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184화 (184/230)

184화. 오지 않겠나

“지금, 막 결과가 나왔습니다. 분석 결과, 대만의 양쑨 선수의 발이 먼저 들어왔네요. 덕분에, 중국의 장위란 선수를 한 끗 차이로 제치고 3등으로 올라섭니다!”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올림픽 처음 출전한 신인 양쑨 선수 굉장한 저력을 보여주네요.”

“이렇게 되면 중국으로서는 기분이 썩 좋지 않겠는걸요?”

“그렇겠죠. 네~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이유정 선수가 태극기를 두르고 경기장을 돌고 있습니다.”

“아~ 아쉽습니다. 김유빈 선수가 장위란 선수와 살짝 부딪히면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함께 돌지 못하네요.”

그야말로 이변이었다.

대만에서는 새로운 스포츠 스타의 탄생을 알렸고, 반면에 중국에서는 이 결과를 못마땅해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이 결과에 가장 기뻐하는 것은 올림픽 중계를 보고 있던 한국 사람들이었다.

경기 중간에 중국의 장위란과 김유빈이 살짝 부딪치면서 균형을 잃어 순위권에서 밀려났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인터넷에서는,

- 쌤통이다.

- 중국 대만한테 밟힌 거 실화냐? 우리 김유빈 밀어놓고 대만에게 밟히네. 중국 클라스

- ㄹㅇ맨날 반칙이랑 편파판정만 받더니 꼴좋네.

- 이번 결과는 빼박이다.

- 마지막 판정 나올 때 중국 선수 표정 봤음?

···

그렇게 이어진 선수들의 인터뷰.

양쑨이 수상소감을 밝혔다.

“기분이 너무 좋네요. 먼저 제가 이곳에서 좋은 경기를 할 수 있게 해주신 많은 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를 곁에서 훈련해주시고 직접 보살펴주신 코치와 팀 닥터 진웨이 선생님. 그리고 한국에서 부상당했을 때 큰 도움을 주신 혜민한방병원의 선생님들에게도 한 번 더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양쑨이 동메달을 목에 걸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 영상은 전 세계로 나갔고, 현장에 있던 코치와 다른 선수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혜민 한방병원?”

“처음 듣는 곳인데?”

“한의학이라고 한국의 전통의학이라고 하던데?”

“이름이라도 기억해 둬야겠어.”

“그러고 보니, 한국의 피겨여왕도 한의학의 도움을 받아 컨디션 관리를 한다던데?”

“그래? 효과가 좋은가 보지?”

“일종의 테라피라고 하더군.”

“테라피 나도 좋아하는데, 나중에 한 번 받아봐야겠군.”

···

그리고 이 영상을 TV로 본 케이한방병원 병원장 김준일.

실소를 터트리며 중얼거렸다.

“운이 너무 좋은걸?”

물론, 혜민한방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게 양쑨에게 도움이 안 되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충분히 도움이 되었을 테지만, 경기 내용상, 우리나라의 김유빈이 균형을 잃지 않았더라면 이런 이변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거라는 뜻이다.

그야말로 운이 좋았다는 증거.

덕분에 앞으로 여기저기에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되겠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 선수가 아니라, 대만 선수라는 점이군.’

스포츠 스타들은 연예인 만큼이나 효과가 큰 홍보 효과를 가지고 있다.

아니, 어쩌면 상황에 따라서는 연예인보다 압도적으로 클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이야기다.

똑같이 어딘가를 다쳤는데, 스포츠 스타가 다니는 병원과 그냥 일반 병원이라면 대부분 스포츠 스타가 다니는 병원으로 향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겠는가.

스포츠 스타는 몸의 건강이 곧 자신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할 터.

물론, 연예인도 이와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연예인은 일반인과 같이 건강한 신체와 컨디션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스포츠 선수들은 건강한 신체는 물론이요, 기록 또는 좋은 결과를 위해서 보다 완벽한 컨디션을 목표로 진료를 받았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일정 이상의 명성을 쌓은 병원에서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스포츠 스타 몇 명 정도는 기본적으로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당연히 케이한방병원에서도 마찬가지.

