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4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1시간 뒤.
생존자 들은 각자 트럭을 가지고 아파트 입구에 나와있었다.
"지혁이 형! 나도 나가고 싶어!"
"안돼. 차 안에 있어."
"오빠~~."
"어허! 안 된다고 했다!"
지혁이는 아이 들을 차 밖으로 못나오게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볼을 잔뜩 부풀린 아이 들이 혀를 내밀고 쏙 모습을 감췄다.
아무래도 처참한 바깥 세상을 너무나 어린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건 정말 의외였지만 매우 잘한 일이었다.
늘 건담과 세이버에만 미쳐 있는 줄 알았는데...
"자아, 이제 우리 희주를 위해 명복을 빌어주자."
우리는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차 앞에 서서 한동안 고개를 숙였다.
희주는 별로 눈에 띄지 않은 아이였지만 묵묵히......
"......"
조용히 집 구석에만 있었다.
으음...하지만 같은 생존자이었으니 그 감정만은 특별하다.
게다가 희주가 이렇게 된 것도 내 탓이 크고....
"준비는 다 됐어?"
"응."
기도를 마친 예선이가 내 옆에 다가와서 슬쩍 물었다.
아무래도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온갖 인상을 쓰고 있는 성식이 때문인 것 같았다.
"그 남자는 실었어?"
"응. 냉동차에 21도로 맞춰놓고 침대에 눕혀놨어."
"고생했네."
"아냐. 언니가 다 했지 뭐...."
예선이는 설화 누나를 쳐다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둘이 일하면서 급속도로 친해졌다 보다.
어쨌든 그건 잘된 일이었다.
여자는 단 2명 뿐(아이 들 빼고)인데 모두 굵직한 경력 들을 가지고 있어서 둘이 힘을 합치면 우리가 생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반대로 남자 들은....
나는 하사관을 제대한지 얼마 안ㅤㄷㅚㅆ고, 자유는 편의점 알바생이었으며 성식이는 고시생에 지혁이는 오타쿠였다.
"......"
뭔가 엄청나게 꿀리는 군.
게다가 성식이는 나랑은 사이가 좋지않고 자유랑은 대판 싸워버렸고 말이야.
"그런데 어디로 갈건지 생각해봤어?"
"음...그게..."
사실 애 들이 흩어지고 나서 나와 자유는 시간을 쪼개 노아에 접속했다.
그리고 우리 들의 사연을 게시판에 올리고 접속 중인 서울 생존자 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들은 우리 사정을 듣고 매우 놀랬으며 자신 들도 시크릿-X 바이러스 감염자를 찾겠다고 했다.
서울 생존자는 약 500명 정도 있는데 확실히 수도권이라 정보가 많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31사단으로 가서 무기를 더 챙겨올 것을 충고했고 왠만하면 고속도로를 이용할 것을 신신당부했다.
워커 들을 지배하던 바이러스는 점점 그 위력이 떨어지고 있지만, 시크릿-X의 등장으로 다시 긴장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서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설화 누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예선이나 자유는 설화 누나에 대해 호의적이지만 나머지 애들은 아직 무서워하는 것 같았고, 성식이는 100% 적대적이었다.
우리가 설화 누나에 대한 마음이 하나로 뭉쳐지지 않은 이상 남에게 쉽게 말할 수는 없었다.
"우리 서울로 가는 게 어때?"
"서울?"
"응. 예상외로 서울은 시크릿-X 감염자가 발견되지 않았나봐. 게다가 시크릿-X에 대응하려면 생존자 들끼리 뭉쳐야 할 것 같아. 우리끼리는
아직 무리야."
"흐음....그럼 시크릿-X는 광주에서만 발견된 걸까?"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서울지부에서 동부지역(경상, 강원)에 연락을 해본다고 했어."
"그랬구나..... 하지만 서울로 가기 전에 들릴 곳이 있어."
"어딘데?"
"용인에 있는 한국 바이오센터야."
"바이오...센터?"
"응. 그곳에 정밀 기계 들이 많아서 시크릿-X에 대해 좀 더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르거든. 설화 언니랑 이미 이야기는 끝났어."
"자유랑 지혁이 너네 들은 어때?"
자유와 지혁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 누나, 형님 들 의견에 찬성이에요."
"나도 물론 찬성인데..."
자유가 말 끝을 흐리며 어딘가를 응시하자 모두가 인상 들이 굳어졌다.
그곳에는 성식이가 멀찌감치 서있었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검정색 아우디 A5 시리즈를 맨 앞줄에 세워놓고 있었다.
하지만 성식이가 그렇게 크게 잘못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성식이가 그런식으로 화를 내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성식이는 어제 최선을 다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예선이나 아이 들이 성식이를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다만,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다보니 모두가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의견이 안 맞을 뿐이다.
"내가 가서 말할게."
