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226화 (223/230)

외전 7화. 혜민한방병원의 일상

경기도의 한 골프장.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골프공이 시원하게 날아오른다.

“나이스 샷!”

이어지는 박수 소리.

그리고 옆쪽에서 이어지는 남자의 붕붕- 거리며 골프채를 휘두르는 소리.

이곳에 모인 세 사람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한그룹의 회장 이현성과 미래그룹 회장 김양순, 그리고 골든그룹 회장 유진철이었다.

한국이 격동했던 시대를 같이 버텨온 친우이자, 경쟁자.

“유 회장. 자네, 어째 지난번보다 골프채 휘두르는 데 힘이 붙은 것 같아?"

“그러게. 어디 몸에 좋은 거라도 몰래 숨겨두고 먹나? 친구끼리 너무 하는 거 아니야? 그런 게 있으면 좀 나눠 먹고 그래야지.”

이현성이 웃으며 농을 건넸다.

그런데, 유진철이 정색하며 발끈했다.

“김양순 이 친구야. 나눠 먹으면 쓰나? 자네가 그건 더 잘 알 텐데?”

“뭐? 유 회장.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기는. 자네 회사에서 새롭게 진행 중인 사업이 우리 회사 것을 그대로 가져다가 베꼈다던데.”

김양순의 얼굴이 살짝 굳더니, 곧바로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아무래도 오해가 있나 본데? 난 아니야. 자식 놈이 신사업을 추진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아마도 잘 모르고 그랬나봐.”

“아니기는 무슨, 한두 번도 아니고 정도가 있지.”

살짝 격해지는 분위기에,

이현성이 둘을 말렸다.

“그러지 말고, 우리가 이 자리에 괜히 모였겠나?”

“하긴...”

“끄응..”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간단했다.

사업적인 이야기를 하기에는 이곳만큼 좋은 장소가 없었으니까.

“그러니, 진정하고 늘 하던 대로 결정하는 게 어떻겠나?”

늘 하던 대로란 것은 바로,

골프 내기로 이야기를 끝내자는 것.

“좋아. 그럼, 시작해볼까?”

“콜.”

일반 회사원들이 이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고 접고 하는 것을 고작 골프 내기로 거냐고 하겠지만,

이들의 관계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승부욕.

그리고 사업가적인 시각으로 봐도 이게 돈이 덜드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골프.

“나이스샷!”

“허? 유진철이, 그동안 그룹 관리는 안 하고 골프채만 휘둘렀나?”

김양순이 살짝 놀란 얼굴로 유진철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이전과는 무언가 달랐기 때문이다.

‘어디서 산삼이라도 주워 먹었나? 최근에 산삼이 나왔다고 전해 들은 적은 없었는데.’

산삼이 몸에 잘 맞았기에, 돈을 아끼지 않고 전국에 수배까지 하는 자신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산삼이 들어왔다는 연락은 받은 적이 없는데?

이런 놀람은 골프를 치는 내내 이어졌고,

당연하게도 패배라는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되었다.

“어때? 이만하면 군말 없이 물러서겠지?”

“알았네. 내가 졌어. 아들 녀석에게 말해 두지.”

유진철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몸도 개운한데다가 여기에 더해서 경쟁자에게 승리까지 맛봤으니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리라.

“휴~ 오랜만에 휘둘렀니, 땀이 흐르는구먼. 같이 사우나 갔다가 점심 먹지. 오늘은 내가 살 테니.”

그렇게 들어간 사우나.

이현성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유진철과 김양순 두 친구는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났을 정도로 승부욕이 강했지만,

이현성은 사업 분야가 전반적으로 겹치지 않았을뿐더러, 애초에 성격도 온순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잘 화해했어. 친구끼리 법정에서 치고받으면 그게 돈 지랄이지 뭐겠어? 우리끼리 그럴 필요 있나?”

“그래서 내가 점심 산다고 했잖아.”

“그런데, 유 회장. 몸이 지난번보다 좋아진 것 같아? 비결이 뭐야? 정말로, 몸에 좋은거라도 숨겨놓은 거 아니야?”

“비결? 흠... 알고 싶어?”

두 친구가 흥미로워하는 얼굴을 읽은 유진철이 몇 달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몇 달 전에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김 실장이 묘한 보고를 하더라고.”

“보고?”

“그래. 둘째가 보약을 지으려고 병원에 드나든다고 말이야. 당황했지. 둘째가 멍청하기는 해도 이런 일을 할 녀석은 아니거든.”

