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217화 (214/230)

216화. 평범한 사람

“헛것이 아닙니다.”

유도진이 단호하게 답했다.

그때, 허준이 작두를 내려놓더니,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걸어 나왔다.

“박 원장님! 유 원장님!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에요 원장님. 잘 지내셨죠?”

“물론이죠.”

"듣던데로, 여기 공기가 진짜 좋네요. 경치도 좋고~"

"그럼요, 그래서 고른 자리인데요."

허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그렇게 계시지 말고, 들어 오세요.”

그렇게 따라 들어가서 처음 본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이게 무슨...’

여기가 무슨 민속촌도 아니고,

허준이 약재를 다듬으며 옆에서 끓고 있는 탕약이 담긴 옹기탕약기 아래에는 불꽃이 일렁이는 중이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건물의 모습도 그렇고, 병원과 비교, 아니 요즘 시대와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열악한 환경이다.

김예진 팀장님이 극찬하셨다더니.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있나 보..

그렇게 둘의 시선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향했는데,

달라진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웃고 있어?’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환자들의 얼굴이 밝다.

여기서 밝다는 의미는 그저 피부 때깔이 좋아졌다는 의미가 아닌, 환하게 웃고 있다는 뜻이다.

보통 희귀병과 난치병 또는 말기 암 환자들이 웃는 일이 얼마나 있던가.

분명히 병에 걸리기 전까지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살았을 터인데,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표정이 변한다.

고통 때문인 것도 있지만, 가치관이 달라졌기 때문이리라.

마치, 살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웃으면 뭐하냐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달랐다.

서로 웃으며 대화도 나누고, 자연스럽게 같이 무언가를 하는 중이었다.

그냥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보이는 그런 모습처럼.

“어때요? 보기 좋죠?”

허준이 둘의 시선이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꽂혀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네. 보기 좋네요."

박용준이 대답하고,

옆에 서 있던 유도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입구 쪽에서 걸어오는 두 노인이 있었으니,

“어? 아니, 유도진 선생 아닌가?”

김정우와 그의 단짝이었다.

“선생님?”

유도진이 살짝 놀라 그를 바라봤다.

다른 사람에게서도 느꼈던 그런 모습이 김정우 선생님에게도 똑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이렇게 돌아다니시면...”

“괜찮아. 많이 좋아졌어. 걱정하지 말게나.”

박용준도 재빨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오~ 그래 낯이 익다 했더니, 박용준 선생이었구만. 그런데, 자네들이 여기에는 웬일인가?”

"아, 그게... 오랜만에 휴무 날이라서 유도진 선생님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선생님도 뵐 겸, 허준 원장도 만날 겸 해서 말이죠. 또, 여기가 워낙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래, 잘 왔어. 우선 들어가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김정우가 손에 들린 약재들을 허준에게 건네며 말했다.

“오늘은 이 정도만 가져왔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수고는 무슨, 내가 즐거워서 다니는 일인데."

그렇게 건물 안으로 들어온 네 사람.

허준이 차를 가지러 간 사이에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곳 생활은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들어오면서 둘러보니, 열악한 환경이던데요.”

“맞아요. 괜히 무리하시다가 쓰러지시는 건 아닐지 걱정됩니다.”

“흐음~ 그렇게 보일 법도 하군. 그런데, 어쩌겠나? 전기와 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는데.”

“네...?”

둘은 한 번 더 놀랐다.

열악한 환경인 것은 이미 둘러봐서 알고 있었으나, 생각보다 더욱 열악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자네들이 보기에 열악한 환경만 보이던가?”

이어진 김정우의 물음에,

두 한의사가 동시에 답했다.

“아닙니다.”

“아니요.”

“그래. 뭐가 보이던가?”

“달라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유도진 선생. 잘 보았어.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네. 다들 인상 쓰고 불편한 생활에 툴툴대기에 바빴지. 그런데, 바뀌어 가더군.”

김정우가 웃으며 답했다.

머릿속에는 이미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과정들이 들어있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허준 원장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답하더군.”

