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9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시즌 2 : 소용돌이 -- >
시간이 지날수록 아침 햇살은 점점 강렬하게 내려쬐었다.
그럴수록 잠에서 깬 사람 들이 하나둘씩 건물 안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승철과 차수철은 점점 길이 아닌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잔나무 가시 들이 온 몸을 찔러댔지만 시간이 없었다.
"잠깐! 잠깐 쉬었다 가자."
차수철이 이승철의 옷자락을 잡고 멈춰세웠다.
"뭐야? 벌써 힘든 거야?"
이승철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차수철이 손을 내저었다.
"그게 아니고... 여기가 보광사인가 뭔가 하는 절에 가는 길이 맞는 거야?"
"산 위에 기와로 된 건물이 언뜻 보이기는 했는데..."
이승철이 말을 흐리면서 까치발을 들고 시선으로 산정상을 기웃거렸다.
"그나저나 그 놈은 자유를 데리고 올 수 있을까?"
"......."
이승철은 아무말없이 땀에 젖은 양말을 벗어서 나뭇가지에 걸어놓았다.
하지만 차수철의 말은 아직 끝난게 아니었다.
"너도 잘 알겠지만 장영석 그 자는 절대로 믿을만한 놈이 못돼."
"....."
"난 솔직히 장영석이 자유를 데리고 온다는 말도 거짓말 같아. 혹시 모르지. 김문규랑 그 자가 한패일지도."
"꺼져."
이승철은 험악하게 대꾸하면서도 표정에서 묻어나오는 근심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거봐. 너도 너를 확신할 수 없잖아. 안그래?"
차수철은 이승철을 비웃기라도하듯 쭈그려앉아 비이냥거렸다.
"죽고싶냐?"
보통 살기가 아니었다.
이승철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차갑게 변해가고 있었다.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사실 그의 절친 자유마저 속으로 걱정을 할 정도였다.
차수철 역시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움찔했다.
"뭐... 긴장을 풀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야."
차수철이 벌떡 일어나 한동안 말없이 전방을 응시했다.
그사이 이승철은 바람에 말린 양말을 다시 신었다.
거의 이틀동안 양말을 못 갈아신은 탓에 온갖 악취가 피어올랐지만 그는 게의치 않았다.
-바스락
이승철이 말도 없이 묵묵히 산을 오르자 차수철이 급하게 뒤를 ㅤㅉㅗㅈ다가 나뭇가지에 허벅지 여러곳을 찔렸다.
그러나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이승철은 힐끗 그것을 보고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은 장영석이 아니라 따로 있었군."
"....."
엄청난 냉기가 그들을 감쌌다.
아니, 그 냉기는 그 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촉측발의 상황을 서로가 연출해가면서도 결국 그들은 보광사에 도착했다.
보광사는 생각보다 작고 아담했지만 중앙에 넓직한 공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제 무작정 기다리면 되는 건가?"
차수철이 대웅전 돌턱에 앉아 상체를 뒤로 쭉 뻗었다.
"너도 좀 앉지, 그래? 그렇게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돌아다니니까 정신이 없잖아."
"....."
이승철은 초조한 얼굴로 여기저기 걸어다녔지만 생각이 정리가 되질 않았다.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해지는 장영석과 차수철에 대한 의심이 깊어질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아무리 생각을 해봤자 뾰족히 떠오르는 대안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저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듯한 막연함이 정답일 뿐이다.
'음모!'
그때 이승철의 머릿속에 장영석이 말한 음모가 떠올랐다.
'황주선과 장영석.... 그리고 김문규라....'
확실히 김문규는 차갑고 냉정하며 무언가 꿍꿍이를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게다가 어르신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것도 확실했다.
그는 그림자처럼 어르신을 따라다니며 여러가지 조언을 하는듯 했다.
반면 장영석은 자신들 앞에 갑자기 나타나 돕겠다고 한 의문의 인물이었다.
사실 그가 친근하게 다가오긴 했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만 쌓여갔다.
직감적으로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걸 느꼈다고나 할까.....
어찌되었건 이승철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다만 시간에 모든걸 맡겨야 하는 처지였다.
"어, 저기?"
이승철의 깊은 고민을 깬건 다름아닌 차수철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를 가리켰다.
이승철이 고개를 홱 돌리니 왠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오는게 보였다.
"자유인가?"
아침의 햇살이 너무 강렬한 탓에 이승철과 차수철은 손바닥으로 눈 위를 가리고 전방을 주시했다.
"헉헉!"
거친 숨소리가 코 앞까지 들리자 그때서야 이승철은 누군지 알아채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자유아!"
"헉헉. 잠깐만!"
이승철이 달려나오자 자유는 손으로 그를 제지시키고 허리를 굽혀 숨을 골라냈다.
"아휴. 힘들어.... 승철아! 야, 이게 어떻게 된거냐?"
자유는 확실히 잠에서 깬지 얼마 안돼 보였다.
안 그래도 신난한 머리가 공중으로 뻗어있으니 몰골이 더욱 초췌해보였다.
"설명하자면 길어. 어서 여기서 빠져 나가야 해."
"그렇기는한데 어떻게 빠져나왔어?"
차수철의 냉랭한 말투로 묻자 자유가 별거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 누가 저를 막 깨워서 일어나긴 했는데.... 장영석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얼른 이쪽으로 도망가라고 해서 왔어."
"뭐?"
이승철이 크게 반문하자 자유가 깜짝놀랬다.
"야, 얌마. 왜 갑자기 소리를 질러?"'
"장의원은 어디있어?"
이승철이 다짜고짜묻자 자유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디있긴? 속초에 있지."
"아, 장난하지말고!"
이승철의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라는걸 느꼈는지 자유가 한동안 얼이 빠져있다가 입을 열었다.
"모, 몰라! 나도 모른다고. 아침에 누가 깨워서 일어나니까 네가 기다린다면서 도망가라 했다고... 아, 자 여기."
자유는 말을 마치고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이게 뭐야?"
"쪽지야. 장의원이 남긴거래."
이승철이 쪽지를 펴서 살펴보자 뭔가 급하게 적어 내려간듯한 글씨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미안하네. 난 아무래도 어르신 곁을 떠날 수가 없어. 황박사를 꼭 찾아서 돌아가길 바라네.]
"젠장!"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이승철이 쪽지를 구겨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승철아... 너 도대체 왜 그래?"
자유가 살짝 질린 표정으로 물었지만 이승철은 그대로 주저 앉아 머리를 감싸쥐었다.
그 사이 차수철이 얼른 쪽지를 집어 펼쳐보았다.
"미안하네.... 난 아무래도 어르신.... 꼭 찾아서 돌아가라...... 뭐야? 이거? 장영석 설마 붙잡힌건가?"
"......"
이승철이 아무런 대답을 못하자 차수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하지만 우린 황박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참...."
"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자유는 차수철의 자연스러운 행동과 말투에 깜짝 놀라면서 혼란스러워했다.
하긴 그럴수밖에 없는게 그가 자고 있는 동안 너무나 많은게 뒤바뀐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