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스트 데드-152화 (151/262)

< -- 152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외전2 (그녀의 기억) -- >

- 그 시각. 대한민국 해남 -

그는 남자의 기본인 면도를 망각한 모양이었다.

제 멋대로 자란 턱수염은 알콜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했다.

"크아! 쇠주 맛 쥑이는 구만!"

포장마차야 원래 시끄럽고 어수선한 곳이라지만 남자의 목소리는 너무할 정도로 컸다.

그 남자의 이름은 진기만.

707부대의 전설의 명사수이자, 국제 대테러 진압 작전에도 미국이 몇번씩이나 요청할만큼 그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걸 내려놓고 남해로 내려가 작은 어선을 끌고 있다.

미국 델타포스에서 특수부대 양성 교육을 부탁하면서 적극적으로 구애했지만, 그는 깔끔히 거절하고 군복을 벗은 것이다.

어쩌면 군인에게 최고의 명예이자 대우였을텐데 그가 거절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아무리 우방국이라도 군복이 바뀌고 계급장을 달면 그건 매국이나 다름없다."

진기만은 어떻게보면 답답해보일 정도로 고집스럽지만 우직한 군인이었다.

그는 나이를 먹고서도 후배 양성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내고 깔끔하게 전역한 것이다.

그는 지금 오랜만에 부대원 후임을 만나 회포를 풀고 있었다.

"형님. 그렇게 기분이 좋습니까?"

이철원은 빙긋 웃으며 소주잔을 부딪혔다.

"좋다 마다! 내 부사수가 크게 나랏일 하시는데 당연히 좋다 마다!"

"어이! 거기 이씨. 좀 조용히 해! 손님 들이 시끄러워서 술을 못 마시잖아!"

"아, 알았수다...."

진기만은 포장마차 아주머니의 눈총을 받고서야 약간 움츠러 들었지만 계속해서 싱글벙글이었다.

"철원아. 나는 네가 크게 될줄 알았다. 하긴 너같은 독종이 나랏일을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

"저에게 너무 과분한 일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쓰읍! 또 쓰잘데기없는 소리를!"

진기만은 짐짓 눈을 부라리며 소주잔을 탁 내려놓았다.

그리고 몸을 앞으로 쓰윽 기울이고 은밀한 표정을 지었다.

"야, 철원아. 솔직히 우리같은 놈들을 누가 챙기냐? 이번에 대통령께서 특별히 지시를 내리지 않으셨다면 말이야."

"그렇긴 합니다만 전 정치를 전혀 모르니...."

이철원은 계속해서 자신없는 표정이었다.

그는 먹음직스럽게 양념이 배인 닭발을 한입 베어 물었다.

진한 고추 양념이 입안을 얼싸하게 만들었지만 그의 착잡한 기분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야, 이거 보기보다 완전 맹물이구만!"

그러나 그 역시 생각에 잠기며 소주잔을 씁쓸히 들이 부었다.

"하긴.... 우리는 항상 윗놈 들이 시키는대로 굴러가는 팔자라, 그게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작전에 투입됐었었지."

"그래서 선배님을 뵙자고 한겁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말입니다."

진기만은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아끼는 후배가 중요 요직에 앉아있다는 뿌듯함이 너무 앞섰던 것이다.

"그래도 철원아. 우리가 누구냐? 밥 먹듯이 휴전선 넘어서 북한 놈들 목 따러 가는 놈들이 아니냐.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이 있다."

"그래도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이 바라는 것과 우리 나라가 바라는 것이 서로 다를 때도 많고....."

이철원은 정말로 답답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낼려고 했지만 진기만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아무리 너랑 나랑 끈끈한 전우라도 나랏일을 함부로 발설하면 쓰나. 네가 말 안해도 무슨 말 하는지 잘 아니까 그만 해라."

"......"

이철원은 진기만의 빈잔에 소주를 부어주었다.

"철원아."

"예. 선배님."

"나야 군복 벗은지 벌써 10년이 다 되간다. 감이 죽을대로 죽은 그냥 평범한 어부라고."

"......"

이철원은 연신 소주잔을 들이키는 진기만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왜 소주맛 떨어지게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냐?"

"그게....."

"어라?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진기만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닭발을 집어들었다.

"선배님. 미국이 외계 물질을 지구로 반입했습니다."

"아, 그랬.... 켁!켁!"

진기만이 목에 걸린 닭발을 삼키느라 죽을뻔 했다.

그러나 지금 닭발보다 후배의 말이 더 놀라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진기만은 냉수를 통째로 들이키며 속을 진정시키고 겨우 입을 열었다.

"야 임마, 너 지금 뭐라고 그랬냐?"

"미국이 외계인과 접촉했습니다. 그리고 그 들에게서 아주 특별한 물질을 전해 받았습니다."

"......"

진기만은 젓가락을 든체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일반인이 듣는다면 무슨 SF 영화 이야기를 하는 줄 알것이다.

하지만 이철원은 그런 어마어마한 소리를 하면서 매우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

"햐.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결국 진기만은 헛웃음을 내뱉으며 가볍게 넘기려고 했다.

"이야~ 세상 많이 좋아졌구만. 천하의 진기만이 이런 장난에 넘어가고 말이야."

"아닙니다. 선배님. 정말입니다."

"....."

진기만은 비어있는 소주잔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거짓말이 아니다.

"참.... 이거...."

진기만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이철원이 다급히 일어섰다.

"선배님."

"야, 술맛 떨어져서 더 이상은 못 먹겠다."

"선배님!"

이철원이 팔을 붙잡았지만 진기만은 휙 빼냈다.

"술값은 내가 계산할테니까 먼저 가라."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됐다. 이모! 여기 얼마요?"

진기만이 계산을 하고 포장마차를 휙 빠져나가자 이철원이 다급히 그를 뒤따랐다.

"선배님.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이철원이 다급하게 부르자 진기만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뒤돌아섰다.

"이봐요. 나으리. 난 복잡한 일에 끼고 싶지 않으니까 당분간 얼굴 마주치지 맙시다."

"선배님!"

"아, 나 귀 안먹었어! 조용히 불러!"

이철원과 진기만이 서로 소리를 지르자 거리를 걷던 사람 들이 그들을 주시했다.

"일단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 하시죠."

"싫다면?"

"선배님."

이철원은 진기만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저는 선배님께 고민을 털어놓으려고 할뿐입니다. 그냥 그 뿐입니다."

"......."

진기만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머리를 북북 긁다가 결국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담배를 꺼내물었다.

"이런 젠장. 미꾸라지 같은 놈이.... 차로 이동하자. 해남에 조용한곳 많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결국 진기만을 질질 끌려가듯 이철원을 뒤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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