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0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시즌 2 : 소용돌이 -- >
"그런데 자네 꼴이 말이 아니군.... 잠깐 그거...."
황주선은 뭔가 떠올랐는지 깜짝 놀라자 장영석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알았냐? 이게 바로 네가 필요없다고 버린 X-592 유기체다."
"필요없어서가 아니라 위험해서였다. 설마 네가 그걸 그렇게 쓸 줄은...."
황주선은 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장영석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이게 위험하다고? 전혀! 내가 원하면 이 물질을 벗고 입을 수 있어!"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그 물질은 시크릿-X를 모태로 만든 거야. 살아있는 세포 들이 널 갉아 먹을거라고!"
황주선이 정색을 하며 소리를 치자, 장영석이 그때서야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아, 아닐 거야. 다른 실험 대상들을 상대로 실험해도 전혀 문제가 없었어."
"문제가 없는게 아니라 문제가 있어도 못 느끼는 거겠지."
황주선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아마 네가 실험했던 사람 들은 아주 천천히 몸의 이상을 느꼈을 거야. 처음에는 감기처럼 몸살과 오한으로 시작해서 점점 머리에 열이 끓어 쓰러질 지경에 이르지. X-592 세포가 뇌세포를 갉아먹으면서 자신의 뜻대로 바꿔버리지. 그렇게 뇌는 외부 세력에 의해 과부화에 걸리고 결국 감염자를 온몸에서 피를 토하게 되는 거야."
"......"
장영석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검은 물질에 뒤덮인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난 결국 실패한건가?"
"실패한게 아니야. 실수한거지."
"닥쳐! 네가 뭘 알어!"
장영석은 핏발이 선 눈으로 황주선을 쏘아보았다.
"네 녀석은 항상 그런식이었어. 나보다 앞서가면서 항상 그런식으로 동정했다고!"
"영석아. 그건 네 오해...."
"오해? 다 필요없어. 뭐 이지경이 된거 다 죽여버리겠어."
장영석은 살기가득한 얼굴로 오른팔을 들었다.
"하여간 저 놈의 피해망상이란...."
황영석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해버렸다.
그리고 고개를 절래절래 젓더니 뒤를 돌아봤다.
"너희 들이 처리해."
"예."
갑자기 벽 뒤에서 검은 후두를 뒤집어 쓴 건장한 체구의 사내 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러더니 거리낌없이 장영석에게 달려들었다.
"헉헉! 이제 어느 정도 된건가?"
이승철은 겨우 짬을 내서 숨을 골랐다.
감염자 들을 공장 출입문에서 겨우 10m 정도 밀어낼 수 있었다.
말이 수천명이지 한도 끝도없이 밀려오는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공장 문을 닫기로 한것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아직 감염 초기 단계라서 그런지 감염자 들이 그다지 공격적이지 않았다.
"좋아. 이제 문을 닫자."
이승철은 망설이지않고 바로 두꺼운 철문을 닫아버렸다.
하지만 숨을 고를새가 없었다.
그는 바로 장영석을 눈으로 찾았다.
"뭐.... 뭐야?"
이승철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등 뒤로 감염자 들이 문을 두드렸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이승철의 눈동자에는 축 널브러져있는 신노인과 이상한 검은 물질에 휩싸인체 곤죽처럼 녹아내린 장영석이 보였다.
그나마 장영석은 머리만 남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당신은..."
"아, 네가 힘들까봐 달려왔지."
황주선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씨익 웃었다.
"어떻게...."
"이, 별거 아니야. 그냥 내 부하 들이 난장판을 정리해준것 뿐이야."
황주선은 키가 두배나 큰 사내 들의 사이를 헤집고 나오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마치 동네 슈퍼에 뭐라도 사러 나가는 50대 아저씨같은 모습이었지만, 무언가 좋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이승철은 오른판을 점점 더 변형시켰다.
"어, 어. 그러지 말라고. 날 못 믿는 거야?"
"장영석이든 당신이든.... 똑같은 인간 들 아닌가? 당신이 장영석을 죽였잖아."
"어허! 날 장영석에 비교하면 안되지."
"아니. 네 놈들은 다 똑같은 놈 들이야. 인간을 상대로 실험하고 실증나면 죽이고... 좀비보다 더욱 잔인하고 비열한 존재 들...."
이승철이 이를 갈자 황주선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 네 친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것 같은데. 날 신뢰하는것 같더라고."
".... 설마 자유를...."
이승철의 두 눈이 커지자 황주선이 손을 내저었다.
"아, 난 장영석하고 틀리다니까. 아무튼친구 다시 만나고 싶으면 날 따라와. 너에게 할 이야기도 있고."
"......"
자유 때문이라도 어쩔수가 없었다.
이승철은 황주선을 따라나섰다.
"...아....아.....아....어....."
이승철은 뚫린 벽 안으로 들어서려다가 멈춰섰다.
김문규가 두 눈을 부릅뜨고 입만 벌린체 깊은 신음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 그 친구. 아까 장영석 때문에 충격 좀 받았나 본데?"
황주선은 별거 아니라는듯 김문규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벽 안으로 들어갔다.
이승철 역시 애써 그를 무시하고 벽 안으로 들어섰다.
"어....아....어....."
살아있는 자 들이 떠난 폐공장은 죽은자들의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김문규의 폐는 그 들의 피비린내가 나는 공기 들로 가득채워졌다.
-사각사각
그때였다.
심장이 뻥 뚫린 차수철의 관절이 제멋대로 놀면서 공장 바닥에서 기묘한 자세로 일어서기 시작했다.
"크어어억...."
힘없이 꺾인 다리가 부들부들 떠는 몸통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인간도 감염자도 아니었다.
그의 뻥 뚫린 가슴에서 검은 벌레 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더니 곧 근육같은 조직을 형성했고 몸체는 두배로 커지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머리 곳곳에 터져나온 끔찍한 근육 들이 붉은 핏줄기를 부풀리며 이목구비를 뭉개버렸다.
괴물.
그 괴물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와 김문규 앞에 섰다.
"아... 으흐흐흐...으으....."
김문규는 도저히 입을 열지 못했다.
다만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절규가 그의 심정을 대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