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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하는 한의사-213화 (210/230)

213화. 시작해 볼까요

“문제라니요?”

허준이 되묻자,

최인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자네, 거기가 어떤 땅인지 전혀 몰랐나 보군. 쉽게 설명하자면-”

다 같은 땅처럼 보이지만, 땅에도 활용도에 따라서 종류가 나누어져 있다.

그 종류에 따라서 나뉘는 땅의 역할들, 만약 이렇게 나누어져 있지 않다면, 숲 여기저기에 마음대로 건물을 지을 수 있었겠지.

허준이 보고 온 땅도 바로 여기에 속했다.

설명을 들은 허준이 왜 그렇게 버려뒀는지 알 수 있었다.

‘허가가 안 나서 내버려 두고 있었던 거였어.’

분명 무언가 하기 위해서 평평하게 밀어놓은 것 같았는데.

이런 문제들에 부딪혔던 것일 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찾아간 곳은 그야말로 물 좋고, 공기 좋은 숲속 한가운데에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고 그 땅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돌아와서 생각할수록 그곳에서 느낀 감각이 너무나 좋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환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터.

“꼭, 그곳이어야만 하나?”

최인호가 되물었다.

“네. 꼭 그 자리여야 합니다.”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이유가 있겠지.”

“방법이 없을까요?”

“방법이야 있긴 한데...”

말꼬리를 흐리는 최인호.

자본주의 세상에서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던가.

다만, 말 그대로 자본주의인 세상이었기에,

한두 푼 가지고는 턱도 없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라면 어르신 중에서도 반대하는 사람이 나올 터.’

좋지 않은 흐름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여기까지 생각을 마쳤는데,

허준이 최인호를 불렀다.

“병원장님. 이러면 어떨까요?”

허준이 떠오른 생각을 설명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최인호의 눈이 빛났다.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그래서,

다음 날 아침.

한의사협회를 찾은 혜민서 대표 김예진.

협회장 박준혁이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김 대표님.”

“오랜만이에요. 협회장님. 잘 지내셨죠?”

“하하, 물론이죠. 우리 김 대표님 덕분에, 제가 요즘 살맛이 납니다.”

물론, 조금은 과장한 이야기였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혜민서의 선생들이 한의사들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주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한의사협회의 이미지도 좋아졌으며, 이런저런 토론회나 회담 및 협회의 업무를 보다보면 이전과는 다른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과찬이십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안 그래도 전해 드릴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래요? 그럼, 먼저 듣도록 할게요.”

“다른게 아니라, 복지부에서 혜민서에 감사패를 전달하려고 한다면서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감사패라니,

김예진이 생각지도 못한 일에 살짝 놀랐다.

매일 출퇴근과 주말이면 혜민서의 업무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에,

밖에서 혜민서란 단체가 가지는 힘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던 까닭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뭘 했다고.”

“뭘 했다니요? 정말, 어마어마한 일을 해내셨죠.”

박준혁이 씩 웃으며 답했다.

“참,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서요?”

“아, 다름이 아니라. 협회장님께서 힘을 좀 써주셨으면 해서요.”

김예진이 설명을 이어나갔고,

이야기를 들은 협회장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니까, 희귀난치병 센터를 만들고 싶다 이 말이지?’

좋은 이야기다.

협회장의 입장으로서도 손안대고 코풀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장소가 하필 허가가 쉽게 안 떨어지는 장소였던 거고.

이거야 뭐, 인맥과 명분을 동원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애매한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혜민한방병원에 힘을 실어주는 그림이 될 지도 모른다는 것.

그때,

“참, 그 센터는 한방병원이 아니라, 우리 혜민서가 직접 운영할 생각입니다.”

“네...? 혜민서가요?”

“네. 안될 것 없지 않나요?”

“그, 그렇긴 하죠. 법적으로 조건만 갖추면...”

“그리고 그곳에서 얻은 자료들은 지금처럼 전부 공개할 생각이니, 많은 한의사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아마, 협회장님이 크게 도움을 주신 것을 알면 다들 좋아할 거예요.”

“크흠...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이야기해 보도록 하죠.”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혜민서라면 허가를 내어주겠다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원장님!”

“김 팀장님?”

“연락 왔어요.”

“정말요?”

“네.”

허준이 눈을 빛내며,

“잘됐네요. 그럼, 바로 진행하죠."

