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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데드-18화 (18/262)

< -- 18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어휴...진짜 죽다 살아났네...."

자유는 뒷자석에 널부러져서 큰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같은 심정이었지만 엑셀을 실컷 밟는 걸로 위안을 삼아야했다.

어쨌든 우리는 기적적으로 그 지옥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꾸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어 그렇게 기쁘지만은 않았다.

자꾸 뭔가가 찝찝하다랄까.....

"너도 나랑 같은 생각이냐?"

"예?"

"너도 분명 느꼈을 거 아냐. 아까 놈 들을 상대할 때 말이야."

확실히 설화 누나는 뭔가 짚히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넌 어디서 느꼈냐?"

"글쎄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총을 쏠 때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긴 했다.

"총을 쏠 때 놈 들이 잠시 주춤하더라고요.... 아마 그때부터...."

"그 전에는 어떻게 했는데?"

"....음.... 총을 쏘든 칼로 후비든 그냥 무작정 달려들었죠."

"그렇군."

설화 누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잠시 창문을 응시했다.

빗줄기는 다시 거세지기 시작했고 저 멀리서 먹구름이 번쩍였다.

"참으로 뭣같은 날씨네."

자유는 아무 생각없이 그저 환경이 변하면 바로 적응하는 것 같았다.

아까는 거의 죽다 살아나다 싶이 행동하더니만....

그런데 그때 갑자기 뭔가가 생각이 번뜩였다.

아까 그 이상하다고 느낀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았다.

"누나."

"왜?"

"혹시 제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게 설마...."

"흥. 이제 알았냐?"

설화 누나는 콧웃음을 치면서 몸을 앞으로 당겼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놈 들이...진화하고 있는 게 맞죠?"

"뭐? 놈 들이 어쨌....우웁!"

"넌 좀 사라져!"

내 말에 자유가 화들짝 놀라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고개를 내밀었지만 설화 누나가

얼굴을 밀어버렸다.

"아오! 진짜, 누나 나한테만 왜 그래요?"

"왜? 거지같은 년이 얼굴 밀어서 기분이라도 상했냐?"

"......"

결국 자유는 입을 꾹 다물고 우리의 대화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불쌍한 놈....

"어쨌든 나를 비롯해서 놈 들이 심상치않게 변하고 있어."

"그래도 누나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오히려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잖아요."

"맞아. 나랑은 확실히 틀려.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틀린지를 모르겠어."

나와 누나가 골똘히 생각하자 자유가 다시 쓰윽 얼굴을 내밀었다.

"저기 제 생각은요...."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면 이번엔 발로 차버린다."

"으윽....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말해봐."

"그러니까 아까 승철이가 진화한다고 말했을 때 언뜻 생각난건데요. 누나는 좋은쪽으로 진화하고 놈 들은 나쁜쪽으로 진화하는 게 아닐까요?"

"뭐?"

"아, 아뇨...."

누나가 눈을 치켜뜨면서 되묻자 자유가 움찔하면서 얼른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나역시 자유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표현을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였을 뿐이다.

"사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정말?"

"네. 진화라는 표현까지는 좀 오버인것 같구요... 워커 들의 공격적인 성향은 그대로이지만 뇌까지 활용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는 말은 생존자 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뜻이네."

"아무래도 그렇겠죠. 워커 들이 생각하는 능력까지 갖추게 된다면 분명 집단으로 덤빌 것이고 무작정 달려들지는 않을테니까요."

"으음. 정말 그렇겠네...."

그건 정말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처음 바이러스가 확산되었을 때 워커 들을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매우 벅찼지만, 지금은 치밀하게 놈 들의 행동과 습관을 분석하고 사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결책까지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측 가능한 상황'일 때 대응할 수 있는 해결책일 뿐이다.

만약 우리의 예상대로 놈 들에게도 생각하는 능력이 갖추어지게 된다면 상황은 정말 최악으로 변할 수도 있다.

즉, 놈 들의 행동이 '예측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그럼 누나는 어떻게 바이러스를 극복한 거에요?"