그런데, 이번 일로 이제 갓 생겨난 혜민한방병원이 그 발판을 만든 것이었다.

이거, 갈수록 바람이 거세지는 거 같은데.

‘아무래도, 담판을 지어야겠어.’

*   *   *

그렇게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혜민한방병원의 입원실.

“역시 허준 원장님이시라니까?”

“그러게 말이에요. 그런데, 외국인도 침 맞으면 낫네?”

“그때 경기 보고 어찌나 시원하던지~”

이런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있었고,

반대로 사무실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네. 네. 맞습니다. 네. 아~ 일단 연락처를 남겨 주시겠어요? 정확하게 알아본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여기저기에서 걸려오는 문의 전화들.

전부 올림픽을 보고 걸려온 전화들이었다.

“아주 죽겠어요. 전화가 쉬질 않네.”

“조금만 지나면 금방 괜찮아 질 거에요.”

“그런데, 저 정말로 그때 올림픽 보면서 놀랐다니까요? 갑자기 우리 병원 이름이 나와서. 선생님은 그 선수가 여기서 진료받았다는 거 아셨어요?”

“아니요. 저도 몰랐어요. 그런데, 데스크 쪽에서 들리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허준 원장님한테 진료받으러 강원도에서 여기까지 몇 번이나 찾아왔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그때, 울리는 전화기.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누군가가 영어로 통화를 막 끝낸 중이었다.

김예진이 전화를 끝낸 직원에게 물었다.

“또?”

“네. 이번에는 외국 어디라고 하던데, 이젠 하도 많이 들어서 헷갈려요.”

“일단은, 저한테 다 모아서 주세요. 병원장님이 직접 처리한다고 하셨거든요.”

“네. 팀장님.”

이렇듯 한국뿐 아니라, 대만에서도 진료를 보고 싶다며 연락이 오고 있는 것이었다.

덕분에 병원장실에 앉아 싱글벙글하게 웃으며 서류를 살피는 최인호.

‘이게 다 얼마야?’

한의원도 그렇지만, 한방병원도 보험 혜택이 되는 급여 진료로는 큰 수익을 낼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 비급여 진료로 수익을 올리는데, 지금 오는 문의들이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내국인이라면 당연히 의료보험 혜택을 기본적으로 받지만,

이렇게 문의가 오는 것처럼 컨디션 관리를 위한 치료는 비급여 항목에 대거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은 한 술, 아니 두 술은 더 뜰 수 있었다.

한국까지 와서 진료를 받는다는 것은 곧 어느 정도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사람이라는 뜻이었으니,

안 그래도 VIP 입원실들의 자리가 남아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최인호의 입이 귀에 걸리며 책상 위에 있는 서류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   *   *

삐빅- 삐빅-

알람 소리와 함께,

눈을 뜬 최민영.

시계를 보니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젯밤에 그대로 잠들었네?’

한방병원을 찾았다가 침을 맞으면서 지은 약을 먹은 지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하도록 괴롭혀오던 목소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덕분에 잠도 푹 잘 수 있었고,

몸은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인지.

그날부터 시작이었다.

더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고,

눈 밑의 다크서클과 거칠었던 피부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방병원 진료실.

허준이 차트를 확인했다.

‘최민영 환자네.’

최근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을 보아하니,

더는 환청이 사라진 듯싶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지.

급한 불은 껐으니, 이제는 근원인 비장과 심장을 치료해 균형을 맞출 차례.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서 오세요. 최민영 씨. 얼굴이 완전히 달라 보이네요.”

“요새는 아예 말소리도 들리지 않고, 잠도 푹 자거든요.”

“다행이네요. 제가 다 기분이 좋네요.”

“아니에요. 다 선생님 덕분이죠.”

“그럼 일단 진맥부터 잡아 볼까요?”

허준이 최민영의 맥을 잡았다.

머리 위로 올라간 화기는 다시 돌아 정상화 되어있었고.

‘비장과 심장.’

둘 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장부다.

동의보감에서는 심장의 화병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생긴다고 적혀 있을 정도.

단순하게 비장과 심장에 기운을 올려주는 치료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없을 터.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를 먼저 파악해야겠네.

