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스트 데드-14화 (14/262)

< -- 14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과거....

한달 전....

일주일 전....

3일 전....

하루 전....

12시간 전....

불과 5시간 전만 하더라도,

온 거리를 가득매우던 워커 들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 특유의 살 썩는 비린내도 공기 중으로 산화해서 정화될 정도였다.

그런데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점점 공격적인 본능을 잃어가던 놈 들이 다시 미쳐서 날뛰다니....

아파트 옥상까지 내몰린 생존자 들은 이제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예선이는 눈 앞에 벌어지는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 종잡을 수가 없었다.

"대장!"

그때 성식이가 거의 숨이 넘어갈 정도로 예선이에게 뛰어왔다.

"헉헉! 일단 옥상문은 완전히 봉쇄했어. 그리고 부상당한 애들은....."

"....."

예선이는 옥상 아래를 멍하니 응시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비는 거의 그쳤지만 그녀의 젖은 셔츠는 을씨년스럽게도 아직까지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일단 치료부터 할게."

성식이는 짧게 말을 이은 후 미련없이 뒤돌아섰다.

지금 상황은 본인에게도 매우 힘들지만 자신보다 더 힘들어 할 예선이를 더이상 재촉할 수는 없었다.

'이제..... 끝난 건가?'

긴급상황이 벌어졌을 경우을 대비해 노아에서 지침은 내려주었다.

그중 최고인 계획인 [플랜 A]가 너무나 속절없이 무너져 버린 건 확실히 비극적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절망적인 건 [플랜 A]를 대체할 다음 조치 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너무나 빠르게 무너지는 아지트를 보면서 예선이는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다.

게다가 노아에서 알려준 모든 것들은 단 5시간만에 무너져버렸다.

'어떻게 그런....'

예선이의 머릿속은 온통 5시간 전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

.

.

.

.

5시간 전.

새벽 3시

"일단 모든 준비는 완료했어. 아까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주파수를 확인해보니까 그 무전기는 제희거였어. 놈 들이 그걸 뺏앗은 거야."

"......"

성식이는 자신의 감정이 마치 모두 매말라 버린 것 같았다.

제희의 무전기에서 들리는 소리는 분명.....

"우리 애들은 항상 내 주파수에 고정시켜 놓는데 네 것으로 무전이 온 걸 보면...."

"그만해."

예선이는 성식이 말을 자르고 M16 소총을 어깨에 걸었다.

그 모습에 성식이는 기겁을 하며 얼른 그녀의 총을 빼앗으려고 했다.

"너 미쳤어? 지금 뭐하는데?"

"뭐하긴? 싸워야지."

"싸우다니? 너 총 쏴보기라도 했어?"

"영화에서 몇 번 봤어."

"야 이 멍청아! 영화랑 현실이랑 똑같은 줄 알아?! 총 쏘는게 무슨 애들 장난이야?!"

"야! 김성식! 넌 꼭 날 어린애 취급하더라?"

"네가 자꾸 이딴식으로 행동하니까 그렇지!"

"그럼 넌 얼마나 잘났는데?! 난 여기 지부장이야!"

"네가 지부장이건 뭐건 상관없어! 이거나 빨리 내놔!"

"싫어! 이거 내꺼잖아!"

둘은 M16 소총 한자루를 두고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성식이가 겨우겨우 뺏아았다.

"내놔! 내놓으란 말이야! 제희랑 현구랑 승철이랑 자유 모두 이 아지트로 돌아오게 할거란 말이야! 흐흑..."

예선이는 발악하다가 결국 제풀에 못이겨 쓰러져 목놓아 울어버렸다.

이렇게 약한 여자를 노아에서는 무슨 이유로 지부장까지 시켜놨는지......

"다 나 때문이야...나 때문에 모두 위험해졌어...흐흑!"

"......"

예선이가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니 성식이 역시 온 몸에 힘이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이 아지트에 남은 사람은 자신과 예선이를 포함해 겨우 6명이었다.

생각해보니 이런 비상 사태때 승철이와 자유가 아지트에 없는 건 엄청난 Risk였다.

사실 성식이는 승철이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능력만은 마음 속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 놈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었고, 평소에는 온순해 보이다가도 위기가 발생하면 내면 깊숙히 잠들어 있던

엄청난 카리스마를 끌어낸다.

그런데 그 카리스마가 꼭 상대를 휘어잡는 것은 아니었다.

사태 파악이 그 누구보다 빠르고, 상황에 따라 상대를 설득시키고 수긍하게 만드는 기술이 바로 승철이의 카리스마였던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약하디 약한 예선이가 여태까지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다 승철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승철이가 묵묵히 예선이의 보조가 되었던 것이다.

사실 지부장을 선정할 때도 승철이가 온 힘을 다해 예선이를 추천했다.

노아에서는 승철이를 이미 확정해놓고 있었지만 그 놈의 간곡한 청에 못이겨 예선이를 지부장으로 세웠던 것이다.

'넌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성식이는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승철이의 능력이 간절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승철이는 없는 게 현실이고, 애속하게도 자신도 힘든 상황이지만 성식이는 예선이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다.

대장이 무너지면 이 아지트는 그대로 끝장난다.

"우선....조정간을 안전으로 놓고...."

"....."

성식이가 M16 소총을 능숙하게 다루기 시작하자, 예선이는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렇게 레버(노리쇠)를 뒤로 당겨서 한발을 장전 시킨 다음에 다시 조정간을 단발로 조정해."

"성식아..."

"아직 설명 안 끝났으니까 잘 들어. 나중에 연사해서 총알 낭비하지 말고...."

".....응."

"여기 가늠쇠가 가늠자 중앙에 오도록 조준해야해.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면 되."

"....."

"M16은 오래된 소총이긴 하지만 아직은 팔팔한 놈이야. 게다가 며칠 전에 약실 청소도 했고 성능 실험도 했어. 탄알은

개인당 50발을 지급하지만 지금은 비상사태인 만큼 개인당 150발을 준비했어. 그렇다고 너무 낭비하지는 말고...."

"응...."

예선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성식이의 손에서 총을 받으려고했다.

하지만 성식이가 손에서 총을 놓치지 않자, 예선이가 약간 당황해 했다.

"약속해."

"응?"

"절대 내 뒤에 있어."

"....."

"약속하지 않는다면 난 이 총 너한테 주지 않을 거야. 설마 그게 네 명령이라고 하더라도 난 거부할 거야."

"성식아...."

"노아든 뭐든 네가 위험하다면...."

"성식아."

예선이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성식이 손에서 총을 받아들었다.

"고마워. 그리고 죽지마."

"......"

예선이는 다시 한번 성식이 눈을 지그시 응시한 후, 소총을 어깨에 매고 당당히 문 밖으로 나섰다.

"결국.....이미 마음을 정한거네...."

거실 한가운데 홀로 서있는 성식이는 그 여운을 마음 속에 새기려는 듯 쓸쓸히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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