내 질문에 누나는 기억을 곱씹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글쎄.... 기억이 잘 안나지만....어느 순간 깨어났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눈을 딱 뜨고 정신을 차려보니까 내가 놈 들 사이에 서있더라고. 처음에는 소리를 지를

뻔 했어. 너무 무서웠으니까. 하지만 온 손과 발이 부르트고 찢겨진 것을 보고 얼른 기억을 떠올렸지. 내가 바로 그 바이러스를 전염시킨 장본인이었다는 걸...."

"....."

갑자기 차 안 분위기가 무거워졌지만 고맙게도 누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내가 보통 인간 들과 똑같이 행동하면 안될 것을 분명히 알았어. 그리고 더 이상 생고기를 먹을 수도 없었지. 이게 마치 마법에 풀린것처럼 워커일 때

먹었던 인육 들이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만 같았어. 어떨 때는 눈알이 튀어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몸 어딘가에 내가 먹었던 신체 일부가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

"으윽..."

자유가 자기도 모르게 기겁을 했지만 누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홀로 담아두었던 혼자만의 고민을 모두 털어내듯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먹을만한 음식을 찾기로 했지. 이대로는 미쳐 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다행히 바이러스가 점점 회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놈 들은 모르더라고.

그래서 마트 이곳저곳을 들려서 인스턴트를 위주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어. 그게 지금으로부터 2주일 전 이야기야. 그런데...."

갑자기 누나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꼭 누군가를 찾는 듯한 제스쳐였지만 차 밖에는 어슬렁거리는 몇 놈 빼고는 크게 이상할 것이 없었다.

"꼭 나를 지켜보는 듯한 놈이 있었어."

"예? 그게 누군데요?"

우리가 놀라서 물었지만 누나는 대답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앨범을 보여주었다.

"혹시나해서 몰래 찍어둔거야. 사실 휴대폰을 꺼놨는데 정신을 차리자마자 다시켰었거든. 다행히 내 바지주머니에 예비 밧데리랑 충전기가 있어서 폰을 살릴 수가 있었지."

누나가 보여준 사진에는 온통 워커 들밖에 없었는데, 그 중 맨 뒤에 있는 키 큰 놈이 매우 거슬렸다.

마치 뭔가를 아는 듯한 눈ㅤㅂㅣㅌ으로 누나의 카메라를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은데 정말 다른 놈들과 분위기조차 틀렸다.

"이 놈이군요."

"그래. 난 그래서 이 놈의 눈을 겨우 피해 대형 마트 안으로 숨어들었어."

"누나한테 열쇠가 있었어요?"

자유가 얼른 묻자 누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이래뵈도 중국에서 키운 스파이야. 그딴 똑딱이 버튼 열쇠쯤은 1분도 안되서 풀 수 있어."

".....그러시군요."

"아무튼 마트 안에서 승철이를 만나고 지금까지 오게되었지만, 아직도 내 머릿속은 그 놈 얼굴이 떠나질 않아."

"왜요?"

"그 놈은 나하고 같은 부류였으니까."

"....."

누나의 이야기를 듣고있자니 정말 심상치않은 일이 벌어질듯한 예감이 들었다.

더군다나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차는 아지트 입구 앞까지 오게되었다.

"분위기가 좀 이상한데?"

"정말이네...."

아지트 건물까지 올라가려면 언덕을 200m 더 올라가야하지만, 입구부터 뭔가 휩쓸고간 흔적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살펴보고 싶어도 워낙 비가 많이 내린대다가 먹구름이 빛을 가려 주위는 너무 어두웠다.

"승철아, 잠깐만...."

자유가 얼른 차문을 열고 무언가를 집더니 다시 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리고 그 물건을 대충 살펴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싸악 굳어졌다.

"왜 그래?"

"이, 이거...."

승철이가 얼른 그 물건을 내밀자 나는 그것을 받아보았다.

그리고 더 이상 지체할 겨를도 없이 악셀레이터를 꽉 밟아 거침없이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진정해, 임마."

당황한 누나가 내 팔을 붙잡았지만 난 절대로 진정할 수가 없었다.

내 손에 든 것은 다름아닌 우리 생존자인 제희의 무전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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