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1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시즌 2 : 소용돌이 -- >
"손들어!"
박필석 순경은 오늘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다.
속초시의 치안을 맡고있는 그로서는 외부인의 방문이 전혀 달가울리가 없었다.
하지만 속초 생존자 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을 반기는 눈치였다.
생존자가 많으면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왠지 수상하게 생긴 놈 들이라 박순경의 눈에는 전혀 믿음이 가질 않았다.
특히 불안한 눈초리로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저 흰둥이가 더더욱 불신을 주고 있었다.
"넌 누구야!"
"저, 전...."
바짝 마른 이 수상한 놈은 부리부리한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안절부절했다.
혹시라도 박순경의 심기를 건드리지나 않을까 조바심을 내는듯 보였다.
"그 사람은 저희 일행이에요."
"일행?"
이승철이 조심히 다가와 말을 건내자 박순경은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예. 지금 많이 못 먹어서 기력이 없어요."
자유가 옆에서 슬쩍 거들었지만 박순경이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거렸다.
"그럼 너네가 쟤 먹을거 다 뺏어먹었냐?"
"아니, 그 말이 아니라..."
"됐어. 아무래도 너희 들을 자세히 조사해 봐야겠어."
'조사'라는 말에 이승철은 슬며시 기분이 나빠졌다.
자신들이 아무리 외부 사람이라도 같은 생존자 들끼리 이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순경. 그만해."
아까 그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손을 뻗어 권총을 들고 있는 박순경의 손을 잡았다.
"어르신! 이 놈들을 믿으시면 안된다구요!"
"어허! 같은 생존자 들끼리 이렇게 불신을 해서 쓰겠나!"
어르신이 호통을 치자 박순경은 마지못해 손을 내렸다.
"어르신. 그보다 대책 회의를 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 어르신에게 다가와 조용히 소곤거렸다.
그는 뿔테 안경을 쓴 40대 중반의 남성이었는데 속초 여자 중학교 교사인 김문규였다.
"김선생 말대로 하지. 시의회 의원 들을 당장 소집하게."
"예."
이승철과 자유는 무슨 일인지 몰라 서로 어리둥절하며 쳐다보았다.
"자네 들은 여기 있는 사람들과 잠시 있게."
"예...."
어르신이 그 말만 하고 휘적휘적 어디론가 걸어가자 모두들 부산하게 움직였다.
"너희 들은 날 따라와."
박순경이 인상을 팍 쓰면서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이승철과 자유, 그리고 차수철은 조용히 그를 뒤따랐다.
"나이도 어리게 생겼는데 반말을 찍찍 뱉네. 형한테 맞을라고."
보다 못한 자유가 궁시렁거렸지만 딱히 악의가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을 멀리서 지켜보는 이 들이 있었다.
"어르신. 그때같은 상황을 재연을 해서는 안됩니다."
김교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뒷짐을 지고 걷는 어르신의 뒤를 따르며 나직히 말했다.
"어흠!"
"어르신!"
어르신의 생각은 이미 정해진듯 보였다.
평소에도 속초의 '쇠불고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의지가 강한 '신철호'노인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고집만 센 노인은 아니었다.
그는 20년전 속초 시장과 강원도 도지사까지 지낸 정치권의 고위 인사였다.
하지만 그의 대쪽같은 성격이 정치와 잘 맞질 않아 속초 시장을 마지막으로 정치 인생을 끝내버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선에도 나가도 별로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았다.
바이러스가 삽시간에 퍼지고 인류가 거의 멸망의 길로 들어설 때, 사람 들은 강력한 리더를 원했고 그가 바로 신철호였다.
또한 그는 더이상 권력의 늪에서 빠지기 싫었다.
속초시의 생존자 들을 대표로 책임지는 대신 절대로 시장이나 도지사같은 호칭을 쓰지 못하게 했다.
아무튼 신노인과 김교사는 불편한 동행을 계속하다가 속초 시청 안으로 들어섰다.
"오셨습니까, 어르신!"
시의회 의원 들이 허리가 굽어져라 인사를 했지만, 신노인은 다소 굳은 표정으로 대회의실로 들어섰다.
"어르신. 또 다른 생존자 들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의원 중 한명이 운을 떼자 신노인이 누군가를 홱 쳐다보았다.
"김의원!"
"예, 어르신."
"시 외곽 순찰을 누가 담당하고 있는가?"
"아.... 접니다."
느닷없는 질문에 김의원이 좌우 눈치를 살피다가 겨우 대답했다.
-쾅!
"왜 외곽 순찰을 그 따위로 하는 거야!"
"어, 어르신...."
신노인이 책상을 두들기며 버럭 소리를 지르자 모두가 당황해했다.
왠만한 일로 짜증조차 내지 않은 사람이라 그 당혹스러움이 더했다.
"내가 몇번을 강조했나? 황주선 박사가 떠난 후로는 속초시에 있는 생존자 들의 안전이 보장이 안된다고 말이야."
"죄송합니다, 어르신."
"나보다 시민 들에게 사과하게. 아무튼 당장 외곽 순찰을 예전처럼 강화하고 개미 새끼 한마리도 시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해!"
"예, 알겠습니다."
"김교사!"
"예, 어르신."
"그 생존자 들 이름 외우고 있나?"
"예. 훤칠하게 생긴 청년이 이승철이고..... 그 폭탄머리는 자유라고 했습니다."
"차 안에 있던 그 남자는?"
"아, 저기 그 남자 이름은 잘....."
"그렇군...."
신노인은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 무슨 문제라도...."
"아니야. 아무튼 이 생존자 들을 어떻게 처우 해야겠나? 우리가 받아들여야겠나?"
"저는 무조건 반대입니다. 그때 우리가 얼마나 희생됐습니까?"
"....."
신노인은 혼란스러웠다.
예전같았다면 생존자 들을 모두 거둬 들였겠지만, 그때 그 일은 신노인에게도 악몽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 때 그일 때문에 생존자 들을 거둬들이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신노인에게 불편한 일이었다.
"어르신. 생존자 들을 ㅤㅉㅗㅈ아내는 건 힘든 일이지만 우리 속초 식구 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셔야 합니다.
김교사는 강한 어조로 차분히 설명했지만 신노인은 슬그머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들이 황박사를 찾느다고 하지 않았나. 백신을 만들겠다고 말이야...."
"예? 정말입니까?"
신노인의 중얼거림에 모두가 놀라 되물었다.
"어르신. 그게 사실입니까?"
"예.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더군요."
김교사가 대신 대답하자 모두들 웅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