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5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3 (ZER-0) -- >
터키 레스토랑이 파리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았다.
영국 킹스크로스역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프랑스 북역까지 사방이 꽉 막혀있는 해저터널 빠져 나오느라 고생을 했지만...
다행히 스탠의 엄마가 유명한 군인이라 1등석에 탈 수 있었다.
심지어 사람 들이 얼굴을 알아보고 힐끗힐끗 쳐다보기까지 했다.
아무튼 이스탄불은 좀비 들이 드글드글 하기 때문에 프랑스에 있는 터키 레스토랑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음식은 꽤 괜찮았다.
스탠이 주문한 건 ISKENDER 케밥이었는데, 얇게 썬 쇠고기 밑에 찌루라는 빵을 깐 음식이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욱 눈길을 끄는건 왠 흐물흐물한 하얀색 덩어리 들이었다.
'이건.... 순두부...인가? 인터넷에서 볼때는 분명 한국 음식이었는데...'
스탠이 아무 말 없이 숟가락으로 그것을 조심스럽게 눌러보자, 스탠의 엄마가 에탤리 에크맥을 한입 베어물다가 아들을 쳐다보았다.
에틸리 에크맥은 얇은 빵 위에 치즈와 비프를 얹은 터키식 피자였다.
바삭바삭 식감이 일품이다.
"밥 먹다가 뭐하냐?"
"이게 뭔지 궁금해서."
"뭔지 모르면 한번 먹어봐."
"으음...."
스탠이 조금만 떠서 먹자 입안에 약간의 비릿함과 시큼한 맛이 절묘하게 섞여있었다.
"요구르트 같아. 그런데 평상시에 먹던 그 맛은 아니야."
"인공 첨가물이 안 들어가서 그렇겠지."
스탠의 엄마가 무덤덤하게 대답하며 커피 한모금을 마시자, 스탠은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그런데 그런 빵 쪼가리 먹고 괜찮아?"
"응. 괜찮아."
"전선에 나가있다고 아무렇게나 먹는건 아니겠지? 그러고보니 엄마 지금 살 빠진거 알아?"
"알아서 잘 챙겨먹으니까 걱정하지마."
스탠은 고개를 내저으며 남은 케밥을 마저 먹었다.
"그런데 엄마."
"왜?"
"나도 군대나 지원 할까?"
"......"
스탠의 엄마는 한동안 멍하니 자신의 아들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마. 넌 그냥 평범하게 살아."
"왜?"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
"왜?"
스탠의 엄마가 에틸리 에크맥을 마저 먹다가 던지듯 내려놓았다.
"밤새 총질하고 좀비들 뇌나 파는 일을 직업으로 추천하는 부모가 어디있냐?"
"그래도 생존자 들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일이잖아. 충분히 목적 의식이 있는 직업이라고."
"그냥 허상일 뿐이야. 현실은 더욱 비참하고 참혹해."
"하지만...."
-쾅!
느닷없는 굉음에 식당 안에 있는 사람 들이 깜짝 놀라 스탠 모자(母子)를 쳐다보았다.
놀라기는 스탠도 마찬가지였다.
스탠의 엄마가 주먹으로 식탁을 내려친것이다.
"엄마?"
"넌 절대 군인이 될 수 없어. 아니, 되서도 안돼. 알았어?"
평소에 볼 수 없는 무시무시한 기운때문에 스탠은 차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제 집에 돌아가. 혼자 갈 수 있지?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집전화로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해. 반드시!"
"엄마...."
"엄마 지금 부대 복귀 명령 떨어졌어."
스탠의 엄마가 벌떡 일어서자 스탠이 어정쩡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둘은 식당을 벗어나자마 인적이 드문곳으로 향했다.
장군인 스탠의 엄마는 사람 들이 모두 지켜보는 곳에서 군용 지프에 올라탈 수 없었다.
"그럼 이거라도 가져가."
"뭔데?"
"엄마 제복 명찰 떨어졌다며. 내가 다시 만들어봤어."
아들이 내민 명찰을 엄마가 받아들었다.
비록 아크릴판으로 만든것이지만 정교하게 글씨가 파여 있었다.
맨 위에 영어로 자신의 이름이 쓰여 있었지만, 그 아래 두개의 생소한 문자가 조그맣게 새겨져 있었다.
영어가 생존자 들의 표준어인만큼 한글은 무척 생소했다.
"이거 한글 아냐?"
"어? 어떻게 알았어?"
스탠이 깜짝 놀라 묻자 중년 여성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아들이 머쩍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난 비록 중국계이지만.... 우연히 한국에 대한 글을 보다가 관심이 많아졌어. 요즘 한국 음식 만드는것도 재밌고...."
"그래. 다행이네."
다행이라는 말에 스탠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씨익 웃었다.
"아무튼 엄마도 나이를 먹었으니까 몸 좀 사려. 5개월 후면 제대하잖아."
"알았으니까...."
스탠의 엄마는 아들의 어깨를 꾹 누르며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절대 군에 입대할 생각하지마. 알았지?"
"....알았어. 생각해볼게."
"쓰읍!"
"알았다구요."
"아, 그리고 비슬리씨에게 미리 말해뒀으니까 다음주 월요일에 그 분 차타고 런던 의사당에 같이 가도록 해."
"런던 의사당은 왜?"
스탠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보자 엄마가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집에서 놀고 있을 거야? 엄마가 부탁하니까 비슬리씨가 널 시민 대표로 추천했어. 다른 시민 대표 분들도 비슬리씨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별로 반대를 안했대."
"아우! 귀찮게!"
스탠이 진저리치자 엄마가 꿀밤을 때렸다.
"악!"
"보수는 적어도 얼마나 보람있는 일이야? 잔말말구 해! 알았어?"
"알았어. 알았다구요."
"그래. 어서 집에 먼저가. 엄마도 이제 가야 돼."
"응....."
스탠이 뒷통수를 매만지며 등을 돌리자, 그의 엄마는 물끄러미 아들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들이 선물한 명찰을 만지작거렸다.
"설....화....."
한글에 적힌 이름은 무척 친숙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무척 아려왔다.
"승철아. 봤지? 피는 못 속이나 보다."
설화는 촉촉한 눈가를 손으로 닦아내며 방금 도착한 군용 지프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