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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204화 (204/230)

204화. 함께 가시죠

쓰러진 노인의 이름은 강대준.

한 시대의 풍파를 견뎌낸 사업가였다.

그 결과로 사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었고,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노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의 아래에는 세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었으니,

“약?”

“무슨 약?”

“아니, 아버지가 약을 드시고 계셨었다고?”

가족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반응에, 처음 약이라는 단어를 꺼낸 사위 이용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되묻는다.

“형님들도 전혀 모르고 계셨어요?”

둘째 아들과 셋째아들이, 아버지를 옆에서 직접 보살펴온 형수 김정란을 바라봤다.

설명을 갈구하는 눈빛이었다.

“그게... 사실은 아버님께서 이전부터 워낙 힘이 없으시고 기력이 달린다고 하셔서, 소개를 받아서 보약을 지어 드셨어요.”

“그런데, 그걸 왜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죠?”

날카롭게 쏟아진 둘째 며느리 물음,

김정란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네가 언제부터 신경 쓰고 있었다고.’

그렇게 궁금했으면,

평소에 자주 안부를 물었어야지.

평소 인자한 맏며느리로 살아온 그녀였지만,

이런 상황에서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 당연한 법이었으니,

“그야 당연히 분가하셨으니까 그렇죠."

"그래도 그런 것은 진즉에 알려주셨어야죠?"

"아가씨, 제가 아가씨한테 아버님 보약드시는 것까지 보고해야 하는 사람이에요? 누가 들으면 아가씨가 평소에 관심이 굉장히 많으셨던 것처럼 말하시네요."

“아니, 형수님은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세요?”

서로가 날카로워진 탓에,

언제나 화목하던 분위기에 날이 서기 시작한다.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첫째아들 강기훈이 들어왔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분위기는 또 왜 이래?”

한순간에 조용해진 식구들.

강기훈이 부인 김정란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말해봐요.”

김정란이 차근차근 있었던 일 전부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것을 전부 들은 강기훈.

“그러니까, 병원에서는 아직 원인을 찾지 못했다고 한 거지?”

“네. 맞아요.”

강기훈이 차분하게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차분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장남이자, 아버지 강대준과 가장 비슷한 성격을 가진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 아침 출근할 때,

마주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침만 해도 건강한 모습이셨는데.’

평소와 같은 모습.

아니, 최근에는 몇 개월 동안은 그전보다 훨씬 정정해지신 모습이었다.

‘보약을 드신 뒤부터 기력을 되찾으셨지.’

오죽하면 매일 아침 산책을 다녀오셨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지금 가족들이 분노하는 보약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는 뜻.

왜냐하면, 하루 이틀 드신 게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강기훈의 눈이 눈을 감고 있는 아버지에게로 향했다.

마치, 잠을 자는 것 같은 모습.

그 모습을 보자,

본능적으로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아버지가 언제 쓰려지셔도 이상치 않지.’

지병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어느새 90세가 되어가는 나이.

인간은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가 아니던가.

어떻게 보면 그동안에 보여주신 모습이 너무 건강한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이 나이쯤 되면 흔히 들리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으니,

돌아가실 때가 되면 이상하게 건강해지고, 정정한 모습으로 지내다 가신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해가 지기 직전에 잠깐 하늘이 밝아지는,

회광반조라 불리는.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을 호상이라 불렀다.

어쩌면 지금이 바로 그 과정일지도.

강기훈이 고개를 돌려 가족들을 불러 모으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할 때가 된 것 같아.”

“형님?”

“그게 무슨..”

“아주버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눈치 빠른 둘째가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도록 할게. 검사건 뭐건.”

“그래. 그러도록 하자.”

혜민한방병원을 찾은 이용훈.

그가 병원장실로 향했다.

아내가 길길이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기 때문이리라.

“전화 드렸던 이용훈이라고 합니다.”

“어서 오세요. 병원장 최인호입니다. 이리로 앉으시죠.”

최인호가 이용훈을 맞이했다.

“무슨 일 때문에 오신 건가요?”

이용훈이 서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혜민한방병원의 로고가 각인된 약 봉투였다.

“음, 우리 병원의 탕약이로군요.”

최인호가 그것을 단번에 알아봤다.

“우리 장인 어르신께서 이 약을 여기서 구매하신 것 같은데, 그걸 먹고 쓰러지셨습니다.”

“에이~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거야 직접 병원에 확인해보시면 되겠죠. 물론, 내용물은 검사를 의뢰했습니다. 아,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이용훈이 명함을 건넸다.

리앤킴이라 적힌 로펌.

최인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불법적인 일이 있는 것은 아니나, 어디까지나 법 중에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일도 흔했으니,

‘골치 아프게 됐네.’

“그래서 원하시는 게 뭡니까?”

“이 보약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습니다. 제 아내가 꼭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해서 말이죠.”

이럴 땐 우선 먼저 상황을 파악하는 게 먼저인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최인호였다.

“상심이 크시겠군요. 죄송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단순히 그 약 봉투 하나만 가지고는 누가 만들었는지 알아내려면 시간이 필요해서요. 알아내면 바로 연락드리도록 하죠.”

*   *   *

혜민한방병원의 입원실.

무사히 수술을 마친 한수희가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저 왔어요~”

“어? 일찍 왔네?”

“얼굴 보니 좋아 보이네. 수술 잘 된 거지?”

“물론이죠. 의사 선생이 놀라더라고요.”

“그렇다니까? 우리가 누누히 말했잖아. 여기 있다가 수술받으러 가면 다들 놀란다고."

