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8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3 (ZER-0) -- >
- 프랑스 파리 육군사관학교
예전 프랑스 육군사관학교를 생존자 육군 본부로 탈바꿈 시킨 곳이었다.
프랑스 육군사관학교는 나폴레옹을 배출한 유서가 깊은 곳이다.
쿵!
쿵!
쿵!
듣기에도 무척 큰 발소리였다.
군화 바닥이 대리석 바닥면에 부딪칠때마다 모두가 깜짝 놀라 소리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실 그럴만도 했다.
설화는 어제 알바니아에서 급보를 받고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사단장님.... 조금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부관이 쩔쩔매며 종종 걸음으로 그녀를 뒤 ㅤㅉㅗㅈ았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설화는 거침없이 계단을 타고 올라가 육군 참모총장실 문 앞에 섰다.
하지만 문 앞에는 건장한 무장 헌병이 험악하게 인상쓰며 그녀 앞을 가로 막았다.
"참모총장님 지시를 받고 오신 겁니까?"
"뒤지기 싫으면 꺼져."
설화가 나지막하게 협박하자 헌병 들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팔을 들어 제지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명성을 제대로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참모총장님 명령없이 이러시면 안됩니다."
"이런 개같은 것 들이!"
설화는 거칠게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 팔을 변형시켜 거대한 검을 꺼내들었다.
그 바람에 설화의 부관은 얼굴까지 새파래지며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사단장님! 제발 진정하십시오! 여기는 육군 본부입니다."
"그래서 씨발, 뭐 어쩌라고?! 내 부하 들이 다 개 죽음을 당했는데 나보고 지금 참으라고?!"
설화가 크게 소리를 지르자 결국 참모총장실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나왔다.
"자네 아직도 그 버릇 못 고쳤나? 여기가 무슨 자네집 안방이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헌병 들이 냉큼 비켜섰다.
머리를 말끔하게 뒤로 넘기고 탄탄해 보이는 근육질 육체를 멋진 제복으로 감싼 40대 남성이 설화를 깔아보았다.
그가 바로 육군 최고 사령관이자 참모총장인 비스크 대장이었다.
"누가 공중 폭격을 지시했습니까?"
설화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비스크 대장의 짙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내가 허가했다. 중장."
"....."
너무 덤덤한 대답에 설화가 잠시 얼이 빠진 표정을 짓다가 결국 시뻘게진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참모총장님께서 그런 명령을 내리실 이유가 없습니다! 누굽니까? 연합군 새끼 들입니까? 아니면 의회에서 헛소리나 해대는 그 노인네 들입니까?"
"야! 1사단장!"
비스크 대장이 정말로 크게 소리지르자 헌병 들은 물론 설화마저 움찔했다.
"일단 들어와."
비스크대장은 설화가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궜다.
그리고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아 피곤한듯 얼굴을 문질렀다.
설화 역시 일단 성질을 죽이고 조용히 맞은편에 앉았다.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이 세 국가는 그리스를 인접하고 있지."
"그렇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 새삼스러웠지만 설화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4사단은 불가리아를 통해서 그리스로 진입하려고 했어. 자네도 알다시피 목숨을 건 작전이었지. 물론 4사단장이 젊은 혈기를 앞세우긴 했지만 확실히 불확실한 작전이었어."
"그러면서 왜....."
"나라고 내 부하 들을 사지로 몰고 싶었겠나?"
"그럼 도대체 뭡니까?"
"어쩔 수 없었네."
"예?"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대답 들이었다.
"저도 그리스를 평정해야 아시아 진입이 쉽다는걸 압니다. 그래서 사지라는것을 알고도 4사단장이나 저나 발칸반도로 떠난거구요. 하지만 핵폭탄을 진짜로 사용한다는 말은 없지 않았습니까?"
"아닐세, 중장. 핵은 언제든지 쓸 수 있었네."
"예?"
비스크 대장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창가에 다가섰다.
바깥 날씨는 프랑스와 걸맞지 않는 회색빛 구름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자꾸 이상한 위성 사진이 찍히고 있어. 묘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는 말일세. 터키쪽에 지금 감염자가 몇이나 몰려있는줄 아나? 벌써 1천만명이야."
"거, 거짓 정보 아닙니까?"
설화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비스크 대장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연합군 첩보 위성은 확실해. 우랄산맥만 안 넘었다 할 뿐이지, 이스탄불을 통해 그리스로 몰려 오고 있어."
"그런....."
비스크 대장은 책장에서 위스키를 꺼냈다.
그리고 속이 타 들어갔는지 병째 들이켰다.
"한잔 하겠나?"
"아닙니다. 그보다 감염자 들이 터키로 몰려오는 이유가 뭡니까?"
비스크 대장은 위스키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우리도 그걸 모르겠어. 자네도 알다시피 유럽으로 통하는 길을 다 통제하고 다리까지 폭파시켰는데 말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이스탄불이 아시아로 연결되는 유일한 길인데....."
갑자기 비스크 대장의 말이 툭 끊어졌다.
