. 아니야. 그런거.”
“내가 약에 손댔다가 골로 간 애들 한두 명 본 줄 아니? 나한테만 사실대로 말해 줘. 아직 되돌릴 기회는 있어.”
“진짜 아니라니까? 이거 억울하네.”
“그럼, 대체 뭔데?”
김성렬이 자신이 경험한 일을 설명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박문식.
“진짜지?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한다?”
* * *
혜민한방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거 생각보다 바빠졌는데?’
쉴 틈 없이 계속 접수된 차트가 올라온다.
초진 환자부터 재진 환자까지.
증상도 각양각색.
하지만 허준의 치료계획과 처방에는 막힘이 없었다.
‘이미 다 치료해본 질환들이니, 훨씬 수월하네.’
이는 허준뿐만이 아니라,
허준한의원에 있던 식구들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오후 진료를 마치고,
회진을 도는 허준.
자동차 사고를 당해 입원해 있는 환자가 꽤 많았기에,
자연스럽게 시작된 추나치료.
“여기로 누워주세요.”
“네. 선생님.”
허준이 추나를 시작했고,
치료를 받는 환자의 긴장했던 근육들이 풀어지기도 하고, 뒤틀린 뼈마디에서 소리가 나기도 한다.
이어서 신경을 타고 오는 시원한 감각은 덤.
당연히 손끝에서도 이 모든 일들이 느껴진다.
이렇게 치료를 끝내고 나면,
“하아... 선생님. 정말, 시원하네요. 감사합니다.”
황홀하다는 표정을 짓는 환자들을 볼 수 있게 된다.
허준 또한 만족스러운 얼굴로 추나치료를 이어나가는데,
그때,
갑자기 메시지가 나타났다.
「업적 ‘육체의 달인’을 달성하였습니다.」
「‘고타법’을 터득하였습니다.」
‘고타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