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한의사-228화 (225/230)

외전 9화. 돌아왔어요

“네? 그만두시겠다고요? 갑자기 그게 무슨..”

허준의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은 김예진의 반응이었다.

혜민서의 희귀난치병 센터를 이끌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왜요?”

“그게.. 아무래도 일단 어느 정도 성과는 거둔 것 같고, 센터도 안정된 것 같아서요.

그리고 무엇보다...”

허준이 김예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거든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환자를 만나고 또는 그들의 전통적인 치료법 등도 배워볼 생각입니다.”

‘아...’

그랬다.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었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앉아있는 모습이, 자신이 알고 있던 바로 그의 모습이었으니까.

“그렇군요. 그럼, 계획은 세우셨어요?”

“일단은, 중국으로 가볼 생각입니다. 왕 선생이 언제 한번 들리라고 했었거든요. 그리고 그 이후에는 발길 닿는 대로 움직여볼 생각입니다. 참, 다음 센터는 유도진 선생님께서 맡아주시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그 물음에,

허준이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돌아오실 거죠?”

“물론이죠. 김 선생님, 아니 대표님.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요.”

허준이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이거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연락되잖아요. 그냥, 조금 긴 휴가를 떠났다고 생각하세요. ”

그렇게 시작된 허준의 여행길.

휴무인 혜민서 선생들이 배웅하러 나왔다.

“선생님. 잘 다녀오세요.”

“원장님. 무슨 일 생기시면 바로 연락해주세요. 달려갈 테니까.”

“그래도 종종 연락해 주셔야 해요?”

허준이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감사해요. 그런데, 너무 걱정하시는 거 아니에요? 제가 나이가 몇인데...”

“원장님 외국 나가본 적 없으시다면서요.”

“그건, 그렇지만..”

“에이~ 우리 혜민서 식구들이 그만큼 돈독하다는 말이죠. 건강하게 잘 다녀오세요. 원장님."

박용준 선생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준이 그 모습에 기분이 좋아 미소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비록, 센터에서 배웅하러 나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유도진 원장님이 계시니 든든하네.

첫 목적지는 중국이었다.

중국에서는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이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왕 선생님. 잘 지내셨죠?”

“이쪽으로 오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과거 인연이 있던 왕걸륜이 직접 마중을 나왔기 때문이다.

유창하지는 않지만, 대화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한국말을 익힌 왕걸륜 때문에 대화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와.. 중국 뭔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나라가 크다 보니까요. 사람도 많고, 땅도 넓죠.”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묻고,

한의학적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왕걸륜의 진료소.

“그런데, 의외네요?”

“왜요?”

“도시의 병원에서 근무하시는 줄 알았는데."

“아~ 잠시, 머리도 식힐 겸, 공부도 할 겸 이쪽으로 나왔습니다. 한동안은 병원과 대학에서 강의하느라 바빴거든요."

허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니,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셨군요. 그럼, 당분간 신세 좀 지겠습니다.”

“아닙니다. 선생님 같은 분이 찾아와 주셔서 오히려 제가 영광이죠.”

그 날부터 시작되었다.

허준은 왕걸륜의 진료와 처방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환자들의 모습도 기록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 처방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네.’

만약 나였다면 어떤 처방을 내렸을까.

의문이 이어지고, 다시 치료 이후의 효과에 대해서 관찰이 이어진다.

이쯤 되니, 몸이 슬슬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마침, 왕걸륜도 그걸 알았는지.

“이쪽은 당분간 허준 선생님의 통역을 맡아줄 친구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인근에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친구가 있더군요. 내일부터 같이 진료해보시겠어요?”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요?”

“뭐, 도시에서는 빡빡해도 이런 한적한 동네에서는 안 될 것도 없죠.”

진료를 보기 시작한 허준.

그렇게 몇 주가 지나니,

“선생님! 정말, 감사드려요. 선생님 같은 분은 처음 봐요.”

“아니에요. 왕 선생에게 진료를 받았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도시에서 허준을 찾아오는 환자들이 종종 생겨나기 시작했다.

빠르게 입소문이 퍼져나갔기 때문이리라.

‘역시, 대단한 분이시다.’

중국인은 본질적으로 다른 나라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데도 도시에서 찾아온다는 것은 그만큼 허준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 떠나볼까 합니다.”

허준이 왕걸륜에게 이별을 고했다.

