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1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그 때문인지 감염자 들은 쉽게 접근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설화가 내뿜는 살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섬뜩해졌다.
"승철아. 설화 누나 상태가 더 심해지는 것 같은데?"
"....."
자유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승철이 속은 거의 타 들어갈 지경이었다.
사실 설화를 어떻게든 말리고 싶은 건 승철이 본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못하는 이유는 정작 따로 있었다.
설화가 어떠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자신을 말리지 말라는 부탁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승철이가 그 말을 듣고 펄쩍 뛰었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결정을 내려야했다.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일.
그건 생각만큼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유야. 우린 어쩌면 일생 일대 최대의 위기에 빠졌는지도 몰라. 일단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가져보자."
승철이의 표정에서 감정을 최대한 죽이는 모습이 보이자 자유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저런 속 깊은 친구가 저 정도까지 말했을 때는 분명 무언가의 이유가 있어서이다.
"좋아. 일단 눈 앞에 있는 놈 들좀 처리하고 이야기 하자. 사실 김성식 저 놈 때문에 할 말이 많거든."
"그래."
승철이와 자유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대검이 아닌 총을 꺼내들었다.
자유의 합세로 힘을 얻은 승철이가 먼저 공격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투다다
자유와 승철이는 단발이 아닌 연사를 놓고 무작정 총을 갈겼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주위에는 온통 감염자 들 뿐이었다.
만약 총알 한발에 감염자 두명을 맞춘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득이었다.
"승철아! 수류탄을 날릴까?"
"안돼! 파편이 잘못 튀면 애들이 다칠 수 있어."
"으음..."
의외로 효과가 있자 자유가 흥분하며 소리쳤지만 승철이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김성식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예선이를 비롯해서, 지혁이와 승효 세희, 그리고 자유에겐 초면인 군복을 입은 정중위까지...
수류탄을 쓰기에 그 들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었다.
"으으...."
그런데 설화에게 갑자기 문제가 생긴 듯 보였다.
몸의 절반을 휘감던 검은 물질이 갑자기 물결이 출렁거리듯 불안정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누나!"
"으으...으아!"
설화가 갑자기 절규를 하면서 두 무릎을 꿇고 주저 앉아버렸다.
설상가상 그녀의 눈에서 시뻘건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자 승철이가 얼른 달려갔다.
"누나, 왜 그래요. 제발 정신 좀 차려요."
"으으...."
승철이가 거의 울먹거리면서 말했지만 설화는 이미 정신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추측해보건데 시크릿-X 바이러스가 완전히 그녀의 몸을 지배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만큼 설화의 상태는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 무리하게 힘을 써버렸는지 의식은 완전히 잃어버렸지만, 몸을 지배하는 바이러스의 저항력은 상상외로 거셌다.
"누나가 그동안 바이러스를 억지로 억누른게 분명해."
-크아악!
설화가 쓰러진 모습을 본 감염자 들이 다시 몰려오기 시작했다.
자유가 얼른 승철이를 재촉했다.
"일단 도망가자."
"하지만 뒤에도 상황이 안좋아."
"혹시 김성식 때문이야? 그 놈은 예선이가 잘 붙잡고 있어."
"그게 아니야."
"그럼 뭐가..."
승철이 머릿속은 복잡했다.
앞 뒤로 진퇴양난이었다.
앞에는 감염자, 뒤에는 원재경.
사실 아까 승철이는 원재경의 얼굴을 보자마자 굳어버렸다.
죽었다는 사람이 멀쩡히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또 있었다.
승철이와 원재경은 악연 중의 악연이었다.
악연으로 시작된 관계는 더욱 큰 충돌을 빚기 때문에 이런 위급상황에 서로 옥신각신 할 시기는 아니었다.
만약 이대로 돌아간다면 원재경이 튀어나와 무슨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생각같아서는 모두 다 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크크...."
그런데 갑자기 설화가 실소를 터뜨렸다.
승철이는 물론 자유 역시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다 죽여주지."
마치 승철이의 마음 속 바램을 듣기라도 한 듯 설화는 끔찍한 목소리를 뱉어내며 천천히 일어섰다.
그녀는 놀랄만큼 변해있었다.
외모부터 시작해서 말투, 표정, 심지어 분위기까지.....
검은 물질은 단단한 강철로 변했고 갈색 눈동자는 핏빛으로 물들었다.
"자유야."
"어, 어. 왜?"
"피하자."
"엥?"
