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225화 (222/230)

외전 6화. 밥's 테라피

사람들은 말한다.

참,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맞는 이야기다.

예전처럼 굶주림이나, 전염병 또는 전쟁 같은 최악의 사건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늘 그렇듯이,

세상 전부가 이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최강대국이라 불리는 미국조차도 말이다.

그래서 곳곳에 빈민가가 들어섰고 많은 사람이 여전히 그 빈민가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미국의 한 빈민가.

낯선 간판을 본 한 남자가 중얼거렸다.

“휴... 이게 몇 년 만이지?”

그리운 간판의 모습.

몇 년이 지났는데 간판이 바뀐 것은 그저 색이 조금 바랜 것뿐이었다.

그 남자의 옆으로 지나가던 자동차가 끼익- 하는 소리를 내며 멈춰섰다.

그러고는 창문을 내리더니,

“어? 밥? 로버트 맞지?”

“오랜만이야. 샘.”

“와우~ 이게 얼마만이야? 이번에는 정말로 돌아온 거야?”

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친구. 일단은 어머니께 인사를 드려야 해서 말이야.”

“물론이지. 일 끝나면 집에 들를게. 그때, 보자고.”

자동차가 다시 지나가고,

밥도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낡은 아파트에 오르는 밥.

특유의 퀘퀘한 냄새가 느껴진다.

‘이 냄새는 여전히 적응이 안 되네.’

한방병원에서 제공해주던 숙소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지만,

그런데도 밥의 얼굴은 밝았다.

얼마 만에 만나는 가족이던가.

익숙한 문을 두드리니,

“나가요~”

그리운 목소리와 함께,

백발의 노인이 문을 열었다.

“누구- 어? 밥?”

“네. 맞아요. 할머니.”

“세상에나.”

밥이 할머니를 꼬옥 안아 주었다.

“돌아왔어요. 할머니.”

“그래. 잘 돌아왔단다. 참,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일단 들어오렴.”

그렇게 들어간 집.

오랜만에 돌아왔음에도 너무나 익숙한 느낌이었다.

‘예전 그대로네.’

주변을 둘러보는 밥에게 할머니가 묻는다.

“밥은 먹었니?”

“아니요.”

“그래? 마침, 잘됐어. 어제 구운 파이가 있거든. 어쩐지 파이를 굽고 싶더라니.”

“정말요?”

밥이 입맛을 다셨다.

일종의 조건반사였다. 어릴 적부터 먹어오던 할머니의 파이 맛은 최고였으니까.

할머니가 가져다준 파이를 건네받은 밥이 잘 먹겠다는 말과 동시에 입속으로 욱여넣었다.

‘아, 이 맛이지. 고향의 맛.’

그런 밥에게 할머니가 물어온다.

“그래. 잠깐, 휴가차 들린 거니? 지난번에 통화할 때에는 온다는 이야기가 없었잖아?”

“아~ 그건 아니고. 저 그만뒀어요.”

“뭐? 혹시, 사고라도 친 거니?”

할머니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소싯적에 꽤 이런저런 사고를 많이 쳤던 기억 때문이었다.

밥이 고개를 저으며 몇 달 전의 일을 떠올렸다.

허준을 만났던 그 날.

“밥 선생님. 오랜만에요. 잘 지내셨죠?”

“네. 덕분에요. 원장님도 잘 지내시죠?”

“원장님이라뇨. 이젠 원장도 아닌데.”

“그래도 제 마음속엔 원장님은 허준 원장님 한 분뿐입니다.”

밥의 대답에 허준이 피식 웃었다.

“그런 말 어디 가서 하지 마세요. 아마, 다른 원장님이 들었으면 분명히 미움받을 겁니다.”

“그렇겠죠...?”

“네. 그보다, 혜민서 식구들은 요새 어때요?”

“잘 지내요. 병원에 환자들도 늘어났고. 물론, 유도진 원장님이 센터로 가셔서 아직 적응 중이기는 하지만요.”

“잘 적응들 하실 거예요. 그보다, 상의할 게 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다. 사실은...”

이어진 밥의 설명을 들으며,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의 꿈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이번에 계약 연장 날짜가 다가와서 고민 중이라는 거죠?”

“네.”

“고민할 거 있나요? 원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의학을 배웠던 거라면서요. 가세요. 꿈을 향해서. 제가 병원장님께는 따로 연락 드릴게요.”

“원장님...”

몇 년간을 함께 해왔으니,

인제 와서 선뜻 말하기가 어려웠던 밥이었다.

“대신, 가서도 혜민서의 밥 선생이란 것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해요.”

상념을 깬것은 할머니의 이어진 질문이었다.

“그럼, 대체 왜 그러니? 답답하게 그러고 있지 말고. 말을 좀 해보렴. 페이도 좋았다면서.”

“할머니.”

