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신비롭고 놀라웠다
축구선수 중에는 경기를 뛰고 나면 몸무게가 적게는 2kg 많게는 4kg 가까이 빠지는 선수도 있다고 한다.
전반 45분, 후반 45분으로 이루어진 축구경기.
물론 중간에 휴식시간이 있지만, 이 90분에 조금 더 주어지는 치열한 경기 시간 동안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바꿔말하면, 후반전에 들어서면 많은 선수의 폼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힘든 스포츠였으니까.
그래서 선수들은 각자 맡은 포지션과 담당 구역에 따라서 체력관리를 위해 페이스 조절을 한다.
‘그래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안 하는 것에 비하면, 큰 차이가 나기 마련.
하지만, 이 때문에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 경기를 본다면 공을 따라서 적극적으로 달리지 않는 선수들의 모습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김찬용은 달랐다.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상대 팀의 골문에 가장 가까운 포지션인 최전방 공격수.
골문 앞에서 골을 넣는 결정력이나, 수비수를 뚫고 올라가는 폭발적인 돌파력.
이 능력들도 놀라웠지만, 그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다름 아닌 체력이었다.
한 번의 기회를 골로 연결할 수 있는 자리인 만큼, 공격 한번 한 번에 체력소모가 가장 큰 포지션.
‘그런데, 찬용은 후반전에도 쌩쌩하지.’
“찬용 킴~! 또 골입니다!! 후반 39분 3명을 제치면서 골을 기록합니다!”
“대단합니다. 대체 저 선수는 언제 지치는 걸까요~”
이렇듯, 김찬용이 기록한 골이나 결정적인 골 도움은 대부분 후반전에 몰려 있었다.
공격수뿐만 아니라 상대 팀 수비수도 지치기는 매한가지였으니까.
그렇게 팀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기 시작했고, 동료들 사이에서도 인기 있는 멤버가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김찬용이라는 한국인 선수를 데려온 감독의 행보에 의문을 제기하던 팬들도 이제는 그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습이 끝난 라커룸.
“찬용. 전부터 궁금했는데, 그게 뭐야? 매일같이 마시던데.”
“아~ 이거? 우리나라에서 보약이라고 부르는 건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음... 너네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허브차?”
“허브차?”
“그래. 몸에 좋은 약초들을 섞어서 만든 것이거든.”
“그게 효과가 있어?”
동료 제임스의 물음에,
김찬용이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지.”
“그래? 그럼, 나도 하나 주면 안 될까?”
“음.. 그건 좀 곤란한데.”
얼핏, 체질에 안 맞는 보약을 먹으면 배탈이 난다는 이야기가 떠오른 김찬용.
“왜?”
“이게 잘 안 맞는 사람은 오히려 몸에 안 좋을 수가 있거든. 괜히, 이걸 줬다가 네 컨디션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당장, 며칠 뒤에 경기 있잖아.”
“괜찮아. 너도 알잖아? 내가 우리 팀에서 제일 튼튼한 거.”
하긴, 제임스는 팀에서 가장 몸이 튼튼한 수비수긴 하지.
자꾸만 졸라대는 그의 말에,
“알았어.”
한 봉정도로 무슨 일이라도 나겠어.
그렇게 보약을 건네받은 제임스가 흥미로운 얼굴로 보약의 냄새를 맡고는 인상을 찌푸린다.
“오우, 무슨 냄새가 이래?”
“제임스, 원래 몸에 좋은 약이 고약한 법이라고.”
“좋아. 간다!”
비장한 얼굴로 보약을 마신 제임스가 온갖 인상을 쓰면서 맛을 음미했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텁텁함, 숨을 타고 넘어오는 불쾌한 냄새, 그리고 묘하게 달짝지근한 맛과 함께 확실하게 느껴지는 쓴맛까지.
‘다시는 먹고 싶지 않아.’
그때 김찬용이 제임스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
“제임스 어때? 괜찮아?”
“대체 이걸 어떻게 매일 먹는 거야?”
새삼스럽게 김찬용이 대단해 보이는 제임스.