"아냐. 너보다는 내가 나을 것 같아. 31사단에 먼저 가는 거 맞지."
"응."
예선이는 성식이에게 다가가 뭐라고 하더니, 서로 약간 얼굴이 상기되다가 성식이가 차로 돌아가 문을 거칠게 닫아버렸다.
"쟤는 도대체 언제까지 저럴 건지 모르겠어."
결국 예선이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냥 당분간은 내버려두자. 지혁아. 우리 생필품은 충분히 챙겼지?"
"예, 형~ 한 30일은 끄떡 없을 거에요."
"잘했다. 그럼 성식이가 앞장서고 그 뒤에는 자유가 갈거야. 그리고 지혁이가 그 뒤를 따를 거고 내가 맨 뒤에 설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트럭 짐칸으로가서 소총 2자루와 탄피 60발을 꺼냈다.
그리고 자유, 지혁이에게 각자 총 한자루와 탄피 30발을 건내주었다.
"이건 비상용이야.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먼저 조치하지 말고 꼭 무전을 해."
"알았어."
"네, 형."
"자아, 이제 진짜로 출발하자. 그리고 우리 최종 목적지는 서울이지만 그전에 31사단에서 무기를 충분히 챙긴 후에 용인에 있는 바이오센터로
갈거야."
모두가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고 성식이가 앞장섰다.
날씨는 어제의 폭우가 무색할만큼 화창했고, 워커 들은 거리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피비린내는 우리의 아지트에서 흘러나와 도시 전체를 물들이고 있었다.
우리가 없앤 놈 들의 수만 대략 500명.
뼈와 살이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흐른다는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릴 정도이다.
"휴우....이러는 내가 참 괴롭다...."
우리가 출발하기 전, 나는 자유에게 은밀히 부탁한 것이 있었다.
그래서 자유없이 예선이와 설화 누나 둘이서 그 놈을 힘들게 옮겼던 것이다.
나는 자유에게만 주파수를 맞추고 무전을 했다.
-치직! 자유야. 준비한 건 다 됐지?
-응. 근데 괜찮겠어?
-어쩔 수 없잖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전염을 막을 수 없어.
-에휴.... 나도 모르겠다.
-내가 비상등을 켜면 시작해.
-알았다.
우리가 어느 정도 아지트에서 멀어지자 나는 비상등을 켰다.
그리고...
-쿠아아앙!
자유가 미리 설치해둔 폭탄은 어마어마한 위력으로 터져버렸고, 거기에 놀란 아이들은 차를 멈춰세우고 하나 둘 내리기 시작했다.
"스, 승철아....무슨..."
"미안. 미리 이야기 했어야 하는 건데....."
예선이는 상당히 충격을 먹었는지 손을 부르르 떨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때, 성식이가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아게 다가왔다.
"무슨 짓이냐?"
"전염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으면 모든 걸 무책임하게 날려버리는 게 니 스타일이냐?"
"야, 김성식. 그만 해라."
자유가 성식이를 위협하자 성식이는 살짝 입고리를 올렸다.
"아, 넌 모든 걸 초토화시키는 대장 꼬봉이냐?"
"아니 그런데 이 새끼가, 진짜!"
자유가 거의 주먹을 들려는 찰나, 나와 예선이가 겨우 그 둘을 떼어놓았다.
"그만해, 자유야."
"하지만 저 새끼가..."
"그만!"
"쳇!"
자유는 결국 내가 정색하는 표정을 보고서야 자신의 차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등을 돌려 성식이 앞에 섰다.
"뭐냐? 파괴자?"
"성식아. 네가 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하니까 협력해주면 안될까?"
"내가 협력해주면 넌 나한테 뭐해줄건데?"
"야, 김성식!"
예선이가 한마디하려고 하자 팔을 들어 가볍게 진정시켰다.
"만약 내가 여기서 한명이라도 더 잃는다면 너한테 모든 걸 넘길게."
"뭐?"
"...."
예선이가 깜짝놀라 소리쳤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지않고 성식이 눈을 끝까지 쳐다보았다.
성식이 역시 약간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지만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흥. 좋아. 어디 네가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보자. 내 예상에는 얼마 안걸리겠지만 말이야."
"...."
성식이는 그 말만하고 자신의 차로 돌아가려다가 예선이 옆에 멈춰섰다.
"저 새끼 하는 말 잘 들었지. 그때 내가 뭘 어떻게 하든지 넌 군말없이 따르길 바란다."
"...."
예선이는 아무 말없이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아, 이래서 난 이런 역할 하기 싫다니까....
"승철아..."
"괜찮아. 난 자신있으니까."
난 전혀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예선이의 두 손을 붙잡고 미소를 지었다.
거울로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손발이 엄청 오글거릴 거야....
"응. 널 믿을게."
예선이는 약간 울먹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히야~~~아주 신파극을 찍고있네."
"....."
누나 제발 분위기 좀 파악하면 안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