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183화 (183/230)

183화. 이와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박문식.

진성 드림즈 비운의 투수였던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일반인들에게는 그의 찬란했던 경기력으로,

선수들에게는 괴물 같은 연습량으로.

덕분에 드림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투수였으나,

최단기간 뛴 선수로도 기억되었다.

완전히 고장 난 그의 팔 때문이었다.

그런데,

툭.

허공을 가른 야구공이 가볍게 펜스에 부딪히더니 바닥을 굴렀다.

“박 코치?”

감독 김성근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팔을 휘두른 박문식과 떨어진 공을 번갈아 바라봤다.

선수를 은퇴하고 코치로 전향하면서 건강은 많이 회복되었으나, 여전히 팔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이게... 대체? 어떻게 그 팔로 공을?”

“보셨죠? 제가 직접 그곳을 다녀와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거기는 여태까지 다녀왔던 곳과는 뭔가 좀 달라요. 우리 애들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이거.. 참,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군. 아니. 이걸 안 믿을 수도 없고...”

혼란스러워하는 감독에게 박문식이 결정타를 꽂아 넣었다.

“성렬이 치질도 그곳에서 침으로 고쳤답니다.”

“뭐? 침으로 치질을?”

“네. 그래서 성렬이가 요새 폼이 올라왔고요.”

포수의 치질은 사실상 직업병.

그런데 그것을 수술없이 고쳤다는 말이 었으니,

'어차피 모아니면 도인 상황.'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속는 셈 치고 한번 가보자.”

그래서 도착한 혜민한방병원.

버스에서 야구점퍼를 입은 선수들이 우르르 내리자 출근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저거 드림즈 아니야?”

“맞네. 여기 진료받으러 왔나 본데?”

그것만으로도 꽤 큰 홍보 효과가 되었고, 각종 SNS에서는 그 사진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최약체인 만큼 그리 많이 퍼져나가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입장한 한방병원.

미리 연락하고 온 터라, 선수들이 나눠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일 높은 층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기다리던 최유니 선생이 종이를 선수들에게 나눠주며 말했다.

“거기에 불편하시거나, 통증이 있다거나, 하다못해 잠을 잘 못 잔다는 등등. 사소한 것들까지 전부 적어서 저한테 주시면 됩니다.”

선수들이 이렇게 진료서를 작성하는 동안에,

병원장실에는 감독 김성근과 최인호가 악수를 나눴다.

“어서 오십시오. 우리 혜민한방병원에 잘 오셨습니다.”

“아닙니다. 흔쾌히 진료를 봐주신다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차는 뭐로 드릴까요?”

“믹스커피면 충분합니다.”

그렇게 믹스커피 두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

최인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조금 놀랐습니다. 갑자기 선수단 전체 진료를 요청하셔서요.”

“그게... 우리 구단에 여기 다녀간 친구들이 있나 봅니다. 그 친구들이 워낙 강력하게 주장을 해서요.”

“그러셨군요. 잘 오셨습니다. 우리 의료진들이 최선을 다해서 진료를 볼 겁니다.”

최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비록 야구팀으로는 최약체일지 모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홍보 효과가 될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자신도 있었다.

의료진들이 누구던가, 허준을 비롯해 유도진과 김태식 그리고 박용준.

다들 난다긴다하면서 온갖 사례들을 만들어 낸 장본인들이었으니,

“아마, 선수들도 만족 할 겁니다.”

자신 있게 대답하는 최인호.

그런 최인호의 모습에 김성근이 되물었다.

저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리라.

“굉장히 자신이 있으신가 보군요?”

“물론이죠. 저는 우리 의료진 선생님들을 믿거든요. 감독님은 선수들을 믿지 않으시나 봅니다?”

“그건...”

김성근이 대답하지 못했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다.

팀 성적은 최하위에 쓸만한 선수들은 죄다 다른 팀으로 이적.

더해서 구단의 지원도 줄어드는 중이다.

이미 팀 내 분위기는 최하위.

믿음으로 해결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다들 의욕을 잃었습니다. 매년 결과가 같았으니까요. 그래서 선수들도 사기가 많이 꺾인 상태죠. 그래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와보기는 했는데...”

