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7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1_시크릿-X -- >
따뜻한 음식과 포근한 잠자리.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건 아무런 근심없이 푹 잘 수 있는 환경이 있다는 것이다.
승철이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땐 벌써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실 그는 더 잘 수도 있었다.
하지만...
"드르렁...드르렁..."
자유의 코고는 소리는 차라리 스피커에 귀를 바짝대고 헤비메탈을 듣는게 나을 정도였다.
승철이는 침대에서 내려와 자유의 코를 한번 콱 막고 문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주위는 너무 어두워서 앞을 분간할 수 없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왠만한 전기는 쓰지 않는듯 했다.
승철이는 겨우겨우 벽을 더듬어 빛을 ㅤㅉㅗㅈ아갔다.
다행히 중앙 홀이 먼저 나타났고 그곳에서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예선이를 만날 수 있었다.
"굿모닝."
"아, 어. 그래. 좋은 아침이다."
예선이가 자연스럽게 아침 인사를 건냈지만 승철이는 당황해했다.
하긴 그들이 언제 여유를 느끼면서 인사를 건낼 일이 있었던가?
"그런데 얼굴이 왠지 수척하다?"
"응? 아... 밤새 원중 선배랑 연구 좀 하느라..."
예선이는 약간 붉어진 얼굴을 감추면서 괜히 창가를 응시했다.
"밤새 연구했다고?"
"응. 어제 저녁 먹고 바로 연구실로 갔거든."
"그랬구나.... 그럼 그 선배도 시크릿-X를 알아?"
"어제 내가 말하니까 그때 알았어."
"그럼 어제 처음 알았던 거야?"
"응...."
예선이는 잠시 말을 멈추고 머그잔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아무래도 시크릿-X 정체를 어제 처음 알았나봐.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실험을 하는데....아휴. 지금도 거의 토끼눈이 되다시피 하면서 실험 하고있어. 원래 그 선배 자기 궁금한 거 해결 못하면 잠 못자는 스타일이거든. 다행히 우리가 해부하고 왔던 감염자가 있길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내 뇌를 다 끄집어내서 알려줘야 했을 거야."
"그렇구나.... 대단한 사람이네."
승철이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예선이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좀 자야겠다."
"그래. 어서 눈 좀 붙여."
"응."
예선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걸어가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승철이를 쳐다보았다.
"왜?"
"나 분명 물어본다."
"뭘?"
"너 감염된 이유 말이야."
"으음..."
승철이가 땀을 삐질삐질 흘렸지만 예선이 눈은 날카로웠다.
"어영부영 넘어가지마."
"아, 알았어."
"흥!"
예선이가 사라지자 승철이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승철이는 굳게 닫힌 설화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 스스로 감염이 됐다.
물론 그게 100% 설화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크릿-X를 스스로 겪어보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그랬던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아무런 성과를 얻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이상한 생명체에 감염되어 본인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분명 예선이에게 사실대로 말하기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예선이가 이 사실을 안다면 '무모한 짓거리를 했다고 불같이 화낼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아악! 젠장! 도대체 어떡해하지?"
승철이가 머리를 북북 긁으면서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다급하게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다, 다들 일어나요!"
그러자 김원중은 다짜고짜 승철이 팔을 붙잡고 잔뜩 흥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알아냈어요. 알아냈다구요!"
"도대체 뭐를...."
"시크릿-X요. 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알았다구요."
"정말요?"
그제서야 이승철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김원중을 쳐다보았다.
"모두에게 알려야 해요."
이승철은 고개를 끄덕이고 생존자 들을 모두 깨웠다.
김원중의 연구실은 마치 만화에서나 볼법한 풍경이었다.
온갖 실험 도구 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고 CRT 구혀 컴퓨터 모니터가 벽돌처럼
쌓여있었다.
"도대체 뭘 발견했다는 거야?"
실험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설화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물었다.
그러나 김원중은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마우스만 열심히 굴려댔다.
"자아, 내가 뭘 발견하는지 잘 봐요."
"내가 혹시나해서 하는 말인데 어려운 말 쓰면서 설명하면 죽는다."
"알았어요, 쉽게 설명해드릴게요. 자아, 일단 여길 보세요."
김원중은 대형 빔프로젝터를 가동시켜서 모두의 시선을 고정했다.
스크린에는 아주 작은 미생물 들이 꿈틀대는 장면이 비춰졌다.
"여기 이 길쭉한 놈이 바이러스구요. 여기 이 동글동글한 놈이 인체 조직 세포에요."
김원중은 레이저 빛을 열심히 돌려가며 설명했다.
"자, 이 길쭉한 놈은 조직세포를 잡아먹는 육식동물인 셈이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길쭉하게 생긴 미생물이 조직세포를 빠르게 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조직세포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해요. 즉, 인간의 인지능력을 크게 떨어뜨리지는 못하죠."
