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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187화 (187/230)

187화. 미안했다고

“아이고~ 최 의원님~ 오랜만입니다.”

“어서 와~ 김 의원. 요새 운동 다니느라 바쁘다면서?”

“그래도 의원님이 이렇게 불러주시니 아무리 바빠도 한걸음에 달려와야지요.”

김준석이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띠었다.

눈앞에 앉은 노인이 정당 안에서 가장 실세였기 때문이리라.

‘최영훈 의원한테 부탁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이 돌 정도니.’

“역시, 김 의원 사람이 아주 예의바르다니까.”

“감사합니다.”

“일단, 이리로 앉지. 그리고 보좌관들은 잠시 자리 좀 비켜주겠나?”

“알겠습니다.”

그렇게 둘만 남게 된 사무실.

좀 전까지 웃고 있던 최영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김준석이 그것을 보고 재빨리 분위기를 파악하여 물었다.

“아니, 최 의원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 말에,

“있지. 바로, 자네 말이야.”

“저? 말씀입니까?”

“그래. 자네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다니는 건가?”

“이해가 잘...”

“내가 연락을 한 통 받았는데, 자네 소문이 아주 파다하다고 하더군. 그것도 병원에서 말이야.”

김준석이 잽싸게 기억을 끌어 올렸다.

병원에서의 일이라니,

‘설마.’

혜민한방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 건가.

하지만, 크게 소리를 친 것도 아니고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런 생각과는 다르게 먼저 고개를 숙이고 사과부터 한다.

일종의 습관이었다.

“죄송합니다. 최 의원님.”

“자네 거기서 갑질을 했다면서?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갑질을 하나? 그것도 선거운동 중에.”

“아닙니다. 사실 진료 접수하고 선거운동 때문에 시간이 애매해서 부탁을 조금 했을 뿐입니다.”

김준석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쯧쯧. 이 친구야. 내가 누누이 이야기하지 않았나, 선거 때만은 꼭 언행에 조심하라고. 그것도 하필, 왜 김충국이 있는 병원에서 그 난리를 피워서 나에게 이런 연락이 오게 만드냔 말이야.”

갑자기 김충국이라니.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이름이겠지만, 정치권과 검찰 쪽에서는 꽤 유명한 이름이다.

검찰청의 망나니.

그것이 은퇴 전에 불리던 김충국의 별명이었으니까 말이다.

여기서 망나니는 앞뒤 안 가리고 다니는 개망나니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형장에서 사형수의 목을 치는 그 망나니.

그가 한번 물으면 끝장을 볼 때까지 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런 신념과 추진력은 후배들에게 귀감을 주었고,

뒤따르는 후배 또한 많았다.

반대로 많은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기도 했다.

가장 골치가 아픈 상대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으로 인해 돌연 은퇴.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반기는 눈치였다.

‘그런데, 그가 연락했다고? 대체, 왜?’

“그 병원에 김충국이 입원해 있다더군. 이미 병실까지 소문이 싸악 돌은 모양이야.”

“아...”

“표정을 보니,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건 나중 문제고. 제발 문제를 더 키우지 말고 연락해서 제대로 사과부터 하게. 괜히 자극했다가는 자네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게 될 거야. 명심하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하지. 제, 발, 언행 좀 조심하게. 알았나?”

“네. 의원님.”

“나가봐.”

대답을 들은 최영훈의 얼굴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이미 평온하게 돌아와 있었다.

반면, 사무실에서 나오는 김준석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보좌관 이윤호가 눈치를 보며 조심히 물었다.

“저... 의원님.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야. 그건 어떻게 되었어?”

이윤호가 무슨 물음인지 바로 이해하고 답했다.

“네. 말씀하신 대로 기자 하나 붙여놨습니다.”

“그래? 잘했어. 그리고 이허준. 그 친구 연락처 좀 알아봐.”

“네.”

그렇게 며칠 뒤,

오전 진료를 끝내고 식당으로 가던 허준이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웬 부재중 전화가 이렇게 많아?’

그것도 모르는 번호네.

굉장히 급한 일 같은데. 한번 걸어볼까?

설마, 보이스피싱은 아니겠지.

전화를 거니,

“이허준 선생?”

“네. 제가 이허준입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나, 김준석이라고 하네.”

“아, 얼마 전에 접수하시고 그냥 가셨던 분 맞으시죠? 무슨 일이십니까? 짧게 이야기해 주십시오. 식사 시간이라서요.”

“다름이 아니라... 크흠, 그땐 미안했네.”