왕걸륜도 언젠가는 떠날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에, 흔쾌히 동의했다.

“아쉽네요. 허준 선생님과 함께 더 하고 싶었습니다.”

진심으로 아쉬웠다.

그동안 함께 해오며 배운 것만 생각해도 한둘이 아녔으니까.

게다가 같은 환자에 대하여 토론을 할 때면,

너무나 즐거웠다.

“또, 기회가 있겠죠. 참, 대화할 상대가 필요하시면 혜민서 선생님들을 만나보세요. 분명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게 다시 오른 길에 오른 허준.

이번에는 몽골이었다.

기후에 따라 진료와 처방이 달라지는지 직접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몽골에서 몇 주간의 시간.

외지인이던 허준이 스마트폰의 사전과 어눌한 영어로 대화해가며 틈틈이 사람들의 진료를 봐줬다.

‘확실히 뭔가 다르네.’

환자들의 체질을 비롯한 몸의 기운 그리고 신기한 민간요법들까지.

그렇게 사람들이 허준을 환영할 때가 되었을 때쯤, 다시 길에 올랐다.

이번 목표는 인도.

엄청난 인구수와는 다르게 그들의 삶은 완전히 극과 극이었다.

덕분에, 허준이 할 일은 엄청나게 많았다.

이곳에서도 몇 달.

“선생님을 만난 것은 신의 은총입니다.”

그렇게 아시아를 돌았고, 유럽으로 향했다.

어눌한 영어로 허준이 환자에게 침을 들이대었더니, 총구를 들이대기도 하였다.

‘이런 침 치료는 처음이네.’

보통 사람이라면 두려움에 움직이지 못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허준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평소처럼 움직였다.

눈앞에서 환자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총구를 들이댄 농장 주인은 나아진 가족의 상태에, 깊게 사과하면서 환대했다.

그렇게 유럽의 동네도 돌아보고,

도착한 곳은 중동.

반가운 것을 볼 수 있었다.

바로, 부항이었다.

‘여기는 순서가 신기하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사혈을 한 뒤, 부항을 뜨는 데에 반해서 이곳에서는 부항을 먼저 뜨고 난 뒤에 사혈을 하고 다시 부항을 처방한다.

중동의 국가들을 돌고 돌아,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아프리카의 짐바브웨.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 중에서 굳이 이곳을 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이곳의 전통요법사들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

‘벌써 궁금해지는걸?’

*   *   *

“여기에 그 소문난 전통요법사가 있다면서?”

“외국인이라던데?”

“외국인도 전통요법사가 될 수 있는 거야?”

“그 나라의 전통요법사라던데? 세실이 실력을 인정했다더라고.”

“그 까다로운 세실이?”

전통요법사 세실.

이 근방에서 4대째 내려온 전통요법사 집안인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살면서 무조건 한번은 겪게 되는 곳이 바로 그녀의 진료소였으니까.

“도나타 알지?”

“도나타라면.. 말리네 딸아니야?”

“맞아. 어릴 때부터 허약해서 세실네에서 살다시피 한 아이.”

“그런데 도나타가 왜?”

“그 새로 온 전통요법사가 도나타를 치료했다고 하더라고."

그 시각.

세실의 진료소.

허준이 평소처럼 진료 준비를 시작했다.

스트레칭과 함께, 심호흡하고는 침과 중동에서 구매한 부항을 꺼내 들었고.

마지막에는 쑥뜸을 대신해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뜸을 준비했다.

이것은 약초에 일가견이 있는 세실의 도움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진료.

확실히 이곳에 오는 환자들은 한국의 환자들과는 달랐다.

열악한 환경과 여유롭지 못한 사정으로 인해서 아프다고 찾아온 환자들의 상태는 한국과 비교하면 훨씬 심각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선생님. 어깨가 아파서 왔다고 합니다.”

세실의 도움으로 허준의 옆에서 진료를 돕는 통역사가 영어로 말했고,

허준이 진료를 이어나갔다.

‘어깨의 염증이 심하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붓기와 열감.

이정도면 꽤 고통스러웠을 텐데.

여기 사람들은 무식하다고 할만큼 아픈 것을 참고 참다가 찾아온다.

병원에 가기에는 너무 비쌌고, 그 대안으로 전통요법사를 찾아오는 것인데.

그마저도 이렇게 참다가 오는 것처럼.

