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6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시즌 2 : 소용돌이 -- >
다음날.
이승철과 자유는 일찍 일어나 승합차에 올랐다.
"속초로 바로 갈건가?"
"예. 황주선 박사님을 빨리 찾아야 백신을 만들죠."
"그렇군."
박대위는 운전석에 앉아있는 이승철의 손을 잡았다.
"속초가 안전하기는 해도 조심해야 할거야. 아무래도 철저하게 봉쇄된 도시라 외부인의 출입을 탐탁치않게 생각할테니까."
"네. 조심하겠습니다.... 그런데 박대위님은 같이 안 가십니까?"
"응. 난 아직 할 일이 남아있거든..."
"할 일이요?"
이승철이 반문했지만 박대위는 말하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아직은 말하기 그렇지만..... 뭐, 인연이 다시 닿는다면 그때는 알려줄 수 있겠지."
박대위는 빙긋 웃으면서 말을 이었지만 이승철은 썩 안심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잠깐 귀 좀...."
"예?"
박대위가 눈치를 주며 얼굴이 들이대자, 이승철은 귀를 가까이 가져다대었다.
"윗남교에 절대로 가서는 안되네. 그곳에 가면 분명 후회할 거야."
"......"
말을 마친 박대위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이상했다.
꼭 뭔가 홀린 사람처럼 비실비실 웃는것 같기도 해서 이승철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뿌리칠뻔 했다.
"그럼 조심하게. 가자, 소희야."
"응, 아빠!"
박대위는 이승철의 인사를 받지도 않고 소희 손을 잡고 어디론가 휘적휘적 걸어갔다.
"뭔가 있어."
"응? 뭐?"
자유가 이어폰을 빼고 되물었지만 이승철은 백미러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거울에 비춘 박대위의 뒷모습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자꾸 소희가 힐끔거리면서 자신을 쳐다 보는것 같았다.
"야, 뭐해. 출발하자."
"응...."
이승철은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서로 가야할 길이 틀림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윗남교...."
"응? 뭐라고?"
"이 동네가 남교라고 그랬지?"
"그랬던가?"
이승철이 여전히 심각한 표정을 짓자 그때서야 자유가 관심을 가졌다.
"왜 그래?"
"아까 박대위님이 윗남교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하더라고."
"윗남교? 뭐 그럼 이 동네는 아랫남교냐?"
"바로 그거야!"
이승철은 그제서야 손바닥으로 핸들을 쳤지만 자유는 꺼림칙한 표정이었다.
"너 설마 그곳으로 가려는 거 아니지?"
"한번 지나쳐 가봐야겠어."
"아우, 야 좀...."
자유가 차 시트에 뒷통수를 쿵쿵거리며 질색했지만 이승철의 눈빛은 확고해보였다.
"분명히 뭔가 있어. 박대위님과 나눴던 대화를 하루 종일 생각해봤는데 뭔가 연관이 있을 것 같아."
"아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가봤자 무슨 좋은 일이 있겠냐고? 너보고 가지 말랬다며."
"그렇긴 하지만 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 안하냐?"
"아, 당연히 미친듯이 이상하지. 그래서 가지 말아야 하는 거야. 우린 분명히 정해놓은 목적이 있잖아. 여러 사람 실망시키지 말고 황주선 박사나 찾아보자."
자유가 본인답지않게 정색을 하자 이승철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꾸 뭔가 자신을 그곳으로 끌어 당기는 묘한 느낌이었다.
"자유야. 정말 딱 5분만 둘러보고 가자."
"야, 니가 잘도 5분만 보고 가겠다!"
"아휴, 딱 한번만. 박대위님이 황주선박사를 알고 있는 것도 이거랑 왠지 관련이 있는것 같아."
이승철이 검지손가락을 세우며 간절하게 부탁하자, 자유는 기가막힌 표정으로 입만 벌리고 있다가 이내 큰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진짜 친구 잘못 만나서 이게 무슨 개고생이야. 가자, 가. 이 호기심천국아."
"짜식, 고맙다."
이승철은 자유의 등을 툭툭치면서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그러나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윗남교에 도착해버렸다.
실상 아랫남교나 윗남교랑 거리가 10분도 되질 않았던 것이다.
"뭐야. 바로 윗 마을이잖아?"
"그러게."
"내리자."
"아우, 젠장. 어머니 제발 하늘에서 저를 보살펴주세요."
자유가 한풀이를 하며 M16 소총을 어깨에 매었다.
이제 총을 매고 나가는 일이 너무 일상적이라 꼭 가방을 매고 학교에 가는 묘한 기분도 들었다.
어쨌든 이승철과 자유는 차에서 내려 서서히 마을 입구로 진입했다.
마을은 생각대로 매우 조용했고 인기척도 보이지 않았다.
"야,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게. 도대체 뭐지...."
이승철과 자유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의아해했다.
"박대위가 절대 이곳에 오지 말라고 했다며?"
"응. 혹시 집 안에 뭔가 있을지 모르니까 천천히 가보자."
"아, 진짜 너 자꾸 일 크게 만들래?"
"그럼 너 혼자 차에 가있어. 나 이 집만 둘러보고 얼른 나올게."
"장난하냐?"
이승철은 아주 진지하게 말했지만 자유는 정말 어이없어 했다.
어쨌든 둘은 빨간 슬레이트 지붕이 얹혀진 전형적인 시골집 안으로 들어섰다.
"계세요...."
자유가 모기 기어가는 소리로 불렀지만 있을리가 없었다.
-끼이익!
심지어 방문까지 열어봤지만 별다를게 없었다.
문 바로 위에 가족 사진이 걸려있다던지, 구식 TV가 서랍장 위에 올려져 있다던지, 심지어 숫자가 큼직막하게 새겨진 달력에 '넷째 장가'라고 써져있다던지.....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집안에 먼지만 수북하게 쌓인 것을 빼면,평상시처럼 농사를 지으러 잠시 집을 비운듯한 풍경이었다.
"쳇! 그 인간 괜히 겁주는 거 아니야?"
자유는 실망반, 기쁨반 섞인 얼굴로 단정지으려고 했지만 이승철은 고개를 살며시 가로 저었다.
'절대로 헛소리할 사람이 아니야. 뭔가 있어....'
이승철의 의심은 끝이 없었지만 실상 눈에 보이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자니까!"
"응."
이승철과 자유는 허탈한 마음을 뒤로한채 동시에 등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