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197화 (197/230)

197화. 오무날

탈모는 생각보다 흔한 질환이다.

증상은 간단하다.

질환의 이름 그대로 ‘벗을 탈’에 ‘털 모’ 인 것처럼,

몸에 있는 털이 빠지는 것뿐이니까 말이다.

일반적으로 통증이 동반되지 않기에,

심각한 질병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몰라도.

‘당사자들에게는 제일 큰 고민거리로 자리매김해 버리는 질환이기도 하지.’

흔히, 이런 광고 문구도 있지 않던가.

남자는 머리빨이라는 말.

말 그대로, 탈모는 사람의 외모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인 헤어스타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가뜩이나 외모가 중요한 이 시대에 치명적인 질환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질환이었다.

이는 남성뿐만이 아니라, 여성도 마찬가지였으니,

오죽하면 탈모방지용 샴푸를 만드는 회사가 떼돈을 벌고 있겠는가.

물론, 효능은 나중 문제였다.

이는 마치 로또를 사는 것처럼, 작은 확률이라도 이 샴푸로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지불하는 돈이었으니까 말이다.

만약, 누군가 이 탈모의 완벽한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면.

노벨상은 물론이요, 각종 의학과 과학잡지 그리고 세계의 역사에 이름이 남을 것이 분명하겠지.

그만큼 인류의 역사와 함께 오래한 질환인 만큼,

당연히 조선 시대에도 있었으며, 동의보감에도 기록되어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상투를 틀던 문화로 인해 오히려 탈모를 반기기도했다던데.’

허준이 환자 김정훈의 머리를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이마에서부터 시작하는, 흔히 M자 탈모라 불리는 증상은 아니었다.

M자 탈모는 유전적 요인.

그 어떤 치료로도 완치는 불가능했다.

그것이 자연적인 모습이었기에.

“그럼, 언제부터 시작된 겁니까?”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아빠, 할아버지. 가족들도 모두 괜찮은데, 왜 저한테만 이렇게 생긴 걸까요. 뭔가 더 억울한 느낌입니다.”

김정훈이 맥없는 목소리로 억울하다는 듯이 답했다.

허준이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물었다.

“최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일이 있을까요?”

한의학적으로 보는 탈모는 신장의 기운이 떨어져 허한 것과 어떤 요인에 의해서 간 또는 폐나 심장의 열기가 머리로 올라와 나타난 증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도 기록되어 있지.’

동의보감에서는 털을 몸의 건강지표로 활용한다.

특히, 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머리털로 몸 안에 있는 내장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머리카락에 혈의 상태가 드러난다고 보기 떄문이다.

이 혈기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장부는 바로 신장.

때문에, 신장의 병을 앓는다던가.

나이가 든 사람들의 모발을 건강하고 젊은 사람의 모발과 비교하면 푸석푸석하고 얇아지며 윤기를 잃는 등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물론, 머리카락이 저런 것은 영양 불균형의 영향도 있다고는 하지만.’

먹을게 너무나 풍족해진 지금 세상에서는 거의 해당하지 않는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신허증 또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열증일 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게 어떤 일인지...”

“뭐, 간단합니다. 예를 들자면, 취업하는데 잘 안된다던가, 시험을 준비하는데 떨어졌다던가, 또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던가 등등이요.”

“아, 아니요. ”

대답하는 김정훈의 눈빛이 순간 흔들린다.

허준이 그것을 날카롭게 캐치했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네.’

다만, 자신의 치부라 생각하기에 입 밖으로 꺼내려던 말을 다시 집어넣으면서 순간적으로 말을 더듬은 것이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행동.

그리고 이렇게 자존심이 강한 사람 대부분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으니.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두 손을 올려주시겠어요?”

허준의 안내에 김정훈이 두 손을 올렸다.

이어서 맥을 잡은 허준.

손끝에서 느껴지는 박동 감과 기감 그리고 눈앞에서 느껴지는 경맥들의 흐름.

역시나, 예상대로군.