“뭐라고 하던가요?”

“여태까지 살아온 생활을 전부 벗어던지고, 새로운 생활을 해야 병과 싸울 수 있다고 말이야.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얼마나 웃기던지.”

머릿속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박용준이었다.

다만, 이렇게까지 바꿔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박용준의 옆에 있던 유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과연... 허준 원장이로군요.”

생활을 바꾼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가장 쉬운 예를 들자면 다이어트로 들어도 충분하다.

정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요즘과 같은 세상에서 검색만으로도 온갖 정보들이 넘쳐 흐르고 있었으니까.

그중에서 진리는 단 하나,

먹는 것보다 사용하는 게 많으면 살이 빠진다는 것.

이 당연한 사실을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생활을 바꾸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게 아니겠는가.

이는, 병과의 싸움도 마찬가지였으니,

‘이런 환경이라면 마지못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을 터.’

그때, 허준이 뜨거운 차를 가져왔다.

좀 전에 달인 쌍화탕이었다.

“멀리서 오셨는데, 한 잔씩 들 드세요.”

“오~ 이건, 쌍화탕인가요?”

“네. 아까 달이고 있던 그 녀석입니다.”

“감사해요. 잘 마실게요. 원장님.”

그렇게 쌍화탕을 나눠마신 두 사람.

“와...”

박용준이 입을 다물지 못했고,

유도진 또한 놀라 허준을 바라봤다.

“여기가 물이 좋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오신 김에 장작 좀..”

그렇게 다음 날.

출근한 박용준.

'아이구 삭신이야.'

“박 원장님. 어땠어요?”

그때, 한 한의사 선생이 물어왔고,

박용준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정말, 소문대로 끝내주더라고요.”

*   *   *

혜민서가 운영하는 센터와 혜민한방병원에서 평온한 나날이 이어져 나가는 와중에,

새로운 한의학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 시작의 시발점은 다름 아닌,

드라마 때문이었다.

시청률이 무려 30%가 넘어갔으니,

그야말로 대박 중의 대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 이제는 다시 안 봤으면 좋겠네요.”

이동훈이 뱉은 대사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철수 엄마, 어제 봤어?”

“봤지. 그럼. ‘우리 이제는 다시 안 봤으면 좋겠네요.’ 하면서 미소짓는데, 완전 심쿵.”

아줌마들 사이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유튜브와 인터넷의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입소문과 짤들이 마구잡이로 올라오는 중이었으니까.

그리고 혜민한방병원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어? 저분... 어디서 본것 같느데..”

혜민한방병원에서 선생들이 진료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동훈은 어느 날 갑자기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뒀다며 나오지 않은 훈남 한의사.

그의 얼굴을 알아본 한 선생이 답했다.

“어..맞네. 맞아. 그 훈남 선생님.”

“그 선생님이 이동훈이었어?”

“대박...”

“그보다 소름 돋지 않아요? 저기 나오는 데스크랑 치료실 배우들도 연기가 장난 아니던데.”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혜민서 선생들.

“뭐야... 어디서 자주 보던 대사와 눈빛이네요?”

“저거 완전 허준 원장 진료할 때 모습이잖아?”

“그러게요.”

물론, 얼굴의 차이는 살짝 있긴 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허준의 그것과 같았다.

“참, 그런데 허준 원장님은 잘 지내고 계시려나?”

“그러고 보니, 박 원장. 자네가 우리들에게 독을 푸는 바람에...”

“맞아요. 그런 곳인 줄 알았으면 진작 알려 주셨어야죠.”

자신을 쏘아보는 선생들의 눈빛에,

박용준이 헛기침과 함께 재빨리 말을 돌렸다.

“크흠, 자~ 우리 토론 시작해야죠.”

허준이 빠졌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혜민서의 선생들이 모여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오히려 몇몇 선생이 새롭게 합류하기도 했고.

그리고 그 시각.

잠시, 단잠에 빠져든 허준.

그리운 진료실이 보인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여긴...’