“그래. 말해보렴.”

“저는 여기에다가 제 진료소를 만들려고 해요.”

*   *   *

빈민가 한쪽에서 공사가 한창이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밥. 이거 정말 맞아?”

“물론이지.”

“우리야 네가 돌아와서 기분 좋다만.. 네가 그래도 우리 중에서는 가장 똑똑한 편이잖아. 굳이 여기에다가 이럴 필요가 있을까?”

“우리 어릴 때 생각 안 나? 아파도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해서 힘들었을 때 말이야. 그때, 생각했거든. 우리 동네에 이런 곳쯤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그건 나도 동의하는데... 어릴 적 철부지 때나 그런 거지. 차라리 저쪽 시내로 가보는 건 어때? 버는 액수가 달라질 거라고.”

“됐어. 나한테는 이 동네가 딱이야.”

그렇게 공사가 마무리되었고,

살짝 허접스러운 간판에는 ‘밥s 테라피’라는 간판이 걸렸다.

“좋았어. 시작해볼까.”

하지만, 이렇게 직접 운영해본 것은 처음이었으니.

며칠째, 손님은커녕 파리조차 방문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확실히 생각과는 좀 다르네...’

한의원에서 원장님들과 함께했을 때는 겪어보지 못한 그런 상황.

그래서 한국에 연락해 조언을 구했다.

“어~ 밥 선생님. 이야기는 들었어요. 어때요? 할 만해요?”

김예진이었다.

원장님들이야 지금 한창 진료를 보고 계실 테고, 결국 남은 사람 중에서 실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을 떠올리니 김 선생님만 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아니요. 환자가 오질 않아요.”

“저런... 얼마나 됐는데요?”

“벌써, 4일째입니다.”

“4일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예전에 배운 좋은 방법이 있으니까요.”

“정말요?”

“그럼요. 밥 선생님. 혹시, 한국에 계실 때 들어보셨죠? 존버 라고.”

“존나 버텨라...?”

“맞아요. 허준 원장님도 처음에 환자가 없어서 존버하셨거든요. 그러다가 환자가 한 명 찾아오기 시작하면서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났어요. 그러니, 조금만 더 버텨 보세요. 한 명이 올때까지만.”

밥이 눈을 빛냈다.

허준 원장님도 처음에 그랬다니.

“조언 감사드려요. 선생님.”

“별말씀을요.”

그렇게 며칠 뒤,

처음으로 테라피 센터의 문에 걸린 종이 딸랑거렸다.

밥이 허겁지겁 문을 바라보니,

웬 꼬맹이가 와있는 것이 아닌가.

정확히 말하자면 꼬맹이라기보다는 10대의 흑인 소년이었다.

그런데, 그의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입술은 찢어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어디서 구르기라도 했는지 옷 곳곳에 먼지가 묻어있다.

밥이 그 소년을 보고는 곧바로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도 어릴 적에 이 동네에서 자랐으니까 말이다.

“도와줄까?”

소년이 밥을 노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리로 와서 피부터 닦는게 어때?”

쩔뚝이며 걸어들어오는 소년을 밥이 부축해 안쪽으로 안내했다.

소년이 방안으로 들어서자 전시된 인체모형들을 보고는 밥을 바라봤다.

‘테라피 센터라 적혀 있었는데...’

해골이랑 인체모형이 왜 있는 걸까.

이거 이상한 변태아니야?

그러고 보니 들어올 때부터 기묘한 냄새도 함께다.

밥이 살짝 경계하는 소년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니?”

“제 이름은 제이슨이라고 해요.”

“제이슨이라 좋은 이름이네. 이걸로 입술부터 닦아.”

제이슨이 건네받은 솜으로 입술을 닦았다.

묘한 냄새때문인지, 별다른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으나,

“맙소사. 이게 뭐예요?”

찢어진 입술이 후끈후끈하다.

“아, 알코올 솜이야. 따끔할 거다.”

“그런 건 진작 말해줘야죠."

“그보다 제이슨, 발은 좀 어때? 언뜻 보기에 발목을 삔 것 같이 보이던데.”

“그걸 어떻게...?”

제이슨이 살짝 놀라며 되물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녀석들을 피해서 도망치던 와중에 발목을 삐끗했기 때문이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방안에서 보이던 해부도와 해골모형 등.

어쩌면 의사일지도?

“혹시, 의사예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어쨌든, 발목을 접질렸다면 보여주겠어? 빨리 처치할수록 효과가 좋거든.”

“믿어도... 되는 거죠?”

“물론, 내 전문이거든.”

그렇게 발목을 보여준 제이슨.

밥이 제이슨의 발목을 살짝살짝 눌러보며 진단하기 시작했다.

‘꽤 심하게 부었네.’

아마, 이대로 치료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면, 오늘 밤에는 탱탱 부어올라서 진통제를 먹으며 며칠을 고생했을 것이다.