최인호가 남은 커피를 들이켜고는,

“그렇다면 더욱 잘 찾아오셨네요. 감독님이 생각하실 때, 뛰어난 의사는 어떤 의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당연히 병을 고치는 의사가 아닙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짜 의사는 몽의 병 뿐만아니라, 마음의 병도 고치는 의사거든요.”

*   *   *

드림즈의 에이스. 4번 타자 윤성웅.

그가 4층에 내려와 앉아 기다리는 중이었다.

“환자들이 엄청 많네?”

“그러게요. 선배. 다른 층도 이렇게 사람이 많으려나.”

4층에는 이미 많은 환자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 사이로 한 한의사가 빠르게 지나갔다.

‘저 사람인가 본데?’

TV에 나온 유명한 한의사라고 하더니,

그래서인지 얼굴이 꽤 선해 보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된 진료.

첫 번째 순서가 바로 자신의 번호임을 확인하고 성큼성큼 진료실로 향했다.

허준이 문이 열리며 들어온 첫 진료환자를 맞이했다.

이름은 윤성웅. 엊그제 최인호에게 들은 야구팀의 선수였다.

‘어디 보자.’

진료서에 적혀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증상은 속 쓰림과 소화불량 그리고 허리통증이었다.

“어서 오세요. 윤성웅 선수.”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일단, 이쪽으로 오셔서 앉으시겠어요?”

허준이 걸어오는 윤성웅의 모습을 확인했다.

확연하게 골반의 틀어짐이 느껴진다.

“허리통증 그리고 속 쓰림과 소화불량이라고 적으셨던데, 맞으시죠?”

“네~”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엎드려 보시겠어요? 제가 허리부터 한번 봐보죠.”

그렇게 카이로베드 위에 누운 윤성웅.

뭐,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듯싶다.

허준이 윤성웅의 허리를 시작으로 여기저기를 살짝살짝 누르며 진단하기 시작했다.

투수와 몸의 근육들이 확실히 다르네.

‘타자인가 본데?’

게다가 오른손잡이.

그래서 골반과 몸 전체가 한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짐작건대, 꽤 많은 훈련을 해왔다고도 볼 수 있겠지.

“오른손잡이 타자이신가 보네요?”

“에?... 네. 맞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골반이 이쪽으로 많이 틀어진 상태입니다. 덕분에 허리통증이 생겨났고요. 이건 추나와 스트레칭 그리고 약침으로 치료하면 될 것 같네요. 물론, 시간은 조금 걸릴 겁니다. 일어나서 다시 자리로 와주시겠어요?”

자리를 바꿔 다시 이어진 진료에 허준의 질문이 이어졌다.

뭐, 간단한 생활방식이나 훈련 시간 그리고 식습관 등등.

‘매운 음식을 즐겨 먹는다고 했지.’

이것만으로도 속 쓰림의 원인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술과 함께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은 위장한테 대놓고 죽어보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지.

이어서,

“양손을 이리로 올려주세요.”

진맥을 잡은 허준이 또렷한 눈으로 윤성웅을 바라본다.

윤성웅이 그 눈빛에 잠깐 놀라 쳐다봤는데,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눈을 뜨고 진맥을 잡는 한의원은 처음인데?’

최약체일지 모르나,

그래도 에이스 선수였으니 몸 관리를 위해서 꽤 많은 한의원을 다녀본 윤성웅.

지금 허준의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대체 뭘 보는 걸까.

허준이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건강한 사람에 비해서 맥박이 빨랐다.

물론, 운동한다거나 몸을 움직였다면 이렇게 빠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가만히 기다렸다가 온 상태.

게다가 간에 열기가 많다.

이는 곧 스트레스가 뭉쳐 쌓여있다는 뜻이었으니.

얼핏 박용준 원장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 드림즈요? 거기 만년 꼴찌팀이에요. 윤성웅이란 타자가 그나마 좀 유명한데, 한때는 좀 치더니 요샌 영...”

만년 꼴찌팀의 에이스.

거기서 오는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생긴 병이다.

‘매운 음식과 술은 그것을 풀기 위한 자극이었을 지도...’

여기에 더해서 틀어진 골반으로 허리통증까지 올라오니,

얼굴에 있는 저 주름들이 이해가 되는군.

허준이 윤성웅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에이스라고 들었습니다.”