“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사과에 허준이 잘못들은 줄 알아 되물었다.

보통 진상이 이렇게 사과 전화를 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미안했다고.”

확실하게 들려오는 사과에,

“괜찮습니다. 다음에 진료 한번 보러 오시죠.”

*   *   *

한편, 혜민한방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훈련 중인 선수들.

그들의 모습을 둘러보던 감독 김성근이 흡족한 듯이 뒤따라오는 코치들에게 말했다.

“애들 표정이 살아났는데?”

“예. 지난번에 단체로 진료 다녀온 뒤에 폼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포수 김성렬과 투수 이용성을 제외하고도,

타자인 윤성웅을 비롯해 많은 선수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패잔병들 같았던 암울한 분위기에서 지금은 각자가 서로 다독이면서 스포츠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성과였다.

‘다녀온 보람이 있었네.’

문득, 떠오르는 병원장의 말.

마음의 병까지 고치는 의사가 명의라는 그 말이 떠오른 김성근.

“우리 곧 연습경기지?”

“네. 감독님.”

“애들한테 긴장하지 말고, 연습한 데로만 하라고 해. 어차피, 더는 잃을 것도 없으니까.”

김성근이 답하면서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기 때문이리라.

‘이번에 성과를 어떻게든 보였으면 말이라도 해볼 수 있을 텐데.’

그러기에는 연습경기까지 남은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래도 혹시 아는가. 기적이라도 일어날지.

그렇게 연습경기 당일.

상대방은 대한민국 야구리그에서 상위권에 있는 팀이었다.

당연히 연습경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무시하는 듯한 표정과 눈빛.

여기에 더해서 자신감이 넘쳐 흐른다.

포수이자 맏형인 김성렬이 후배들을 다독였다.

“평소 하던 대로만 해! 쫄지 말고.”

“네~”

“가자~! 이기자!”

각 팀의 구호와 함께 시작된 경기.

김성렬의 사인에 맞춰서 투수 이용성이 정확하게 볼을 꽂아 넣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좋았어.’

이렇게 첫 번째 수비턴을 마치니,

정작 놀란 것은 상대 팀인 타이거즈였다.

“쟤네 정말 예전 그 드림즈 맞아요?”

“뭔가 분위기가 좀 달라졌어요.”

“우리가 너무 만만하게 봐서 그렇지.”

“아~ 그런가?”

이렇게 탄탄하게 이어지던 공방은 중반인 4회쯤부터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서로 몸이 풀린 상황에서 타이거즈의 강력한 타선이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드림즈에서도 뛰어난 타자인 윤성웅이 몇 점을 냈지만,

결국에 경기 종료 시점에서는 7:4로 패배.

그런데, 그 누구도 화를 내거나, 못마땅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다독이면서 얼싸안은 선수들.

눈빛만으로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타이거즈를 상대로 7:5?’

‘이정도면 할 만했어.’

반면, 타이거즈 선수들은 살짝 놀란 눈치였다.

경기는 이겼으나,

‘뭐야? 얘네들 단체로 무슨 일이 있었나.’

‘고작 7:5밖에 안 된다고?’

이는 경기를 구경하던 감독과 코치들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서 이 경기를 지켜보던 단장.

“감독님. 무슨 일 있었나 봐요? 우리 팀이 이런 팀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애들이 정신을 차리고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요?”

“네. 직접 보시지 않았습니까?”

“호오~”

단장이 흥미롭다는 듯이 야구장에 있는 선수들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이거 타이거즈를 상대로 이정도 경기력이면 중위 팀과는 충분히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예전과 완전히 다릅니다. 이제는.”

“일단은, 제가 구단주님을 만나 뵙고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네요.”

“아, 네. 감사합니다.”

김성근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구단주를 만나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야구팀의 명운에 관한 이야기일 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첫 연습경기를 마친 드림즈.

라커룸에서는 선수들이 각자 손에 혜민한방병원이라 적힌 탕약을 들이켜며 신나서 웃고 떠드는 중이었다.

“야, 봤어? 걔네들 등장할 때랑 다르게 얼굴 굳어서 가는 거.”

“저도 봤어요. 우리가 이정도로 할 수 있을 줄이야.”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자고!”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성렬.

‘이건 기적이야.’

기적이 별반 다른 거겠나.

맨날 치고받고 싸우던 선수들이 이렇게 한 몸이 돼서 좋은 결과까지 끌어내다니.

이거야말로 기적이 아니겠는가.

김성렬이 손에 들고 있던 탕약을 마저 들이켰다.

