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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데드-25화 (25/262)

< -- 25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휴우...어렵다...."

설화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고 기지개를 쭉폈다.

냉동차의 온도는 21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지만, 팽팽한 긴장감 속에 해부를 한지라 예선이와 설화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계획대로 놈의 장기나 심장 같은 주요 신체 부위는 해부하지 않았지만, 다리 근육과 혈관 상태는 아주 꼼꼼하게 체크했다.

"그런데 별로 이상할 것도 없네. 그냥 피가 없다는 것 빼고는."

"그러게요.... 저도 워커를 해부한 건 처음이라 뭐라고 할 수가 없네요."

예선이는 살짝 마스크를 내리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아무래도 정밀 검사를 해봐야겠어요."

"그것보다 이렇게 먹을 것도 없는 놈 해부해서 뭘 건질 수나 있을까?"

"그래도 시크릿-X가 뭔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아직 중요한 부분은 손대지도 않았으니까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구요."

"쳇! 미국 놈들 정보 자료만 있으면 이런 개고생은 안해도 되는데."

설화가 투덜거리자 예선이는 미소만 띄웠다.

"그런데 어디까지 왔을까요?"

"글쎄.... 자유한테 무전이나 해보자."

설화는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내 주파수를 맞췄다.

-치직! 야, 어디까지 왔냐?

-논산이요.

-논산이 어디쯤인데?

-아직 3분의 1밖에 안왔어요.

-알았다. 야, 그리고 좀 쉬었다 가자 그래라. 우리 2시간 내내 해부만해서 힘들어.

-알았어요. 승철이한테 말해볼게요.

-오냐.

자유와 무전을 끝낸지 1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차가 덜컹거리면서 급하게 멈춰섰다.

"어라? 벌써 휴게소에 도착했나?"

"그런가봐요."

예선이와 설화는 서로 기쁜 표정을 지으며 냉동차 입구문을 열려고 했다.

-치직! 누나! 아직 문 열지마세요!

-뭐, 뭐야? 갑자기 왜?

-아무튼 아직 나오지 마세요. 알았죠?

-뭐야? 무슨 일인데?

-설명할 시간 없어요. 일단 나중에 이야기 할게요. 치지직!

"어,어? 뭐야? 왜 무전을 꺼버려! 자유 이 새끼, 차에서 내리면 뒤졌다!

흥분한 설화가 고래고래 소리질렀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모습에 예선이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혹시 무슨 일 생긴 걸까요?"

"글쎄다. 에이씨! 갑자기 뭔 일이래?"

결국 설화는 털썩 주저앉아 애꿎은 놈의 허벅지만 메스로 찔러대고 있었다.

하지만 설화나 예선이가 생각한 것보다 밖의 문제는 매우 심각했다.

고속도로 한복판에 차를 멈춰선 일행은 둘로 갈라져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너무 많이 참았던 탓일까?

아니면 성식이에게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던 탓일까?

사실 성식이가 불안해 보였던 건 사실이지만 설마 이런곳에서 일을 저지르려고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야, 김성식. 아까 31사단으로 안가고 바로 고속도로 타고 올라온 이유가 여기 있었냐?"

자유가 으르렁대며 물었지만 성식이는 태연한 표정으로 아우디 번넷에 기대고 앉아 고개만 까닥였다.

"어. 어차피 논산에 육군훈련소가 있으니까 무기 구하는 건 식은죽 먹기잖아."

"야, 너 지금 논산이 어떤 상태인지 몰라?!"

"잘 알지. 바이러스에 전염된 훈련병 들과 조교 들이 득실대는 곳이잖아."

"......"

확실히 성식이는 나를 어떻게든 짓밟아야 속이 풀리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모두가 위험에 빠질 수가 있다.

"성식아.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겠는데 이건 정말 아니다."

"그럼 넌 나한테 어떻게 증명해 보일건데?"

"....뭘?"

"우리 들 중에 단 한명도 안 잃을 자신이 있다며. 하지만 난 말만 번지르르한 놈은 정말 싫거든."

"야, 승철이가 너같은 놈인줄 아냐?"

자유가 비꼬듯이 말하자 갑자기 성식이가 벌떡 일어나서 바로 앞에섰다.

"야, 꼴통. 아까 네가 지랄지랄 할 때 그냥 넘어갔는데 이건 나랑 승철이 이야기이니까 넌 좀 나대지말고 빠져라."

"너같은 미친 새끼한테 내 소중한 친구가 욕먹고 있는데 오지랖 넓은 내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그런다, 어떡할래?"

"....."

자유야, 너가 날 그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감동이다.

아,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자유와 승철이는 서로 키도 비슷한 편이라 뒤에서 살짝 밀어버리면 입술이 부딪힐 정도로 붙어있었다.

서로의 입김을 그렇게 가까이서 맡으면 기분이 상쾌해지나?

"둘이 그만해. 성식이 말대로 이건 나와 쟤 문제이니까 자유 넌 가만히 있어."