"그럼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건가요?"
자유의 물음에 김원중은 바로 그거라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예. 하지만 완전히 감염이 안된 건 아니에요."
"그게 무슨..."
김원중은 레이저빔으로 바이러스를 가리켰다.
"바이러스는 인간의 조직세포와 완전히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장악하지 못해요. 대신 빠르게 환경을 변형시켜 자신의 생존법을 찾는 거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이러스가 조직세포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직세포가 초식동물처럼 부르르 떨면서 이러저리 움직였다.
그 모습에 승철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 조직세포를 감염시키는 건가요?"
"아뇨. 조직세포의 영양분을 뺏어 먹는 겁니다. 자신의 것을 만들지 못하니까 대신 영양분을 빼앗고 있는 거죠."
"......"
승철이와 예선이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얼른 고개를 돌렸다.
"바이러스는 아주 천천히 조직세포를 파괴하고 있는 겁니다. 마치 암세포처럼 말이죠. 하지만 정작 무서운건 따로 있습니다."
김원중은 스크린에 다른 화면을 띄웠다.
그 화면 크게 확대가 되어있지만 분명 인간의 팔의 단면도였다.
"이 바이러스가 조직세포를 먹고 점점 자라면 자랄수록 이상한 성분을 키운다는 겁니다."
"이상한 성분?"
자유가 왼쪽 눈썹을 치켜뜨자 김원중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바로....."
화면 속 바이러스는 서서히 아주 길게 변하더니 곧 검은색을 띄었다.
"이 바이러스는 인간의 피가 아주 빠르게 돌기 시작 했을 때 더욱 더 큰 영양분을 받고 진화를 합니다. 바로 이렇게 말이죠."
김원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길고 검은색으로 변한 강철은 인간의 피부를 힘차게 뚫고 나왔다.
그 모습에 모두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보셨습니까? 이게 바로 시크릿-X의 정체입니다. 이 바이러스는 아주 최악입니다. 인간을 천천히 자신의 숙주로 만들어버리고 있죠.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바이러스가 계면현상(界面現象, electrical surface phenomenon)을 만든다는 겁니다."
"개면...현상? 그게 뭐에요?"
자유가 어리둥절에 하자 김원중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개가 아니고 계입니다. 아무튼 계면전기현상은 물질 중에서 고체나 액체,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액체 등이 만난 경계면에서 일어나는 전기현상들을 모두 가리키는 말입니다."
"....."
예선이만 빼고 모두가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자 설화가 잔뜩 인상을 썼다.
"어이, 박사양반. 좀 알아듣게 설명하라고. 이거 어디 무식해서 살겠나?"
무식한 건 자랑이 아니야....
모두가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김원중은 혼자 껄껄거렸다.
"죄송합니다. 계면 현상은 한마디로 두 가지 물체가 맞닿는 면에 물리, 화학적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즉, 쉽게 말해 정전기가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 그런데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야?"
설화가 꼬치꼬치 캐묻자 김원중은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예선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예선이에게 당신 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특히 설화 당신 이야기를 말이죠."
"....."
설화는 김원중과 예선이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내 피식거렸다.
"그래서 네가 여태까지 설명한 모든게 내 이야기이다?"
"예.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제가 알아낸건 이게 아니니까요."
"당연하지. 그전에 네가 말했던 것은 우리 모두가 현장에서 직접 알아낸 것이었느니까."
설화는 상당히 비꼬았지만 김원중은 여전히 사람 좋은 얼굴로 껄껄거렸다.
"하하. 그럼 제가 괜히 헛수고를 했군요."
"당신이랑 말장난 하기 싫으니까 새롭게 알아낸 걸 얼른 말해봐."
"예. 이 바이러스는 계면현상을 스스로 만들어 뭔가를 조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건 나도 안다고."
"예. 하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 바이러스가 계면현상을 나타냈을 때를 말하는 겁니다."
"그 때가 왜?"
"바이러스는 그렇게까지 스스로 진화를 하지 않습니다. 바로 자신이 감염된 인간의 뇌가 그렇게 하도록 조종하는 것이죠."
"......"
모두가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특히 설화와 이승철의 표정은 거의 충격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 인간이 그렇게 하도록 조정한다고?"
설화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지만 김원중의 표정은 이상하게도 덤덤했다.
"예. 당신의 뇌가 당신도 모르게 바이러스를 조정하고 있다.... 이 말입니다."
"....."
사실 그것도 충격인데 김원중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큰 문제는 당신 들의 가까운에서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당신 들의 내면 깊은 곳에서 파괴본능이 그 누구보다 아주 크기 때문에 이 바이러스 들이 당신 들을 선택한 겁니다. 즉, 자신을 키워줄 원망과 증오가 가득한 인간을 선택한 것이지요. 이건 누굴 놀리자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이 바이러스는 인간의 증오를 먹고 자란 악마의 자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