그런데, 뱃속이 따듯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닌가.
이어서 왠지 모르게 몸이 나른해진다.
훈련을 끝내고 온 터라 긴장되어 있던 근육이 풀어지면서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동시에, 뱃속에서 치는 천둥소리.
제임스가 그대로 화장실을 향해 달려갔다.
이 에피소드는 한동안 팀 동료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화가 되었고,
그중에서 가장 호기심 많은 조세프가 팀을 대표하여 이렇게 김찬용과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었다.
그런데,
“보약만 만드는 곳이 아니라고?”
“물론이지. 그 보약은 일부분에 불과해. 원래 한의원이란 곳은 보약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환자들을 치료해주는 곳이거든.”
비행기 안에서 김찬용이 자신이 겪은 일과 한의원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고,
그것을 전부 들은 조세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그런 곳이 있다고?”
“못 믿겠지만, 한번 가보면 너도 반할걸?”
“오케이.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더 궁금해지네.”
그렇게 도착한 한국.
김찬용이 한국에 들어왔다는 뉴스가 여기저기서 올라오고 있었다.
- 김찬용 대표팀 합류. 컨디션 최상인 것으로 알려져.
- 월드컵 대표팀 김찬용 합류로 전력 강화.
···
* * *
며칠 뒤, 혜민한방병원.
밥이 데스크의 호출을 받았다.
병원 내에서 그의 직함에 국제진료 원장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최근 대만의 양쑨 선수 진료를 본 뒤로 종종 찾아오는 외국인 환자 때문에 이제는 익숙해진 상태.
그런데,
‘어?’
당연히 동남아에서 온 환자일 거로 생각했던 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밥도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라이언 조셉.
월드 클래스의 축구선수잖아?
저 사람이 여기에는 왜 있는 거지.
그리고 못 알아보고 있는 이 상황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대기실에서 누구 하나 무신경하게 각자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서양인들이 동양인의 얼굴을 잘 구별 못 하듯이,
동양인도 서양인의 얼굴을 잘 구별 못 하는 것이 당연한 법이었으니,
축구유니폼이 아닌, 그저 추리닝 세트에 모자를 눌러쓴 조셉을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아, 밥 부원장님.”
데스크의 선생이 난처한 얼굴로 밥을 불렀고,
밥이 조셉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혜민한방병원에 잘 오셨습니다. 국제진료를 맡은 밥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조셉이라고 합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으신다면, 당신이 그 라이언 조셉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이거 영광입니다. 제가 당신의 팬이거든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어쩐 일로.”
“혹시, 찬용 킴을 아시나요?”
“물론입니다.”
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직접적인 친분은 없었지만, 오며 가며 인사를 하기도 했고 김형서 원장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리라.
“그럼, 이야기가 편하겠네요.”
조셉이 김찬용과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전부 듣고 정리한 밥.
‘그러니까 한마디로, 보약을 맞추러 왔다는 뜻이잖아?’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진료실을 나선 밥.
마침, 치료실에서 시침을 끝내고 나온 허준을 마주칠 수 있었다.
“원장님. 저...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이요?”
“네.”
밥이 지금의 상황을 허준에게 말했다.
허준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그대로 밥의 진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괜히 일을 크게 만들 필요는 없겠지.’
“진맥을 잡을 수 있게 설명해 주시겠어요?”
허준의 말에, 밥이 설명을 이어나갔고.
조셉이 밥의 설명대로 두 손을 허준에게 건넸다.
두 손의 맥을 잡은 허준.
‘전형적인 태양인 체질이로군.’
몸의 상태는 더할 나위 없이 건강했다.
경맥의 흐름과 장부들의 균형도.
이런 상태라면 보약으로 몸을 보하기보다는, 그저 컨디션에 아주 약간의 도움을 주는 정도의 한약이면 충분할 터.
오히려 이런 운동선수들에게 중요한 것은,
한약재의 성분을 조심해서 약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약재들은 도핑 테스트에 걸리기도 하니까.’
