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0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저기..."
"뭔데?"
"저 들은 뭣 때문에 다릅니까?"
"보통 감염자 들과 뭐가 다르냐고?"
"예."
정중위는 대답대신 기어를 후진으로 넣더니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그러자 구형 디젤 엔진음이 터질 듯한 괴성을 내질렀다.
"훈련소장님께서 만드신 백신때문이야. 물론 인맥이 넓으셔서 전문가 들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정중위는 엔진음을 이겨내려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게 내 귀를 더욱 심하게 괴롭혔다.
"나 역시 그걸 뭘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엿들으려고 한건 아닌데 내가 훈련소장님 비서라 여기 저기 전화하시면서
하시는 이야기를 언뜻 들은 게 있거든. 아마 그게 백신 이야기였나봐. 하지만...."
정중위는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되새기는 것 같았다.
"그게 어느정도 효과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감염자 상당수가 효과가 있었어. 공격적인 본능이 억제가 되면서 이성을 되찾았지. 하지만 부작용이 좀 있었어."
"부작용이요?"
"그래. 항생제가 너무 독해서 감염자 들이 10일도 채 안되서 모두 죽어버렸거든. 그나마 그 바이러스가 뇌를 강압적으로 조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정도 살았던 거지, 만약 정상대로 심장으로 숨을 쉬었다면 진작 죽었을 거야. 한마디로 살아있는 시체 들이었지."
"하지만 백신이 있다는 자체가 그 희망이 있다는 거 아닌가요?"
"그렇긴 해. 소장은 정말 필사적이였거든. 사실 시크릿-X에 대항하기 위한 백신 제조법이 소장님께 있었어."
"예?! 방금 시크릿-X라고 했어요?"
내가 크게 소리를 지르자 정중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미안해요. 사실 저도 그 바이러스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거든요..."
"뭐? 그걸 어떻게 알아?"
정중위는 깜짝 놀라며 차를 세워버렸다.
아무래도 시크릿-X를 아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인 것 같았다.
"사실 우리에게 정보가 좀 있었거든요.... 저희 생존자 중에서 해커 수준인 애가 있어서요."
왠지 설화 누나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면 안될것 같았다.
정중위를 못 믿는건 아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시크릿-X 감염자가 2명이나 있다.
물론 한 놈은 지금쯤 예선이와 설화 누나한테 사지가 분해됐겠지만....
아무튼 시크릿-X감염자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얻기 전까지는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된다고 느껴졌다.
"그래.... 하긴 시크릿-X를 아는것 자체가 대단한 거지."
다행히 정중위는 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정중위는 뭘 좀 알고 있어요?"
"조금.... 일단 시크릿-X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박테리아야. 소장님께서 그러셨는데 미국에서 우주 박테리아를 채취해 와서 생화학무기로 만들려고 했대. 하지만
러시아 첩보기관에서 그걸 용케 알아내고 중국을 부추겨서 같이 전쟁을 일으켰지. 하지만 미군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연합국의 거센 저항으로 오히려 전력에서
밀리기 시작하니까 미국에서 보낸 감염자 들을 인접 연합국에 모두 보내버렸어. 정확한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감염자가 10명정도일거야."
"그렇군요...."
나는 아무렇지 않은척했지만 등 뒤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본 감염자만 총 2명인데 아직도 시크릿-X 감염자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더욱 문제인건 시크릿-X 감염자가 다른 감염자 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시크릿-X 감염자 들이 전국으로 퍼졌다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수 있다.
다행히 서울지부에서는 시크릿-X 감염자에 대한 말이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인구가 절반이 밀집해 있는 서울은 아직 무사 하다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아니에요. 아무튼 시크릿-X 백신이 감염자 들에게 별 소용이 없다는 거네요?"
"그래. 아무래도 시크릿-X 바이러스에 직접적으로 감염되 놈들에게서 2차적으로 감염된 놈들은 좀 틀린가봐. 그런데...."
정중위는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백신을 접종한 감염자 들 중 몇 놈이 자꾸 남쪽으로 가려고 하는 거야."
"예? 남쪽으로요?"
"응.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받는 것처럼 그러더라고.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가만히 내버려뒀더니 끝까지 남쪽으로 가더라고. 앞에 막다른 길이 나타나는대도 말이야.
도대체 왜 그런지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
"....."
젠장.
뭐가 이렇게 척척 맞아 떨어지는지.....
그렇다면 그때 아지트로 모여든 놈 들이 타지에서 왔을 수도 있다는 건가?
하긴, 그때 우리 동네에 거주하는 워커들에 비해 그 수가 좀 많다 싶었다.
"아무튼 시크릿-X 백신은 미국에서조차 발견하지 못한 거야. 다행히 우리나라 바이오센터에 수재급 인재 들이 많아서 우리 훈련소장님과 함께 백신을
만드는데 사활을 걸어서 겨우 샘플을 개발할 정도였으니까."
"혹시 그 바이오 센터가 경기도 용인에 있지 않나요?"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역시나 정중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것봐라?'라는 표정을 짓는다.
"바이오 센터를 알아?"
"예? 아, 예. 전에 언뜻 들은 것 같아서...."
내가 슬쩍 고개를 돌리자 정중위의 동그란 눈이 실처럼 가늘해졌다.
