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이 사람 이거 완전 사기꾼 아니야
고타법.
‘두드릴 고’와 ‘칠 타’로 이루어진 치료방법으로 동의보감에도 등장하는 치료법이다.
손가락, 손바닥, 손등, 주먹 등등으로 환부를 두드려 치료하는 방법으로,
근육에 자극을 주며 말초신경의 흥분성을 낮추는 작용으로 신경쇠약 또는 신경통 등에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론상으로는 기와 혈액 순환을 촉진하여 풍기와 한기, 사기 등을 없애는 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왠지 모르게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의 설명.
그렇다. 주절주절 풀어서 설명해뒀지만,
이는 한의원보다는 마사지나, 안마시술소 같은 곳에 붙어있는 바로 그 설명과 비슷했다.
‘안마도 치료법이기는 하니.’
문제는 허준도 이 고타법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애당초 한의사 중에서 아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었으며,
그저 문헌상에서 기록으로 남아있는 정도.
그런데, 뜬금없이 고타법이라니.
게다가 불친절한 시스템답게 이번에는 설명조차 없다.
그때, 진료실로 들어온 데스크 직원.
“원장님. 다음 환자분이 기다리시는데...”
아차, 지금 회진 중이었지.
허준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네. 바로 안내해드릴게요.”
그렇게 입원실 한쪽에 있는 진료실로 들어온 환자.
오늘의 마지막 회진 환자로, 운 없게 빗길에 미끄러진 차와 부딪혔다고 한다.
다행히도 현대의학적으로 보자면 그저 멍들고 까진 정도.
하지만, 허준이 보기에는 달랐다.
장부와 온몸의 근육이 충격을 받아 기혈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본래, 사람이 크게 다치는 경우는 인식하지 못한 사고가 아니던가.
눈앞의 환자가 딱 거기에 해당하는 상태였다.
“컨디션은 좀 어떠세요?”
“선생님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
“잘됐네요. 그럼, 추나 시작할까요?”
이미 입원한 지 며칠째,
자연스럽게 카이로베드위로 올라간 환자.
허준이 추나를 시작했다.
오도독- 투둑, 등의 시원한 소리와 함께,
환자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그뿐.
몸을 만지고 있는 허준의 눈에는 여전히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있는 경맥과 경직되어 있는 곳곳의 근육들이 느껴진다.
‘이거 생각보다 오래 걸리겠는걸?’
그만큼 환자의 몸에 가해진 충격이 컸다는 뜻일 터.
문제는 자동차 보험으로는 입원할 수 있는 날짜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허준이 무심코 주먹을 말아 쥐었는데,
그때,
‘어?’
손끝에서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진다.
민감해진 촉감과 육감으로 느껴지는 이 감각.
이거 설마?
이어서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본능적으로 주먹을 쥔 손이 누워있는 환자에게로 날아가고 있었으니까.
통-
주먹, 아니 정확히는 공기를 넣어 말아쥔 주먹의 손바닥 부분이 환자의 등과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내었다.
허준이 놀라 사과를 하려는데,
“하으~”
환자가 시원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본 허준은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이게 고타법이라는 것을.
이어서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
인체 해부도를 비롯해 수많은 경험으로 만들어진 감각과 좀전의 감각.
그리고 허준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경맥들이 합쳐지면서 새로운 지도가 완성되어 나간다.
‘왠지 알 것 같아.’
손을 가볍게 말아 쥔 허준의 손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볍게 통통 두들기면서 만들어내는 묘한 박자감.
고타법은 율동적인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했었지.
한 번 더 내리쳐진 주먹.
주먹과 환자의 몸이 부딪칠 때마다 몸 안으로 스며드는 파동이 느껴져 온다.
‘이 파동이 핵심이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파동이 끊이지 않게 해야만 한다는 것을.
통통 소리와 함께 허준의 손이 묘한 박자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의 파동이 이어지자,
누워있던 환자가 거친 숨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강한나가 눈을 감고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아프거나 불쾌감이 아니다.
이것은 그저 몸 안에 울려 퍼지는 묘한 파동.
왜 그런 느낌이 있잖은가.
달리기하면 장기들이 몸속에서 흔들리면서 느껴지는 시원함 같은 느낌.
