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84 회: 라스트 데드(The Last Dead) - 시즌3 (ZER-0) -- >
"좋아.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설화가 술기운을 억지로 지우며 팔짱을 끼고 딱딱하게 물었다.
"소라한테 들었어요. 우리를 당신 부하로 쓰고 싶다면서요?"
"그래서?"
"우리가 왜 필요한지 말해주세요."
"....."
뭐 이런 당돌한 계집애가 다 있어?
설화는 그런 말이 목구멍 사이를 맴돌았지만 왠지 이야기는 끝까지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좋아 말해주지. 그럼 진실을 말해줄까? 아니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려줄까?"
"언니!"
초가 당황하며 소리쳤지만 이미 설화의 표정은 굳어졌다.
"절 어린애 취급 안해주셨으면 하네요. 저도 험한꼴 많이 당하면서 살았거든요."
"험한꼴?"
"예."
설화와 소피아간의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뭔가 서로 닮았으면서도 이질감이 동시에 느껴지는듯 했다.
"좋아. 그럼 이야기 해주지. 대신 애 들 다 깨워서 데려와."
"저한테 이야기 해주시면 나머지 애들한테도 전해줄게요."
-쾅!
"지금 내가 너랑 수다나 떠는 줄 알아!"
설화가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치며 소리를 지르자 초와 소피아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럴만도 했다.
설화는 수없이 사람을 죽이고 처절하게 살아온 1급 살인무기나 다름없었다.
또한 현재는 스위스로 넘어온 직후 평생을 군인의 길로 살아왔다.
당연히 살기, 카리스마가 자연적으로 몸에 베어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정말로 화를 냈다면, 초와 소피아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당장 애 들 다 깨워서 내려와. 한 놈이라도 빠지면 사무엘보다 험한꼴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전하고."
"아, 알았어요."
결국 소피아가 질린 얼굴로 올라가 버렸다.
평소에 말도 없고 퉁명스러운 아이인대도 워낙 설화의 기에 눌려 고분고분 해진 것이다.
"언니....."
"미안하다. 이럴려고 했던건 아니었는데."
설화는 털썩 주저 앉아 얼굴을 감싸쥐었다.
누가 봐도 초조, 불안, 걱정스러운 앞 날에 대한 표현이었다.
초는 설화의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쥐었다.
"너무 언니만 고생하고 힘들어하는것 같아서 미안해...."
"아니야. 내가 요즘 좀 예민해져서 그래."
"그래도 여기 있는 아이 들이 개성이 강해서 그렇지 나쁜 아이 들은 아니니까 너무 신경쓰지마."
"그래...."
설화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초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아까 소리 지른게 미안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점점 서먹해지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소피아는 무슨 험한꼴을 당했다는 거야?"
설화가 화제를 돌리자 초는 한숨을 푹 쉬었다.
"여기 있는 아이 들이 소피아와 마찬가지지 뭐."
"음... 그럼 다 들어봐야겠군. 일단 사무엘부터 말해줘. "
"휴... 일단 사무엘은 알제리에서 발견한 고아야."
"고아?"
"응. 연합군이 아프리카 북부 전선을 공격했을때 발견한 고아였어. 그때는 지금과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마르고 허약했지만, 타고난 선골(薦骨)이라 지금과 같은 체격을 유지할 수 있었지."
"흐음...."
설화가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전쟁이라는 말은 설화에게 익숙하면서도 일종의 '노이로제'같았다.
"그런데 여기 와서 질병조사를 해보니까 시크릿-X에 감염이 되었던 거야."
"뭐? 그게 정말이야?"
"응. 이미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한 체내 세포가 하나도 없을 정도였지. 그때 당시 모든 질병 연구원 들이 희망이 없다며 안락사를 주장했지만 브라운 박사님 생각은 달랐어. 그 분은 승철이와 언니의 전례를 강조하면서 반드시 포기하지 말라고 하셨지."
"그랬군...."
설화는 복잡한 감정이 섞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타이밍이 참 기막혔어. 당시 시크릿-X 바이러스를 변형시켜 신체능력을 올리는 특수 약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거든. 게다가 사무엘은 TTES1 타입이었어."
"그게 뭐냐?"
전문적인 용어가 나오자 설화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초 역시 아차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 미안. 시크릿-X 감염 타입을 말하는건데 승철이와 언니가 바로 TTES1 타입이야."
"그래서?"
"TTES1 타입은 감염자의 생체를 손상시키지 않고 체내에 영원히 머무를 수 있는 구조야. 인간의 세포와 융합이 되는게 아니라 자체 세포로 독립이 되어 있다 하더라도 결국 뇌의 컨트롤에 따라 움직이지."
"그게 사무엘이 가지고 있는 타입이라고?"
"응. 결국 박사님의 판단이 맞았어."
"흐음.... 그럼 소라는?"
설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또 다른 질문을 했다.
"소라는 아버지가 알콜 중독자였어. 게다가 무척 폭력적이라 하루가 멀다하고 안 때리는 날이 없었지. 그래서 소라가 남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거야."
"그게 다야?"
"그러면 다행이겠지. 사실 소라에게 아주 끔찍한 일이 있었어. 그 날만큼은 무척 떠올리기 싫겠지만, 그 날 때문에 소라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야."
"도대체 무슨 사연이길래 그래?"
초는 목이 탔는지 냉수를 한잔 따라 들이킨 후 다시 말을 이었다.