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2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사실 조그마한 벌레만 봐도 벌벌 떨었던 지혁이었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내었다.
"야앗!"
대검을 높게 들어 원재경의 목을 찌르려고 했다.
너무나 갑잡스럽게 벌어진 상황이라 그 누구 하나 말릴 틈도 없었다.
"안돼!"
그러나 원재경은 잽싸게 몸을 비틀었고 오히려 중심을 잃은 지혁이 다리를 걸어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버렸다.
"으윽!"
그대로 땅바닥에 엎어져 버린 지혁이는 한동안 일어서질 못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예선이가 그 틈을 타 얼른 도망쳤지만 정작 지혁이가 붙잡혀 버렸다.
"이 돼지 새끼가!"
-퍼억!
"크윽!"
원재경이 주먹을 날리자 지혁이가 힘없이 쓰러져 버렸다.
"형!"
"지혁이 오빠!"
승효와 세희가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지만 원재경은 지혁이를 사정없이 밟아대기 시작했다.
"네가 죽고싶어서 환장했냐?"
-퍼억!
"크헉!"
지혁이 입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올 때까지 원재경의 발길질은 끝나지 않았다.
"그만해!"
"이 나쁜 새끼..."
예선이와 자유가 소리를 질렀지만 원재경은 처참히 쓰러진 지혁이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
"이 돼지 새끼 살리고 싶으면 그 년 내놔!"
"쿨럭! 쿨럭! 우, 웃기지마! 승철이형 절대로 보내지 마요...."
"이 새끼가 정말!"
-퍼억!
다시 시작된 주먹질에 지혁이는 또 다시 처참히 쓰러졌다.
"그만해! 차라리 내가 갈게."
예선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했다.
그것도 모자라 원재경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안돼! 예선아! 야, 승철아. 너 왜 가만히 있어?"
"...."
자유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승철이는 온 몸을 부르르 떨뿐 대답이 없었다.
설화가 그렇게 변하듯 승철이 역시 엄청난 심적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리고 싶어.'
그의 마음 속에 점점 자라나는 미움과 원망과 증오가 한꺼번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단순히 페닉 상태를 넘어선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 버린 것이다.
김성식한테 느꼈던 치 떨리는 배신감과 원재경에서 느꼈던 인간에 대한 경멸과 증오가
걷잡을 수 없는 파도가 되어 승철이를 점점 변화 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승철아..."
승철이에게 풍겨져 나오는 살기는 어마어마했다.
그 따뜻한 눈빛은 싸늘하게 식어버렸고 무표정한 얼굴은 보기에도 섬뜩했다.
"이 돼지 새끼!"
-퍼억!
예선이를 뺏겨서 열 받았는지 원재경은 지혁이를 정신없이 밟아대기만 했다.
하지만 원재경이 크게 놓친 사람이 있었다.
-철컥!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남자.
아까 예선이 다리 밑에서 볼썽 사납게 두 무릎을 꿇어 앉았던 김성식이 원재경 머리에 총을 겨눈 것이다.
"아...."
원재경은 이상 야릇한 표정을 지으면서 두 손을 들었다.
"나를 쏠건가?"
"당연하지. 네 놈이 날 쓰레기 취급 했으니 죽어줘야겠어."
"역시 활용가치가 끝난 놈은 확실히 처리를 했어야 하는 건데."
"닥쳐! 개새끼야!"
김성식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원재경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원재경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돌아섰다.
"움직이지마!"
"아니, 좀 움직여야겠어."
"이, 이새끼가!"
확실히 김성식은 두려움에 가득차 있었다.
원재경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180도 등을 돌리자 그 들은 마주 볼 수 있었다.
"잘 생각해봐. 네가 날 쏜다면 누가 이익이 될지."
"이익 같은 건 신경 안써. 그저 날 버린 놈들을 다 죽여버릴 거야."
"아하. 복수를 하시겠다?"
"그래... 복수야."
김성식은 승철이를 힐끗거렸다.
"널 죽이고 나서 날 버린 놈 들에 대한 복수를 할거야!"
"제 정신이 아니군."
"아니! 난 제정신이야. 다만 너네 들이 제정신이 아니야! 너네는 미쳤어! 정상이 아니야..."
"이봐."
원재경은 작은 한숨을 내쉬면서 이제 아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날 죽이려고 했다면 진작 그랬어야지."
"뭐?"
"늦었잖아. 그 총 당겨봐."
"누, 누가 못할 줄 알고?!"
무슨 이유 때문인지 원재경은 김성식을 크게 자극했고, 김성식은 단순하게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철컥!
그러나 총알은 나가지 않았고 김성식은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총과 원재경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걸 찾나?"
원재경이 주머니에서 꺼낸 건 다름아닌 총알이었다.
"그, 그건..."
"내가 말했지? 단 한발이라고. 하지만 넌 그 한발의 가치도 못하는 놈이야. 지금처럼. 난 이미 그것을 봤거든."
"이, 이 자식이..."
김성식은 치를 떨었다.
원재경은 김성식 몰래 총알을 다 빼고 마치 한발이 들어간 것처럼 연기를 하며 총을 건내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발의 소중함을 잘 알기 때문에 함부로 총을 쏘지 못한다.
원재경은 사람이 심각하게 궁했을 때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 먹은 것이다.
"자아, 이제 나를 배신한 죗값을 치뤄야겠지?"
"....."
김성식이 다시 두려워하며 총을 버리고 얼른 손을 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제발..."
-타앙!
"아악!"
원재경은 총을 꺼내 김성식이 부상당한 다리를 미련없이 쏴버렸다.
김성식은 마치 건물이 무너지듯 처참하게 주저앉아버렸다.
"흐억...흐억...."
엄청난 출혈을 일으키며 김성식이 쓰러지자 원재경은 흐뭇하게 웃으며 지혁이쪽으로 다시 등을 돌렸다.
"이, 이자식 어디갔어?"
원재경이 크게 당황했다.
있어야 할 자리에 공지혁이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그는 심하게 맞았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혁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생존자 들을 향해 전력으로 뛰고 있었다.
그 때문에 펑펑 울고 있던 승효와 세희가 지혁이에게 달려들었다.
-탕!
순간 사방이 조용해졌다.
마지막으로 울린 그 총성은 모두를 숨죽이게 만들었다.
"오빠?"
"형?"
"스, 승효야...세희야..."
지혁이는 승효와 세희를 품에 꽉 안고 있었다.
그리고 놓치지 않았다.
입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피와 두 눈에서 흘러 내리는 눈물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직 이 아이들이 죽음을 알기에는 너무 어렸다.
"승철이형...예선이 누나...자유형....말 잘 들어야 돼...."
"네, 형."
"알았어, 오빠."
철없는 어린 아이 들은 지혁이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에만 기뻐할 뿐이었다.
지혁이는 말없이 승철이와 예선이, 그리고 자유를 응시했다.
"....."
"....."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예선이...
자신을 향해 애타게 부르짖는 자유....
그리고....
지혁이가 그렇게 닮고 싶어했던 승철이까지....
모든게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