나이에 비해 신장의 기운이 허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화가 나는 일이 있었는지,

심장의 열기가 위로 뻗쳐 머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그것을 본 허준이 치료계획을 세웠다.

생각보다 간단한 처방법.

‘신허증은 약과 뜸으로’

열기는 침을 이용해 사하면 될 터.

처음 진료하는 질환이었지만,

이렇게 간단한 처방 탓인지, 나타난 퀘스트의 보상이 생각보다 높지는 않았다.

고작 2000포인트라니.

어쨌거나, 치료계획을 세운 허준이 앞에 앉아 있는 김정훈에게 친절하게 설명해나가기 시작했다.

“한의학적으로는 지금 상태를 신장의 기운이 떨어지고, 스트레스와 피로로 인해서 심장과 간의 열기가 위로 뻗쳐서 머리로 올라온 상태라 봅니다. 본래 뜨거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기운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렇군요...”

뜨거운 공기와 차가운 공기의 설명이 왠지 귀에 쏙 들어오는 김정훈.

“그래서 유미환이라는 환약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떨어진 신장의 기운을 올려주고, 뜸을 보조적으로 사용해서 그 기운의 흐름이 조금 더 빠르게 돌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위치는 여기와 이곳 두 자리에 뜸을 뜰 테고요. 마지막으로 위로 치솟은 열기를 빼내기 위해서 침을 사용할 텐데.”

허준이 차트에 있는 인체 그림의 머리 꼭대기 부분에 점을 찍었다.

그러자, 김정훈이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여기에다가 침을 놓는다고요?”

“네.”

“위험하지는 않은 거죠? 만약, 잘못되면 어떻게 해요?”

허준이 그런 김정훈을 바라봤다.

자존심도 세지만, 걱정도 많은 성격인가 보네.

그리고 이런 성격의 환자들에게는 언제나 먹히는 대답이 있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7살짜리 어린애도 맞는걸요?”

“아~ 그래요?”

대답을 들은 김정훈이 괜한 걱정이었다는 듯이 답한다.

“그럼, 바로 치료실로 가실까요?”

그렇게 치료실.

허준이 침을 꺼내 들었다.

“자, 천천히 눈 감으시고 편안하게 계세요.”

이어서 김정훈의 정수리 쪽에 자리를 잡은 다음에,

그대로 침을 찔러 넣었다.

그러고는 손끝에 집중하여 침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기를 더욱 빠르게 빼내기 위한 제삽법이었다.

허준의 말대로 눈을 감고 있던 김정훈.

7살짜리 꼬마애도 맞는다는 말에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답했지만,

‘눈 감고 있으니 더 긴장되네.’

긴장한 만큼, 몸의 감각들은 날카로워진다.

머리 위쪽으로 움직인 한의사 선생님의 존재감.

그것은 곧 자신의 머리에 침이 박힌다는 뜻일 터.

괜스레 긴장되는 김정훈이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뭐야?’

왜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거지?

그런데, 그때. 묘한 시원한 느낌이 머리에서 느껴졌다.

마치, 한여름에 동네 목욕탕에 있는 냉탕에 들어가서 천장에서 내려오는 한줄기의 물줄기를 맞는 것 같은 기분.

당연히 냉탕만큼 차가운 느낌은 아니나,

그만큼 시원한 느낌이 들고 있었다.

그때,

“다 됐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계세요. 알람 울리면 우리 선생님이 오셔서 안내해 주실 겁니다.”

그제야 자신의 머리에 침이 박혀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김정훈.

뭐야? 분명, 아무 느낌도 안 났는데.

신비로운 경험을 한 김정훈이었다.

*   *   *

혜민한방병원 회의실.

혜민서 대표 김예진을 필두로 혜민서의 멤버들이 전원 모여 사례들과 과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최근 멤버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최허준이었다.

휴일마다 산에 오르며 배운 활법, 나아가 허준에게 배운 고타법.

그리고 최근에 활법을 익히면서 흥미가 생겨 시작한 다른 나라의 여러 방법까지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기 떄문이다.

“와.. 최허준 선생님. 환자분들에게 인기 많으시다고 하더니.”

