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6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이승철, 신예선, 진자유, 설화....
그리고 승효와 세희.
남은 생존자는 이 들이 전부였다.
그 들은 양지 바른 들판에 서서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땅 속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리고 넓적한 바위를 그 앞에 두고 대검으로 열심히 글자를 새겼다.
[ 양지혁. 승효와 세희를 진심으로 사랑한 우리 가족. 부디 행복한 곳에서 영원하길.... ]
"흑흑..."
결국 예선이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지못하고 십자가 앞에 주저 앉았다.
승철이도, 자유도 그리고 설화도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아내느라 저 멀리 창공만 응시했다.
빌어먹게도 날씨는 구름 한점 유난히 화창했다.
"....."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중위는 천천히 언덕을 올라갔다.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지만 왠지 마음은 가벼웠다.
이제 그녀가 가야할 길은 정해졌다.
"나도 인사를 해도 될까?"
"그럼요. 그런데 어디 있다가 왔어요?"
승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정중위는 옅은 미소만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녀는 비석에 새겨진 글귀를 한동안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이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 가족..... 좋네. 나도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
"....."
정중위는 예선이 옆에 앉아 새하얀 국화꽃 한송이를 내밀었다.
"이름이...지혁씨랬죠? 미안해요. 정말로...."
정중위는 쓸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당신의 목숨을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요. 대신 당신한테 약속할게요. 내가 지키지 못했던 사람 들을 목숨을 받쳐서라도 지키기로..."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생존자 들은 이름모를 언덕에서 내려와 고속도로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정중위는 난간 밖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이제 난 여기서 헤어질게."
"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우리랑 같이 가요."
승철이가 깜짝 놀라면서 손을 내밀었지만 정중위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난 아직 해야할 일이 남았어."
"하지만..."
승철이가 진심으로 아쉬워했지만 예선이가 그의 팔을 슬며시 잡았다.
"언니도 무슨 생각이 있을 거야. 그렇죠, 언니?"
"그래."
정중위와 예선이가 서로 미소를 짓자 승철이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일 다보고 서울로 올라오세요. 반드시 기다릴게요."
"그럴게."
그냥 쿨한 건지 정말 무슨 생각이 있는 건지 정중위는 미련없이 등을 돌리고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정말 괜찮을까?"
승철이가 과도하게 걱정하자 예선이가 입술을 내밀었다
"누가 많이 걱정해줘서 괜찮겠지."
"....."
예선이가 툴툴거리면서 바로 차에 오르자 설화가 승철이 등을 '툭'쳤다.
"야, 넌 왜 그렇게 눈치가 없냐?"
"예?"
"아휴. 그러니까 네가 그 모양이지."
"아니 제가 뭘요..."
"됐다. 출발이나 하자."
승철이는 끝까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차에 올랐다.
[한국 바이오 센터]
기하학적으로 지어진 건물 앞에 생존자 들이 서있었다.
마치 활을 거꾸로 뒤집은 듯한 모양으로 세워진 이 건물은 불과 10개월 전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여기가 인체를 연구하는 곳이야?"
자유가 신기해하며 묻자 예선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세계에서 유일한 최첨단 장비도 여기서 보유하고 있어."
"대단한데?"
자유가 앞장서자 나머지 생존자 들도 뒤를 따랐다.
하지만 얼핏 봐도 복잡하게 생긴 보안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홍채 인식. 지문 인식. 24자리 비밀번호 입력...젠장. 무슨 자기네 들이 CIA야?"
"으음.... 어떡하지?"
자유와 승철이가 황당해하자 예선이도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곳에 아는 선배가 있었는데..."
"에이. 이런 문은 그냥 확 부숴 버리자."
설화가 소총을 꺼내 노리쇠를 당기자 예선이가 황급히 말렸다.
"언니 그러지말고 사람을 부르죠".
"야.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언제 들어가려고? 그냥 확 부숴 버리자."
"누나. 잠깐 진정 좀 하고 예선이 말대로 해요."
승철이까지 나서자 설화는 그제서야 소총을 내렸다.
예선이는 큰 한숨을 내쉬고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두드렸다.
-쿵쿵쿵
"저기요~ 누구 없어요?"
"야! 그래 가지고 되겠냐?"