자신이 개원했던 2층의 그 허준한의원의 진료실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진료.

“진맥 한번 잡아볼게요.”

책상으로 올라오는 두 손.

허준이 두 손의 맥을 잡았는데,

‘어?’

익숙하면서도 익숙지 않은 바로 그 맥이 느껴져 온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 맥박.

허준이 놀라서 고개를 들어 환자의 얼굴을 보니,

“할머니?”

“오랜만이야. 허준 선생.”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허준한의원의 단골 1호였던 김명자 할머니였다.

그 반가운 얼굴에,

“그동안 잘 지내셨죠?”

라고 묻는 허준.

“나야, 물론 잘 지내고 있지. 보니 선생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구먼?”

“물론이죠.”

김명자가 그런 허준의 눈을 바라봤다.

마치,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

허준도 그런 김명자 할머니를 바라봤다.

자신에게 기연을 준 것이 눈앞에 있는 존재임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처음에는 내가 잘 못 느낀 줄 알았지.’

마지막 진료 때에 느낀 맥이 바로 그 증거였다.

여태 진료를 본 환자들의 맥은 전부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언젠가 만난다면 꼭 묻고 싶었던 것을 가슴에서 꺼냈다.

비록, 그것이 꿈속일지라도.

“왜, 저였습니까? 저는 그저 평범한 한의사였을 뿐인데.”

그 물음에,

김명자가 미소지으며 답했다.

“평범하지. 그런데, 선생 같은 사람은 오랜만에 봐서 말이야. 무슨 슬픈 일이 있는지, 눈은 울어서 탱탱 붓고 술에 잔뜩 취해서 오더니, 날 보자마자 대뜸 그러더군. 몸은 괜찮으시냐고. 세상에 재주 좋은 사람은 많아도, 그런 사람은 흔치 않거든.”

“제가요...?”

“그래. 선생이 그랬어.”

허준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재빨리 물었다.

“그럼, 게임 시스템처럼 레벨업은 왜 만드신 겁니까? 결국은 없어질 것이라면.”

“아~ 그거? 방금, 선생 입으로 말했잖아. 평범한 사람이라고. 평범한 사람은 그렇게 직관적인 보상과 목표가 보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더라구."

동시에, 김명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도 지금은 그런 거 없이 잘해나가고 있잖아?”

그러고는 그대로 진료실을 나서는 뒷모습에,

허준이 소리 질렀다.

“감사합니다!”

“깜짝이야, 이 친구 감사 인사를 아주 격하게 하는구만.”

갑자기 귓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허준이 고개를 돌리니,

김정우 선생이 옹기탕약기에 부채질을 하는 중이었다.

허준이 헛기침과 함께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바라봤다.

그런 허준의 눈에는 어느 때보다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   *   *

허준이 떠난 지 어언 100여 일.

혜민한방병원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변화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유도진이었다.

평소 냉소적인 성격이었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환자에게도 꽤 부드러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변화는,

한의사 드라마 때문에 환자가 늘어났다는 것.

정확히는 평소에 노년층과 중장년층, 또는 아예 어린이 환자가 대부분이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2030의 젊은 환자들의 방문이 많아지고 있었기에 느끼는 중이었다.

어쨌거나, 출근한 유도진은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탕전실에서 탕약을 내릴 준비를 하는 중이었는데.

“원장님! 이것 좀 봐주실래요?”

고요한이 뛰어 들어왔다.

‘요한이가 뛸 정도면 엄청 급한 일인데.’

평소 움직이기 싫어하는 그의 성격을 알던 유도진이었기에,

보통 일이 아님을 짐작했다.

고요한에게 건네받은 서류뭉치.

“이게 뭡니까?”

“허준 원장님이 보내온 겁니다.”

그것들을 확인해보니,

‘이건...?’

그동안 환자들의 치료 경과를 모아서 보내온 자료들이었다.

“제가 볼 때는, 이거 거의 기적 같은 일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역시, 허준 원장입니다."

유도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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