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2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시즌 2 : 소용돌이 -- >
"......"
끝없는 괴리감.
이승철과 자유, 차수철 사이는 묘하게 멀어져 가고 있었다.
"왜?"
차수철은 한걸음씩 다가오면서 묘한 웃음을 지었다.
"아까는 그냥 같은 생존자였는데 왜 그런식으로 쳐다보는 거지?"
"멈춰."
이승철이 자유와 황주선을 뒤로 두고 앞장섰다.
"황박사 말이 사실이야?"
"사실이냐구?"
차수철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사실이다. 하지만 다 이유가 있었어."
"이유?"
"그래. 세상이 무척이나 증오스러웠다고."
차수철은 사연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는 평범한 인터넷 설비 기사였어. 돈은 제대로 벌지 못하지만 혼자 자라온 탓에 가족이 어떤건지 너무 그립고 궁금했어. 너희는 그런 기분으로 20년간 사는게 어떤 건지 잘 알지 못할 거야. 고아인 내가 가족이 생긴다는 그 자체가."
"....."
차수철의 눈이 점점 붉어지다가 잠시 뭔가를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바로 이런곳이었어. 그날도 고아원에서 원장한테 개 맞듯이 쳐맞고 도망치고 도망치다가 도착한 곳이 바로 성당이었자. 나는 그때 성당이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지."
차수철은 성당 의자를 쓰다듬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때 수녀님이 내 곁에 와서 이렇게 앉아 손을 모으고 열심히 기도하면 언젠가 하느님이 소원을 이루어 준다고 했지. 어린 나는 그게 정말인줄 알고 열심히 기도했어. 하루도 빠짐없이 말이야. 그 쓰레기같은 원장이 어딜 가냐고 발로 밟고 주먹으로 때려도 하느님이 내 소원을 들어준다면 그깟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소원이라면... 가족이 생기는 건가?"
이승철이 조심스럽게 묻자 차수철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족이야. 가족.... 나에겐 가족이 필요했어. 아빠.... 엄마... 평생을 불러보지 못했지만, 나라도 그 소리를 듣고 싶었어. 그래서 필사적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지. 검정고시를 보고나서 안 해본 일이 없었어. 편의점 알바, 막노동.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닥치는대로 했지. 그랬더니 내 수중에 돈이 모이더라구. 적금 통장도 한개에서 두개, 세개씩 늘어나고 말이야. 희망이 생겼어."
차수철은 목이 메었는지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사이 자유가 이승철의 옆구리를 쿡쿡찔렀다.
"승철아. 저 자식 말 계속 들어야 해?"
"응."
"왜?"
"나랑 자라온 환경이 같으니까."
"으엑?"
자유가 놀라면서 흠칫했지만 차수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무작정 돈만 벌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그래서 인터넷 설치 회사에 취직해서 이것저것 배우기 시작했지. 그렇게 사니까 사람 들이 나를 하나 둘씩 인정해 주더라고. 성실하고 손기술도 좋다고 말이야."
"그럼 그렇게 계속 살지 왜 살인을 저지른 거야?"
자유가 혐오하는 얼굴로 물었지만 차수철은 덤덤했다.
"아무튼 그렇게 아둥바둥 살다 보니까 나에게도 짝이 찾아 오더라고. 그녀도 고아였지만 누구보다 용감하고 씩씩하게 살았지. 왠지 그 모습이 보기 좋았고 우리는 닮은 구석이 많아 금방 연인 관계로 발전했어. 그리고 3년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지. 너무 행복했어. 정말 세상이 다 아름다워 보이더라구... 더군다나 우리 엄지가 태어났을 때는 나도 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가장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살 수 있었어. 하지만...."
차수철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지자 이승철과 자유가 본능적으로 긴장했다.
"말도 안되는 불행이 한번에 겹쳐오기 시작했어. 그렇게 날 평생 사랑하겠다고 맹세한 아내가 점점 이상해지는 거야. 마치.... 마치 뭔가 뒤집어 씌운양 어느 날부터 화장이 진해지고 전화가 자주 울리기 시작했어. 처음엔 아파트 부녀회 때문에 그런줄 알았지만, 알고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차수철의 목소리는 급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승철은 감염자가 흥분하면 어떻게 되는지 뻔히 알기에 오른팔을 서서히 변형시켰다.
"훗. 걱정마. 그 정도 감정은 컨트롤 할 수 있어."
차수철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저 돈 버는게 최고인줄 알았던 아내에게 신세계가 열린 거야. 단란주점에서 일하고 노래방 도우미 같은 걸 하면서 나 몰래 하면서 돈 맛을 느꼈던 거지. 결국 나와 엄지에게 점점 소홀해지기 시작했지. 심지어 일 끝나고 집으로 온 나에게 냄새 난다면서 각방을 쓰자고 하더라고."
"......"
황주선은 소리없이 혀를 차며 팔짱을 꼈다.