보다 못한 설화가 문 앞에 서서 허리춤에 양 손을 올리고 길게 심호흡을 했다 .
그리고 내질렀다.
"야! 문 열어!"
-쾅쾅쾅
정말 해머로 두드리는 듯한 굉음이 온 천지에 울려퍼졌다
그런데 그 들의 머리 위로 CCTV 카메라 한대가 주시하고 있는 걸 미처 보질 못했다
.
CCTV 카메라는 한명씩 한명씩 관찰을 하다가 이내 예선이쪽으로 앵글을 돌렸다.
- 신예선?
스피커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모두가 행동을 멈췄다.
- 예선이, 예선이 맞지?"
어딘가 낮익은 목소리인지 예선이가 스피커 속 목소리에 온 귀를 기울였다.
"원중이...오빠?"
- 와! 맞네? 신예선? 너 살아있었냐?
"네 오빠. 오빠도 무사해요?"
- 그래. 임마. 아, 그러지말고 얼른 안으로 들어와.
스피커음은 아주 반가운 목소리로 아주 싱겁게 문을 열어주었다.
마치 동네 현관문을 안에서 열어주는 듯한 모습에 설화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 저럴거면 그냥 대충 확 열어주지."
"크큭. 그래도 누나 때문에 들어가는 거에요."
"정말 누군지 쌍판대기 보고싶다."
"저기 혹시나해서 그러는데 때리지 마요."
"내가 뭔 깡패냐?"
"으음... 뭐...."
"아이씨, 죽을래?"
설화와 승철이가 옥신각신하는 사이 그들은 아주 어두운 복도를 지나 굉장히 넓은 홀에 도착했다.
정말 축구경기장 규모의 어마어마한 홀이었다.
"우와..."
승효와 세희가 입을 쩍 벌리고 감탄했다.
그건 어른 들도 마찬가지였다.
-또각또각
딱딱 끊어지는 구두 소리에 모두가 긴장을 하며 소리의 근원지를 주시했다.
"예선아~"
하지만 짧고 높은 목소리에 모두가 한순간에 긴장을 풀었다.
"원중이 오빠. 여기에요."
예선이가 소리치자 랜턴의 노란 불빛이 사방을 휘저었다.
"난간 위에요~"
랜턴 불빛은 그제야 제 방향을 찾고 생존자 들을 비추었다.
"오~ 야. 신예선. 너 무지하게 예뻐졌다?"
"그래요. 참 상황에 어울리지않는 칭찬해줘서 고마워요."
"크큭. 거기 내려오는 계단 있으니까 여기로 와."
"네."
말이 계단이지 정말 산에서 내려오는 착각이 들정도로 가파르고 꽤나 길었다.
하지만 일행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어서와."
드디어 스피커 목소리의 주인이 반갑게 손을 내밀며 조명 속에서 천천히 얼굴을 드러냈다.
"이야. 말로만 듣던 생존자 들이네?"
조명에 드리워진 얼굴은 예상외로 키도 크고 훤칠한 인물의 소유자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원중이라고 합니다. 예선이 대학 선배에요."
"아... 저는 이승철이라고 합니다. 예선이하고 친구구요. 이쪽은 제 친구 진자유. 설화 누나. 그리고 이제 8살인 승효와 세희에요."
"안녕하세요~"
승효와 세희가 예의바르게 배꼽인사를 하자 김원중도 똑같이 따라했다.
"안녕하세요! 참 예의바른 어린이 들이네요."
허물없이 인사하는 김원중의 모습에 모두가 한결 인상이 풀어졌다.
설화 역시 팔짱을 낀체 의외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이곳은 바이오센터입니다. 물론 이곳에 저 혼자밖에 없구요. 지금 바이러스 샘플을 최대한 채취해서 온갖 실험을 하고 있지만 그닥 진전은 없어요."
"그러시군요..."
"일단 식사는 하셨나요?"
"아니요! 배고파요!"
승효와 세희가 얼른 대답하자 김원중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어차피 나도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으니까 같이 먹자."
"와!"
김원중이 아이 들의 손을 잡자 예선이가 약간 슬픈 표정을 지었다.
"지혁이가 이걸 봤어야 하는데...."
"...."
승철이는 조심스럽게 예선이 어깨를 두드리며 모두와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