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78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3 (ZER-0) -- >
"야, 좋은 말로 할때 꺼져라."
브리튼이 말릴새도 없이 초와 설화의 눈에 난장판이 펼쳐졌다.
덩치 큰 흑인과 키가 작고 왜소한 동양인이 서로 노려보고 서있었다.
그들 앞에는 온갖 집기 들이 널부러져 있었는데, 물어보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만 했다.
흑인 남자는 옛날 뉴욕 뒷골목에서나 볼법한 인상이었지만, 동양인은 무척 인상이 강렬했다.
평범한 하얀 얼굴에 단정한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었지만, 커다란 두 눈에서 섬광이 일어날듯이 강렬했다.
심지어 덩치가 크고 우람한 그 흑인보다 인상이 더 강렬했다.
"싫은데?"
그는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감흥없는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는 사과를 한 입 베어물었다.
그러자 흑인은 더욱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그 남자를 더욱 몰아세웠다.
"네가 죽고 싶어서 아주 환장했구나. 그 잘난 대가리로 상황 파악이 안되냐?"
"아니, 상황파악이 아주 잘 되고 있지. 이 집에 있어야 할 사람은 나고 나가야 할 짐승은 너라는 거 말이야."
"아니, 그런데 이 새끼가!"
흑인이 주먹을 휘두르려는 찰나 누군가 그의 팔을 꽉 잡았다.
"아이씨, 이거 안놔?!"
"못 놔."
신체 능력을 90% 이상 끌어낼 수 있는 그에게 물리적인 접촉을 할 수 있는 용감한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BPA 부소장인 브리튼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누군가 자신의 팔을 붙잡고 멈춰 세운 것이다.
흑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왜소한 50대 여자가 무미건조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게 보였다.
"뭐야, 아줌마?"
"어허, 가족끼리 폭력은 못쓰지."
"아줌마 참견하지 말고 꺼져. 이건 나랑 저 새끼 문제이니까."
"아, 그러냐? 어이, 브리튼!"
"예, 장군님!"
설화가 브리튼을 부르자 후다닥 뛰어왔다.
브리튼이 '장군님'이라고 소리치며 뛰어오는 모습에 집안에 있던 모든 사람 들이 놀라 설화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물론 초는 빼고...
"저 시커먼 덩치 큰 놈 이름이 뭐냐?"
"예. 사무엘.... 사무엘 잭슨입니다."
"어이, 사무엘. 이 주먹은 내려놓고 나랑 이야기 좀 할까?"
"아줌씨랑 말섞고 싶지 않수다. 괜히 여자 몸에 손대고 싶지 않으니까 꺼져!"
"아니, 그런데 이 새끼가 무슨 뉴욕 뒷골목에서 놀다가 왔나? 말버릇 좋게 안하냐?"
갑자기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몰려들었다.
싸움을 말린다기보다 새로운 볼거리에 흥미가 생긴 모양이었다.
하긴 아까 그 동양인 남자와 시비가 붙었을 때도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평범한 일상의 조각인 듯한 모습이었다.
아무튼 사무엘은 설화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그녀 앞에 다가섰다.
키나 덩치를 봐도 설화의 3배 이상은 족히 커보였다.
"아줌씨. 마지막 기회야. 당장 여기서 꺼져."
"여기 네가 전세냈냐? 네가 뭔데 아까부터 나가라 마라야?"
"아줌씨! 나 정말 열받으면 남자 여자 안 가려!"
"아, 그래서 나한테 주먹을 날리시겠다?"
"못 날릴것도 없지."
"그래?"
사무엘이 실실거리면서 웃자 설화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자 곁에 서있던 초가 브리튼의 옷자락을 붙잡고 거칠게 뒤로 당겼다.
설화를 너무나 잘 아는 그녀로서는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퍼억!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설화가 갑자기 공중으로 튀어오르더니 그대로 오른발을 휘둘러 사무엘의 관자놀이를 정확하게 가격한 것이다.
순발력, 정확성, 파워 3박자가 제대로 들어간 발차기 공격이었다.
"크흑!"
아니라 다를까 사무엘이 입에서 피를 내뿜으며 휘청거렸다.
마치 쇠망치로 맞은듯한 느낌에 기절할뻔 했지만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이, 이 아줌마가!"
사무엘이 머리를 흔들면서 제대로 섰다.
눈 앞이 어질어질 했지만 너무 어이없이 공격을 받은터라 열부터 났다.
"왜? 그렇게 싸움에 자신 있으면 입으로 떠들지 말고 덤벼."
"크흑! 이런 개같은!"
사무엘이 거칠게 욕설을 내뱉자 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브리튼을 붙잡았다.
"야, 애 들 다 밖으로 내보내고 새 집이나 알아봐라."
"마,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말려? 누구를? 네가 설화를 말릴 수 있을 것 같냐? 아니면 사무엘을 말릴 수 있을것 같냐?"
"그렇지만...."
브리튼은 안절부절했지만 결국 초의 말을 따를수 밖에 없었다.
"아줌씨. 잘 봤지? 소장이 왜 다들 데리고 나간건지. 저 양반이랑 무슨 관계인지는 몰라도 소장이 아줌씨 버리고 간 거야. 왜냐하면 내가 열받으면 어떻게 될건지 뻔히 잘 아니까!"
사무엘은 기분 나쁘게 웃으며 거 보라는식으로 말했지만, 설화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끼었다.
"네가 아직 덜 맞았구나? 초가 왜 저러는 줄 알아? 바로 너같은 안하무인에게 쓴 맛을 보여주라고 나간거야. 넌 오늘 나한테 잘 걸렸다. 안 그래도 내 아들 놈이 효자라 자식을 혼내는 맛이 없었는데 오늘 젊은놈 실컷 두들겨 팰 수 있겠구나."
마치 어린애 취급하는 설화의 모습에 사무엘의 표정이 싹 굳어졌다.
"나 진짜 아줌씨 곤죽을 만들테니까 각오해."
"고추 달린 놈이 말만 많아가지고... 덤벼. 오늘 이 집에 네 놈의 뼈를 묻어 줄테니까."
"진짜 이 아줌마가!"
사무엘이 거칠게 달려들자 여유롭던 설화의 표정도 순식간에 싹 고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