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2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외전2 (그녀의 기억) -- >
- 크하하하! 자네 아주 당돌하구만!
"예?"
그런데 총장의 대답은 영 뜻밖이었다.
최소한 '무슨 일이야?',
'바쁘니까 용건만 간단히.'라던지,
'혼자 서부를 평정하려니까 힘드나?'라는 말 들이 쏟아져 나올줄 알았다.
그런데 전화를 받자마자 아주 유쾌하게 웃으며 당돌하다고 하는 통에 설화는 두 눈만 껌벅거렸다.
- 그새 또 누가 자네에게 진급했다고 말했나 보군. 그걸 확인하고 싶어서 나한테 부랴부랴 전화했나?
"예? 진급이라니.... 누가 말입니까?"
- 누구긴 누구야? 바로 자네지. 이번 장성 진급에 자네가 거론되었네. 연합군도 상당히 긍정적이야. 하긴. 유럽 서부 전선을 자네 혼자 도맡아서 평정을 하고 있는데 별 세개도 충분하지.
"아니. 그게....."
설화는 말문이 더더욱 막혀왔다.
느닷없는 진급이라니.....
- 하여튼 우리는 자네와 같은 사람 들이 절실히 필요해. 동부 전선에 나가있는 그 놈들은 2만여 병력을 가지고 도대체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아직도 폴란드 근처에도 못가보고.... 참. 사내 놈들이 한심하기 그지 없다니까!
비스크 대장이 볼멘소리로 다른 지휘자 들을 욕하자 설화는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과찬이십니다. 그들은 저보다 적은 화력을 가지고 고군분투하고 있질 않습니까?"
- 아니야. 무기를 모으고 관리하는 것도 지휘자의 능력이란 말일세. 자네가 보유하고 있는 전차가 처음에는 30대였어. 그걸 두배 이상 불린것도 자네 아닌가. 하긴. 자네가 전차 엔지니어를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데려 갔을 때는 나도 이해를 못했네만, 지금에서야 알것 같네. 누가 그 전장에서 전차를 수리해가며 전쟁을 치루나? 자네는 미래를 볼 줄 알아.
"......"
설화는 아무런 말없이 이마에 손을 얹었다.
- 아무튼 자네 진급식을 전선에서 해야한다는게 매우 아쉽네만, 내가 최대한 신경을 썼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장성 진급 진심으로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다 총장님 덕분입니다."
- 그래. 그럼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겠네.
설화는 전화를 끊고 다시 소파에 주저 앉았다.
아까 고민을 했을때보다 더 힘이 빠지고 피곤해 보였다.
- 똑똑똑
그러나 설화에게 도무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설화도 사람인지라 화가 울컥났지만 겨우 참아내고 다시 군복을 갖춰 입었다.
"누구야?"
- 부관입니다.
"들어와."
부관은 상당히 상기된 표정이었다.
"연대장님. 좋은 소식입니다."
"그래. 내가 장성 진급했다고?"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설화가 덤덤하게 말하자 부관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렇게 됐어. 그런데 지금 그거 알려줄려고 여기 들어온건가?"
설화 표정이 의외로 다소 굳어있자 부관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아 그렇기도 한데...... 그보다 지금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예. 비슬리씨입니다."
비슬리씨란 소리에 설화의 표정이 확 펴졌다.
만약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비슬리씨가 장성 진급이라도 해준다는 표정이었다.
"어서 들어오시라고 해. 아, 그리고 차 한잔 타오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관이 나가자 콧수염을 근사하게 기른 중년의 남자가 중절모를 벗고 들어왔다.
"오랜만입니다, 설화... 아, 이제는 장군이 되셨죠?"
"아, 아니에요. 비슬리씨. 편하게 하세요. 저 불편한거 싫어하신거 아시잖아요."
"아닙니다. 그래도 장군님이시면 예를 갖춰야죠."
비슬리씨가 허리를 숙이자 설화가 곤란한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허리를 숙였다.
"어쨌든 여기 앉으시지요."
"예. 감사합니다."
비슬리씨와 마주앉자 설화는 표정을 다시 반갑게 고쳤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그런데 갑자기 이런 전선까지 오시다니.... 혹시 제 아들이 뭔가 잘못이라도....?"
"아닙니다. 아니에요."
설화가 조심스럽게 묻자 비슬리씨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 녀석은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뭐 딱히 걱정이 있다면 공부에 영 취미가 없다는거 정도랄까요?"
"그거 큰 문제네요."
"하하하. 워낙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 그런것 같습니다. 그래도 인격적으로 매우 훌륭한 친구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비슬리씨가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웃자 설화도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 자식... 아직도 음악에만 빠져있나요?"
"예. 요즘은 기타도 치고, 피아노도 스스로 배우고 있어요."
"오... 그렇군요. 아무튼 제 아들을 저보다 더 잘 보살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어떻게든 보답을 해야하는데 아시다시피 사정이 이러니....."
설화가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비슬리씨는 지난 수십년간 자신의 아들을 친아들 못지 않게 길러준 대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장군님께서 항상 전쟁을 나가시는게 어디 장군님만의 문제입니까? 우리 생존자 들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그리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생존자 들을 구하기 위해 장군님은 싸우고 계시지 않습니까?"
"휴우.....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에요. 하지만 요즘은 왜 싸우는지 자꾸 의문이 들어요."
"흐음.... 요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설화는 다시 한번 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