‘오늘따라 이 쓴 게 달다 달아~’

*   *   *

혜민한방병원의 지하주차장으로 거대한 7인승 자동차가 들어왔다.

이어서 문이 열리며 내리는 여인들.

인형 같은 이목구비와 비율을 자랑하는 그녀들은 바로,

“와~ 여기는 처음 와보는데 엄청나게 크네?”

“그러게. 허준 원장님 완전 대박 났나 봐?”

스타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아이돌.

비행소녀단이었다.

앞에서 내린 지영희가 웃으며 애들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회사와 계약한 거지. 안 그래?”

“맞아요. 실장님.”

“실장님은 무슨,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냥 언니라고 부르라니까.”

“네. 언니.”

“내가 활동할 때부터 한의원에서 약 좀 여기저기 먹어봤는데, 여기만큼 좋은 곳이 없다니까?”

지영희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앞장섰다.

벌써 법인카드로 보약을 맞출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렇게 입장한 여섯 명의 여인들.

엘리베이터를 타고 쭈욱 올라간 곳은 바로 4층, 허준의 진료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반갑게 인사하는 지영희와 아이들.

“어머~ 허준 원장님 안녕하세요~ 축하드려요~”

“원장님 안녕하세요!”

다들 기운이 넘치나 보네.

표정도 밝고, 혈색이 좋군.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밥 선생이 출장 와서 종종 케어는 해줬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직접 오게 되었네요.”

“잘 오셨어요. 다들 요새 잘돼서 종종 식당에서 노래로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 축하드려요. 이번에 콘서트투어 가신다면서요?”

“네. 감사드려요. 다 원장님 덕분이죠.”

“맞아요~ 원장님이 진짜 많이 도와주셨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틀어진 얼굴을 잡아주었던 유민정의 대답이었다.

물론, 나머지 멤버들 또한 마찬가지의 감정.

“아니에요. 저야 뭐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일단, 잠시만 기다려 주실래요?”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잠시 기다리자,

진료실 문이 열리며 밥과 최허준이 들어왔다.

“어? 선생님들.”

“와~! 진짜 비행소녀단이네..,?”

최허준이 눈앞에 있는 아이돌을 보고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눈을 비비며 인사했다.

“반가워요. 최허준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허준 선생님이랑 이름이...?”

“아, 네. 원장님과 어쩌다 보니 이름이 비슷해서..”

허준이 최허준 선생을 소개했다.

“여기 계신 최허준 부원장은 추나와 고타법 전문가시거든요. 그래서 특별히 모셨습니다. 물론, 밥 부원장은 잘 아실 테고요.”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밥이 반갑게 인사했고,

그대로 진료가 시작되었다.

‘맥이 괜찮네. 그래도 꽤 일정이 길다고 했으니.’

최대한 체질에 맞춰서 처방을 시작한 허준.

그렇게 돌아가면서 최허준의 추나와 고타, 밥의 침과 뜸 처방이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허준이 보약에 관한 처방을 내렸다.

이전보다 월등히 높아진 실력에,

순식간에 끝난 진료와 처방.

덕분에, 정작 아쉬워하는 것은 지영희와 비행소녀단 멤버들이었다.

“헐... 벌써 끝이에요?”

“고타법인가 이거 기분이 되게 좋았는데. 왠지 몸이 상쾌해진 것 같기도 하고 마사지 받은 것 과 비슷한 느낌도 들고.”

···

아이들의 수다를 뒤로하고 지영희가 물었다.

“약은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요?”

“3일 뒤에 오셔서 가져가시면 될 겁니다.”

“정말요?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그럼, 그때 찾으러 올게요.”

“네. 그리고 비행소녀단 여러분들 모두 파이팅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

그렇게 진료실을 나섰고,

허준도 남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오늘 수고하셨어요. 이만, 퇴근하도록 하죠.”

“원장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때, 무언가 잊고 있던 게 생각난 허준.

맞아. 그러고 보니 만들어 둔 환약을 잊었네.

허준이 환약을 들고 진료실로 나왔는데,

이미 엘리베이터는 내려가고 있었다.

그래서 재빨리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따라 내려가니,

마지막에 차에 올라타려던 유민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민정 양! 잠시만~”

“어? 원장님?”

허준이 달려가 들고 온 환약을 건네며 말했다.

“이거 받아요. 각자 이름이 써진 대로 먹으면 될 겁니다. 노래부를 때, 아주 좋은 것이거든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하주차장에서 지켜보던 남자.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가 찰칵 소리를 내며 그 모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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