“다행이네. 생각보다 간단하겠어.”

“정말요?”

“살짝 아플 수도 있으니, 조금만 참아봐.”

그러면서 침을 꺼내 드는 밥.

그것을 본 제이슨이 화들짝 놀랐다.

“그건 뭐예요?”

“이거 침이라고, 한국의 전통적인 의술 도구란다.”

“바늘... 같은 건가요?”

“비슷하긴 하지.”

그러면서 발목 중간에 순식간에 침을 꽂아 넣었고,

제이슨은 놀라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어? 별로 안 아프네?’

생각했던 것보다는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제이슨의 눈을 사로잡은것은 발목에 박혀있는 바늘의 모습이었다.

“이대로 두면 되는 거에요?"

"맞아. 몇 군데 더 이렇게 찔러서 말이야."

이어서 순식간에 침을 놓은 밥.

그러고는 알람을 맞췄다.

이제는 잠깐 기다릴 차례.

밥은 한방병원에서 아이들을 진료 보면서 익힌 노하우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래. 제이슨, 꼴을 보아하니, 괴롭히는 놈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죠. 이 빌어먹을 빈민가 녀석들은 약해 보이는 애들을 가만히 두지 않거든요. 제가 덩치만 조금 컸어도...”

그 답에 밥이 피식 웃었다.

물론, 빈민가라서 조금 더 험악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 어딜 가더라도 소년기의 저런 문제는 마찬가지일 테니까 말이다.

동시에, 삐빅 거리면서 울리는 알람.

밥이 제이슨의 발목에 있는 침들을 순식간에 뽑고 알코올 솜으로 한 번 더 소독했다.

그러고는,

“어때? 한번 살짝 움직여보겠어?”

제이슨이 발을 살짝 움직이니,

“어...?”

아까와는 완전히 다르게 묵직함이 사라지고 통증도 거의 없어진 것이 아닌가.

“이게 대체...?”

“마법 같지?”

“네. 정말 놀라워요...”

“네가 받은 치료는 침 치료라고 한다. 그리고 이 침 치료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전통의술이지.”

“침 치료...”

제이슨이 침 치료란 말을 중얼거렸다.

지금의 이 상황이 너무나 신기했기 때문이리라.

“어때? 효과가 장난 아니지?”

고개를 끄덕이는 제이슨.

밥이 말을 덧붙였다.

“내가 이 침 치료를 배운 나라에 이런 속담이 있어. 작은 고추가 맵다고.”

“작은 고추가 맵다?”

“그래. 네가 아까 덩치 이야기를 해서 생각 났거든. 고추가 맵고 안맵고는 덩치와는 상관이 없다는 뜻이지. 자, 그럼 진료 끝났으니. 가 보거라.”

제이슨을 치료하고 며칠이 지났다.

테라피 센터에 하나둘씩 환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여기가 그 침술인가 뭔가 하는 신기한 테라피를 하는 곳이라면서?”

“네. 맞습니다. 어서 오세요.”

“허리 아픈데도 효과가 좋은가?”

“물론이죠.”

간단하게 치료를 끝내고,

오늘 온 환자들의 차트를 확인하는 밥.

‘오늘은 13명이나 찾아왔네.’

비약적인 발전이다.

진료 보는 게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물론, 설명을 이해시키는 것은 훨씬 어렵다.

애초에 기본적인 바탕이 달랐으니까.

그런데도 기분은 좋았다.

모두가 만족하면서 돌아갔기 때문이리라.

휘파람을 부르며 슬슬 퇴근할까 했는데,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제이슨이었다.

“제이슨? 너 얼굴이 또...”

그런데, 지난번과는 달랐다.

똑같이 눈이 부어있고, 입술이 터져 있었지만, 미소짓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제이슨의 옆에는 어깨동무를 한 채 쩔뚝이는 소년이 하나 더 있었다.

“선생님 말대로 매운맛을 보여줬죠. 헤헤. 이쪽은 오늘부터 친구 하기로 한 조이에요. 인사해 조이.”

“안녕하세요. 선생님. 조이라고해요.”

“다쳤네?”

“네...”

밥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미소지으며,

“그래. 환영한다. 이놈들아.”

그날 저녁.

언제나처럼 밥은 스마트폰을 붙잡고 그날 있었던 일을 엘레나에게 말했다.

환자에서 썸녀로, 썸녀에서 이제는 완전하게 연인이 되어있는 두 사람.

거리는 멀어졌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밥의 이런 노력 때문에 둘의 사이는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잘됐네요. 그럼, 동네 꼬마들이 친구가 생긴 거네요?”

“네. 맞아요. 참, 엘레나. 언제 올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족들에게 엘레나를 소개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밥의 할머니는 오늘도 어김없이 행복한 꿈자리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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