“대학생이라고 하셨죠?”

“아, 네. 맞아요. 선생님.”

“학교생활이 힘든가 봐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은데.”

“아, 그게 저...”

말을 줄이는 최민영.

허준이 웃으면서 느긋하게 되물었다.

‘환청의 치료로 환자와 신뢰 관계는 형성한 상태니.’

“괜찮아요. 뭐가 그렇게 스트레스인지 말해보세요. 어차피, 우리 같은 한의사나 의사들은 환자의 진료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거든요. 최민영 씨의 증상이 혹시 재발할까 해서 묻는 거니 안심하시고 대답하셔도 됩니다.”

그제야 최민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사실 아싸거든요.”

“아싸요?”

“네. 학교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친구가 없다는 뜻이죠.”

그건 나도 안다.

그런데, 갑자기 아싸라니.

그게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라는 건가.

뭔가 살짝 멍한 느낌이 들었지만,

생각해보니 그럴 수 있을 법도 하다.

‘애초에 스트레스는 상대적인 거니까.’

그러니까 해석하자면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대학교 생활을 꿈꿨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라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뜻인가 보네.

“그럼, 하나만 더 물을게요. 최민영 씨는 본인이 왜 친구가 없다고 생각하세요?”

“그야... 제가 재미가 없어서?”

그럴 리가.

단순히 재미없다는 것만으로 친구가 안 생길 리는 없다.

아무래도 다른 이유가 있을 터.

확인이 필요해 보였다.

“혹시, 룸메이트였던 친구분은 친한 편이 아니었나요?”

“아, 네. 그냥 같이 방 쓰는 사이?”

“그래도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그랬을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하죠.”

“그럼, 혹시 이번에 사과는 하셨나요?”

“사과요?”

“네. 지난번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싸우고 남남처럼 지낸다고 했잖아요. 밤에 들리는 목소리 때문에.”

“아~ 그건...”

표정을 보니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갈 수밖에.

“오늘 진료 끝나면, 친구한테 사과부터 하세요.”

“사과를요?”

“네. 그게 새 치료의 시작이 될 겁니다.”

그렇게 그날 저녁.

“저기...”

“또 뭐야?”

그 물음에,

최민영이 고개를 푹 숙이며 답했다.

“아니. 미안해...”

“뭐?”

“미안하다고. 내가 한동안 네가 밤에 중얼거려서 잠 못 잤다고 화내고 욕하고 그랬잖아.”

갑작스러운 사과에 살짝 눈이 커진 룸메이트.

“너..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사과를 하고 그래?”

“아니. 미안해서...”

그날 밤 불 켜진 집에서는 울음소리에 이어 웃음소리가 이어졌고.

최민영에게 친구가 생기기 시작한 날이었다.

*   *   *

고급 한정식집.

두 남자가 악수했다.

“아이고 선배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은 무슨. 일단 앉지. 자네와 언제 같이 한번 밥을 먹고 싶었거든. 개원식 이후로 처음이지?”

“네. 그날 개원식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구경하러 간 거지. 얼마나 잘 만들었나 싶어서 말이야. 물론, 지금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잘 굴러가고 있지만.”

김준일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최인호에게 답했다.

그 미소에 최인호도 마주 웃었다.

‘대체 속에 뱀이 몇 마리가 들어있는 거지.’

보나 마나 이런 자리를 만든 이유는 사업적인 이유 때문일 터.

그것을 알고 있기에, 피하지 않고 나온 최인호였다.

김준일이 젓가락으로 거나하게 차려진 상 한가운데의 갈비찜을 들어서 최인호에게 건네며 말했다.

“자네말이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나더군. 그래서 조사를 좀 해봤네. 흥미가 생겼거든.”

“과찬이십니다. 아직 선배님 따라가려면 멀었죠.”

“아니야. 정말로 대단하더군. 자네라면 아마 한의사가 아니라 사업을 했어도 성공했을 거야. 처음에는 혜민한방병원의 이허준 선생이 탐이 났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 자네. 케이한방병원으로 오지 않겠나? 자네가 온다면 내 자리를 넘겨줄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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