“그러게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것 같은데요? 분명히, 추나도 비슷한 것 같았는데.”

“그러니까, 손을 이렇게 말아 쥐고, 가운데 공기를 넣어서 팡팡하고 두들기라는 거죠?”

이렇듯, 인기폭발 중인 최허준.

쑥스러우면서도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최근에 인턴으로 들어온 최승원 선생 덕분인지, 아니면 인턴 선생님들 덕분인지.

밥 선생 또한 자극을 받아 여러 침술에 관련된 공부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모든 경험과 치료법을 아낌없이 공유한 멤버들.

이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척하면 척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요?”

“네. 대충 끝난 것 같네요.”

“모두 수고하셨어요. 원장님들.”

“아니에요. 팀장님이 수고하셨죠. 이렇게 모일 때면 늦게 퇴근하셔야 하는데.”

“뭘요, 혜민서 대표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가족같은 분위기에서 인사를 주고받은 멤버들사이에서,

박용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것을 조용히 듣고 있던 허준.

최근에 방송 여기저기에 한두 번씩 출연하더니, 입담이 더 좋아진 모습이다.

“참, 원장님들. 요즘에 그거 아세요?”

“그거?”

“네. 오무날이요.”

“에이~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저기 김 팀장님도 아실걸요?”

김예진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모르는데요. 그게 뭔데요?”

“아~ 별거는 아니고, 오늘 무슨 날이에요? 라는 줄임말이에요.”

“그걸 왜 굳이 줄여서 써요?"

“그게...”

오무날.

한의사들이 온라인에서 사용하는 몇몇 단어 중 하나다.

오늘 무슨 날인가요?

라는 줄임말로 보통은 환자가 없을 때 사용하는 말인데,

개원한 한의사들 대부분이 매일같이 남용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날이 추워서,

비가 와서,

오늘은 장날이라서,

동네에 새로운 한의원이 생겨서,

독감 때문에,

···

등등 대고자 한다면 끝도 없이 나오는 것이 이유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그냥 온라인에서 앓는 소리를 하기 위해서 적어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던가.

길가에 가다 보면 수많은 한의원을 볼 수 있었으니,

‘그저 단순한 엄살만으로 치부할 수도 없지.’

허준이 한때, 오무날 오무날 거리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 그렇구나~ 그런데 그게 왜요?”

“팀장님도 의미를 모르셔서 그러셨구나. 이것 좀 보세요.”

박용준이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혜민서 사이트의 자유게시판.

자료 게시판에는 지금, 여기에 모인 혜민서 멤버들이 여러 사례와 논문, 치료법이나 강의들을 공개하는 곳이라면,

자유게시판은 말그대로 혜민서에 가입한 선생님들이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게시판이었다.

그런데, 이 자유게시판에서 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자료게시판에서 파생된 수많은 경험과 사례들이 이곳에도 똑같이 올라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가 틈틈이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오무날이라는 제목들.

- 오무날?

갑자기 환자가 늘어났어요. 이게, 무슨 일이죠?

환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없던 환자가 늘어났다는 글들.

그리고 그런 글들에는 어김없이.

- 신입 오셨다~

-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겁니다.

- 이제 시작이죠.

등등의 훈훈한 댓글이 달려있었다.

자신들도 이미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보세요. 어때요?”

“의미를 알고 보니, 감회가 다르네요."

“우리가 단어의 의미를 바꿨다니, 왠지 모르게 뿌듯해지는걸?”

김태식의 말에,

“그러게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니까요?”

모두가 기분 좋게 퇴근할 수 있었다.

그만큼 혜민서가 참여하는 선생들 뿐만 아니라, 많은 환자에게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그날 저녁.

탕전실에서 탕약을 만들던 허준.

「포인트를 40 획득하였습니다.」

「포인트를 40 획득하였습니다.」

「포인트를 1 획득하였습니다.」

···

평소 포인트가 올라가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던 허준이 나타나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어서 시선이 향한 곳.

보유 포인트 : 100001

'드디어...'

아까 오무날이라고 했던가.

오늘 무슨 날이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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