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7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외전1 (악몽의 시작) -- >
"이름 차수철. 나이 만 34세. 직업 XX인터넷 설비 기사. 주민등록상 거주지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xxx-x번지. 현재 7년째 부인과 이혼 중이며, 슬하에 딸이 있었으나 불의의 사고로 사망. 피고 맞습니까?"
"...."
검사의 질문에 차수철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심기가 매우 불편한 표정으로 검사를 노려보았다.
"피고. 질문에 대답하세요."
"맞수다."
"어째서 부인과 이혼했습니까?"
검사의 사무적인 질문에 차수철은 짜증이 났는지 중얼중얼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문에 모두가 웅성거렸고 판사가 의사봉을 두드리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재판에 비협조적이면 피고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올 수 있습니다."
"어차피 사형 아닙니까? 우리 구차하게 떠들지말고 다이렉트로 일을 처리 합시다."
차수철이 빈정거리자 안 그래도 차가운 검사의 인상이 냉랭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이 질문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질문입니다."
"어째서 범죄를 저질렀습니까?"
"하! 그거나 물어보려고 그 앞에 나와서 개멋 부린 거요?"
"질문에 대답이나 해, 이 새끼야!"
결국 이성을 잃은 검사가 소리지르자 판사가 다시 의사봉을 거세게 내려쳤다.
"지금 신성한 재판장에서 뭣 들 하는 겁니까?! 재판이 TV로 생중계 되는 거 다들 몰라요?"
판사가 호되게 소리치자 좌중이 찬물을 끼얹듯 조용해졌다.
"피고. 아직 당신의 죄에 맞는 형벌이 정해지지는 않았소. 이건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국가가 법을 행하는 신성한 의식이오. 따라줬으면 좋겠소."
"흥. 알았소. 노력해보리다."
대법원장이 조용히 타이르자 차수철은 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검찰측. 다시 하세요."
"예. 재판장님."
아까 그 검사가 다시 이성을 추스리고 앞에 나섰다.
"좋습니다, 피고. 그럼 피고의 성향에 맞춰서 질문을 하겠습니다. 우선 당신이 저지른 범죄횟수는 총 134건. 피해자는 부녀자 200명. 모두가 사망했습니다. 어째서 당신보다 약한 부녀자 들만 죽였습니까?"
"가지고 놀기에도 쉽고..... 죽이기도 쉽고....."
배심원 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모습에 검사는 입꼬리를 올리고 차수철 곁에 다가섰다.
"다음 질문입니다. 피해자 중에는 10살도 채 안된 초등학생도 있었습니다. 피고는 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딸과 같은 또래의 여자 아이를 무참히 성폭행하고 살해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 그랬습니까?"
"...."
그제서야 차수철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검사는 그만둘 생각이 없어보였다.
"초등학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할 때 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습니까?"
"내 딸하고 상관없어."
"딸하고 상관이 없다? 그럼 본인의 딸만 중요하다는 겁니까?"
"....."
차수철은 무표정한 얼굴로 검사를 응시했다.
그러나 검사는 고개를 돌려 재판장을 쳐다보았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렇듯 피고는 범죄를 저지름에 있어서 한치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같은 또래의 자식을 두고도 말입니다. 그렇게 피고에게 살해된 어린 생명들을 지키지 못한 사회의 죄도 막중하나, 그 사회를 파탄으로 몰고가는 피고는 분명 반성의 기회를 주기 힘들다고 판단됩니다."
검사의 말에 재판관 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변호인측은 반론이 없습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변호사는 의식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차수철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결국 법원에서 변호사로서의 기본적인 발언을 해야할 입장인 것이다.
"피고는 분명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피고 역시 이 사회가 낳은 폐해 중 하나일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재판관의 반문에 변호사는 성난 배심원 들의 웅성거림에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이 사회가 어떻습니까? 속히 말해 돈 있는 사람은 돈을 벌고 돈 없는 사람은 돈을 벌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결국 약자는 강자에 먹히는 약육강식의 구조는 시대가 지날수록 더욱 심화될 뿐입니다. 피고 역시 그런 사회의 피해자입니다. 그의 딸은 불치병에 걸렸고 그 어마어마한 수술비를 구하지 못해 결국 1년 전에 떠나보내고 말았습니다."
변호사의 반론에 검사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반론하겠습니다."
"하세요."
"지금 변호인측에서 하는 말은 모두 다 억지입니다. 물론 우리 사회가 점점 돈에 의해 계층이 나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사회에서 돈없는 자에게 돈을 벌지 말라고 한적은 없습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입니다."
차수철이 쓰윽 손을 올리자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다.
"뭡니까, 피고?"
"제가 한마디 해도 됩니까?"
"아직 제 발론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검사가 으르릉거렸지만 차수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재판관 들은 서로 어떻게 해야할지 의견을 나누다가 결국 차수철에게 1분의 말할 기회를 주었다.
"씨발... 그래. 나 돈없고 빽없고 힘없는 부녀자나 강간하는 개 쓰레기같은 새끼다. 그런데 그런 쓰레기라도 내 새끼는 엄청 소중하거든. 그런데 이놈의 사회가 나같은 놈이 제대로 살아갈 기회를 주지 않더라고. 당신 들은 몰라. 그저 말만 쉽게 할 뿐이지. 당신들한테는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거쳐야 할 관문이 나보다 적을 거야. 안 그래? 난 내 딸 살리려고만 했을 뿐인데 뭔 놈의 절차가 그렇게 까다롭고 복잡한지.... 결국 내 딸 그러는 동안에 죽었어. 비참하게 아주 아프고 초라한 모습으로 날 원망하는 그 눈을 감지 못하고 말이야! 내가 그 년 들을 가지고 놀았듯이 이 사회도 나와 내 딸의 목숨을 가지고 놀았어."
"...."
모두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자 차수철은 이를 갈았다.
"날 지금 찢어 죽여도 상관없어. 하지만 내 딸이 당한 고통은 당신 들이 반드시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난 당신 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준거야. 알겠어?"
재판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더 이상 검사와 변호사의 신경전은 없었다.
재판관 들은 간단 명료하게 판결을 내렸다.
"부녀자 200명을 강간하고 잔인하게 살인한 차수철은 더 이상 이 사회에서 동화하기 힘듦은 확실하다. 그 사정은 딱할지도 모르나 이 사회가 인간의 최소한의 도덕과 윤리에 의해 유지되고 있음을 모두가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죄수번호 2190번 차수철. 최종판결 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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