“네? 아... 네. 부끄럽지만 맞습니다. 그러면 우리 팀에 관한 이야기도 알고 계시겠네요. 만년 최하위 팀이라는.”

“아니요. 그건 몰랐네요. 사실, 제가 야구는 전혀 모르거든요.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지만.”

“그건 다행이네요.”

윤성웅이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설명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금의 증상들이 주장을 맡아서 생긴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화병이죠. 과도한 스트레스가 몸 안에 쌓이게 되고, 그것을 풀기 위해서 자극적인 술과 매운 음식을 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위장의 속 쓰림은 덩달아 따라온 거고요. 덕분에 대장 또한 봉변을 당하고 있겠죠.”

술술 이어진 허준의 말에,

윤성웅이 살짝 놀랐다.

“치료법은 제가 침과 탕약을 사용해서 도움을 주면서 매운 음식과 술의 빈도수를 줄여나가는 겁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완벽하게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간단합니다.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면 됩니다.”

윤성웅이 어이가 없어 허준을 바라봤다.

세상에 스트레스를 줄이라니.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었으면 여기에 앉아 있지 않았겠지.

“스트레스를 줄이라고요? 지금, 제가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고 해도 안 받을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아니요. 그 스트레스는 윤성웅 선수가 스스로를 옭아매면서 생긴 일입니다.”

“스스로를 옭아매다니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에이스로서 팀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매여있다는 뜻이죠. 그것들을 버리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사람 몸이라는 게 생각보다 신기합니다. 위장의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 신기하게 비장도 안 좋아지죠.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비위가 안 좋아지면 폐와 대장으로 그 영향이 미칩니다. 그리고 이어서 폐와 대장은 또다시 신장과 방광으로 이어지죠. 이렇게 모든 장기가 연관되어서 영향력을 주고받는다는 겁니다. 한의사인 저는 이 가운데서 균형을 잡아 다시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일을 하지요. 잘 모르지만, 선수들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윤성웅의 머리가 무언가에 맞은 듯이 띵했다.

‘그래...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야.'

내 부담감은 후배들과 다른 선수들에게도 전해지겠지.

그것은 또다른 부담감으로 작용할테고.

그저 말만 들었을 뿐인데,

벌써 가슴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럼 치료실로 가시죠.”

그렇게 팀 전원이 진료를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안.

모두의 얼굴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와는 다르게 평온해져 있었다.

*   *   *

“이번 올림픽 쇼트트랙 마지막 레이스~! 여자 1500미터 결승전이 펼쳐지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이유정 선수와 김유빈 선수가 몸을 풀고 있습니다.”

“아~ 긴장이 조금씩 됩니다. 이유정 선수와 김유빈 선수 컨디션이 조금 좋아 보이니 기대가 되네요. 해왔던 대로만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해설진들의 이야기와 함께,

선수들이 출발선에 맞춰 서기 시작했다.

이어서 등장하는 선수들의 목록.

대한민국의 이유정과 김유빈, 중국의 장위란, 이탈리아의 아리아나, 네덜란드의 쉬스너 그리고 마지막에 대만의 양쑨이 적혀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양쑨 선수를 잊고 있었네요. 이번 올림픽에 혜성처럼 등장한 선수죠?”

“네. 맞습니다. 대만이 결승전에 올라오는 일은 전례가 없는 일이기에 대만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그렇죠. 본래 쇼트트랙 강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을 제치고 올라올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겁니다.”

“그래도 이게 또 올림픽의 묘미라 할 수 있겠죠.”

“네. 지금, 선수들이 라인에 섭니다.”

이어서 빵 하는 소리와 함께,

선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 출발!”

이어지는 해설들.

당연히 한국 선수들의 움직임을 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 지금 치고 나가야 하는데요~”

“네 말씀 드린 순간 이유정 선수 가볍게 제쳤습니다~ 아주 좋아요”

“그 뒤를 김유빈 선수가 잘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몇 바퀴 뒤,

“대한민국의 이유정 선수! 골!인! 금메달입니다!”

“대단합니다! 이유정 선수! 자랑스럽습니다!”

“이어서 네덜란드의 쉬스너 선수~ 그리고~”

“대만의 양쑨 선수와 중국의 장위란 선수가 거의 동시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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