“그러게 말이에요. 그런데, 정말로 이 자리 비워뒀네요?”

한수희의 농담에,

입원실 환자들이 호호거리며 웃었다.

이렇게 한방병원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가운데,

회의실에 모인 최인호와 김정우 그리고 박진석과 유도진.

“그래서, 병원에 확인해 봤는데. 현재 의식을 잃고 입원 중이라고 합니다.”

“참, 골치 아프게 됐군.”

“그러게 말이야.”

김정우와 박진석도 지금의 상황이 골치 아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 한의사로 살아온 만큼, 이런 경우가 한 번쯤은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래.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김정우의 물음에,

최인호가 명쾌하게 답하지 못했다.

병원의 운영을 책임지는 병원장으로서 보자면,

법적인 소송이 걸렸을 때, 인정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것이 당연할 터.

‘하지만 그러면 병원의 이미지가 나빠지게 되겠지.’

리앤킴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로펌 중 한 곳.

그런 로펌에 속한 이용훈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으니,

시간이 길어질수록 진흙탕 싸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순순히 인정하자니...’

그때,

유도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먼저 가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자네가?”

“네. 제가 맡았던 환자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선, 가족분들을 만나 뵙는 게 순서인 듯싶습니다.”

대답을 들은 김정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암, 내 생각도 같네. 우리의 억울함은 둘째치고, 환자와 환자의 가족을 먼저 살피는 것이 도리 아니겠나.”

“알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대응 준비는 하고 있겠습니다.”

“그러도록 하게. 자네가 더 잘 할 테니.”

그렇게 회의실을 나선 최인호.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며 유도진에게 물었다.

“자네. 정말, 괜찮겠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좋아. 맘편히 다녀오게.”

병원장실로 돌아온 최인호.

그런 그의 앞에 낯익은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태용 씨?”

“오랜만입니다. 병원장님.”

“네. 그런데, 무슨 일로...?”

최인호가 살짝 긴장한 채 답했다.

듣기로는, 수술도 대성공에, 오늘 수술 후 입원 치료를 위해서 다시 입원했다고 하던데.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일단, 들어오시죠.”

지난 번과 똑같은 자리에 앉은 두 사람.

다른 점이 있다면 김태용에게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이 꽤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일단은,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제 아내를 잘 돌봐주셔서.”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그래서 말인데, 제가 원래 공과 사의 구별이 확실한 만큼, 상벌의 구분도 확실한 사람이거든요.”

김태용이 명함을 꺼내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 테니. 제가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서. 그럼, 앞으로 남은 치료도 잘 부탁드립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서는 김태용.

그런 김태용을 보자,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이러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는데?’

*   *   *

한편,

평소처럼 진료를 끝내고 탕전실로 올라간 허준.

「포인트를 2 획득하였습니다.」

「포인트를 1 획득하였습니다.」

「포인트를 2 획득하였습니다.」

···

'내일 쯤이면 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겠어.'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는 포인트를 뒤로하고,

오늘 처방을 내린 탕약들의 약재를 찾아 창고로 향했다.

그렇게 손끝의 기운을 느끼며 약재들을 조합하고,

옹기탕약기에 물과 약재들을 넣어 달이기 시작했는데.

‘어?’

문이 열리며 유도진 원장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평소에는 이두철 선생과 둘이서 다니더니,

오늘은 혼자네.

그런데, 그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이,

멍하니 창고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 있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약재를 챙겨나온 유도진.

그제야 탕전실 한쪽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허준을 보고는 놀라 입을 열었다.

“어,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저야 아까부터 있었죠. 그런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그게...”

유도진이 골똘히 생각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혹시나 실수한 것이 있나 되짚어보는 중이었다.

“원장님께서 탕약 달일 때, 잡념을 지우라고 하셨었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허준의 말에 유도진이 퍼뜩 정신을 차리렷다.

자신이 혜민서의 선생들에게 이야기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리라.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넋을 놓고 있었네요.”

“오랜만에, 이렇게 탕전실에서 탕약을 달이니 옛날 생각나네요."

“허준한의원 때요?”

“네. 그때는 거의 매일 이렇게 만나서 탕약 달이면서 진료랑 환자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그랬잖아요.”

“그랬었죠...”

유도진이 그때를 떠올리고는,

“원장님. 사실은 제가 보약을 드린 환자가-”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부 들은 허준.

‘몇 달 동안 보약을 드셨는데, 이번에 갑자기 쓰러지셨다고?’

보약의 효과를 제대로 느끼려면 장복을 하는 것이 당연한 법.

바꿔말하면 저렇게 쓰러지는 일이 있을 정도로 약이 맞지 않았다면,

'보약을 맞추기 위해 진료를 보는 유도진 선생이 몰랐을 리가 없겠지.'

유도진 선생이 어떤 사람이던가.

기연으로 얻은 감각이 늘어날 때마다, 가히 천재라고 느껴지는 사람이지 않던가.

그래서 허준이 명쾌하게 답했다.

“제가 보기에는 보약 때문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 말씀은...?”

너무나 확신하는 대답에,

유도진이 되물었다.

“네. 저는 보약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침, 저도 내일 휴무 날인데. 혹시, 괜찮으시면 제가 같이 가도 될까요?”

대답을 듣고,

잠시 고민하는 유도진.

‘이런 애꿎은 일에 허준 원장을 끌어들이는 것이 옳을까?’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왠지 모르게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허준의 말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래. 의심할 여지가 없지.

“좋습니다. 함께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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