그 파동이 더해질 때마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던 몸이 하나둘 모여서 조립되어 쫀쫀해지는 그런 감각이었다.
이렇게 잠깐 이어진 허준의 두들김이 끝나고 나니,
강한나의 얼굴에는 발그스름해진 홍조가 올라와 있었다.
허준이 그 모습을 보고는 무언가 말을 꺼내려 하는데,
“선생님. 지금, 이거. 무슨 치료 하신 거예요? 추나치료 때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아, 이건 고타법이라고 하는 치료방법입니다.”
“고타법...? 처음 듣는 이름이네요.”
“그러실 겁니다. 본래 잘 사용하지 않는 치료법이라서요.”
“혹시, 이 고타법이라는 치료 따로 접수해야 받을 수 있는 건가요?”
그 물음에 허준이 웃으며 답했다.
“일단은, 내일 한 번 더 치료해보도록 하죠. 오늘 진료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렇게 입원실 회진을 마치고 발걸음을 옮긴 허준.
이거 생각보다 쓸모가 많겠는걸?
고타법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수확에 기분이 좋아진 허준이었다.
* * *
혜민한방병원 입원실은 6개의 베드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조금 비싼 1인실도 존재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6인실이 입원실의 기준이었다.
보험사고로도, 동상이나 화상의 입원도 전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 6인실에 입원했으니까 말이다.
덕분에, 입원실의 환자들끼리는 친해지기 일쑤였고.
인생사는 이야기부터 우스갯소리까지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중에서 최근에 가장 따끈따끈한 이야기는 바로 허준이 회진을 돌며 몇몇 환자들에게 사용한 고타법에 관한 것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 뭐라고?”
“고타법이래요.”
누군가의 대답에 스마트폰을 들어 검색하는 한 환자.
그러더니,
“이거 그냥 안마 아니야?”
“저도 검색해봤는데, 안마 맞는 것 같던데요?”
그때, 누워있던 한 중년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이 친구들아 그게 중요해? 중요한 것은 그 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다들 칭찬 일색이라는 거지.”
“그건 맞죠. 대체 어떤 느낌이길래 다들 그러지.”
“어차피 형님과 저는 그 치료 못 받을걸요? 나는 동상에 형님은 치질로 입원했으니...”
이렇듯 환자들 사이에서 부풀려 지고 있는 와중에,
허준은 당연히 고타법을 혜민서의 식구들에게 알려주기로 했다.
그래서 혜민한방병원의 회의실.
평소에는 병원 의료진들을 모아두고 강의를 하는 바로 그곳이었다.
예전에는 허준한의원에 모여서 이렇게 활동을 했다면,
이제는 이렇게 회의실에서 환자들의 차트를 따로 정리하지 않고도 바로바로 꺼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
이것만으로도 이전과 비교하면 훨씬 효율적인 교류가 가능해진 셈이었다.
각 층에서 진료를 보는 원장들의 발표가 하나둘씩 시작되었다.
침과 뜸의 침구과 진료를 보는 외국인 한의사 밥 선생이 최근에 진료를 본 환자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역시 밥 선생이야.’
직접 침을 놓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앞서 걸어왔으니까 말이다.
이어서 여전히 탕약에 있어서 괴물 같은 유도진.
모나지 않은 육각형의 김태식과 듀오라 부를 만큼 비슷한 레벨의 박용준.
탕전실에만 머물러 있다가 이제는 재미가 들렸는지 아예 탕전실에서 지내는 이두철과 마지막으로 최허준까지 발표가 이어졌다.
‘최허준 선생은 아직 경험이 더 필요해 보이네.’
다들 지나온 길이었기에,
한 명 한 명이 신경 써서 피드백을 제시했고 그렇게 상호보완을 이루어 나갔다.
드디어 마지막 허준의 차례.
유도진을 비롯해 기존 멤버들의 눈이 허준에게로 향했다.
근 며칠간 허준이 사용한 치료법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리라.
허준 또한 지금의 시선을 느끼며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며칠간 다들 이야기는 들으셔서 알고 계실 거로 생각합니다.”
모두가 끄덕이는 고개 들.
그것을 본 허준이 말을 이었다.