승철이가 아직 사태 파악을 못한 자유의 팔목을 붙잡고 얼른 뒤로 뛰었다.
-크아악!
"죽어."
그 사이 감염자 들이 설화에게 물밀듯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끝나는 듯 했다.
마치 쓰나미처럼 설화를 덮친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슈가각!
날카롭게 베이는 소리와 함께 감염자 들의 사지가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설화의 몸에서 고슴도치 가시처럼 튀어나온 강철 들이 예리한 빛을 뿜어내며 감염자 들을
사정없이 베어가기 시작했다.
"누나...."
누군가 변해 버린 모습.
특히 마음속 깊이 심어놓았던 그 누군가가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변해 버린 모습을 본다면 가슴이 찢어지는 감정은 상상을 초월했다.
"승철아..."
자유는 위로라도 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의 친구는...
자신이 의지했던 그 굳건한 사람이..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저 마음으로 위로가 된다면...
자신의 진심을 텔레파시를 통해 전달할 수만 있다면....
승철이가 설화에게....
자유와 예선이가 승철이에게....
큰 힘이 될 수도 있을텐데....
지금은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짝짝짝!
그때 갑자기 뒤에서 박수치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고개를 돌리자 원재경이 번들거리는 얼굴을 들이대며 재수없는 표정을 지었다.
"시크릿-X 대단한데! 안 그래?"
"...."
김성식을 제외하고 모두가 원재경을 차갑게 쳐다보았다.
그에게 향한 원망, 분노, 증오라는 감정은 이미 사치에 가까웠다.
이런 사태를 야기한 단 한 사람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매우 일치했다.
반 드 시 죽 여 야 한 다.
"너."
이승철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눈에서 냉기가 흘렀지만 원재경은 뻔뻔하게 웃었다.
"아~ 이게 누구신가? 그 잘난 부사관 나으리 아니신가?"
"너가 이 문 들을 열었나?"
"흐음. 어른을 대하는 태도가 글러먹었구만. 하긴 네놈 현역이었을 때도 똥 된장 구분못하고 날뛰었으니 그런걸 따지기나 하겠어?"
"닥치고 내 질문에 대답해."
"물론 내가 이 문들을 열었지. 대단한 작품이지? S.B.I.C에서 원격으로 조종하도록 설치를 하긴 했지만 이걸 생각해낸 건 나였어!"
원재경은 자신을 향한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당신..."
이번에 정중위가 앞으로 나섰다.
원재경은 다시 한번 재수없게 웃었다.
"아~ 혹시 너 내 아이 안 가졌냐? 그때 분명 안에다가 사정을 한 것 같은데?"
"나쁜 새끼...."
"어허~이거 왜 그러시나? 창녀처럼 나한테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한 년이?"
"난.... 난 네 비서였어. 네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다녀야 했다고!"
정주위는 비참함에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원재경은 눈 하나 꿈쩍 하지 않았다.
"결국 나한테 몸까지 받쳤잖아. 안 그래?"
"....."
정주위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 모습에 예선이는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김성식을 붙잡고 있는 통에 옴짝달싹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최대의 실수였다.
원재경이 어느새 그녀의 뒤에 서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총을 들어 예선이 머리에 겨누었다.
"햐아... 몸매 죽이는데? 요즘 것들은 뭘 먹어서 이런가 몰라?"
원재경은 예선이의 몸 이곳 저곳을 더듬었다.
심지어 혓바닥으로 목을 ㅤㅎㅑㄾ기까지 했다.
"저, 저기... 저부터 좀 어떻게..."
김성식은 볼썽사납게 꿇어 앉아있으면서도 원재경에게 사정했다.
"네 활용가치는 이제 끝이야. 뒤지든 말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
김성식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원재경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그만해."
승철이가 분노로 가득찬 목소리로 경고했지만 원재경은 보란듯이 예선이의 은밀한 곳까지 더듬었다.
"아, 네가 이년 서방이냐? 어때? 네 계집년이 이렇게 당하는 꼴이? 더 좋은 것도 보여줄까?"
"죽여버리겠어."
예선이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자 승철이는 설화 못지 않게 온 몸이 살기로 뒤덮여졌다.
심지어 자유가 옆에서 움찔할만큼이었다.
하지만 원재경이 예선이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만큼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원재경이 미쳐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모두가 설화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공지혁이 움직인 것이다.
그는 슬며시 원재경 뒤에 서서 대검을 목에 겨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