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쿠어어!
놈 들은 아주 느리지만 밀물처럼 바리게이트를 넘기 시작했다.
어떤 놈은 발로 차서 넘어뜨렸고, 또 어떤 놈은 밀쳐내기도 했다.
의외로 바리게이트와 장애물 들이 효과를 못보자 성식이는 매우 초조해졌다.
"안되겠어."
"뭐, 어떻게 하게?"
성식이가 갑자기 움직이자 예선이가 깜짝놀랬다.
"내가 수류탄 몇 개 던지고 올테니까 여기있어."
"미쳤어? 너 혼자 뭘 어떻게 할거야?"
"기다려봐."
성식이는 예선이의 만류를 무시하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2선에는 온갖 지뢰와 폭탄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성식이는 2선 바로 뒤에 서서 수류탄 하나를 꺼내들었다.
K-400 파편 수류탄.
미군 M67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살상력이 매우 우수하다.
그러나 살상반경이 무려 15m이기 때문에 있는 힘껏 던지고 얼른 엎드려야 했다.
"젠장. 나도 훈련용 수류탄 밖에 못던져 봤는데...."
성식이는 침을 꿀꺽 삼키고 안전핀을 뽑았다.
그런데 손이 자꾸 부들부들 떨려서 놓쳐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성식이는 육군훈련소 23연대 조교 출신이었다.
또한 훈련소장 표창장도 받은 엘리트 조교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물론 실전 수류탄을 거의 만져보지 못했어도 이깟 수류탄에 겁먹을 수 없었다.
'그래. 침착하자.'
성식이는 수류탄을 두 손으로 쥐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마치 야구공을 던지듯 왼팔을 쭉 뻗어 오른손을 힘껏 휘두르고 그 자리에 엎드렸다.
사태가 급박하지만 않다면 누가 봐도 올바른 FM 자세이다.
1초...
2초.....
3초....
'뭐야? 불발인가?'
오히려 주위가 조용해지자 성식이 엎드린 상태에서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뭐야, 저 새끼?"
놀랍게도 워커 한 놈이 수류탄을 어떻게 받았는지 자기 얼굴 앞에 내밀고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쿠왕!
지축을 흔드는 엄청난 진동이 지면을 흔들었다.
훈련용 수류탄도 만만치 않지만 전투용 수류탄은 그 위력이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우르르르
-쿠워어어!
뭔가 무너지면서 놈 들의 고함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지자 성식이는 재빨리 일어나 M16 소총을 들었다.
"내가 쏠테니까 가만히 있어!"
-투다다다
성식이는 조정간을 연사로 놓고 허리춤에서 사정없이 난사했다.
안 그래도 폭탄 한번 맞고 아수라장이 된 놈 들은 폭풍 앞에 갈대처럼 힘없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워커 들이 그렇게 주춤거리자 성식이는 다시 한번 수류탄을 꺼내들었다.
눈 앞에 사방팔방 살점과 핏물이 흘렀지만 그것을 보고 역겨워 할 여유조차 없었다.
-쿠왕!
다시 한번 지축을 울리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워커 들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예상외로 수류탄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놈 들은 수류탄 한발에 5, 60명은 그냥 쓰러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갑자기 놈 들이 사방팔방 흩어지더니 제각기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이렇게되면 수류탄을 써도 별 위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어, 어떻게...."
-탕!
-쿠웨엑!
당황할 틈도 없었다.
성식이는 재빨리 M16 소총을 들어 조정간을 단발로 돌리고 한놈 두놈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총을 제대로 쓸수 있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는터라 누구에게 도움도 요청할 수 없었다.
'젠장. 자유나 승철이가 있었다면 상황이 좋았을텐데....'
성식이는 진심으로 그들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쉬워하고 있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니까 저렇게 따로따로 오면 지뢰도 별 위력이 없잖아.'
그때서야 성식이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오로지 점사로 놈 들을 쓰려트려야 하는 것이다.
거기까지 판단이 되자 성식이는 얼른 4선으로 물러났다.
"왜, 왜 그냥와?"
아까와는 달리 예선이가 어리둥절해하자 성식이는 조금 서운했지만 그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놈 들 보통이 아냐. 아까 무전기로 말할때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어."
"왜요, 형?"
지혁이가 얼른 다가와 묻자 성식이가 놈 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쟤들 몰려오는 걸 봐. 불과 몇 개월 전만하더라도 저 놈들은 떼거지로 뭉쳐다녔어."
성식이 말에 모두가 놈 들을 응시했다.
정말로 놈 들은 무언가를 피하듯 따로따로 움직였다.
"어, 어떻게 저럴 수가..."
"흐흑! 어떡해...."
예선이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었고 희주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혀, 형. 어떡하죠?"
"일단 2선이 무너지면 3선은 포기하고 무쏘로 돌진하자."
"아, 알았어요."
"그 전에 놈 들이 3선으로 오기전까지 되도록 많이 죽여야 해."
그 말에 지혁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소총을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예선이는 페닉 상태에 빠져 그대로 주저 앉아있고, 희주 역시 주저 앉아 울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실제 전쟁같은 일이 벌어지니 일반인은 감당하기 힘든 페닉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하긴, 수류탄 터지는 걸 보고 쓰러지지 않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이제 성식이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은 지혁이 뿐이었다.
