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6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우리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본부대 안은 어둠에 묻혀있었지만 창문 틈새에 새어나오는 빛 때문에 아예 못볼 정도는 아니었다.
"감염자 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글쎄... 100명 정도 된다면 문 앞에서부터 보여야 하는데...."
우리는 본부대 1층을 샅샅이 뒤졌지만 나오는 건 먼지뿐이었다.
"이거 맥 빠지네. 도대체 다들 어디있는 거야?"
긴장이 풀어졌는지 정중위가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말도 안돼...."
정중위는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짚으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개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소장님이 스스로 이곳에 들어왔다고 했죠."
"그래. 정문은 안에서 절대 못 열도록 되어 있으니까 빠져 나갈 수도 없어."
"아까 그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아, 그거?"
정중위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소장님 휴대폰 번호 8자리였어. 비밀번호를 잊어버릴지 모른다고 휴대폰 번호로 설정하시거든. 혹시나해서 눌러봤는데 되더라고."
"휴대폰 번호라구요?"
"응."
정중위는 아무렇지않게 대답했지만 매우 이상한 기분만 들었다.
"처음부터 휴대폰 번호가 아니었어요?"
"응. 처음에는 금고 번호와 똑같았어. 그런데 갑자기 다시 바꾸자고 하시더라고. 그걸 내가 깜빡했지 뭐야."
"......."
나는 주머니에서 다이어리를 꺼내 다시 펼쳐보았다.
하지만 다시 펼쳐 본다고 해서 글자가 더 늘어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순간 뭔가 안좋은 예감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물론 지금 이 상황에서 말도 안되는 소리이지만....
원재경, 분명 그자는....
"그럼 다 2층에 있는 건가?"
"아뇨. 그럴것 같지는 않아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얼른 2층 계단으로 뛰어올라갔다.
"뭐야, 같이 가!"
2층은 1층과 달리 양 끝으로 복도가 있었고 연대 상황실과 연대장 집무실, 인사과, 군수과 등이 있었다.
난 연대장 집무실을 문을 열려고 했지만 열쇠에 잠겨있었다.
"이 방 열어야 해요."
"왜, 갑자기 왜 그러는데?"
"감염자 100명이 왜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생각하세요?"
"뭐? 그야...다른 방에 몰려 있는 건 아닐까?"
"아뇨. 이건 뭔가 이상해요. 너무 조용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도대체 무슨...."
문은 쉽게 열릴 것 같지가 않았다.
발로 차고 온 몸으로 밀쳐봐도 소용없었다.
"다른 문 좀 열어봐요."
"응?"
"2층 문이란 문은 다 열어봐요."
"하지만 감염자 들이 있을지 모르는데?"
"감염자는 없어요."
"그, 그래 알았어."
내 표정이 너무 심각했는지 정중위는 다소 기가 죽은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연대장실만 빼고 아주 쉽게 2층 모든 문을 열어놓았다.
"네 말대로야. 2층엔 아무도 없나봐."
이제야 상황이 파악ㅤㄷㅚㅆ는지 정중위 표정은 매우 불안했다.
"권총있어요?"
"응."
정중위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서 나에게 내밀었고, 난 지체없이 받아 손잡이를 쏴버렸다.
"사격 준비해요."
"....."
나는 권총을 그대로 들고 발로 연대장실 문을 거칠게 차버렸다.
"저건...."
"아아....."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연대장 집무실 문을 열자마자 정면으로 보이는 사람 때문이었다.
아니, 그건 사람이 아니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누군가의 유골이었다.
"이, 이게 도대체...."
정중위는 손으로 입을 가려버렸고 나는 그 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악취가 심하게 났지만 붉은 살점이 약간씩 붙어있는 것으로 봐서는 이런 꼴을 당한지 얼마되지 않은것 같았다.
왜냐하면 살점이 불규칙한 단면으로 찢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유골은 군복을 입고 있었고 양 어깨 견장에는 별 2개가 그려져 있었다.
"소, 소장님?"
어느새 다가온 정중위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감염자 들 짓이야."
"아직 속단하지마요. 지금 눈으로 보는 걸로 판단하기에는 너무 일러요."
"하지만 저 옷은...."
"다른 사람에게 저 옷을 입혀 놓을 수도 있어요!"
"....."
나는 더 이상 지체할 겨를도 없다고 생각했다.
왠지 누군가 함정을 파놓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연대장실에 있는 모든걸 샅샅이 뒤져봐요. 단서가 될만한 모든걸 찾아야 해요."
"아, 알았어."