“그치. 자네 성격에 아들 교육 허투로 시키지는 않았을 테니."

“자네들도 알지 않는가? 그룹을 이끄는 경영인들은 언제나 행동과 말을 조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야.”

두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우리들의 건강이나 행동에 따라 주가가 움직이니...원.”

그중에서도 특히, 병원에 간다거나 하는 건강과 관련된 일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었기에, 보통은 비밀스럽게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물어봤지. 대체, 왜 그러고 있는 거냐고 그랬더니.”

“그랬더니?”

“김 실장이 이렇게 답하더군. 예약을 안 받는대.”

“뭐..?”

“그런 한의원이 어딨어?"

김양순과 이현성이 놀라 되물었다.

“그래서 나도 물어봤지. VIP 서비스 같은 것도 없냐고. 그랬더니, 있긴 있는데... 당분간은 운영하지 않는다고 하더군. 그래서 둘째가 직접 보약을 지으려고 기다리고 있다고.”

“허,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했나?”

김양순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평소 유진철의 불같은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했을 것 같아?”

그 결과가 궁금한 김양순과는 다르게,

이현성의 질문은 달랐다.

“그래서 거기가 어딘데?”

*   *   *

혜민한방병원.

거대한 건물의 1층에서 출근길에 오른 한 남자.

“어? 최 원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에요.”

허준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또 다른 허준이었다.

그렇게 진료실 대신에 병원장실로 향하는 최허준.

‘갑자기 아침부터 들어오라니, 무슨 일이지?’

“원장님. 어서 오세요. 안쪽에 이미 와 계세요.”

최허준이 병원장실 앞에 있는 비서의 안내에 고개를 꾸벅이고 병원장실의 문을 열었다.

“어~ 최 원장 마침, 잘 왔네.”

“좋은 아침입니다. 병원장님.”

“그래. 인사드리게. 이쪽은 미래그룹 이현성 회장님이네.”

‘응? 갑자기 웬...’

최허준의 머리에 순간 물음표가 솟았다.

그것과는 다르게 몸은 이미 인사를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최허준이라고 합니다.”

“이현성일세. 자넨 어디 최씨인가?”

“경주 최씨입니다.”

“오~ 이런 우연이! 나도 경주 최씨일세.”

“그러시군요.”

최인호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우리 회장님 진료를 좀 봐줬으면 하는데?”

“4층으로 오셔서 접수 하시죠."

그 대답에,

이현성이 입을 열었다.

“에이~ 그런 진료 말하는 게 아닌 걸 알고 있잖나. 여기 병원장에게 우리 최 원장 성격이 빳빳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어. 하나,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조금 바쁜 사람이라서 말이야. 자리가 자리이다 보니 할 일도 많고.”

“회장님. 다른 사람은 할 일이 없어서 아침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볼 때는 회장님께서 덜 아프셔서 그런 것이겠지요.”

“허...”

단호한 대답에 기가찬 이현성.

이런 대답을 할 줄이야.

이현성이 최허준을 바라봤다.

사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기질이 무엇이던가.

바로, 사람 보는 눈이 아니던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순수한 사람이던가, 또는 그냥 오만한 사람이던가.

아직 확실히 판단되지 않아 무례함의 댓가는 미루기로 했다.

“자네가 그래야 한다면 알았네. 내 기다리도록 하지.”

이어진 대답과 함께 순식간에 차가워진 분위기.

최허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진료 준비를 해야 해서 이만.”

“그, 그래. 내려가 보게.”

최인호가 손짓하며 내보냈고,

이어서 차가워진 분위기를 풀어내고자 미소를 지었다.

“회장님. 실망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보면 알겠지. 차 잘 마셨네.”

병원장실을 나서는 이현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최인호가 가슴을 쓸어 내렸다.

'허준. 이 친구야, 이런 건 안 가르쳐도 되는데.'

*   *   *

4층의 대기실.

이현성이 내려왔는데,

“어? 최 회장님 아니십니까?”

“아니.. 자네가 여기는 어쩐 일로?”

“아... 저야, 요새 잠을 통 못 자서 잠깐 들려 봤습니다. 그런데, 회장님께서는 여기에 어찌한 일로..?”

“나야, 소문 듣고 왔지.”

“그러셨군요.”