"아오, 야! 이승철. 넌 저새끼 말 듣고도 열받지도 않냐?"

"별로. 그러니까 좀 얌전히 있어라."

"쳇!"

자유는 툴툴거리면서 괜히 얌전히 굴러다니는 깡통을 멀리 차버렸다.

짜식! 누가 조기 축구회 공격수 아니랄까봐 멀리도 차는군.

아무튼 난 뒤에서 궁시렁대는 자유를 애써 무시하고 성식이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내가 원하는 거?"

마치 그런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성식이는 기분나쁘게 웃으며 고속도로 표지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크큭. 저기 저 표지판 보이지? 육.군.훈.련.소라고 쓰여 있는 거 말이야."

"그래."

"바로 거기서 무기를 가져오는 거야."

"그럼 우리가 위험해지잖아."

"누가 우리 모두 가자고 했냐?"

"그럼...."

"너와 나, 단 둘이 가자고."

"......"

뭔가 가슴이 꽉 막혀오는 걸 느꼈다.

예전부터 성식이가 승부욕이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야, 김성식. 네가 아주 미쳤구나. 하긴 미친 놈한테는 매질이 최고라더라, 이 새끼야. 오늘 나한테 한번 죽어봐라."

눈이 돌아갈대로 돌아간 자유가 총을 들고 달려들었지만, 지혁이와 내가 가까스로 말리는 바람에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자유야! 제발 좀 그만해!"

"놔! 저 미친 새끼 죽여버릴거야!"

"혀, 형! 좀 참으세요! 여기서 이러시면 어떡해요! 승효랑 세희가 보고 있다구요!"

"아악!"

분에 못이긴 자유가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지만 우리가 거의 구겨 넣다시피 차 안으로 밀어 넣어버렸다.

그 사이 성식이는 대담하게도 그렇게 생쇼를 벌이고 있는 우리 들에게 천연덕스럽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자아, 이 도전 받아들일 거야? 말거야?"

"야, 김성식. 그딴건 너 혼자해라. 더 이상 내 인내심 시험 하지마."

난 정말 성식이란 인간을 증오할 정도로 화가 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꾹꾹 참고 있는 건 예선이와 아이 들이 날 믿고 따라줬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믿음을 주는 소중한 사람 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순 없는 일이었다.

만약 내가 대장이 아니었더라면 자유가 나서기도 전에 성식이와 둘 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피 터지게 싸웠을 것이다.

"그럼 내 제안을 승낙해."

"거절한다. 너 혼자해."

"아, 내가 깜빡했는데 넌 내 제안을 거절 할 수 없을거야."

성식이는 거만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들의 유용한 식량이 바로 내 손안에 있거든."

성식이는 주머니에서 왠 열쇠 고리를 꺼내서 손가락에 끼우고 빙글빙글 돌렸다.

"요즘 자물쇠는 별게 다 나오더라고. 저 좌물쇠는 총으로 쏴도 안 깨질만큼 튼튼하대. 즉, 이 열쇠없이는 저 식량창고를 열 수 없다는 뜻이지."

순간 머리에 뭐가 강하게 내려친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겨우 정신을 차리고 생필품 담당인 지혁이를 쳐다보았다.

"미, 미안해요, 성식이형.... 아무래도 식량이 제일 중요할 것 같아서 자물쇠를 제일 튼튼한 걸로 했는데..... 제가 성식이형한테 열쇠를 드렸어요.

성식이형이 하도 윽박을 질러서....."

지혁이는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어쩔줄 몰라했지만 그 애 잘못은 아니었다.

여기서 뭔가를 바로 잡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난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성식이를 쳐다보았다.

"내가 죽든 너가 죽든 답은 하나겠지, 안 그래?"

"오호! 이제서야 내 제안을 받아들이시겠다."

"그래. 대신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아는만큼 요구 조건은 분명히 해야겠지."

"좋아, 좋아. 이제야 바로 나오시는 군. 내 요구 조건은 바로 하나야."

성식이는 비실비실 웃으면서 예선이와 설화가 타고 있는 냉동차를 가리켰다.

"내가 이긴다면, 아니 물론 내가 이기겠지만 저기 저 바이러스 걸린 놈과 함께 서울로 올라갈 때까지 단 둘이 있는 거야. 물론 조명도 없고 총도 없이 말이야."

이게 아주 날 날려버릴려고 작정을 했구만.

"좋아, 네 놈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나온다면 나도 그렇게 해야지. 그걸 전문용어로 '이열치열' ,'인정사정 볼 것 없다.'라고 하더라."

"흥. 꼴에 개그하기는.... 네 놈 조건은 뭐냐?"

"만약 내가 이긴다면 손 발 다 묶는 건 기본이고 입에 재갈까지 물고 조용히 날 따라오는 거다."

"좋아."

나와 성식이는 그렇게 서로의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이 위험한 내기에 목숨을 걸었다.

하지만 그 목적의 본질은 너무나 달랐다.

성식이 목적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면, 내 목적은 우리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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