나와 정중위는 연대장 집무실 서랍과 책장, 심지어 쇼파 밑까지 모든것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분간 뒤지다 보니 다행히 버려진 종이 뭉치 몇개와 액정이 깨진 휴대폰을 구할 수 있었다.
"뭣 좀 챙겼어요?"
"응. 이거."
정중위가 내민건 다름아닌 명함이었다.
나는 얼른 그것을 받아 보았다.
[S.B.I.C Technology........ Red CoP. James Tomas]
인간의 형상을 감싸는 듯한 띠가 그려진 이상한 모양의 문양과 영어로 적힌 이름뿐이었다.
뒷장을 돌려보아도 전화번호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일단 나가죠."
"그래."
왠지 불안한 마음에 우리는 얼른 연대장실을 빠져 나오려고 했다.
-삑!-삑!
"뭐, 뭐야?"
이제 막 연대장실을 빠져 나오려는 찰나 갑자기 굉음같은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서 뭔가 철컥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렌 소리는 밖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엄마....."
정중위는 아예 패닉 상태에 빠져버린듯 벽 구석에 기대 벌벌 떨기 시작했다.
나는 철판 틈으로 보이는 창문에 바짝 기대 바깥을 살펴보았다.
-우워어어어....
"......"
연대장실은 누군가가 설치한 함정이 맞았다.
밖에는 3개의 대대 건물에서 빠져 나오는 감염자 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저녁 노을은 거의 사라지고 푸르스름한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다.
손목 시계를 살펴보니 시침이 거의 7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누군가 정해놓은 듯한 절묘한 시나리오에 우리가 예정대로 뛰어든 기분이었다.
한편 3시간 전.
고속도로에서는....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갔냐? 아가?"
-끄덕끄덕
다리 난간 위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자유의 얼굴은 이제 시뻘게지다 못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설화의 표정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만약 아직도 그녀가 중국 첩보원이었다면 실컷 몽둥이 찜질을 해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질 않는 건 주위의 시선이 너무 많았다.
"네 놈이 연약한 여인 2명을 냉동차에 갇혀놓고 3시간 동안 먹을것을 주지 않았다 이거지?"
자유는 입이 청테이프로 봉쇄된 와중에도 어떻게든 변명을 하려고 온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우우...구어워 스쿼이가 그어쿠에 하우라고...."
(그건 승철이가 그렇게 하라고....)
"이게 어디서 거짓말이야? 죽고싶냐?"
"언니, 이제 그만해요...."
예선이가 옆에서 말렸지만 설화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안돼. 이 자식 혼 좀 더 나야해. 여자 둘이서 등 하나 켜놓고 감염자 하나를 해부하는데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네가 할거야?"
- 도리도리
"언니, 애 들이 보고 있어요...."
예선이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설화는 겨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지혁이가 승효와 세희를 꽉 껴안고 불안한 눈으로 설화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챗! 운 좋은 놈...."
설화는 투덜거리면서 자유를 풀어주었다.
"우아...진짜 너무하네!"
겨우 숨을 돌린 자유가 설화에게 대들었지만 돌아오는 건 정강이를 까이는 것 뿐이었다.
결국 그렇게 해서야 자유는 조용해 질 수 있었다.
"그런데 승철이와 성식이는 어디갔어?"
"어? 아, 아 그게..."
예선이가 불안한 기색으로 묻자 자유는 뒷통수를 긁적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을 가만히 둘리 없는 설화였다.
그녀는 자유 등 뒤로 조용히 다가가 목에 칼을 겨누었다.
"네 놈의 목이 따이는 게 현명할까? 사실대로 이실직고 하는 게 현명할까?"
"100% 숨김없이 다 불겠습니다."
"좋은 자세야. 앞으로 그런 자세를 유지하도록."
"예, 옙!"
불쌍한 자유....
그렇게 승철이가 신신당부를 했지만 정말로 그간 있었던 일을 0.1% 불순물없이 사실대로 불기 시작했다.
성식이가 일부로 육군훈련소까지 와서 승철이를 위험한 일에 빠트렸던 것까지 말이다.
"그게 말이 돼!"
예상대로 예선이는 방방 뛰면서 화를 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설화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얼른 입을 열었다.
"걔 들 간지 몇 시간이 지났냐?"
"4시간 전 쯤에요..."
"젠장. 이건 또 무슨...."
바로 그때, 맨 뒤에서 사나운 엔진음이 들리더니 검은색 세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일행에게 다가왔다.
그 때문에 잔뜩 긴장한 일행은 차 문 뒤에 숨어 총을 겨누었다.
-끼이익!
그 자 역시 일행을 발견했는지 50m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운 후 일행에게 천천히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