중년의 남자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사장들 사이에서 이곳의 소문이 급격하게 퍼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여기가 정말 예약이 없는 곳이 맞나? 한의사들도 불친절 한것 같은데.”

“아, 회장님 따로 만나셨군요? 저도 알아봤는데, 여기 한의사분들이 조금 이상하더라고요. 그래도 처음 진료 이후에는 예약을 잡아주기는 합니다.”

“그럼, 자네는 왜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나?”

“아, 저는 지난번에는 허리로 고생해서 왔었고, 이번에는 불면증이...”

“쯧쯧, 젊은 친구가 벌써 그렇게 아파서야 쓰겠나?”

“면목이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현성의 차례가 되었다.

그렇게 들어간 진료실.

최허준이 이현성을 웃으며 반겼다.

“들어오시지요. 차트를 보니, 피로감과 무기력증이라고 하셨는데. 맞으십니까?”

“맞아. 예전과 다르게 요 며칠동안 몸이 무거워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일단, 두 손을 올려주시겠어요.”

그렇게 시작된 진맥.

전형적인 과로로 인한 허증이었다.

젊은 사람이었다면 하루 푹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회복될 수 있을 터인데,

연세가 연세이시다 보니 어쩔 수 없나 보군.

“전형적인 간허증입니다. 무리한 일정과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간의 기운이 지속해서 떨어져서 생긴 증상입니다. 최근에 출장을 다녀오셨다든가 하는 일이 없으신지요.”

“그걸 어떻게..?”

얼마 전에 출장을 다녀온 그였다.

비밀리에 이루어진 출장이었기에, 대외적으로 아는 사람은 없을 터인데.

'대체, 어떻게 맞춘 거지?'

하지만, 아직 이것만으로 신뢰를 가지기에는 무리가 있다.

진짜 판단은 치료를 하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을 터.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겠나?”

“약과 수기치료를 할 생각입니다.”

“침은 사용하지 않는 겐가?”

“침은 기운을 빼는 성질이 강하기에, 지금처럼 모자란 경우에는 먼저 채워 넣고 시작하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약을 통해서 기운을 보하고 그 이후에 침으로 다스릴 겁니다. 이쪽으로 올라와 편하게 누워 주십시오."

이현성이 카이로베드위에 올랐다.

그 위에선 최허준.

그동안 갈고 닦아 경지에 오른 그만의 치료술이 시작되었다.

추나와 활법 나아가 카이로프랙틱 등이 모두 합쳐진 의술이었다.

‘역시 간땡이가 기운이 약하네.’

손이 닿기도 전에 묘하게 빨아들이는 것 같은 기분.

최허준이 손을 동그랗게 말아 쥐어 복부를 가볍게 두드렸다.

통-

소리와 함께, 몸 안으로 울려 퍼져나가는 파동.

그것을 느낀 이현성의 눈이 커졌다.

‘이건..’

입안에 박하사탕을 넣은 것처럼,

배에서 부터 온몸으로 시원한 느낌이 퍼져나가고 있었으니까.

이어진 통통거리는 소리.

그리고 어느새 잠이 든 이현성.

“다 됐습니다.”

“어? 내가 지금..”

“잠시, 졸으셨습니다."

“그렇군... 자네 손재주가 보통이 아니군?”

“과찬입니다.”

“혹시, 병원에서 나올 생각은 없나?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일해줬으면 좋겠는데. 사례는 섭섭치 않게 하지.”

“제안은 감사하지만, 죄송합니다. 회장님. 저에게 의술을 가르쳐주신 분이 늘 하시던 이야기가 있으셔서요.”

최허준이 잠시 무언가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멈춰있으면 그 자리에 머무르게 된다고 늘 강조 하셨거든요.”

“멈춰있으면 머무르게 된다라.. 허, 그 친구도 보통 사람이 아니겠구먼?"

“물론입니다. 제가 아는 한의사 중에 최고니까요.”

“그 친구는 어디에 있나?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지금, 한국에 안 계십니다.”

이현성이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치료는 끝났으니, 보약은 9층의서 이두철 원장님이 봐주실 겁니다."

그렇게 9층으로 향한 이현성.

진료 접수를 하는데,

“어?”

“어?”

낯익은 얼굴이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네?”

“유 회장한테 질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런 대기실의 모습을 훑으며 지나가는 최인호.

이거 이러다가 대기실에서 전경련 회의라도 하겠는걸?

‘그나저나, 허준 이 친구는 언제 돌아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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