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스트 데드-172화 (170/262)

< -- 172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3 (ZER-0) -- >

과거 리스본 음악학교는 참으로 독특한 디자인을 가진 건물이었다.

고풍스러운 유로풍 건물 들 사이에 지어진 이 하얀 박스 같은 건물은 음악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곳이었으나, 지금은 BPA (Bio Project Academi) 라는 간판을 걸고 바이오 기술을 연구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뒤집힌 인류의 역사가 감수성보다 현실적인 생존을 요구한 결과였다.

아무튼 BPA 총 책임자는 동아시아계 40대 후반의 아리따운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초(艸)'라고만 할 뿐, 누구에게도 과거를 말하지 않았다.

초는 위험천만한 시크릿-X 바이러스를 변형시켜 인간의 신체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약물로 변형시켰다.

물론 그것은 매우 위험한 도전이었지만, 20여년의 세월동안 연구한 성과는 매우 성공 적이었다.

실험대상이 자아를 잃어버리지 않고도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과거에 바이러스 감염 즉시 공격적인 본능만 남았던 것만 생각하면 비약적인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백신까지 꾸준히 개발하여 살아남은 생존자 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공격적인 본능만 잠재웠을뿐 인간으로 완벽하게 돌아올 수 있는 기술까지는 아니었다.

초는 마법처럼 좀비에서 인간으로 완벽하게 돌아올 수 있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또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신이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이길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그런 초의 사무실은 따로 없었다.

개인 연구실 한구석에 침대와 TV, 쇼파, 개인 컴퓨터를 놓고 아예 자리를 잡아버렸다.

얽매이는 곳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그저 몸이 눕는 곳이 집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초는 그런 불편함조차 게의치 않았다.

백신 개발이외는 전혀 관심이 없을 뿐이다.

그래서 평소에 화장을 하지도 않았다.

머리를 꾸미는 것도 신경쓰지 않았다.

어깨까지 치렁치렁거리는 머리를 한번 질끈 묶고 볼펜이나 젓가락을 비녀처럼 꽂는게 전부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녀에게 너무나 특별하고도 각별한 날이었다.

이날만큼은 초는 화장도 하고 머리도 우아하게 말아올였다.

옷 역시 단아하면서도 심플한 원피스를 꺼냈다.

"휴.... 이 정도면 될까?"

이 날만큼은 3시간을 공들여 화장과 머리에 신경을 썼다.

마치 오랜 시간동안 떨어진 연인을 만난는 것처럼 가슴이 쿵쾅거리기까지 했다.

"소장님. 10분 후에 도착하신답니다."

"저, 정말? 그래. 알았어!"

누군가 문 밖에서 알려주자 초는 당황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밖에는 자신의 조수이자 BPA에서 가장 믿고 있는 연구원 '브리튼'이었다.

그는 훤칠한 키와 시원한 이목구비로 BPA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 연구원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안타깝게도 초같이 백신 연구에만 미쳐 있을뿐 그 외적인 것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또한 초를 가장 존경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사심같은것도 전혀 없었다.

"소장님. 많이 설레이시나 봅니다. 도대체 누가 오길래 그렇습니까? 설화 장군님 때문은 아닌것 같습니다만....."

"내가 그렇게 보여?"

평소같으면 '별로', '신경쓰지마.'라며 툴툴거렸을텐데 무척 상기된 얼굴로 자신의 온몸을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다.

"누군지 참 궁금하군요. 소장님이 이런 모습을 보이시다니...."

"....."

초는 브리튼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하며 BPA 로비까지 나갔다.

"소장님!"

초가 고개를 돌려보니 누군가 로비에서 큰 소리로 부르며 헐레벌떡 뛰어오는게 보였다.

그는 BPA에서 가장 큰 육체를 가지고 있는 '지오'였다.

키 230cm에 100kg의 육중한 체격으로 건장한 어른 100명을 거뜬히 상대할 정도로 힘이 좋았다.

하긴 그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초'의 1호 실험대상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인조인간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것이다.

"소장님! 오늘 설화 장군님이 아카데미에 오신답니다!"

"알아, 임마."

"아, 그렇습니까?"

초가 핀잔을 주자 지오가 뒷통수를 긁적였다.

"아무튼 오늘은 나한테 중요한 날이니까 되도록이면 평소처럼 날 대하지마."

"알겠습니다."

"예?"

브리튼은 한번에 알아들었지만 지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소처럼 주먹, 발을 쓰게 하지 말라고."

"아~ 그거였어?"

브리튼이 조용히 귀띔하자 지오가 크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오, 쟤 좀 조용히 시켜! 안 그래도 정신없어 죽겠는데!"

초가 홱 째려보자 브리튼과 지오가 흠칫했다.

"눈치있게 해라. 눈치 있게."

브리튼이 쿡쿡 찌르자 눈치 0%도 없는 지오가 고개를 사정없이 끄덕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군가 정문을 통해 로비로 들어오는게 보였다.

"저기 옵니다."

브리튼이 알려주자 초조하게 천장만 쳐다보던 초가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런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목을 삐끗하고 말았다.

"아야!"

"괘, 괜찮으십니까?"

초가 목을 붙잡고 고통스러워하자 지오가 얼른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 사이 그 동양 남녀가 다가왔다.

"여~ 초 소장."

"어, 설화 언니..."

설화가 반갑게 인사하려다가 뭔가 이상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왜 그래? 다쳤냐?"

"좀 삐끗했나봐...."

"도대체 뭐 하다가....아니 그보다 야! 깡통머리!"

설화가 걱정스럽게 초를 쳐다보다가 뒤에서 멍하니 서있는 지오를 노려보았다.

"예. 장군님."

"네가 엘데르 총통한테 우리 온다고 말했냐?"

"아, 예. 오늘 오시니까 마중 나가는게 좋겠다고..."

-퍽!

"커헉!"

설화가 발로 정강이를 사정없이 걷어차자, 지오가 허리를 숙이며 괴로워했다.

왠만한 공격에는 끄덕없는 지오이지만 설화 공격에는 그 역시 별수 없었다.

"공항에 오자마자 붙잡혀서 얼마나 곤란스러웠는지 알아?"

"죄, 죄송합니다!"

"됐고. 아, 얘가 내 아들 스탠이야."

설화가 뒤에서 얌전히 서있는 스탠의 팔을 잡아당기며 앞에 세웠다.

"아, 좀 살살해."

스탠이 툴툴거리자 초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눈매가 촉촉히 젓어있었고 입 주변도 상당히 떨리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설화가 얼른 입을 열었다.

"스탠. 인사해. BPA 초 소장이야."

"아, 안녕하세요."

"....."

"소장님. 인사하셔야죠."

브리튼이 멍하니 서있는 초소장을 슬쩍 밀었다.

"아, 아 그래. 반가워요."

"예..."

스탠과 초소장은 어색하게 악수를 나눴다.

"그럼 식사부터 하시죠. 저희가 미리 준비했습니다."

브리튼이 얼른 나와서 말하자 설화가 그거라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우리 많이 배고파. 일단 밥 먹고 이야기 하자."

"그래."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브리튼이 앞장서자 설화가 바로 뒤따랐고 스탠 역시 엄마 옆에 서서 걸었다.

"......"

그러나 초 소장은 스탠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소장님. 소장님!"

"어, 어?"

"같이 식사하러 가셔야죠."

"그래...."

초 소장이 멍한 표정으로 뒤따르자 지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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