이 소문은 순식간에 병원 안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네? 정말요? 잘됐네요.”

“잘됐다니, 오히려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이렇게 두 가지 시선이 공존하기 시작했다.

혜민서에서 진행한다고는 하지만, 혜민한방병원과의 연관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 쌤, 거기가 어딘지나 알고 하는 소리예요?”

“어딘데요?”

“서울에서 차 타고 3시간이 넘는데요. 게다가, 들리는 말에 의하면 주변에 아무것도 없대요. 치킨집은커녕 편의점도요.”

“정말요!?”

“네. 그러니, 지금 이렇게 분위기가 싱숭생숭 한 것 아니겠어요? 혹시라도 거기로 발령 나면 어쩌나 싶어서.”

이런 분위기는 한의사들 사이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혜민서 식구들보다는 수련의들 사이에서.

“아니, 이거 그러다가 그리로 가라고 하면 어쩌죠?”

“어쩌긴요. 그냥 대놓고 그만두라고 하는 이야기 아니겠어요?”

“그래도 급여만 잘 주면... 전 갈 수 있을지도?”

“오히려 인턴들이 좋겠네요. 발령 걱정 없어도 되니.”

그 이야기에,

“전 오히려 가고 싶은데...”

최승원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혜민서 식구들은,

“뭐, 가라면 가야죠.”

“그러게. 어차피 급여 많이 주지 않겠어?”

“그런데, 혜민서에서 운영하는 거로 되니, 어쩌면 급여가 줄어들지도?”

“그건 좀 곤란한데... 알잖아? 나 아직 아파트 대출도 남아있는 거.”

병원 입원실.

“아이고~ 여기 선생님들 참 대단하시네. 그런 곳을 만들겠다니.”

“젊은 양반들이 산속에서 지내는 게 얼마나 괴로울까.”

“그냥 얼핏 보면 돈도 안 되는 일일 텐데.”

“그러게 말이에요. 역시, 이 병원 선생님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니까요?”

“우리 이렇게 구경만 하지 말고, 후원이라도 좀 합시다.”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덕분에,

혜민서의 후원계좌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입원실뿐만이 아니었다.

허준을 아는 사람들, 또는 도움을 받은 사람들 모두가 이 소식을 듣고서 후원을 해왔으니까.

'열심히 해온 보람이 있네.'

그 모습에 김예진은 가슴이 따듯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   *

허준이 맥을 잡았다.

환자에게서 이전과는 다른 맥이 느껴진다.

‘이 정도면 정말 좋아지셨네.’

다른 검사 자료들도 모두 완벽했다.

그래서,

“한수희 님.”

“네?”

“오늘 퇴원하셔도 되겠어요.”

“정말요?”

“네.”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전과 후로 입원, 그리고 최근 한 번의 항암치료를 겪은 그녀는 이전과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밝아졌다.

“어머~ 드디어 가는 거야?”

“잘됐네. 잘됐어.”

“그동안 정들었는데, 다음 사람은 또 누가 오려나~”

“다음 환자 오면 잘해주셔야 해요?”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 나중에 퇴원해서 놀러 갈테니."

‘치료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다른 환자들 때문일지도.’

허준이 그들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때, 보호자로서 옆에 있던 김예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감사해요. 원장님.”

“우리 사이에 감사는요 무슨. 엊그제 선생님도 차 태워주셨잖아요. 우리 그거로 퉁 치죠.”

앉아서 이야기를 듣던 한수희가 끼어들었다.

“에이~ 원장님. 그러지 말고, 우리 예진이한테 밥이라도 한 끼 사달라고 하세요. 사람이 정이 있지.”

“아... 그, 그럴까요?”

“그럼요. 제가 사드리는 거로 생각하고 맛있게 드셔주세요. 아시다시피, 제가 음식을 좀 가려야 해서.”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일이 있어서.”

그렇게 허준이 탕전실로 향하려 입원실을 나서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어?”

“어라? 허준 원장님?”

다름 아닌, 최은진 PD였다.

“여기는 어떻게..?”

“아~ 예진이 연락받고 왔죠. 우리 이모 오늘 퇴원할 것 같다면서 도와달라고 연락이 와서요.”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김 선생님도 퇴원할 줄 알고 있었나 보네.

“원장님은 별일 없으시죠?”