"수상해. 뭔가 알고 있는것 같은데..."
"하하하! 그냥 느낌이겠죠?"
"으음... 아무튼 시크릿-X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가 없다면 일반 바이러스를 치료해봤자 별 소용이 없을 거야. 전 세계로 퍼진 바이러스가 시크릿-X이니까."
"설마 훈련소장님은 감염자 들을 모두 되살릴 생각을 하신 건가요?"
정중위는 약간 슬픈 표정으로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서 국방부 간부 들과 마찰이 엄청났어. 국방부에서는 논산 전체를 폭격하려고 했지만 소장님은 절대 불가하셨거든. 그건 군대에서 엄청난 일이야.
일종의 명령 불복종이었니까. 너도 군대를 현역으로 다녀왔다면 명령 거부가 어느 정도로 큰일인지 잘 알거야."
잘 알다마다.....
그건 그냥 자살행위이지 뭐.
"아무튼 제일 처음 만들어진 백신은 시크릿-X 감염자에게 접종하지 못했지만 꼭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소장님께서는 시크릿-X 백신에 사활을 거는 이유가 따로 있었더라고."
"그게 뭔데요?"
정중위는 씨익 웃으면서 다시 시동을 걸었다.
"백신을 바이러스처럼 감염시키는 거지."
"그, 그게 가능한가요?"
"훈련소장님이 무작정 감염자 들을 되살리기 위해 몸을 던지셨던건 아니야. 다 생각이 있으셨지."
우리가 탄 지프는 천천히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막 부대 내 삼거리를 지나 언덕길을 오른 걸 보면 본부대가 여기서 멀지 않을 것이다.
정중위도 그것을 잘 아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소장님께서는 백신을 제작만 하기에는 그 수가 턱없이 모자르다는 걸 아시고 역으로 발상을 전환한거야. 감염자 들을 모두 모아놓고 시크릿-X 백신을 투여한 몇 명을 그 속에
집어넣었던 거지. 좀 과격한 방법이긴 하지만 어느정도 효과는 있었어."
"효과가 어느 정도인데요?"
"성당에 모인 50명의 감염자가 바로 그 증거지. 물론 얼마 안있어서 죽긴 했지만 말이야."
"....."
훈련소장이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참으로 대단한 인물임은 분명했다.
오로지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모든걸 다 내던진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감염자가 득실대는 건물 안에 스스로 들어간 자기 자신마저도 말이다.
"그럼 우린 그 백신 제조법이 있는 금고로 가는 건가요?"
"그래. 우리는 절반만 제작된 백신의 나머지 절반을 완성 시킬 거야. 하지만 아직 그곳에 감염자 들이 남아 있으니까 조심해야 해. 나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했거든."
정중위는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로 본부대 앞에 차를 세웠다.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굳게 잠긴 본부대 입구에는 문에 찰싹 달라붙은 감염된 군인 들이 우리를 보고 침을 흘리고 있었다.
만약 문을 굳게 막고 있는 철조망이 아니었더라면 진작 튀어나오고도 남을 일이었다.
"....."
정중위는 피부가 심하게 부패되어 죽처럼 흘러내리는 감염자를 보고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조심을 손을 올렸다.
"내가 이래보여도 전직 부사관 출신이에요. 게다가 최전방 수색대에 있었구요."
"정말?"
"예. 총 쏘는 건 자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하지만 정중위는 지프 뒤에 있는 소총과 수류탄을 감히 꺼내들지 않았다.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사실 널 이리로 데려온 건 저 본부대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였어...."
"알아요. 신부님도 그래서 절 선택하신거겠죠."
"...."
"이봐요. 믿음을 좀 가져봐요. 당신이 하느님을 믿게 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날 믿을 이유는 충분하잖아요."
"하지만 소장실까지 올라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해. 본부대는 소장님께서 빠져 나오시자마자 바이러스가 삽시간에 퍼져버렸거든. 오히려 23연대에
몰려있는 놈 들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어. 그 놈들은 백신이라도 맞았으니까...."
"전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겪어봤어요. 그리고 저 역시 이 바이러스를 없애기 위해서 온 몸을 던질 각오가 되어 있구요."
"....."
"소중한 사람 들을 지켜내는 건 말처럼 쉽지 않지만 용기를 가지고 행동한다면 점점 그게 현실이 될 거에요. 희망이라는 믿음을 가지라구요."
정중위는 한참을 날 쳐다보다가 이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 역시 소중한 사람에게 부탁을 받았으니까."
우린 소총을 들고 차에서 내려 본부대 입구에 다가섰다.
놈 들은 문 하나 사이에 두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우리를 쏘아보았다.
솔직히 징그럽고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불쑥 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불안감이 커지기 전에 시크릿-X 감염자를 해부하고 있는 예선이와 스스로 바이러스를 회복한 설화 누나,
그리고 나 하나를 끝까지 믿고 따르는 자유와 지혁이, 승효 세희를 떠올렸다.
그러자 한결 마음이 편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렇게 웃어? 쟤 들 얼굴이 웃기게 생겼냐?"
내 미소를 본 정중위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투덜거렸다.
"아니요. 쟤 들 얼굴을 보니까 희망이 생기네요."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크큭. 고마워요."
정중위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지만 그녀가 한결 편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