“입원환자들에게 직접 고타법으로 치료한 뒤에 내린 결론입니다. 아직은 사례가 많지 않아서 그 범위를 확신할 수는 없으나, 현재까지의 경험으로 보자면 분명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허준이 리모컨을 누르자,
화면이 넘어갔다.
그곳에 나타난 환자들.
심지어 몇 명은 이미 퇴원한 상태였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보시다시피 자동차 사고뿐만 아니라, 소화기에 문제가 있는 환자까지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물론, 이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그저 수치상으로만 알 수 있을 것이다.
허준처럼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허준이 이렇게까지 말한다는 것은 분명 환자들의 증상에 도움이 되기에 가져온다는 것을.
허준이 이어서 사례뿐만 아니라,
여태까지 조사하고 직접 느낀 경험을 종합해 발표했다.
“생각보다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병원에서의 특정 치료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병원이 아닌 장소에서 더욱 그 빛을 발하리라 봅니다.”
“확실히 그렇겠네요. 도구 없이 치료 효과를 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도 배울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충분히요.”
그렇게 이어진 실습.
허준이 몇 가지 만들어온 파동의 운율을 알려주었다.
“이것은 자동차사고환자. 즉, 근골계에 효과가 좋았던 방법입니다. 환부에 이런 식으로-”
통-
소리와 함께 시작된 고타법.
실습의 당사자가 된 박용준이 묘한 파동을 느끼며 간지럽다는 듯이 깔깔거렸다.
“원장님. 너무 간지러운 것 같은데요?”
“원래 건강한 사람은 이렇게 간지러우면서 시원한 느낌이 약하게 들 겁니다.”
파동의 자극이 근육과 근막 그리고 그 근막 너머의 근육 또는 신경이나 인대로 퍼져나갔으니,
간질간질한 것이 당연할 터.
그때,
어디에선가 터져 나오는 탄식.
“허-”
그 주인공은 김태식 원장이었다.
“너무 시원한데?”
“괜찮으세요? 이거 이렇게 하는 게 맞나?”
김태식을 내리치고 있는 주인공이 있었으니,
바로, 최허준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허준이 곧바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최허준 선생은 기운이 넘쳐 흐르는 사람.
‘그 힘이 파동을 더욱 크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무릇, 넘쳐 흐르는 것은 모자란 곳을 채우기 마련.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며 순리다.
그렇게 따지면 이 고타법은 환자와 의사가 직접 몸이 닿는 치료였으니,
언제나 기운이 모자라는 환자를 상대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안성맞춤인 사람이었다.
실습이 끝나고,
“고타법이라... 이거 연습이 많이 필요하겠는데요?”
“네. 당장에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으니, 천천히 연구해보도록 하죠.”
“그래야겠어.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할까?”
“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원장님들.”
인사를 하며 마치는데.
허준이 최허준을 불렀다.
“최허준 부원장님.”
“네?”
“다름이 아니라, 아까 보니까 고타법을 잘 하시는 것 같은데, 제대로 한번 배워보시겠어요?”
“저, 정말요? 그러면 저야 감사하죠.”
평소 허준을 동경해왔던 최허준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답한 최허준.
고생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 * *
프로야구팀 코치 박문식.
혜민한방병원이라 적혀있는 커다란 병원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뭔 놈의 한의원이 이렇게 커?’
서울에 출장 온 김에 김성렬이 했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김성렬과는 형, 동생 하던 사이.
‘녀석의 표정을 보니, 거짓말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이어서 안으로 들어서니,
로비에 수많은 환자가 앉아 자신의 번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도 이렇게까지 큰 한의원에 온 것은 처음이었기에,
규모에 한번 놀라고, 기다리던 환자에 한 번 더 놀랐다.
데스크로 다가가니,
친절한 미소로 맞이한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 다름이 아니라. 이허준 선생님을 만나러 왔는데요.”
“예약하셨나요?”
“아니요. 처음입니다.”
“그럼, 접수부터 먼저 해주시겠어요?”
내민 접수서를 받아든 박문식.
그런데, 진료항목에 질환이란 질환은 전부 있는 것이 아닌가.
‘뭐야 이 사람 이거 완전 사기꾼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