"처음에 난 아내가 그냥 권태기 정도가 온 줄 알았어. 뭐 그 정도는 나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니까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게 아니였어. 우연찮게 아내의 전화 통화 내용을 들은게 화근의 시작이었지. 아내는 나와 엄지에게 대했던 목소리와 180도 달라진 목소리로 누구와 깔깔거리면서 통화를 하고 있더라고. 처음엔 너무 화가나서 방문을 열고 당장 전화를 뺏었지. 그리고 아내가 무슨짓을 하고 있는지 알게된 순간부터 점점 아내를 구속하기 시작했어."
"아내에게 손찌검을 했나?"
황주선의 물음에 차수철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배신감에 말이야... 하지만 이미 정도를 벗어난 여자를 더 이상 엄마로 둘 수 없었어. 결국 이혼했고 나 혼자라도 엄지를 제대로 키워보겠다고 다짐했지. 하지만... 그런 결심도 오래가지 못했어. 지 엄마 때문에 충격을 먹었는지 엄지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결국 백혈병에 걸리더군.... 나참... 무슨 막장 드라마도 이 정도는 아닐 거야.... 맞아."
차수철은 괴로워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힘들면 그만해도 되네."
황주선이 나직히 말했지만 차수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렇게 시작한거 끝을 봐야지. 하지만 세상이 더욱 증오스러운건 따로 있었어. 의사라는 새끼가 수술비가 없다는 이유로 치료를 안하고 방치한 거야. 결국 난 집도 팔고 내 적금도 깨고 다 퍼붓어도 딸이라는 년은 이 애비의 바램도 몰라주고 1년만에 눈을 감더군. 뭐, 그래서.... 음...."
"....."
모두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차수철의 말이 거짓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 정말 자신 들이 살았던 세상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었다.
"우리 잠깐 나갔다 올게요."
결국 이승철과 자유는 그 무거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성당 밖으로 나가버렸다.
"......"
성당 안에 둘이 남은 차수철과 황주선은 서로 아무런 말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힘드나?"
차수철이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황주선이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날 원망하나? 아니면....."
"당신을 죽이고 싶은지, 아니면 감사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어."
차수철은 아무런 감흥없이 대답했다.
"네 몸안에 있는건 네가 제어할 수 있는 놈이야. 결국 감염자의 의지대로 그 힘을 쓸 수가 있어. 하지만 그걸 조절 못하면 바이러스에 네 모든걸 먹히게 되는 거야."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 거지?"
"이승철과 비교되서 그래."
"그게 무슨 소리야?"
차수철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황주선이 살짝 뒤로 물러섰다.
본능적인 살기가 느껴졌다.
"이승철을 꽤 의식하고 있군. 하지만 넌 이승철을 절대로 이길 수 없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네가 그 힘을 힘으로만 쓴다면 위험하게 될거야. 이승철은 그렇지 않거든."
"네가 날 이렇게 만들어놓고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차수철의 눈이 갑자기 붉어졌다.
흥분하고 있다.
황주선은 희미한 미소를 짓다가 순식간에 지워버렸다.
"넌 이미 바이러스에 먹혀들어가고 있어. 생각보다 빨리 네 자아를 잃어버릴 거야."
"닥쳐! 네 따위가 뭐라... 커헉!"
차수철이 피를 토하며 결국 의자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거봐. 넌 이길 수 없다니까. 결국 이승철에게...."
"크아악!"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차수철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붙잡았다.
"쩝... 역시 A타입은 완성본이 아니였군. 이렇게 쉽게 무너지다니..."
황주선이 입맛을 다시며 품 속에서 조제 캡슐을 꺼내들었다.
"자아, 이걸 먹어봐. 그럼 조금 나아질거야."
"개, 개수작 부리지마!"
차수철이 손으로 뿌리쳤지만 황주선은 오히려 그를 비웃었다.
"개수작이라니, 글쎄. 네 몸 속에 있는 놈에 대해서는 내가 더 잘알걸? 그냥 고통을 멈추는 진통제니까 먹어둬."
"....."
차수철은 황주선을 극히 경계했지만 결국 그 약을 받아서 입안으로 삼켰다.
"어때? 좀 나아진것 같아?"
"....."
차수철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정말로 뇌를 파고들던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진걸 느꼈다.
"그런데 A타입이 완성본이 아니라는 말이 뭐야?"
"아, 그거...."
황주선이 말을 흐리며 갑자기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뭐하는 거야?"
"널 이제 완성본으로 만들어주려고."
"뭐?"
차수철이 깜짝 놀라 되물었지만 온 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엄청난 고통이 그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크... 헉!"
결국 고통을 이기지 못한 차수철이 피를 한말을 토하고 성당밖으로 뛰쳐나갔다.
"후후.... 결국 넌 죽게 될거야. 나를 위해서 말이지..."
황주선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차수철의 뒷모습을 느긋이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