뭔가 번뜩하고 머릿속을 스쳤다.
그건 설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둘은 미리 짜기라도 한듯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통제 당하는거 아닙니까?"
설화가 물을 필요도 없었다.
비스크 대장은 당장 수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했다.
"나야. 연합 정보 관리부 찰리 국장한테 연결해."
비스크 대장은 교환을 통해 연합 정보 관리부를 찾았다.
연합 정보 관리부는 연합군이 만든 최고 정보 기관이었다.
이 들이 가지고 있는 인공위성만 하더라도 200대 정도였다.
- 예. 찰리 국장입니다.
"나요. 비스크 대장이요."
- 아, 예. 총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감염자 들이 이스탄불로 들어오고 있는데 이거 혹시 통제 당하고 있는거 아닙니까?"
비스크 대장은 뼈속까지 군인이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나 수화기 반대편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마치 대답을 회피하기라도 하는듯한 모양새였다.
"아니, 왜 대답이 없소?"
- 총장님.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근거는 무슨... 위성 사진 들이 근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감염자 들이 이스탄불을 통해서만 그리스로 침입하고 하고 있잖소! 누가 마치 지시한것처럼 말이요."
- 휴우.....
수화기 건너편 찰리 국장은 듣기에도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 총장님.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그럼 말을 못하겠다는 소리요?"
- 언젠가는 알려드리겠지만 지금은 발칸반도를 더 신경쓰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봐요! 국장! 내가 지금 연합군이 해대는 꼬락서니가 좋아서 핵폭탄 사용을 허락한줄 압니까?!"
- .......
비스크 대장은 정말로 화가 난 표정이었다.
"국장! 내 말 똑똑히 알아 들으시오! 핵폭탄 사용은 전적으로 연합군 원수께서 최종 결정을 하시겠지만, 육군 참모총장인 나와 상원, 원로회의 허락이 있어야지 허가가 날 수 있소. 이건 USN에 재정된 일종의 법이란 말이오! 아시겠소?"
- 그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핵폭탄 사용을 이제 허가 못하시겠다는 겁니까?
찰리 국장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비스크 대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찰리 국장. 우리 더 이상 감정 싸움까지 하지 맙시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왜 감염자 들이 이스탄불에 몰려있는지와 연합군이 다급하게 핵을 사용하자고 하는 까닭을 분명히 말해야 할거요. 나는 이 전화를 끊자마자 내 오랜 벗이자 전우인 해군 참모총장과 이 일을 상의함은 물론, 상원과 원로회의 허락을 받을 필요없이 USN 사무총장님과 직접 독대를 할것이오."
- 옷을 벗으려고 작정했군. 비스크 대장?
수화기 반대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마치 다른 사람이 말하는것 처럼 매우 차가웠다.
그때문에 비스크 대장의 표정도 매우 굳어졌다.
"어차피 연합군과 육군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었지. 그러니까 똑똑히 내 말을 기억해라, 찰리. 우리 육군은 생존자 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뿐 너희 연합군의 더러운 꿍꿍이 속에 놀아나는 꼭두각시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 좋을대로. 어차피 시간이 말해주겠지.
- 쿵!
비스크 대장은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고 화를 식히려고 안간힘을 썼다.
"대장님."
"설화 자네는 지금부터 1사단장이 아니야."
"예?"
매우 뜬금없는 소리에 설화가 깜짝 놀라 되물었지만, 비스크 대장은 뭔가 중대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연합군 이 새끼 들 뭔가 꿍꿍이 속이 있어. 그리고 상원, 원로회도 한통속이야. 혹시 USN도 모르지. 하지만 속단을 할 수 없어. 그러니까 자네가 우리 자체 내의 첩보기관을 신설 운용토록해. 물론 아주 극비리에 일을 처리해야 할거야. 내가 자네한테 이 일을 믿고 맡기는 이유는...."
비스크 대장은 갑자기 말 끝을 흐렸다.
설화는 그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뜻인줄 잘 압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어디를 집중적으로 캐면 됩니까?"
"그거 스파이 들 전문 용어인가?"
"그런셈 입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자네 상대는 연합군이야."
"저도 바라는 바입니다."
설화는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비스크 대장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한순간 판단이 흐려져서 핵폭탄 사용을 허락했지만, 이거 고분고분 말을 들어서는 안되겠어. 아무튼 전역이 얼마 안남은 자네한테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마지막으로 부탁하겠네."
"걱정마십시오. 전역하기 전에 연합군의 뼛속까지 들춰내겠습니다."
설화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비스크 대장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필요한게 있으면 무엇이든지 말하게. 내가 이래뵈도 발이 넓어서 왠만한건 얻어줄 수 있네.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테니 일주일간 집에서 쉬고 있게. 상부에는 내가 알아서 말할테니...."
"알겠습니다."
설화는 거수 경례를 하고 참모총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말없이 허공을 응시하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다시 한번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일단 억울하게 희생된 내 부하 들의 넋을 위로해야겠지.'
설화는 찌뿌둥한 하늘을 응시하며 밀려오는 죄책감에 괴로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