"지혁아, 군대는 어디 나왔냐?"
"예? 형, 저는 공익인데...."
"....."
이런 우라질!
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성식이는 다시 한번 총쏘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 사이 놈 들은 2선 앞까지 쳐들어왔다.
"저렇게 따로오면 지뢰 위력이 별 볼일 없을 거야. 너 그럼 FPS는 해봤냐?"
"예? 아, 예. 형! 예전에 카운터 스트라이크에 미쳐있었어요."
"그래, 너 답다. 아무튼 넌 단발로는 무리니까 점사로 쏴서 죽여."
"알겠어요!"
-쾅!
-쾅!
2선으로 돌파한 놈들이 지뢰를 밟고 풍선처럼 터졌지만 효과적이지는 못했다.
"지금이야, 쏴!"
-타탕!
-쿠웨엑!
예전에 '사격왕'이었던 성식이의 사격 솜씨는 정말 대단했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집중력이 더 올라갔을 수는 있지만, 제대한지 몇 년이 지났어도 솜씨가 녹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지혁이가 총을 정말 못쏜다는 것이다.
20발을 쏘면 1발이 맞을까 말까였다.
역시 게임과 현실은 너무나 차이가 심했다.
"혀, 형! 너무 귀 아파서 못 쏘겠어요....."
"그냥 쏴! 이새끼야!"
성식이가 소리를 질렀지만 지혁이는 눈물까지 흘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는 사이 놈 들은 이제 2선을 돌파하고 3선 문턱까지 쳐들어왔다.
더 기가막힌 것은 앞선 놈들이 지뢰를 밟고 터져죽자 한놈 한놈씩 그 길을 되짚고 온다는 것이었다.
꼭 누군가에게 고도의 훈련을 받은 것 같았다.
"안되겠다. 어서 도망가자!"
성식이는 더 이상 맞서는 게 무의미 하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아직도 페닉상태에 빠져있는 예선이가 좀처럼 일어서질 못했다.
"예선아! 어서 일어나!"
성식이가 소리쳤지만 예선이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않았다.
"형! 희주가 없어요!"
"뭐?"
성식이가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정말로 희주가 보이질 않았다.
-번쩍!
갑자기 후방에서 라이트 빛이 환하게 비춰졌다.
"뭐, 뭐야?"
-부우웅!
나란히 서있던 무쏘 2대 중 한대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면서 사정없이 달려들었다.
성식이는 미쳐 살펴볼 틈도없이 예선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사이 무쏘는 3선을 향해 달렸고, 놈 들 역시 차 속도를 무시하고 달렸들었다.
"으윽!"
겨우 사고를 면한 성식이와 지혁이는 팔을 움켜쥐고 일어섰다.
"예선아 괜찮아?"
자신의 팔도 성치 않으면서 성식이는 예선이부터 챙겼다.
"...으, 응!"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선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벌떡 일어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뭐야? 뭐가 어떻게..."
"놈 들이 2선을 돌파했어. 그런데 희주가...."
"희주? 희주가 왜?"
예선이가 재촉하며 물었지만 성식이는 고개를 돌려 3선에서 워커들에게 둘러쌓인 무쏘를 쳐다보았다.
"서, 설마 희주가..."
"그런가봐...."
"도와줘야 해!"
"그건 안되!"
성식이가 얼른 예선이의 팔을 붙잡았다.
"저러다 희주 죽어!"
"너도 같이 죽어!"
"....."
-부우웅!
그런데 희주가 탄 무쏘가 다시 한번 굉음을 내더니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기적적으로 놈 들 사이를 빠져나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운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쿠와아앙!
"안돼!"
예선이가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지뢰에 걸레가 된 무쏘는 엄청한 화염을 내뿜으며 공중으로 한번 튀어올랐다가 다시 지면으로 쳐박혔다.
그 바람에 3선에 매설된 지뢰가 모두 터져 아예 불바다가 되었고, 그 불에 닿은 놈 들은 순식간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이곳을 빠져 나갈 방법은 아예 사라졌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그 불바다 때문에 놈 들이 다시 주춤거린다는 것이다.
"이런 젠장! 젠장!"
성식이는 거친 욕을 쏟아내면서 힘이 빠질대로 빠진 예선이의 팔을 붙잡고 후방으로 내달렸다.
"헉헉! 형 같이가요!"
지혁이가 필사적으로 내달려 성식이와 같이 뛰기 시작했다.
평소에 운동이라면 질색하는 놈인데 이렇게 미친듯이 뛰는 걸 보니 살고자하는 욕망이 강한 것 같았다.
더군다나 이마에 피를 줄줄 흘리고도 지혁이는 온통 살고자하는 생각 뿐인 것 같았다.
"승효야! 세희야! 내려!"
"우아아앙!"
나머지 무쏘에 타있던 꼬마 들은 성식이 팔에 매달려서 펑펑 울어댔다.
희주가 아이 들마저 위험에 빠트리게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지혁아. 네가 세희를 안아."
"예, 형!"
지혁이는 세희를 품에 안았고 성식이는 한 손으로 승효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예선이의 손을 붙잡았다.
"옥상으로 가자!"
"예."
이렇게 생존자 들은 아파트 마지막동 옥상을 향해 엘리베이터 앞으로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