“그럼요. PD님도 잘 지내시죠?”

“저야 당연하죠. 참, 제가 원장님한테 진짜로 궁금했던 게 하나 있거든요?”

“그게 뭔데요?”

최은진이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원장님. 혹시, 귀신같은 거 보거나 그러지는 않죠?”

“귀신이라니요...?”

“아, 제가 예전에 원장님 영상을 보다 보니까, 가끔 허공을 응시해서요.”

“설마요. 그냥 일종의 습관이에요. 제가 목이 살짝 안 좋아서.”

허준이 자연스럽게 답했다.

물론 속으로는 살짝 놀랐다.

‘그걸 캐치해냈다고?’

저 말을 듣는 순간,

어떤 장면인지 바로 알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매일 아침 샤워를 할때나, 양치를 할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그때 퀘스트나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종종 보이던 그 모습이 아니던가.

그래도 이제는 뭐.

아예 사라진 상태니.

“어쩐지-”

최은진이 질문을 이어가기 전에,

허준이 선수를 쳤다.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다음에 뵙도록 하죠.”

그렇게 사라진 허준.

그리고 입원실로 들어온 최은진이 김예진과 한수희에게 인사했다.

퇴원 준비를 마치고 작별인사와 함께,

병원을 나서서 무사히 집까지 모시고 난 뒤,

오랜만에 만난 둘은 가볍게 한잔하기로 했다.

도와주러 온 고마움의 표시도 할 겸.

그래서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근황이나 병원, 그리고 방송국 이야기들을 하다가,

“야, 예진아 너 근데 그거 아니?”

“뭐?”

“지금 촬영 중인 드라마가 하나 있거든? 그게 방송국에서 잘 뽑혔다고 아주 난리가 났더라고, 그래서 봤는데, 글쎄, 그거 허준 원장님 진료할 때 모습이랑 똑같더라고.”

“에이~ 설마.”

“진짜야. 네가 봤으면 너도 그렇게 말할걸? 이건 내가 방송국밥 먹으면서 생긴 감인데, 아마 그 드라마 대박 날 것 같더라.”

*   *   *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건축은 과거 허준과 인연이 깊은 뉴라이프 디자인의 대표 김태현이 맡아주기로 했다.

물론, 공짜로.

“네? 허준 선생님이 그런 곳을 만든다고요? 그럼, 제가 빠질 수 없죠. 이게 다 선생님 덕분인데.”

그리고 땅을 매입하는 비용은,

이 소식을 들은 곳곳에서 들어온 후원금으로 충분했다.

워낙, 매수자가 없었던 탓에 부지는 넓었어도 가격은 비싸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물론, 판매자로서는 그곳에 나지 않았던 허가가 나는 것을 보고 땅을 칠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이해해 주시겠지.’

그렇게 공사에 들어가기 시작한 희귀난치병 센터.

허준이 김태현에게 말했다.

“친자연적으로 지어주세요.”

“친자연적이라면...?”

“네. 황토와 나무를 이용해서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느낌이 안 나올 텐데요?”

“괜찮아요. 꼭 그렇게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김태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직접 장소를 확인해 보니,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장소.

그나마, 차가 들락날락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수 있는데 친 자연적이라면 그야말로 열악한 주거환경이 될 테니까.

'원장님께서 생각이 있으시겠지.'

그렇게 몇 주뒤,

허준이 원하는 데로 완성된 건물의 모습.

옛날 한옥과 비슷한 형태의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허준과 최인호 그리고 김태현이 서 있었다.

“이렇게 빨리?”

“당연하죠. 허준 원장님이 부탁하신 일인데요. 우리 회사 전원이 달라붙어서 작업했습니다.”

김태현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답했다.

“대단하네. 자네 회사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해주게.”

“아닙니다. 우리 형님들 모두 원장님이 이곳에 병원을 짓는다고 하니까 자발적으로 참여하셨는걸요. 그리고 아직 뒤쪽은 조금 더 손봐야 합니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옛날 느낌이로구만?”

“그건...”

그 물음에,

허준이 답했다.

“제가 그렇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 자네가 진료 보는데, 불편하지는 않겠나? 느낌은 괜찮긴 한데...”

“저보다는 오히려 환자들이 불편하겠지요.”

허준이 웃으며 답했다.

이곳의 기운을 느끼면서.

“그럼,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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