“좋습니다. 밥 선생님이 불편하거나 아픈 곳이 있냐고 물어봐 주십시오.”
밥이 통역하여 물었고,
조셉이 답했다.
“이전에 부상으로 무릎과 발목 쪽이 가끔 아프다고 합니다.”
“제가 한번 만져보도록 하죠.”
허준이 조셉의 무릎과 발목의 근육을 만지며 진단해나가기 시작했고,
몇 군데의 근육들이 꽤 긴장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약보다는 침과 뜸 그리고 추나치료가 도움이 되겠어.’
허준이 순식간에 처방을 끝내고,
밥에게 말했다.
“밥 선생님이 무릎과 발목에 침 치료 해주시고, 최허준 선생님에게 추나를 부탁해주세요. 보약은 이틀 뒤에 찾으러 오면 된다고 전해주시고요.”
“예? 원장님이 직접 시침 안 하시고요?”
“제가 왜요? 국제 담당은 밥 선생님이시잖아요. 그리고 저는 우리 선생님들을 믿고 있거든요.”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한 허준이 가볍게 인사를 마치면서 그대로 진료실을 나섰다.
그 뒷모습을 보며 밥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자신을 믿고 있다는 허준의 대답 때문이리라.
덕분에, 심기일전한 밥이 이전까지의 위축된 모습 대신에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어서 차근차근하게 이어나가는 설명.
이 모든 상황을 직접 겪은 조셉이 조금 전에 있었던 일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 한두 마디로 사람의 분위기를 이렇게 바꿀 수 있다니.
‘보통 사람이 아니네.’
그렇게 이어진 치료과정을 마치고 한방병원을 나서는 조셉의 얼굴에는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몸이 날아갈 것 같이 가벼웠기 때문이리라.
몸 안에서 뚝- 뚝- 거리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올라오는 시원함.
그 시원함이 몸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또 그 신기한 마사지 기술은 무엇이던가.
자신의 몸을 손바닥으로 통통거리면서 두들기는데, 그럴 때마다 긴장했던 근육이 무장해제라도 되는 듯이 하나씩 벗겨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침과 뜸은 또 다른 느낌이다.
‘특히, 침은 장난이 아니었지.’
이전에 몇 번 부상당했던 무릎과 발목에 맞은 침은.
묘한 불쾌감을 사라지게 해주었다.
거기에 이어진 뜸은 따듯하고 묘한 냄새가 피어올라오면서 잠을 솔솔 부른다.
그렇다면 보약은 어떨까.
기대되는 마음이 조셉의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
* * *
“안녕, 조세프. 어땠어?”
“어땠기는, 장난 아니던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야.”
“그렇지? 내가 뭐라 했어?”
“이렇게 좋은 곳을 알고 있으면 진작 말해주지 그랬어.”···
잠깐 영어로 이어진 통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났다.
그리고 통화의 주인공 김찬용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형서 원장.
김형서가 들려오는 이름에 되물었다.
“조세프라고? 설마, 라이언 조셉?”
“네. 그 조셉 맞아요.”
“조셉이 한국에 들어와 있다고?”
그 물음에 김찬용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런 중요한 일이 있으면 진작 말해줬어야지.”
“조셉이 부탁했어요. 조용하게 여행을 즐기고 싶다고.”
“그런데, 아까 들린 그 이야기는 뭐야? 보약을 맞춘다니.”
“아, 제가 보약을 매일 먹잖아요?”
“그런데?”
“그걸 보고 팀 동료들이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그래서 자기도 한 번 먹어보겠다고 해서 제가 혜민한방병원을 소개해줬죠.”
“뭐!?”
김형서가 놀라는 만큼,
놀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다름 아닌 스포츠 기자들이었다.
며칠 전에 한국으로 들어온 김찬용에 정신이 팔린 상태였는 동안, 조셉이 한국을 활보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조셉의 SNS에 올라온 사진들이 온라인으로 퍼져나가면서 그가 한국에 있음을 짐작게 했고,
사진 중에는 혜민한방병원의 모습도 있었다.
그 아래에 적힌 한마디.
- 신비롭고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