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스트 데드-97화 (96/262)

< -- 97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시즌 2 : 소용돌이 -- >

"왜 이렇게 어둡지?"

집 안은 온통 검은 장막을 뒤집어 씌운것처럼 어두컴컴했다.

- 조심해. 뭔가 기분이 나빠.

"나도 마찬가지야."

차수철은 아까 자신이 묶었던 숙소 구조를 떠올리면서 벽을 더듬었다.

그때문인지 별로 어렵지않게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이, 이건...."

차수철은 충격 받은 얼굴로 입을 쩍 벌렸다.

- 놀랍군...

이 아파트는 평범한 아파트가 아니었다.

1층부터 3층까지 벽과 기둥이란게 존재하지 않는 뻥 뚫린 공간이었다.

심지어 베란다에는 영화 세트장과 비슷한 목재벽이 가로 막고 있었고, 온 창문은 버티칼로 가려 있었다.

누구나 아파트 밖에서 본다면 영락없이 평범한 집으로 속을것이다.

"젠장. 도대체 여긴 뭐하는 곳이야?"

도무지 평범한 공간이 아니었다.

천장에는 온갖 전기선 들이 차곡히 정리가 되어 여기저기 뻗어 있었고, 수많은 컴퓨터와 책장 들이 벽에 밀착되어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건물 내부 중앙에 거대하게 설치되어있는 실험관 3개가 차수철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마치 그것은 거대한 유리잔을 엎어 놓은 듯한 모양이었다.

- 내려가 볼건가? 이제 곧 그 놈들이 올거야. 벌써 1시간이 지났어.

"그래도...."

차수철은 눈을 빛내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는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앞섰다.

머릿속에서 온통 생물학에 관한 정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여기가 아무래도 황주선 그 자식 연구실인가 보군."

- 그런데 왜 여기에 너랑 그 놈들을 머물게 했을까?

"글쎄...."

단순히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차수철은 기회가 된다면 장영석에게 반드시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연구가 중단된 모양이로군."

실험관 속에는 실험대상 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색 물 들이 가득 채워져 있을 뿐이었다.

- 무슨 액체야?

"탄산 칼슘 용액이야. 시체 부폐 방지를 위해 쓰이는 액체이지."

- 그렇군.

차수철은 실험관을 지나쳐 책상 위에 올려진 서류 뭉치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띌 만한 자료 들은 보이지 않았다.

- 그런데 넌 이런걸 어떻게 아는 거지?

"어렸을 때 의사가 되는게 꿈이었어. 옛날에 여자들 토막낼 때도 여러가지 실험도 해보고 그랬어.

- 넌 정말 징그러운 놈이야.

"너도."

- 크크큭!

차수철은 싱겁다는 표정으로 책장에 있는 책 들을 뒤지다가, 뭔가 바닥에 떨어지자 그것을 주워 들었다.

"뭐지?"

'조류대백과사전'에서 떨어진 종이 뭉치 들은 온갖 그래프와 깨알 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사실 차수철은 의학 전문 용어가 영어로만 적힌 그 문서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뭔가 중요할 것 같아 주머니 속에 구겨넣었다.

"이제 나갈까?"

- 그래.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어.

차수철은 다시 3층까지 올라가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한편 이승철과 자유는 걱정과 달리 자신들의 승합차를 어렵지않게 찾을 수 있었다.

때마침 장영석이 승합차를 타고 아파트로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합승해서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뇨. 당연한건데요, 뭐."

장영석은 껄껄 웃으면서 아파트 앞에 차를 멈춰세웠다.

"그런데 무슨 총이 그렇게 많습니까?"

"아, 저희가 그동안 모은 총인데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요...."

"그렇군요. 하지만 왠만해서는 총을 가지고 안 다니시는게 좋을겁니다. 괜히 서로 자극해서 좋을건 없잖아요."

"아, 예...."

"하하. 이거 제가 너무 오버했군요. 그래도 여러분을 걱정해서 하는 말입니다."

"...."

장영석이 앞장서자 이승철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자유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총이잖아, 안 그래?"

자유가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사이 장영석은 3층까지 올라가다 멈칫거렸다.

"어?"

"왜 그러세요?"

바로 뒤따르던 이승철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장영석이 손가락으로 복도 끝을 가리켰다.

복도 끝 아파트 현관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숨어요!"

장영석이 후다닥 아파트 계단 옆 벽에 몸을 밀착 시키자, 나머지 일행 들도 덩달아 그렇게 했다.

"저기 누가 사나요?"

"천만에... 여긴 여러분 밖에 없소."

"....."

그제서야 이승철과 자유는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일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윗남교 시골집 안방에서 튀어나왔던 근육질 감염자가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정준혁(차수철)도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하긴 워낙 말도 없고 소심한 인간이라 밖으로 나와서 여기저기 들쑤시는 성격은 아니라지만....

"정준혁씨?"

"예?"

장영석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승철과 자유가 놀라서 중앙 계단에서 뛰쳐 나왔다.

"준혁이 형!"

"아니, 거기서 뭐하고 있는 거요?"

이승철이 채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장영석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으면서 차수철 앞에 섰다.

"거기서 뭐하고 있었습니까?"

평소의 장영석 목소리가 아니었다.

심하게 다그치는 그의 목소리에 이승철과 자유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얼른 뛰어왔다.

"그것보다 그 안에는 어떻게 들어갔습니까? 도대체 어디까지 갔다 온 겁니까?"

장영석이 폭퐁처럼 다그치자 이승철이 그의 앞을 살짝 가로막았다.

"의원님. 일단 진정 좀 하시고... 제가 대신 물어보겠습니다."

"하아, 미안합니다."

장영석이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뒤로 물러서자 이승철이 차수철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준혁이 형. 여긴 어떻게 왔어요?"

"아, 그게...."

차수철은 두려운 눈빛으로 여기 저기 눈치를 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자고 일어나서 거실로 나갔는데.... 아무도 없어서.... 혹시나 나를 두고 떠났나 싶어서..... 그 전에 여기 저기 너랑 자유 찾으러 다니는데...."

차수철은 뭔가를 잔뜩 두려워하는 눈빛으로 겨우 겨우 말을 이었다.

이승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장영석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준혁이 형이 여기 저기 헤매다가...... 이곳까지 온 것 같습니다."

"휴우.... 아무리 그래도..."

장영석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지만 조금은 진정된 모습이었다.

"그런데 저기에 무슨 중요한 거라도 있나요?"

자유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장영석은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솔직히 털어놓겠습니다. 사실 이 아파트 1층부터 3층까지 모두 황박사님의 연구실입니다."

"예?"

"뭐라구요? 그게 사실이에요?"

이승철과 자유가 차수철과 장영석을 번갈아 쳐다보자, 장영석이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말로는 설명이 어려울테니 직접 보여드러지요."

장영석이 문 손잡이를 잡고 열자 모두가 그의 등 뒤로 서서 빼곰히 쳐다보았다.

"우와!"

"이, 이럴 수가...."

그리고 이승철과 자유는 허름한 아파트에 숨겨진 어마어마한 공간을 보고 눈이 빠질 정도로 놀란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