허준이 자세를 잡고, 침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이어진 침 치료.

‘이럴 땐 장침이 있었으면 좋았을 뻔했는데.’

아쉽지만, 침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지.

그나저나 김 선생님이 보내주신 침도 거의 다 떨어져 가네.

워낙 이곳저곳에서 진료를 보면서 다녔기에,

주기적으로 침을 공수받은 허준.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스마트폰이 고장 나 연락이 끊긴 상황이었기에 배낭 안에 든 침이 전부였다.

"와... 감사합니다. 선생님."

치료를 받은 환자가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진료소를 나갔고,

이런 모습이 종일 이어지다가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환자가 눈앞에 있었다.

“도나타. 몸은 좀 어떠니?”

“아주 좋아요.”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아이.

“그래. 두 손을 이리로 줘보겠니?”

이어서 맥을 잡았다.

건강한 맥박, 그리고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기의 흐름.

‘살짝 허증이 있지만, 이건 세실의 약이면 충분하겠어.’

허준이 도나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주 좋네. 앞으로는 밥 잘 먹고 잘 자야 한다?”

“걱정마세요. 선생님.”

해맑게 웃는 도나타를 바라보며 허준도 마주 웃었다.

그렇게 오늘 진료를 마친 진료소.

“선생님. 정말로 떠나실 건가요?”

세실이 물었다.

“네. 이제는 돌아가려고요.”

“아쉽네요.. 선생님께 정말 많이 배웠는데.”

“저야말로 많이 배웠습니다. 참, 도나타는 말씀드린 대로 약만 잘 지어주면 앞으로도 쭉 건강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맡겨 주세요.”

그렇게 다음 날.

허준이 도착한 곳은 공항이 아니라 짐바브웨 한국대사관이었다.

“그러니까... 이름이 이허준 씨라고요?"

“네.”

"스마트폰은 고장나고, 지갑도 잃어버렸다 이 말이죠?"

"맞습니다."

"그런데, 왜 바로 안오시고."

"사정이 있어서요."

"일단, 신원 확인 될 때까지 기다려 주시죠."

대사관 직원이 사진을 찍어 확인차 보냈다.

그러면서 녹색의 검색창에 나온 이허준의 얼굴과 눈앞의 남자를 번갈아 바라봤다.

'비슷한것 같기도 하고..'

화면에는 새하얀 피부의 선한 인상을 주는 남자가 있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뭔가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저, 죄송한데.. 혹시, 전화 한 통화만 할 수 있을까요?"

“그러세요. 어디다가 하실 건가요?"

알고 있는 전화번호가 없었기에,

허준은 혜민서의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저.. 여보세요? 이허준이라고 하는데요. 혹시, 김예진 대표님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   *   *

혜민서 행사를 마친 김예진.

본부에서 걸려온 전화에,

“여보세요?”

“저.. 대표님. 외국에서 전화가 왔는데, 대표님과 꼭 통화하고 싶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외국에서요?”

“네. 본인이 이허준이라고 하던데요?”

김예진의 표정이 살짝 심각해지자,

윤다희가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찾았어.”

“뭘?”

“원장님.”

그렇게 4일 뒤.

인천공항.

비행기에서 내린 허준이 공기를 들이마시고는 중얼거렸다.

“공기는 여전히 별로네.”

그래도 그리웠다.

문득, 이곳에서 출발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지.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깨우쳤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혹시나 퀘스트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도 있었지만, 어김없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 생각과 신분확인을 위해 들어간 사무소.

곧이어서 김예진이 그곳에 들어왔다.

“어? 김 선생님?”

“원장님! 왜 연락이 안돼요? 걱정했잖아요."

“그게..”

뭐라 답하기도 전에,

김예진의 주먹이 허준의 복부에 꽂혔다.

‘뭐야, 무슨 주먹이..’

맞아. 김 선생님 특전사 출신이었지.

깜빡 잊고 있었네.

엄청난 통증에 고개를 숙인 채, 호흡을 가다듬는 허준.

김예진이 아차 싶어 허준에게 다가갔다.

“앗, 저...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허준이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섰다.

“김 선생님한테 맞은 건 처음인데, 생각보다 많이.. 맵네요.”

“죄,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그 대답에 당황하며 변명하는 김예진.

그녀의 그런 모습에 허준이 피식 웃으며,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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